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분실 소동

  간만에 서점에 가서 책을 읽었다. 새책 냄새도 별로고 사람 많은 것도 별로라 서점에는 잘 안 가는데, 그냥 집을 나선 김에 가게 되었다. 고속터미널에 있는 대형 서점에 갔는데, 그곳에는 책을 읽을 수 있도록 테이블이 마련되어 있다. 여러번 가보고도 몰랐는데, 나보다 훨씬 더 여러번 가 본 사람에게 들어서 알게 된 사실. 물론 많지도 않고 어느 곳에나 있지도 않다.

  소설책 한권을 뽑아 들고, 2층에 있는 테이블을 찾아가 자리에 앉았다. 4인용 테이블이었는데, 내 옆에 앉은 이는 육아 잡지를 읽었고 대각선방향에 앉은 이는 뭔지 모를 수첩만한 책을 읽고 있었다. 휴대용 옥편 같기도 하고 불경집 같기도 한 책이었다. 내 앞자리는 비어 있었는데, 책을 반나마 읽었을 즈음에 누군가 와서 앉았다. 50대 후반 쯤으로 보이는 남성이었는데, 그가 들고 있던 책은 군사 잡지였다.

  내가 고른 소설책은 그저 그랬다. 기발하다면 기발한 상상에서 시작해 막힘없이 이야기를 풀어가는, ‘이야기꾼’의 책이었다. 사실 그런 책은 잘 읽지 않는 편이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려다 보면 타인에게 무례한 말을 뱉기 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책은 크게 나쁘지 않으면서도, 작가의 절실함 같은 것이 미약하게나마 느껴졌다. 그래서 앉은자리에서 쉬지 않고 끝까지 읽었다. 책은 343쪽 짜리였다.

  책을 다 읽은 후, 책 제일 앞에 반페이지 씩 마련된 작가의 말과 일러스트레이터의 말을 훑고 있는데 앞에 있던 이가 크게 방귀를 뀌었다. 내 옆과 대각선에 앉아 있던 이들은 이미 자릴 뜬 후였다. 방귀 소리에, 그리고 그렇게 함부로 구는 그의 태도에 불쾌해진 나는 훑던 책을 덮고 자리를 떴다. 1층으로 내려와 소설책을 제자리에 꽂고 자리를 옮기던 즈음에야 깨달았다, 자리에 노트북을 두고 왔음을 말이다.

  급히 올라가 테이블로 돌아갔으나 가방은 자리에 없었다. 내 앞에 있던 방귀쟁이도 없어진 뒤였고, 어느새 낯모를 세 사람이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주변을 둘러 봤으나 가방도, 방귀쟁이도 보이지 않았다. 카운터에 물어봐도 접수된 분실물은 없다는 말 뿐이었다. 1층으로 내려가 중앙 안내 데스크에 분실물 문의를 한 번 더 한 뒤 나는 금세 포기했다. 그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주변을 몇 번 살펴 봤을 뿐.

  가방 속에는 지갑이 있었다. 현금은 한 푼도 없었고 3000원 쯤이 남은 체크 카드, 그리고 은행카드 몇 개, 신분증 정도가 내용물의 전부였다. 하지만 가방 속에는 지갑 외에도, 노트북이 들어 있었다. 산 지 얼마 되지 않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노트북 말이다. 하지만 기왕 사라져 버린 것, 노트북에 큰 미련이 남지는 않았다. 가당찮게도, 노트북 속에 들어있는, 아직 옮겨 두지 못한 글 한 편이 아까웠을 뿐이다.

   짧은 글 한 편. 쓰다 만 블로그 포스트. 노트북에 든 두 개의 글을 아쉬워 하고 있는데 문득 위화감이 들었다. 내가 앉았던 테이블 옆 선반에 세워져 있던 자동차의 역사라는 커다란 책이, 가방이 없던 그 테이블 옆에는 없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부리나케 뛰어 올라가니 아니나 다를까, 그 테이블 옆의 선반에는 훨씬 더 작은 다른 책 한 권만이 올라가 있었다. 그렇다, 다른 테이블이었던 것이다.

  안쪽으로 조금 더 들어가자 비로소 내가 앉았던 테이블이 나왔다. 처음 돌아왔을 때엔 반대편 계단으로 올라 왔는데, 앉았던 자리를 멍청히 지나쳐 버린 것이었다. 아무튼 다시 돌아간 그 테이블 옆 선반에는 자동차의 역사라는 책이 잘 세워져 있었고, 방귀쟁이는 없었지만 내 가방은 얌전히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방귀 좀 뀐 걸 가지고 가방까지 들고 간 것으로 의심했던 것을 미안해 해야 했지만, 사실 그 때엔 글을 되찾은 안도감 뿐이었다.

  가방을 다시 들고 옆에 있는 카페로 갔다. 빵 한 조각을 먹은 후 사진집 하나쯤을 보고 집으로 돌아갈 요량이었다. 서점이 문을 닫기까지는 한 시간쯤 남은 때였다. 2000원이라는 가격 표시를 보고 싸다고 생각하며 주문했는데, 알고보니 2900원이었다. 그걸 안 것은 이미 카드를 긁어버린 후였다. 베이글 하나를 내는데 카페 점원은 15분이라는 시간을 들였다. 심지어 친절하게 잘라 주는 바람에 나는 결국 앉은 자리에서 다 먹어야 했다.

  한참을 기다리고 앉아서 그것을 먹느라 겨우 한 시간 남은 영업 시간의 절반 가까이를 날려버렸다. 큰 서점을 헤메 사진집 코너를 찾았지만 딱히 마음에 드는 책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결국 베이글은 헛일이 되어버렸고, 나는 폐점 시간이 되기 전에 서점을 나서 집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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