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의 자전거

지난 일주일, 자전거를 좀 무리해서 탔더니 다리가 아프다. 외출할 일이 좀 많았던 탓이다.

11.12 1 녹두>학교>정부중앙청사>홍대입구역>신촌>녹두
11.11 2 녹두>숙대입구역>학교>녹두
11.10 3 녹두>학교>녹두
11.09 4 녹두>마로니에공원>성균관대학교>녹두
11.08 5 녹두>숭실대학교>서울역>공덕오거리>녹두
11.07 3 녹두>학교>녹두
11.06 7 녹두>학교>신촌>녹두

total 171.8km
다리가, 아플만도 하구나, 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이정도면 뭐, 부산도 가볼만 하겠다는 생각도.

  1. 8km
  2. 9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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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2km
  7. 8km

어느 아침

  탁, 밥통 스위치가 올라가는 소리가 들린다. 쌀을 씻어 밥을 안치고 이십 분쯤이 지났다. 아침이라기엔 늦은 시각에 일어났다. ‘평일 오전 아홉시’로 설정되어 있는 알람을 무시하고 계속 잔 터였다. 금요일은 그들에겐 평일이지만, 내게는 유일하게 완전히 하루가 비는 날이다. 물론 고정적인 일정에서의 이야기이고, 오늘조차도 따로 잡힌 일정이 있으니 완전한 휴일은 아니다.
  잠을 깨서 제일 먼저 한 일은 컴퓨터 스위치를 누르는 것이었다. 컴퓨터가 부팅되는 동안 화장실엘 다녀왔다. 컴퓨터가 켜 지면 밀린 리포트를 쓸 요량이었다. 부팅 중의 푸른 화면을 보고 있자니 갑자기 배가 고파져 왔고, 나는 부엌으로 향했다. 간만에 카레를 해 먹어야겠다, 는 생각을 하며 냉장고를 열어 양파와 감자, 토마토 소스, 다진 마늘을 꺼낸다.
  팬에 기름을 두르고 다진 마늘을 볶다가 양파와 감자를 볶고, 거기에 토마토 소스를 얹어 또 볶는다. 그 뒤의 레시피는 잘 알지 못해서, 그냥 카레 가루를 넣고 볶다가 물을 붓고 끓인다. 친구가 준 사제私製 카레가루는 시중의 것과는 조금 다른 맛이다. 마침 집에 남아 있던 우유를 조금 넣었더니 맛과 색이 시중의 것과 비슷해졌다. 카레에 우유를 넣어보기는 처음이다.
  카레가 끓는 동안 밥을 안쳤다. 그리고는 싱크대 가득 쌓여 있는 어제의 설거지를 시작했다. 어젠 제대로 된 밥을 먹지 않아서 설거지는 간단했다. 스파게티를 먹었던 접시와, 고구마를 삶았던 냄비가 찜기, 그리고 그것들을 먹느라 쓴 수저들. 늘 그렇듯 세제는 쓰지 않는다. 그래도 요즘은 보일러를 틀어 두고 있어서, 따뜻한 물을 사용할 수 있어 훨씬 수월한 편이다.
  카레는 설거지가 끝날 때쯤 완성되었다. 늘 먹던 붉은 카레보다 훨씬 노란 빛을 띠고 있다. 밥이 다 되려면 좀 시간이 걸릴 것 같아서, 방으로 들어 왔다. ‘대기 모드’로 들어가서 검게 변해 있는 모니터를, 마우스를 흔들어 깨운다. 지인들의 블로그를 둘러 보고, 마지막으로 내 것에 들어온다. 친구들이 남긴 몇 개의 새로운 글이 올라와 있다. 읽으며 피식 웃고는, 답을 잠시 미룬다.
  블로그에는 방문자들의 유입 경로를 알 수 있는 기능이 있다. 검색을 통해 들어 온 것인지 혹은 링크를 통해 들어 온 것인지라든가, 어떤 검색어를 사용했는지 혹은 어디서 링크를 눌렀는지 등을 알 수 있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다양한 경로를 통해 들어 온다. 도라에몽이나 불알, 전기곤로 같은 검색어를 통하는 사람도 있고 내 블로그 주소를 통째로 검색해서 들어 온 사람도 있다.
  다녀간 이들의 이름이 남지 않는 것은 참 다행한 일이다. 그들을 의식하지 않을 수 있을 뿐더러, 와 놓고 흔적조차 없는 지인들을 무심타 원망치 않아도 좋으니 말이다. 블로그에는 하루에만도 수십의 사람이 다녀간다. 나는 그들을 전혀 알 수 없다. 길에서 마주친 생면부지의 사람을, 옷차림과 표정만을 겨우 확인하고 흘려보내는 것과 같이 말이다.
  탁, 하는 소리가 들린지 십 분쯤이 지났다. 뜸같은 것이야 들이지 않아도 좋지만, 그 소리가 들리자마자 밥을 먹는 건 못할 짓이다. 가끔씩 찾아오는, 그래야만 하는 순간들은 늘 먹기 위해 사는지 살기 위해 먹는지에 대한 의문을 불러 일으킨다. 먹어야만 살 수 있는, 먹기 위해 아등바등해야만 하는 육신에 대한 혐오를 불러 온다는 뜻이다. 이제 십 분이 지났으니 걱정은 없다. 밥을 먹어야겠다.

반말하지 마세요

  내가 딱히 그런 것은 아니지만, 자전거를 타고 서울의 차도를 달리는 사람들 사이에는 괜한 유대감 같은 것이 있다. 생전 모를 뿐더러 다신 볼 일 없을 사람인데도 스쳐 지나가는 이들끼리 인사를 나누고, 격려를 주고받는 식이다 짐받이의 물건이 떨어질 것 같거나 타이어에 바람이 없어 보이면 그런 것들을 귀띔해 주기도 한다. 그렇게 그들은, 서로에게 말을 건다. 며칠 전에도 어느 아저씨가, 내게 조언을 해 주었다. 위험하게 타지 말라고 말이다.
  서울의 도로에는 맨홀이 많다. 맨홀은 주로, 자전거가 많이 다니는 1차선에 있다. 맨홀 뚜겅은 노면과 같은 높이에 있는 경우도 있지만 5cm 가까이 파여 있는 경우도 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맨홀 위를 달리면 자전거는 흔들린다. 내 것과 같이 싸이클 타입인 경우는 그 흔들림이 더 심하다. 바퀴 폭이 좁아서 충격에 약한 탓이다. 맨홀이 많은 길을 지날 때면 자전거를 좌우로 움직이며 그것들을 피해야 한다.
  며칠 전에도 그런 곳을, 그렇게 지났다. 오른쪽 골목에서 튀어나와 내 앞을 달리던 자전거 한 대를 따라잡은 직후였다. 그런 내 모습이 그에게는 불안해 보였나 보다. 자기 앞에서 좌우로 요동치는 나때문에 한 번쯤 멈칫거렸는지도 모를 일이다. 신호에 걸려 인도에 기대 자전거를 세우자 그가 내 옆으로 다가와 말을 걸었다.

  "위험하게 타는 건 좋지 않아."
  나는 무슨 말인지 몰라 "네?"하고 되물었다.
  "위험하게 타는 건 좋지 않다고. 일직선으로 쭉 가야지 그렇게 갑자기 들어왔다 나갔다 그러면 안돼."
  "제가 그렇게 탔나요?"
  "그래."
  "아, 네, 죄송합니다."

  내가 ‘위험하게’ 탔다는 것을 깨달은 건 그와의 대화를 끝내고 신호가 바뀌어 다시 페달을 밟기 시작한지 한참이 지나서였다. 내게 위험한 것은 좌우로의 움직임이 아니라 맨홀이었으니 말이다. 나는 그가 내게 했듯 골목에서 갑자기 튀어나오지도 않았고 애매한 속도로 길을 막지도 않았으니, 뭐가 위험하다는 뜻인지를 한 번에 알아차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나나 내 친구들은 아직 그 나이가 되지 않아 잘은 모르겠지만, 아저씨들은 주변사람들에 대한 묘한 유대감을 갖고 있는 것 같다. 길을 가다 갑자기 위아래를 훑으며 한참을 쳐다보거나, 괜히 남의 대화에 끼어들고, 혹은 아무에게나 반말을 내뱉는 것은 아마도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자전거를 타고 가며 내게 말을 걸고 "수고해"라며 격려의 말을 던지는 것도 그런 아저씨들이었다.
  헬멧과 선글라스로 자신을 가리고 내 옆에 서서 기꺼이 조언을 해주신 그 아저씨를 떠올리며 나는 노래를 불렀다. 가사는 기억나지만 곡을 기억하는 것은 무리다. 애초에 내가 흥얼거린 것인지 중얼거린 것인지도 불분명하고 말이지.

♪반말하지 마세요

반말하지 마세요
반말하지 마세요
언제 봤다고
반말을 하세요?

반말하지 마세요
반말하지 마세요

내게 수염이 있었더라도
내게 근육이 있었더라도
내가 한뼘쯤 더 컸더라도
내게 반말하실래요?

반말하지 마세요
반말하지 마세요
다신 볼일 없겠지만
반말하지 마세요
그러지 마세요

그와의 열한번째 만남

  맞은편에서 사람 둘이 걸어온다. 한쪽은 계속 말을 걸고 다른 한쪽은 곤란한 표정으로 계속 고개 숙여 인사를 한다. 대화를 거절하는 제스쳐다. 말을 거는 쪽은 낯이 익다. 늘 저렇게 길 가는 사람을 붙잡고 서서 "교회 다니세요?"하고 묻는 사람이다. 아니요, 하고 답하면 "다른 종교는 있으세요?"하고 묻고, 다시 아니요, 답하면 "교회나 성경공부에 관심 있으세요?"하고 묻는다. 세번째로 아니요, 하고 답하면 미련없이 인사를 하고 떠난다.
  늘 한 치도 틀림이 없다. 표정은 늘 멍하고, 목소리는 어딘가 모르게 붕 떠 있다. 수수한 차림에 배낭을 메고 갑자기 다가와 내게 열 번쯤 말을 건 적이 있는 사람이다. 그런 그와, 그를 귀찮아 하는 누군가―두사람이 내 곁을 스쳐 지나간다. 시야에서 그들이 사라진 잠시 후 그가 체념하고 인사하는 소리, 돌아서서 나와 같은 방향을 향하는 소리가 들려 온다. 힐끔 고개를 돌려 살펴보니, 나를 향하는 그가 보인다.
  저 아세요? 왜모르세요? 열 번쯤 뵈었는데, 이제 기억하실 때도 되지 않았나요? 언제나처럼 따져 물을 준비를 한다. 물론 한 번도 그렇게 물어 본 적은 없다. 그가 내 옆에 서서, 말을 걸기 직전에 내가 먼저 그를 돌아 본다. 기다렸다는 듯 "교회 다니세요?"하는 질문이 나오더니, 평소와는 달리 하나의 질문이 더 붙는다. "저 만난 적 있으시죠? 본 적 있는 것 같은데."
  네, 몇 번쯤요, 답하기가 무섭게 그는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다른 종교는 있으세요? 교회나 성경공부에는 관심 없으세요? 나는 평소와 같이 아니요, 라는 대답을 몇 번인가 하고, 그는 평소와 같이 멍한 표정으로 네, 알겠습니다, 하고 인사하며 나의 곁을 또 스쳐갔다.

얼결에 그는

나는 어느날부턴가, 고기를 끊었다.
나랑 늘 밥을 같이 먹는 그 역시,
얼결에 끊다시피 하게 되었다.


나는 어느날부턴가, 자전거를 탔다.
신림역쯤에서 만나 영화라도 보는 날이면,
나는 자전거를 끌고, 그는 나를 따라 걸었다.


나는 세제를 쓰지 않는다.
내 방에서 그는 가끔,
나 대신 설거지를 하며 투덜거린다.


내 방에는 인터넷 회선을 설치하지 않았다.
영화를 보기는커녕 웹서핑조차 할 수 없는
내 방에서 놀기 위해 그는 늘 이것저것을 챙겨온다.



더 이상 향긋한 냄새가 나지 않는 내 빨래들을 개고
가끔씩 무언가 끈적하게 남아 있는 컵에 커피를 마시고
어딘가 싱겁고 맹맹한 반찬들로 끼니를 떼우고
무거운 다리를 끌고 하릴없이 걷고
꼬박꼬박 볼거리 읽을거리를 챙겨 다니고
그는 그렇게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