나와 그.

고기를 먹지 않는 나.
그런 나와 자주 식사를 같이 하는 그.
고기를 먹지 못하게 된 나.
고기를 먹지 못하게 되어 가는 그.
그렇게 변해가는 자신의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뿌듯해 하는 그.
자신으로 남지도, 내가 되지도 못해서 곤란해 하는 그.






오랜 기간을 쌓아 온 믿음조차, 깨어지는 것은 한순간의 일이다.
그만큼을 새로 쌓는 데에는 물론, 처음보다 훨씬 더 긴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끊임없이 의심하게 되고 끊임없이 흔들리게 되겠지만,
중요한 것은 여전히 스스로가 믿는 일이다.

상대방이 다시 한 번, 나를 믿고자 한다면 더더욱 그러하다.
이전보다도 더 많은 믿음을 주는 것이 나의 역할이다.

믿는다.

믿는다.





성매매와의 전쟁?

나는 모든 종류의 임금 노동에 반대한다. 임금을 받고 노동력을 판매한다는 것은, 사실 존엄성과 자존감을―영혼을 파는 것과 다르지 않으니까. 그래서 나는 임금 노동이 없는 세상을 꿈꾼다. 다른 어떤 형태의 노동이 세상을 구성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사실, 유토피아적인 기대만을 갖고 있을 뿐이지만.
매춘에서부터 성매매까지, 몇 개의 이름을 갖고 있는 일명 ‘성 노동’을 일단은 가장 반대하고 있다. 성이 개방된 사회, 양성이 평등한 사회, 성 행위로부터 신체가 자유로울 수 있는 사회가 온다면 어떻지 알 수 없으나, 현재로서의 ‘성 노동’은 가장 극심한 착취이자, 가장 극심하게 존엄성-자존감을 짓밟는 행위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장안동 일대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성매매와의 전쟁’이 한창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성매매 업소―성매매 행위라기보다는―를 근절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이는 동대문구 경찰서장을 영웅시하는 말들도 종종 보인다. 서울을 비롯해 각지에 포진해 있는 성매매업소 밀집 지역들을 비교 분석하는 기사들도 올라오고, 현 정부의 성 정책을 분석하는 글들도 찾을 수 있다.
인권 유린이 가장 심한 ‘유천동 텍사스촌’이라는 데서는, 하루를 쉬면 벌금이 백 만원이란다. 임금은 140 만원 정도를 준다며 취업을 유도하지만 콘돔 값부터 화장품값까지를 공제하고 실제로 주는 돈은 10만원 남짓이라고도 한다. 폭행과 감금은 기본이고, 살 찐다며 밥은 하루에 한 끼만 준다고. 이 곳의 관할 경찰서장 역시, 업소를 모조리 뿌리 뽑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고 한다.


저쯤 되면, 성매매가 사라 져야 한다는 말에 반대하기는 누구에게도 쉽지 않을 터. 나 역시 다르지 않다. 성매매에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어쩌면, 존엄성이니 자존감이니 하는 정신적인 문제보다도 감금과 폭행 같은 신체적인 안전의 문제에 있는지도 모른다. ‘돈을 냈으니 맘대로 해도 된다’고 여기는 남자와 함께 좁은 방에 갇히는 여성의 공포감을 사실 나는 상상조차 할 수 없지만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성매매 근절, 혹은 성매매 단속을 아무에게나 맡길 수는 없는 일이다. 똑같은 업소를 단속해도 잡아 가는 사람이 다르고 뒤처리가 다를 것이며 언론 보도 또한 달라질 테니까. 지금의 정부와 그 결찰이라면 말할 것도 없겠다. 법적인 근거나 인권의 문제보다도 성경의 구절을 먼저 들이밀 것 같다는 건 나만의 걱정일까.


그들의 처절한 삶이, 한낱 땅값 떨어뜨리는 요인이나 주거환경을 헤치는 요인으로 비치는 모습을 나는 보고 싶지 않다. 세상으로부터 추방당한 그들이, 타락한 영혼이나 엇나간 막장 인생으로 구설에 오르는 꼴을 나는 참을 수 없다. 나는 성매매가 사라지기를 바라지만, 단속되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자의를 통하든 타의를 통하든 성매매로 그들은, 몰아 세워진 것이니까.

잘 지내고 있나요

    그는 내가 속한 단체의 대표를 맡고 있었고, 나와 함께 일하고 있었다. 어느 날 그는 내게, 내가 속한 다른 단체―나와 그가 일하고 있던 단체에 속해 있는―의 대표를 맡지 않겠냐고 권해 왔다. 물론 그가 내게 그 자리를 주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를 맡을 마음을 내가 먹고, 실현을 위해 어느 정도의 애를 써야 하는 일이었다.
    자신이 어떻게 대표라는 자리를 맡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것을 통해 무엇을 배웠는지를 그는 내게 한참 이야기했다. 내가 대표라는 자리를 맡아 보기를, 그리고 그것을 통해 자신이 배운 것과 같은 것을 배울 수 있기를 그는 바란다고 했다. 나는 한참을 고사한 끝에, 결국은 그러마고 대답했다.
    그는 몸이 아팠다. 그가 끝내 임기를 다 마치지 못하고 대표 자리를 그만둔 시기, 그리고 활동 일선에서 물러나 요양을 시작한 시기는 내가 그렇게나 고사했던 자리를 맡게 된 시기와 거의 비슷했다. 나를 설득하기 위해 그렇게나 길게 이야기했던 그 근거가, 그에게서 사라져 버린 즈음에야 나는 일을 시작한 것이다.
    다른 이들을 만나면서 가끔 그의 이야기가 나오면 나는 농담조로 이야기하곤 한다. 나에게 대표를 맡으라고 두 시간을 내도록 이야기해놓고, 정작 내가 일을 시작할 때 자기는 쉬러 가버렸다고. 딱히 그를 원망하는 것도 아니지만, 나의 농담은 어느 정도 그를 무책임한 사람으로 몰아세우고 있었다.
    나름의 사정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나는 그에게 한 번도 연락한 적이 없다. 먼저 연락해서 그의 안부를 물은 적이 없다는 뜻이다. 정말로 어쩌다 가끔 우연히 마주칠 때쯤에나 몸은 괜찮으냐는 말을 던졌을 뿐. 내가 묻지 않은 그 안부를, 다른 이들은 한번쯤 물었을까. 내가 그를 책하며 술을 마시고 웃던 때에, 그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