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면 차리다 굶어 죽을 것이다

엿새가 지났고 아흐레가 남았다. 엿새 전에 이런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
[Web발신]
[대한적십자사]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에서 안내드립니다.

현재 대한적십자사에서 진행 중인 「헌혈자용 해피머니 상품권」의 교환을 ’24년 11월 30일에 종료함을 알려드립니다.

‘24년 12월 1일부터는 해당 해피머니 상품권 교환이 불가하오니 보관중인 상품권은 기한 내에 헌혈의집에서 다른 기념품으로 꼭 교환하시기 바랍니다.

※ ‘혈액관리본부 헌혈캐릭터(나눔이)’ 디자인이 된 헌혈자용 해피머니 상품권만 교환 가능
※ 자세한 내용은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 홈페이지 ‘공지사항’ 참조
※ 해당 문자는 이미 상품권을 교환한 대상에게도 발송될 수 있습니다

여전히 내게는 “‘혈액관리본부 헌혈캐릭터(나눔이)’ 디자인이 된 헌혈자용 해피머니 상품권” 삼만오천 원어치가 있다. 아흐레가 지나면 정말로 종잇조각이 되어버릴 것이다. 아흐레 안에 교환을 요청하지 않을 것이므로.

마침 얼마 전에 헌혈을 하고 오기도 했다. 이번에는 팔천 원짜리였나 오천 원짜리였나 도서상품권을 받았다. 어느 대형 서점의 선불카드 형태였다. 다음 헌혈은 달포 후에나 가능하다. 헌혈을 하기 전에 저 메시지를 받았더라면 들고 갔을까. 일곱 장이 아니라 한 장 쯤이었다면 쭈뼛쭈뼛 내밀어 보았을까. 무엇으로 바꿀 수 있는지 알려주었고 그 중에 마음에 드는 게 있었다면 ― 언제 가도 있으므로 필시 교환 대상에 들 영화 관람권이나 여행용 비누 세트 같은 것은 딱히 쓸모가 없지만 혹시라도 도서교환권으로 바꿀 수 있다면 탐이 안 나지는 않는데 ― 한 번은 더 생각해 보았을까.

아마 아니었을 것이다. 면이 안 서니까.

물론 이런 일기를 쓰는 것도 그다지 면이 서는 일은 아니지만 일기에 체면을 차릴 이유는 없으니까.

물론 모르는 사이인 헌혈의 집 직원에게 체면을 차릴 이유도 없기는 하지만.

한 달 좀 넘게 지났으려나, 지갑을 주웠다. 베갯보로 쓰곤 하는 누빔천으로 만든 것이었다. 세어보진 않았지만 족히 기백만 원은 든 듯했다. 파출소에 가져가니 무언가 양식을 채우고 가라고 했다. 이름과 주소, 연락처 따위를 적고 다음 줄을 보니 소유권 주장 여부를 표시하게 되어 있었다. 양식을 내어 준 이에게 주인이 나타나지 않으면 국고로 귀속할지 내가 가질지를 쓰라는 거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했다. 돈이 꽤 돼서 아마 주인이 나타나긴 할 거라고도 덧붙였다. 국고에 넣는 데엔 불만이 없지만 정권이 정권이다 보니 잠깐 망설였지만 결국 주장하지 않겠다는 칸에 체크 기호를 적어 넣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내가 굶어 죽는다면 그건 체면 차리다일 거라고.

처음 한 생각은 아니다.

가져본 적 없는 소유권을 미리 포기하는 기분은 묘했다.

길에서 거듭 넘어지는 취객을 보고 혹은 아예 길에 대 자로 누운 취객을 보고 경찰에 신고했을 때는 무언가 문자 메시지가 오곤 했었는데 이번엔 아무것도 오지 않았다. 그날 저녁이었나 이튿날 낮이었다, 경찰 유실물 센터 웹사이트를 확인했으나 지갑은 올라와 있지 않았다.

그날이었나 이튿날이었나, 지금이라도 다시 가면 양식을 새로 작성할 수 있을까 궁금해 했다. 물론 그렇다 해도 찾아갈 것은 아니었다.

해피머니

지금 컴퓨터 옆에는 해피머니 문화상품권 오천원권 일곱 장, 총 삼만오천 원어치가 놓여 있다. 모두 헌혈 ‘기념품’으로 받은 비매품이므로 구매 가격은 아니고, 사용할 수 없게 되었으므로 시가도 아니다. 무의미해진 액면가일 뿐이다. “해피머니 상품권 발행사가 사실상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티몬을 통해 판매한 1000억원 상당의 해피머니 판매대금을 받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라는데, 티몬과 공모했다는 의혹으로 고소장이 접수된 상태라고 한다.[1]〈”해피머니, 상품권으로만 3000억 조달”…티메프와 공모 의혹도〉, 《한국경제》, 24.08.01., 〈’티메프 사태’로 부실 드러난 해피머니, … (계속) 지난주 언젠가 환불 신청 접수를 받기 시작했으나 이내 중단한 모양이다. 조금 전에 해피머니 사이트에 들어가 봤다가 창을 닫고 찾아본 기사들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이다.

원래는 헌혈을 하면 영화관람권을 받았다. 멀티플렉스 영화관에 가는 일은 거의 없어서 보통 어딘가에 처박아 뒀다 적당히 친구들에게 나눠주곤 했다. 제천으로 이사한 후론 친구를 만날 일도 거의 없어져서 몇 장의 유효기간을 놓쳐 쓸모를 잃었고 그 후로는 문화상품권으로 받았다. 책을 종종 사니까 쓸 일은 있었지만 ― 실물을 챙겨 다니기도 웹에서 핀넘버를 입력해 포인트로 전환하기도 ― 번거로우므로 이따금 몰아서만 썼다. 그래서 최근에 모인 것이 일곱 장, 삼만오천 원어치. 그렇게 쓰지 못하게 된 것이, 소식에든 움직임이든 빨랐다면 (머지포인트 때처럼 누군가에게 빚을 떠넘기는 형태로) 쓸 수 있었을지도 몰랐을 것이 그만큼.

몇 개의 장면을 떠올린다.

아마도 2006년이나 2007년, 한미자유무역협정 협상이, 그러므로 한미자유무역 반대 투쟁이 한창이었던 무렵. 학교에서 모인 이들과 함께 집회에 가기 전에 사전모임을 했다. ‘교양’이나 ‘학습’으로 불린 모임이었을 것이다. 발제를 맡았다. 예나제나 경제에는 딱히 관심도 지식도 없어서 그날도 실표성이나 국익의 허상 같은 걸 이야기하지는 못했다. 나도 다른 교양이니 학습이니 하는 자리에서 주워들었을 남미 어느 나라 이야기를 읊었다.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 체결 이후 걷잡을 수 없이 가속화된 공공부문 시장화로 물이나 약 같은 필수재를 사기가 어려워진 나라의 이야기였다. 내 관심사는, 명분은, 오직 하나였다. 적절한 혹은 감당할 만한 가격의 물이나 약이 너무 적어진 세상에서, 목숨을 부지하는 데에 필요한 물품을 사기 위해서는 남들을 제치고 앞자리에 줄을 서야 하게 된 세상에서 살아 남을 자신도 그런 경쟁을 거리낌 없이 할 자신도 없다는 것.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다는 것.

다행히도 또한 불행히도, 협정이 비준된 후에도 한국이 당장 그렇게 변하지는 않았다. 이번 정권 들어서 예상치 못한 방식과 속도로 그런 일이 펼쳐지고 있는 것 같긴 하지만. 그러나 그런 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코로나19가 급속도로 확산되면서 마스크 품귀 현상이 벌어졌던 때 말이다. 공적 마스크 제도가 시행되기 전까지, 상점에 달려간 사람들, 마스크를 대량으로 사잰 사람들이 있었다. 달려가야만 했던 사람들이, 그렇게 함으로써 누군가는 사지 못하게 만든 사람들이, 달려갔으나 사지 못한 사람들이, 애초에 그래야 한다는 것을 알지도 못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비교적 젊고 건강한 데다 챙겨야 할 환자나 노약자가 있지도 않은 나는 그러지 않아도 되었으므로 그러지 않았다. “마스크뿐만 아니라 마스크 원료도 수출을 금지하는 나라가 적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와 대기업이 공조해 수출국 정부도 모르게 “은밀하고 재빠르게” 마스크 원료를 수급했다는 자랑에[2]〈쉿! 비밀…정부·삼성 ‘마스크 007작전’〉, 《한국경제》, 20.03.24. 인상을 썼지만, 가까이에 기저질환자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기분이 달랐을 것이다.

몇 퍼센트 되지 않는 할인률로라도 생활비를 조금이나마 아끼려고 상품권을 대량 구매했던 이들은 본사에 찾아가 줄을 선다고 했다. 사무실 문을 막기도 드잡이를 하기도 하는 모양이다. 중재 제도나 소송을 통해서도, 서두른 이들은 조금은 되찾을지도 모른다. 삼만오천 원은 별 것 아니므로, 애초에 일해서 번 것도 ‘필’요해서 구한 것도 아니므로 나는 그냥 넘긴다. 제때 쓸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을 할 뿐이다. 괜히 한 번, 구제책이 있나 검색이나 해 볼 뿐이다. 당연히 소득 없이 창을 닫으며, 제 꼴에 인상을 쓴다.

[번역] 텍사스의 ‘드랙 금지법’은 텍사스 트랜스젠더들을 겨냥한 것인가?

원문: Cora Neas and Russell Falcon, “Does Texas’s ‘drag ban bill’ target transgender Texans?“(Changing America, Jun. 05, 2023)

“이 법은 ― 통과된 것만으로도 ― 당국자들에게 ‘글쎄, 트랜스인 사람들을 잡으러 다녀도 돼’하고 말할 근거를 조금 더 더해준다.”

요약

  • 텍사스 의회 88회기에서 미성년자가 있는 곳에서의 “성 지향 공연sexually oriented performance”를 금지하는 법안이 통과됨
  • 텍사스 트랜스젠더들은 이 법이 명시적이지 않은 공연, 혹은 그저 공공장소에 있는 것만으로도 자신들을 겨냥할 수 있음에 우려함
  • 부지사 댄 패트릭은 “상원법안 12호를 최우선 과제 중 하나로 두었다, 누군가는 텍사스 어린이들에게 해가 되는 급진 좌파들의 역겨운 드랙 공연에 맞서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함

오스틴(XKAN) – 텍사스 의회 88회기에서 미성년자가 있는 곳에서의 “성 지향 공연”을 금지하는 법안이 통과되었다. 텍사스 트랜스젠더들은 이 법이 명시적이지 않은 공연, 혹은 그저 공공장소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자신들을 겨냥할 수 있음을 우려하고 있다.

텍사스 상원 법안 12호(SB 12)의 초안에는 전통적인 젠더 표현에 맞지 않는 복장을 한 퍼포머들에 대한 처벌이 포함되어 있었고 보수 정치인들은 이를 “드랙 금지법”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이 표현은 삭제되고 “남성이나 여성의 특징을 과장하는 액세서리나 보철물을 이용한 성적 몸짓의 전시”를 금하는 것으로 대체되었다. 이 법안은 이와 함께 성적 행위의 “실제적, 모의적 전시 혹은 재현” 및 “성적 자극” 장치를 내어 보이는 것을 “성적 행동”으로 규정한다.

위의 행동들을 하거나 “성에 대한 음란한 관심에 호소”하는 방식([미국 헌법이 표현의 자유에 있어 예외로 취급하는]음란물obscenity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나체를 보이는 퍼포머는 이 법을 위반한 것으로 간주되며, 이는 A급 경범죄에 해당한다.

부지사 댄 패트릭은 5월 28일의 법안 통과를 자축했다.

패트릭은 보도자료를 통해 “저는 SB 12를 이번 회기의 최우선 과제 중 하나로 두었습니다. 누군가는 텍사스 어린이들에게 해가 되는 급진 좌파들의 역겨운 드랙 공연에 맞서 싸워야 하니까요”라며 “어린 자녀들이 드랙쇼로 인해 성애화sexualized되는 것을 허용하는 부모들이 있다는 것은 충격적인 일입니다. 스스로 결정을 내릴 수 없는 어린이들을, 우리 주가 마주한 이 재앙으로부터 지켜주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KXAN은 SB 12를 발의한 상원의원 브라이언 휴즈(공화당, 타일러)에게 법안 통과와 집행 전망에 대한 질의를 했지만 회신은 없었다. 법안이 통과된 후 휴즈는 드랙쇼는 “두 말 할 것도 없이 미성년자들에게 부적절”하다는 트윗을 남겼다.

휴즈의 법안에 직접적으로 드랙 공연을 금지하는 문구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람바다 리걸Lambada Legal 중남부 지역 책임자 셸리 스킨은 이 법이 드랙 공연 형식에 대해 선택적으로 집행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드랙퀸과 아동의 만남은 몇 년째 전국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다. 대개 도서관에서 드랙 퀸이 주관하는 독서 모임인 “드랙퀸 이야기 시간”이 특히 그렇다.

드랙에 관한 문제들은 트랜스젠더 정체성을 둘러싼 논의에서 제기되어 와다. 둘은 의미가 다르지만 종종 중첩되기 때문이다. 가장 기본적인 의미에서 “드랙”은 (이성애자든 퀴어든) 남성이 공연을 위해 여성 복장을 하는 ― BBC 보도에 따르면 셰익스피어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전통이 있는 ― 예술 형식을 가리킨다.

트랜스들은 드랙의 발전에 중추를 맡아 왔다. 1970년대 뉴욕시 LGBTQ+ 시민권의 최전선에 있었던 활동가이자 게이해방전선 공동 설립자인 P. 존슨 같은 미국 퍼포머들이 특히 그렇다.

종종, 드랙퀸들은 드랙을 보다 진지한 운동에 활용하며, 심지어는 가벼운 코미디도 있다. 드랙이라는 예술형식이 본질적으로 성적이거나 특정 성적 지향 혹은 정체성과 결부되어 있지 않다는 을 유념해야 한다.

SB 12가 자기 생활을 하는 트랜스젠더들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라는 스킨의 말 또한 중요하다.

스킨은 “자신이 트랜스나 논바이너리라고 해서, 구식 젠더 역할에 순응하지 않는다고 해서, 돌아다니거나 일상을 수행할 수 없다는 기분을 느끼지 않기를 바란다”며 “여전히 평소에 하던 일들을 할 수 있기를, 이 법안에 겁 먹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스킨은 이 법이 과하게 집행되거나 주변화된 사람들을 선택적으로 겨냥할 가능성이 있기는 하다고 덧붙였다.

“트랜스인 사람들이 표적이 될 것이고, 흑인이자 트랜스인 사람들은 더더욱 표적이 될 것”이라며 “이 법은 ― 통과된 것 만으로도 ― 당국자들이 ‘글쎄, 트랜스인 사람들을 잡으러 다녀도 돼’ 하고 말할 근거를 조금 더 더해준다”고도 말했다.

스킨은 이 법의 핵심은 이것이 (드랙만이 아니라) 공연을 대상으로 하며, 시스젠더 예술가와 트랜스젠더 예술가를 공히 대상으로 한다는 점이라고 했다.

스킨에 따르면 1990년 마돈나의 “콘 브라” 차림이 텍사스 법에 따라 금지될 일의 한 예이다.

SB 12 공청회에서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골반 털기도 “성적 몸짓”의 잠재적 위반 사례로 언급되었는데, 스킨은 “성적 몸짓”은 미국 법에서 정확히 규정되어 있지 않다고 말했다.

스킨은 “형사 책임을 부과하는 법에 있어서는 어떤 행위가 위반에 해당하는지를 알아야 한다”며 “이런 ― 굉장히 애매모호한 ― 법의 경우에는 위법임을 모른 채 무언가를 하다 체포될 수 있기에 재판에 회부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2023.05.29.(월)

저수지와 논 사이에 있는 작은 공원 ― 이라기보단 공중화장실과 벤치와 약간의 공터가 있는 곳 ― 에 앉아 책을 몇 쪽 읽고 들어왔다. 짧은 글들을 모아놓은 책이었고 나무에 관한 글이나 새에 관한 글을 골라 읽었다. 저수지는 조용했다. 이름 모를 새인지 무언지가 규칙적으로 짧은 울음을 울었다. 물이 흘렀다. 논은 시끌벅적했다. 개구리가 운다. 아직 철이 아닌가, 화장실 앞에 걸린 밝은 불에도 나방은 꼬이지 않았다. 날파리만 여남은 마리 날고 있었다. 책을 읽던 중에는 풍뎅이 한 마리를 주워 들었다. 정확히는 벤치에 놓여 있던, 아마도 누군가 방석 대신 썼을, 골판지를 뜯어 그 위에 얹었다. 날갯짓을 반복하면서도 몇 센티미터 날아오르지 못하고 땅에 곤두박질치던 그이를 앉힌 골판지를 가슴께쯤 들었다. 잠시 후 세찬 소리와 함께 날아올라 ― 아래로 훅 꺼졌다가 다시 솟아 오르는 곡선을 그리며 ―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물 사이에 앉았기도 했고 요즘 종일 습지를 생각하는 친구가 있기도 했고 나무와 새에 관한 글을 읽기도 해서, 나도 잠시 물을 생각했다. 물가에서 자랐다. 마당에는 기껏해야 연못이나 절구통 혹은 대야에 고인 물이 전부였지만 한 골목만 걸어나가면 농수로가 흘렀다. 물줄기를 왼쪽으로 따라가면 산자락을 흐르는 자그마한 계곡이 나왔다. 오른쪽으로 따라가면 다른 자락에서 내려온 물줄기와 만났다. 그 줄기를 조금 따라 오르면 저수지가 나왔다. 한참을 따라 내려가면 낙동강 어느 지류의 말미에 닿았다. 물놀이를 하기에 농수로는 너무 얕았고 저수지와 강은 너무 깊었다. 어느쪽에서든 기껏에서 발목 정도를 담그고 개구리나 송사리, 피라미, 아니면 논고동 같은 것을 잡았을 뿐이다. 산자락의 계곡도 물놀이를 할 만한 웅덩이가 생기는 것은 여름의 며칠 뿐이었다.

물놀이 ― 이유없이 물을 첨벙대는 놀이 ― 를 가장 많이 한 것은 아마도 집에서 초등학교까지 이어지는 1km 남짓의 길에서다. 야트막한 산과 그럭저럭 넓은 논 사이로 난, 콘크리트로 포장된 길이었다. 버스는 하루에 몇 대 다니지 않았고 다른 차도 그다지 많이는 다니지 않았다. 애초에 사람이 많지 않으므로 길이 닳도록 밟히는 곳도 아니었다. 그래도 경운기니 트랙터니가 다녔기 때문인지 그저 오래 되었기 때문인지 길은 성한 데가 없었다. 곳곳이 깨져 움푹 파여 있었다. 비가 오면 빠짐 없이 물이 고였다. 비가 오는 날에는 장화를 신으면 장화를 신었으므로, 운동화를 신으면 이미 젖었으므로, 웅덩이를 만날 때마다 물을 첨벙거렸다. 그것이 내 물놀이의 대부분이었다.

비가 그치고도 물이 스미거나 마르기까지 아마 하루이틀은 걸렸을 것이다. 며칠 걸러 며칠씩 비가 오는 철이면 한참을 고여 있었다. 웅덩이에서는 소금쟁이와 실지렁이가 번성했다. 구태여 잡을 만한 것은 아니었으므로 마른 날에는 물을 첨벙이는 대신 그 구경을 했다. 이따금은 개구리가 몸을 축이기도 했을 것이다. 물이 가시면 콘트리트 틈으로 풀이 자라기도 했다. 마을 안쪽의 저수지나 개울 못지 않게 이것저것이 자라는 훌륭한 터전이었다. 아니, 도무지 어디서 오는지 알 수 없는 것들 ― 소금쟁이나 풀은 말할 것도 없고, 실지렁이는 그야말로 신비로이 등장했다고밖에는 할 말이 없다 ― 이 자라는 곳이었으므로 못지 않았다는 말은 부족할 것이다. 죽음의 웅덩이기도 했다. 비가 거푸 오면 모두 쓸려나갔다. 비가 그치고 땅이 마르면 깡그리 사라졌다.

잠깐 몸을 축였을 뿐인, 어쩌면 애초에 웅덩이에는 관심이 없었고 산에서 길을 건너 논을 향했을 뿐인 개구리들이 차에 밟혀 납작해 지는 곳도 바로 그곳이었다. 언젠가는 이런 문장을 썼다. “비오는 날이면 개구리들은 내장을 혀처럼 쏟아 물었다. 그 큰 입으로 다 토했으므로 그네들은 미련 없이 납작해졌다.” 가끔은 뱀이고 새였다. 그 길에선 보지 못했지만 더 큰 동물들, 더 작은 동물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들로부터, 그리고 길가에서 썩어가는 호박으로부터[1]또 언젠가는 “길가에서 썩어가는 호박들, 밭둑에서 곰삭는 거름들, 좁은집 툇마루에서 마당을 응시하는 늙은 눈빛들, 안방에 누워 움직이지 … (계속) 죽음을 배웠다. 그것이 나의 물놀이였다.

2023.04.06.(목)

오늘도 독서(∈일)에 실패했다. 빈둥대다가 점심을 대강 ― 아주 대강 ― 먹고 집을 나섰는데 너무 추웠다. 도서관까지 30분쯤을 걷기에는 너무 추웠다. 어제도 그제도 같은 차림으로 나다녔으니 순전히 책을 읽기 싫어서였겠지, 생각하다 혹시나 하고 확인해 보니 오늘 기온이 확연히 낮았네. 아무튼 그래서 집 앞 카페로 틀었고 한참 딴짓만 하다 귀가했다. 집에 와서는 겨울옷을 집어 넣고 앰프를 중고장터에 올렸다. 대강 생각나는 가격으로 올렸는데 좀 싼 편이었는지 아니면 그저 이 동네에 비슷한 매물이 없어서였는데 올리자마자 메시지가 들어왔다. 그러나 1분 전에 등록한 매물에 굳이 판매 중이냐는 말을 붙인 그는 여전히 답이 없고… 이후로 예닐곱 명이 더 메시지를 보내서 먼저 연락 주신 분 답을 기다리는 중이라 거래가 성사되지 않으면 연락 드리겠다는 메시지를 예닐곱 번 보냈다. 첫 두 번을 써서, 이후로는 두 번째 것을 복사해서.

그러고도 독서는 재개되지 않고. 저녁은 피자를 시켜먹었다. 근방에서 제일 싼 업체이자 배달료를 받지 않고 자체 배달을 하는 곳이자 학부 때의 추억이 서린 프랜차이즈 업체에서 시켰는데, 치즈 피자 라지는 14500원이고 배달 가능 최소 금액은 음료 제외 15000원이다. 치즈 피자에 치츠 추가 같은 옵션은 없고 (라고 쓰며 생각해 보니 전화 주문을 하면 될지도 모르겠네, 공공배달앱으로 주문했다) 사이드 메뉴는 다 고기가 든 것들. (실은 감자 튀김이 있긴 한데 좋아하지 않는 메뉴인데다 양이 과하다.) 이번에도 결국 햄이 조금 든 것으로 시켰다.

그러고도 독서는 재개되지 않고. 방금까지는 마우스와 씨름했다. 지난 주쯤 쓰레기를 버리러 나갔다가 길가를 구르고 있는 걸 주워 온 것이다. 끈 떨어진 유선 마우스. 스위치나 떼서 쓰려고 한 것이었는데 생전 처음 보는 튼튼한 구조에 휠 센서도 익히 보아 온 ― 걸핏하면 고장나는 ― 것과는 다른 종류였다. 브랜드 제품이지만 최소한의 기능만 있는 것이어서 오래 전에는 나름 고급형이었던 걸까 생각하며 검색해 보았는데 여전히 판매중인 오천 몇백 원짜리 최저가 모델이었다. 버튼 상태도 점검할 겸 선을 달아 보기로 했고 조금 전까지 그 씨름을 했다.

납땜 없이 해결해 보려고 애쓰다 실패하고 결국 납땜. 친환경 기준을 지킨 모델은 아닌지 내 인두로도 커넥터가 잘 떨어졌다. (유해물질인 납을 쓰지 않은 땜납은 녹는 점이 높아서 내 것보다 좋은 인두가 필요하다.) 얼마 전에 수리한 블루투스 스피커에 이어 두었던 선을 끊어다 이었다. 몸체의 플라스틱을 실수로 조금 녹였다. 버튼과 휠 모두 잘 작동한다. 쓸 일은 없지만 일단 그대로 두었다. 버튼이 필요한 일이 생기면 버튼을 뗄 것이고 마우스가 필요한 일이 생기면 급한 대로 저걸 쓰겠지. 지금 쓰는 마우스는 아마 십 년쯤 된 것이고 지금 가격은 만 원 가량이다. 이사로 짐을 정리하는 친구네서 주워 왔다. 선 접촉 불량으로 몇 번인가 멎었는데 최근엔 한참 멀쩡히 작동 중. 저절로 돌아왔는지 선을 갈았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블루투스 스피커엔 또 얼마 전에 다른 데서 끊어 놓은 스위치 달린 선을 붙일 것이다. 케이스를 만들어야 하는데 귀찮아서 미루고 있다. 원래 케이스를 버리지 않았다면 좋았을 것을… S가 컴퓨터를 바꾼 후 쓰던 걸 내게 보내주면서 같이 보낸 스피커다. 한동안 쓰다가 언젠가부터 충전이 전혀 안 되길래 ― 충전등에 불이 안 들어오길래 ― 뜯어 보았더니 USB 포트가 떨어져 있었다. 납땜을 해보려 했으나 단자가 파묻혀 있어서 실패. 버리려다 말고 (USB의 5V를 배터리의 3.7V 언저리로) 전압을 낮춰 주는 부품을 사다가 배터리 단자에 전원선을 연결했다. 다른 스피커가 없는 것도 아니고 애초에 싼 물건이라 같은 돈으로 새 걸 사거나 해도 큰 차이는 없지만, 그냥 그랬다.

지금은 팔 앰프에서 뗀 스피커를 카오디오에 연결해서 노래를 틀어 두었다. 첫 사람은 여전히 답이 없고… 조금 전에는 몇 번째인지 모를 사람이 어떻게 됐냐는 메시지를 보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