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한이 그렇게 많길래

주의 : 여성, 혼혈인 등을 비하하는 단어가 인용되어 있습니다.

  인종차별금지법 입법 공청회, 한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가득 메우고 앉아 있다. 누군가에게 시집 갔던 어머니가, 남편보다 잘 생긴 자신을 낳아서 쫓겨 나고 말았다는 한 사람이 이야기를 한다. 그것은 농담이다. 그의 어머니가 낳은 것은 남편보다 잘 생긴 아이가 아니라, 백인과의 혼혈인이다. 양공주, 자신의 어머니가 한 때 들었던 말이다. 이 정도면 점잖지요, 경상도에서는 똥갈보, 양갈보라고 불렀습니다, 그는 덧붙인다.
  그런 상황에서도 어머니는 저를 잘 키워 주셨습니다. 어머니의 가르침대로, 저와 같은 상황에 처한 아이들의 선배로서, 혼혈인을 위해 운동하고 있습니다. 튀기라는 말을 평생 들으며, 그 말에 싸워 온 사람이다. 튀기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면 그 말 못 씁니다. 사람이 낳은 아이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에요, 당나귀랑 말 사이에서 태어난 새끼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뜻을 알면 못 쓰지만, 써 놓고 몰랐다고 하면, 그걸로 끝입니다.
  선배로서, 후배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절친한 친구와 술을 먹던 한 백인계 한국인은 술 취한 친구에게서 튀기라는 말을 들었다. 친구니까 참았다. 친구는 그치지 않고, 너희 엄마 양공주지, 라고 덧붙였다. 참지 못한 그는 친구를 때렸고 친구는 죽었다. 그가 7년의 징역을 사는 동안 그의 어머니는 자살했다. 출소 후 알콜 중독에 빠져 지내던 그는 겨우 알콜 중독을 치료하고 중국 동포와 결혼해 살고 있다.
  후배들은 많다. 경찰에게 "어이, 튀기 아니야, 어디에서 왔어?"라는 말을 들은 사람이 있다. 주민등록증까지 내어보이며, 한국에서 태어난 한국인이라고 말하지만 소용이 없다. 결국 싸움이 붙고, 경찰은 갈비뼈 대여섯 개를 내어주는 대신 그를 공무원 폭행죄로 끌고 간다. 재판까지를 거쳐서야 겨우 그는 벗어날 수 있었다. 무죄 판결을 내려 준, 바른 판사를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깜둥이, 아프리카로 가라, 는 말을 듣던 16살 아이는 어느 날 백주대로 위의 육교에서 목을 매고 죽었다. 아프리카는 단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는 이였다.
  대학 교수도 알고 있다. 한국인 남성과 결혼이주여성들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놀림을 받는다. 깜둥아,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 하지만 그들의 나라는 한국이다.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살았건만, 그들은 돌아가라는 소리를 듣는다. 그것은 사실 사라지라는 소리다. 눈에 거슬리지 말라는 소리다.
  누군가는 고려방망이라는 말을 들으며 중국에서 모진 수모 속에서 살았다. 조국으로 돌아가면, 동포들 사이로 돌아가면 당당하게 살 수 있겠지, 그것이 그의 꿈이었다. 하지만 조국은 그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않았다. 국적은 내어주었지만, 한국에서 태어난 한국인과 중국에서 태어난 한국인은 같지 않았다. ‘선천적’ 국민들이 갖는 권리와 의무를, ‘후천적’ 국민인 그는 온전히 누리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한이 많은 건 그들만이 아닌가보다. 뼈에 사무치는 슬픔과 아픔은 그들에게만 있는 것은 아닌다 보다. 한국을 사랑하는 노년의 한국인이 일어선다. 필리핀 노동자가 어린 여중생을 칼로 열 세번을 찔렀습니다. 오히려 자국민이 가해를 당하고 있습니다. 뒤에서 누군가가 외친다. 같은 국적, 같은 모습, 같은 나잇대의 사람이다. 이건 자국민에 대한 역차별이야.
  그들은 모르나보다. 한국인이 한국인을 헤친 사건들을 말이다. 자신과 같은 ‘한국인 남성’들이 자신이 울분을 외치게 많은 ‘어린 여중생’을 헤쳤다는 수많은 보도들을 그는 보지 못한 걸까. 자신이 언젠가 훑어 본 어느 여성의 종아리를, 낯모르는 젊은이에게 자신이 내뱉을 반말을, 그는 기억하지 못하는 걸까. 물론 아닐 수도 있다. 그런 일이라고는 해 본 적이 없고, 오로지 남을 위해 살아 온, 나쁜 짓이라곤 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일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이 몸서리치는 외국인조차도 알고 있다. 한국인 여성과 서 있다가 어느 한국인 남성으로부터 "냄새 나는 개새끼"라는 말을 들은, 그 남성이 자신의 일행에게 "조선년이 깜둥이랑 연애하니까 좋으냐"고 말하는 것을 본 인도인이 있다. 그는 말한다. I guess many of you can imagine the abusive situation inside the police station especially as it involves a young Korean woman and a middle aged Korean man. In front of 10 or more policemen, Mr. Park continued abusing Ms. Han by repeatedly saying, "You dumb ass, Why are you doing this? Aren’t both of us Korean?"*
  무슨 한이 그렇게 많길래, 그들의 앞에서 그렇게 외칠 수 있을까. 피눈물을 삼키는 이들의 앞에서 내가 피해자라고, 내가 차별받고 있다고, 그들은 어떻게 외칠 수 있을까. 그들을 보는 것은 역겨운 일이다. 싫은 일이라서만은 아니다. 견딜 수 없는 일이다. 견딜 수 없는 괴로움이 멀미가 난다. 그들을 보는 것은 역겨운 일이다.
  ‘Mr. Park’을 경찰서로 데려감으로써 언론을 탄 그는 또 말했다. I feel my circumstance in Korea has taken away one of my basic rights as human being i.e. right to live without fear.** 얼마 전 그는 한 한국인 젊은이로부터 공격을 당했다고 한다. 마침 집 앞이었고, 경비실이 가까이 있었던 덕에 겨우 피할 수 있었지만 그 뒤로는 밤길을 걷는 것이 두렵다고 했다. 자신의 저녁을 송두리째 빼앗겨 버렸다고 그는 말했다.
  무슨 한이 그렇게 많길래, 그렇게 외칠 수 있는 걸까. 이것이 역차별이라고.

*여러분들은 아마 경찰서에서 일어난, 젊은 한국인 여성과 중년 한국인 남성 사이에서 벌어진 폭력적인 상황을 상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열 명, 혹은 그 이상의 경찰들 앞에서 미스터 박은 미즈 한에게 계속해서 "이 멍청아, 대체 왜 그러냐, 우리 둘 다 한국인이잖아"라라며 괴롭혔습니다.
**나는 한국에서의 주변 환경이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권리 하나를 앗아가버렸다고 느낍니다. 이를 테면, 공포 없이 살 수 있는 권리 같은 것 말입니다.

어쭙잖은 번역이라, 본문에는 원문을 인용했다.

댓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