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에 갔다. 책을 읽으려고, 소설들이 꽂힌 서가를 뒤졌다. 좋아하는, 혹은 몇 편 쯤의 작품이 나쁘지 않았던 작가들의 책이 줄지어 꽂혀 있었다. 요즘 꽤나 인기를 끌고 있는 젊은 작가들의 책부터, 수십 년 째 문단의 중심, 혹은 그 언저리에 서 있는 작가들의 것까지 책은 많았다. 하지만 그 어느 것에도 손은 가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것이 작가에 대한, 혹은 책에 대한 불신 때문인줄로만 알았다. 어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소설입네 하며 써 놓았을지, 그들의 활자 속에서 어떤 삶이 또 죽어갈지가 두려워 책에 손이 가지 않는 것일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내게 꽤나 신뢰를 쌓은 작가의 책에도, 단 한권의 책으로 나를 사로 잡은 작가의 책에도 손은 가지 않았다.
  겨우겨우 골라 든 것은 김형경 씨의 소설이었다. 두 편을 통틀어 다섯 권이나 되는 책을 읽어 보았고, 그 중 한 편에 대해서는 어떻게는 내 나름의 대답을 글로 써야겠다는 생각까지를 하게 한 작가의 신작 소설이었다. 그의 책이라면, 물론 가슴 아픈 이야기들이 또 있겠지만, 불신하지 않고 역겨워 하지 않으며 읽을 수 있으리란 생각에서였다.
  그 소설에 어떤 이야기가 있는지, 어떤 진실과 어떤 거짓이 있는지는 끝내 확인하지 못했다. 겨우 세 페이지쯤을 읽은 후에 나는 책을 덮고 서점에서 나올 수밖에 없었다. 한 문장 한 문장을 읽을 때마다 머릿속에서 새로운 문장들이 줄지어 나온 탓이었다. 도무지 이야기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소설을 고르지 못한 것은 실은, 내 머릿속에 새로운 이야기를 위한 자리가 남아있지 않기 때문인 모양이었다. 머릿속에서 터져 나오는 문장들 때문에 도무지 책을 읽을 수 없을 것임을, 아마도 내 몸은 먼저 알았던 모양이다. 결국 나는 아무 것도 읽을 수가 없었다.
  두어 달을 쉬며 먹고 자는 일 이외에는 글만 쓰다 시피 하고서 다시 일상적인ㅡ일반적인 생활로 돌아온지가 이제 겨우 보름 남짓인데, 그간 쓰지 못한 문장들이 또 머릿속을 채우고 있다. 그것은 다 받아 쓰기에는 체력도 시간도 부족하니 아마 한동안은 그저 괴로워 할 수밖에 없을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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