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의 열한번째 만남

  맞은편에서 사람 둘이 걸어온다. 한쪽은 계속 말을 걸고 다른 한쪽은 곤란한 표정으로 계속 고개 숙여 인사를 한다. 대화를 거절하는 제스쳐다. 말을 거는 쪽은 낯이 익다. 늘 저렇게 길 가는 사람을 붙잡고 서서 "교회 다니세요?"하고 묻는 사람이다. 아니요, 하고 답하면 "다른 종교는 있으세요?"하고 묻고, 다시 아니요, 답하면 "교회나 성경공부에 관심 있으세요?"하고 묻는다. 세번째로 아니요, 하고 답하면 미련없이 인사를 하고 떠난다.
  늘 한 치도 틀림이 없다. 표정은 늘 멍하고, 목소리는 어딘가 모르게 붕 떠 있다. 수수한 차림에 배낭을 메고 갑자기 다가와 내게 열 번쯤 말을 건 적이 있는 사람이다. 그런 그와, 그를 귀찮아 하는 누군가―두사람이 내 곁을 스쳐 지나간다. 시야에서 그들이 사라진 잠시 후 그가 체념하고 인사하는 소리, 돌아서서 나와 같은 방향을 향하는 소리가 들려 온다. 힐끔 고개를 돌려 살펴보니, 나를 향하는 그가 보인다.
  저 아세요? 왜모르세요? 열 번쯤 뵈었는데, 이제 기억하실 때도 되지 않았나요? 언제나처럼 따져 물을 준비를 한다. 물론 한 번도 그렇게 물어 본 적은 없다. 그가 내 옆에 서서, 말을 걸기 직전에 내가 먼저 그를 돌아 본다. 기다렸다는 듯 "교회 다니세요?"하는 질문이 나오더니, 평소와는 달리 하나의 질문이 더 붙는다. "저 만난 적 있으시죠? 본 적 있는 것 같은데."
  네, 몇 번쯤요, 답하기가 무섭게 그는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다른 종교는 있으세요? 교회나 성경공부에는 관심 없으세요? 나는 평소와 같이 아니요, 라는 대답을 몇 번인가 하고, 그는 평소와 같이 멍한 표정으로 네, 알겠습니다, 하고 인사하며 나의 곁을 또 스쳐갔다.

얼결에 그는

나는 어느날부턴가, 고기를 끊었다.
나랑 늘 밥을 같이 먹는 그 역시,
얼결에 끊다시피 하게 되었다.


나는 어느날부턴가, 자전거를 탔다.
신림역쯤에서 만나 영화라도 보는 날이면,
나는 자전거를 끌고, 그는 나를 따라 걸었다.


나는 세제를 쓰지 않는다.
내 방에서 그는 가끔,
나 대신 설거지를 하며 투덜거린다.


내 방에는 인터넷 회선을 설치하지 않았다.
영화를 보기는커녕 웹서핑조차 할 수 없는
내 방에서 놀기 위해 그는 늘 이것저것을 챙겨온다.



더 이상 향긋한 냄새가 나지 않는 내 빨래들을 개고
가끔씩 무언가 끈적하게 남아 있는 컵에 커피를 마시고
어딘가 싱겁고 맹맹한 반찬들로 끼니를 떼우고
무거운 다리를 끌고 하릴없이 걷고
꼬박꼬박 볼거리 읽을거리를 챙겨 다니고
그는 그렇게 살고 있다.

나와 그.

고기를 먹지 않는 나.
그런 나와 자주 식사를 같이 하는 그.
고기를 먹지 못하게 된 나.
고기를 먹지 못하게 되어 가는 그.
그렇게 변해가는 자신의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뿌듯해 하는 그.
자신으로 남지도, 내가 되지도 못해서 곤란해 하는 그.






오랜 기간을 쌓아 온 믿음조차, 깨어지는 것은 한순간의 일이다.
그만큼을 새로 쌓는 데에는 물론, 처음보다 훨씬 더 긴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끊임없이 의심하게 되고 끊임없이 흔들리게 되겠지만,
중요한 것은 여전히 스스로가 믿는 일이다.

상대방이 다시 한 번, 나를 믿고자 한다면 더더욱 그러하다.
이전보다도 더 많은 믿음을 주는 것이 나의 역할이다.

믿는다.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