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내가 한 자리, 커다란 카메라가 한 자리를 차지했다. 그 옆으로 빈 자리 하나가 있었다. 무엇이 내키지 않았던 것인지는 모르지만, 누군가가 내 카메라가 차지한 자리와 빈 자리 사이에서 고민했다. 카메라는 내 무릎으로 올라 왔고 그 사람은 내 옆에 앉았다. 왼쪽에 봉이, 오른쪽에 사람이 있는 자리에 나는 앉아 있었다. 오른쪽으로 기대는 습관이 있는 나는 불편했다.
   작은 모금함을 든 사람이 내 앞을 스쳐갔다. 내 왼편 몇번 째 자리 쯤에 앉은 사람의 앞에서 무어라 중얼거린 그는 그 맞은 편에 앉은 사람 앞에서 또 몇 마디를 내었고 몇 자리를 더 가서 같은 일을 반복했다. 무엇을 위한 모금인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았다. 그의 모금함에 돈을 넣는 이도 없었다. 그 역시 별로 미련이 없는 듯, 빈 자리가 많지 않은 지하철 한 칸에서 겨우 네 명에게 말을 붙여 본 후 다음 칸으로 넘어 갔다.
   모금함을 든 사람과 반대 방향으로 소쿠리를 든 맹인이 다가 왔다. 흰 지팡이를 짚지 않고도 방향을 잘 잡았다. 그럴 수 있겠다, 싶을 만큼 지하철에서 자주 마주치는 사람이었다. 주머니 속에 든 천 원을 꺼내 손에 쥐고 있다가 그가 내 앞에 왔을 때 소쿠리에 살짝 내려 놓았다. 몇 년 간 반복하면서, 그가 느끼지 못하도록 지폐를 내려 놓는 기술이 생겼다. 혹시라도 느끼는 순간이면 그는 허리를 너무 깊이 숙여 인사한다.
   내 옆 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은 건너편 의자의 봉이 있는 자리로 몸을 옮겼다. 나는 그 맞은 편, 오른쪽에 봉이 있는 자리로 옮겨 봉에 기댔다. 봉 너머에 가방을 든 사람이 섰다. 그의 가방이 계속 해서 내 머리를 치고 눌렀다. 하지만 나는 피곤했고, 머리를 치우지 않았다. 잠깐 잠이 든 사이 가방을 든 사람은 사라지고 없었다. 맞은 편에 앉은, 내 옆에 앉았던 사람은 왼쪽의 봉에 기대어 곤히 자고 있었다.
   지하철이 몇 개의 정거장을 지나는 사이 맞은 편에서 곤히 자던 사람도 시야에서 사라졌다. 내 옆에는 카메라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 옆으로 추레한 차림을 한 사람 하나가 앉았다. 휴지에 무어라 빼곡히 적힌 글자들을 그는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곁눈질로는 알아 보기 힘든 날려 쓴 글씨 사이로 프랑코라는 단어가 보였다. 신부라는 단어도 보였다. 어느 역에선가 그는 내리기 위해 일어섰지만, 문이 먼저 닫혔다. 포기하고 자리에 앉은 그는 몇 정거장인가를 그대로 앉아 있었다.
   목적지에 도착해서 지하철에서 내렸다. 플랫폼에 서 있는 자판기를 보고서야, 아까의 천 원이 잠을 깨기 위해 커피를 마시려던 돈이었음을 깨달았다. 자판기를 지나치면서, 그 전에 그 돈으로 복권이나 한 장 사 볼까 생각했던 것도 떠올랐다. 땅 위에서부터, 찬 바람이 불어 내려 왔다.

댓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