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머지는 모두 학교 인근 자취촌의 방들을 전전했다. 반 년이 머다고 이사를 하던 때도 있었고, 그래도 한두 해 가까이 머물러
산 적도 있었다. 돌이켜 보면, 나는 참 좋은 방에 살았다. 대부분의 방이 볕도 잘 들었고 바람도 잘 통했기에 곰팡이는 구경조차
해 보지 못했으며, 그렇다고 옆방 사람의 숨소리가 들릴 만큼 벽이 얇은 집에 살아 보지도 못했다.
집이 아니라 방을 빌려 살았기 때문이다. 고시원처럼 서로 차단된 방들이 늘어선 건물조차 아니었고, 가정집 형태를 한 건물의 방
한 칸만을 빌려 산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래도 사람이 살라고 지어 놓은 집인 덕에 곰팡이나 습기로부터는 자유로웠지만, 그 모든
것은 ‘편안한 차림’의 낯 모르는 사람들과 거실에서 마주치는 난처함과 욕실과 주방을 공유하는 찝찝함과 바꾼 것이었다.
1층에는 주인집이 있었고, 2층에 방 네 개, 그리고 옥탑방 하나가 있는 건물이었다. 2층의 네 명과 옥탑의 한 명, 이렇게
다섯 명이 같은 계단과 같은 거실, 그리고 같은 화장실과 같은 주방, 같은 냉장고, 같은 세탁기를 사용했다. 그들 중 누구는
속옷바람으로 물을 뚝뚝 흘리며 지나갔고, 또 그들 중 누구는 여름이면 배를 둥둥 걷어 올리고 네 활개를 편 채 방문을 열어 두고
잠이 들었다.
못한다. 섹스는 커녕, ‘나만의 공간’이라는 말부터가 사치일 뿐이다. 모텔조차 쉽게 허락되지 않는다. 그 당시의 나 역시,
그리고 나의 연인 역시 그랬다.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아찔한 일이지만(스릴 있는 일이라는 뜻이 아니다), 그야말로
‘고학생’이었던 우리들은 나의 방에서도 섹스를 했다. 2층에 사는 세 명, 2층을 거쳐 옥탑으로 올라가는 한 명이 몇 번쯤
낌새를 챘을 것이다.
택배였다. 작은 상자에는, 길게 자른 종이를 역시 길게 자른 유리 테이프로 정성스레 덮은 쪽지가 붙어 있었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쓴 것은 아니었다. 2층의 세 명, 옥탑의 한 명 중 누군가가 썼을 그 쪽지에는 “섹스는 여관에서”라는 굵은 볼펜 자국이 남아
있었다. 신문에 실릴 글이니 여기에는 그냥 섹스라고 썼지만, 그 쪽지에는 실은 된소리로 시작하는 육두문자가 담겨 있었다.
망설였지만, 이런 이야기를 해 보고 싶었다. 한 몸 뉘이면 가득 차는 좁은 방, 여름이면 곰팡이가 벽을 덮는 방, 옆 방의 통화
소리에 잠을 설쳐야 하는 방, 그런 방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많으니까 말이다. 불편한 동거가 아니라, 낯 모르는 이들과의 불안한
동거―서로의 마주침이 교류가 아니라 침입이 될 수밖에 없는 좁은 집들, 자신의 공간을 가질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원래 제목은 <이런 이야기도 해보고 싶었어>였고, 2안은 <불편 말고 불안>이었다. 제목에 1안, 2안이 있었던 것은 기고글이었던 탓이다. 대학생사람연대의 신문 <대학생사람연대>에 기고 요청을 받고 쓴 글. 그런데 웬걸, <여관 말고, 집에서 사랑하면 안 되나요?>라는 얼토당토 않은 제목으로 실렸다. 심지어 ‘김애란의 소설’로 시작하는 문단도 어디론가 사라졌다. 제일 끝에는 "5면 하단으로 이어집니다"라는 문구가 붙어 있더라. 물론 글은 저게 끝이고 이어지지 않는다. 으으음. 아무튼, 섹스와 사랑은 전혀 다른(그러니까, 별개의) 건데 말이지. 블로그에 올릴 생각은 없었는데, 이상한 제목과 이상한 내용으로 실려서, 여기에 원안을 남겨 둔다. 따질까 하다가, 말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