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밍이 안 좋았다

  국회 앞에서 농성중인 여성농민회를 찾아 가는 길이었다. 취재하러 가는 것이었지만, 오전 일정이 언제 끝날지 감이 오지 않아서 따로 약속은 잡아 두지 않았다. 어차피 사무실에 가는 길이라, 혹시나 취재를 못 하게 된다 해도 크게 문제는 없었다.  여의도 역을 지나 여의도 공원에 가까워지자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지는 노랫소리가 들렸다. 익숙한 투쟁가의 가락이었다. 공원 앞에는 전국 단위 … [읽기]

셔틀콕

  페달을 밟아서는 넘을 엄두가 나지 않는 긴 오르막, 뿌옇게 보이는 언덕 너머 하늘을 바라보며 자전거를 끌고 있었다. 시선을 내리자, 평지에서 시작한 완만한 경사가 끝나고 언덕이 가파라지기 시작하는 즈음에서 하얀 물체 하나가 오르락내리락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셔틀콕이었다.  사람으로 가득한, 차로 가득한 차로와 맞닿은, 버스 정류장에서 누가 배드민턴을 치고 있는 걸까. 신기했다. 사람들 사이를 걸어 그곳에 … [읽기]

거짓말하지 말아야지.

사무실에 가는 길에 누가 말을 걸더라. "학생, 혹시 전화 한 통만 쓸 수 있어요? 핸드폰 좀 빌려 줘요." "죄송한데, 지금 배터리가 다 돼서요." "아, 네." 그리고 잠시 후. "저기 앞에 경찰서 가시면 아마 전화 쓰실 수 있을 거예요." "저런 데 가기가 어디 쉽나, 여자가, 이 친구야." 그 사람은 웃으며 말했지만, 마음이 착찹했다. 언젠가 나의 전화를 … [읽기]

집시 달구지

  집시 달구지, 라는 말이 떠올랐다. 기억 속에서 떠오른 것은 아니다. 시詩에 대해 생각하던 어느 날, 문득 떠오른 말이었다. 달구지에 시를 모으는 집시, 내 머릿속에는 책이 가득 실린 수레 앞에서 즐거이 웃고 있는 한 사람의 집시가 떠올랐다. 그렇게, 집시처럼, 살고 싶다고 나는 생각했다. 유랑하며, 음악을 즐기며, 자유롭고 즐겁게. 나의 이름이 집시였기를, 나는 바랐다.   하지만 … [읽기]

무슨 한이 그렇게 많길래

주의 : 여성, 혼혈인 등을 비하하는 단어가 인용되어 있습니다.   인종차별금지법 입법 공청회, 한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가득 메우고 앉아 있다. 누군가에게 시집 갔던 어머니가, 남편보다 잘 생긴 자신을 낳아서 쫓겨 나고 말았다는 한 사람이 이야기를 한다. 그것은 농담이다. 그의 어머니가 낳은 것은 남편보다 잘 생긴 아이가 아니라, 백인과의 혼혈인이다. 양공주, 자신의 어머니가 한 때 …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