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객과 아이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내가 앉은 자리 옆에 아이를 업은 사람이 서 있었다. 엄마로 보이는 아이 업는 사람과, 할머니로 보이는 동행이 아이를 얻니 안니 하며 옥신각신하고 있었다. 자리를 내어 주었더니 엄마로 보이는 사람은 고맙다고 말하며, 포대기를 풀어 아이를 앞으로 안고 자리에 앉았다.
  엄마로 보이는 사람과 할머니로 보이는 사람의 사이에 선 아이는 둘을 번갈아 보며 연신 웃었고, 가끔 나를 보면서도 웃었다. 아이의 웃음에 나도 웃음으로 답했더니 아이는 또 엄마로 보이는 사람과 할머니로 보이는 사람을 번갈아 보며 자지러졌다.
  그러자 옆에서 술에 취한 사람 하나가 아이를 보며 웃었다. 재롱을 요구하는 듯, 무언가 소리를 내어 아이의 관심을 끌기도 했다. 대답하는 것인지, 그저 웃는 것인지, 아이는 여전히 엄마로 보이는 사람과 할머니로 보이는 사람을 번갈아 보며 웃었다.
  술에 취한 사람이 점차 아이에게 다가와 나는 조금 불안해졌다. 지하철에서 만난 취객은 종종, 상대방의 기분 따위 모른 채 말을 걸거나 손을 대거나 자리를 뺏거나 했기 때문이다. 여성들을 상대로 욕을 하거나, 혹은 누군가의 무릎에 앉으려는 취객을 볼 땐 주저없이 끌어 내었는데,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했다.
  그저 아이의 재롱을 보고 있을 뿐이고, 손을 내밀어 아이의 볼을 꼬집을 수도 있겠지만 위협적일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것을 그냥 두면 언제 위협적이 될지 모르는데, 그런 가능성과 술에 취해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를 끌어내도 좋을까 고민했다.
  여전히 아이는 엄마로 보이는 사람과 할머니로 보이는 사람에게만 관심을 주고, 술에 취한 사람에게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자신에게 무관심으로 응대하는 아이에게, 버럭, 화라도 내면 어쩌나 나는 불안했다.

  지하철이 신도림 역으로 들어섰다.

  술에 취한 사람이, 나는 여기서 내릴래, 하고 말했다. 누구를 향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할머니로 보이는 사람이, 여기서 내리기는 뭘 내려, 하고 답했다. 엄마로 보이는 사람이, 여기는 사람도 많고 계단도 많아서 안 돼, 하고 답했다.
  그리고 엄마로 보이는 사람이 아이에게, 아빠가 술에 많이 취했지, 하고 웃었다. 술에 취한 사람은 가족으로 보이는 사람들을 두고 신도림 역에서 홀로 내렸다. 엄마로 보이는 사람도, 할머니로 보이는 사람도, 그런니까, 술에 취한 사람의 배우자로 보이는 사람도, 그의 어머니로 보이는 사람도, 그를 잡지 않았다.
  나는 혼자 걱정했지만, 술에 취한 사람은 아이의 아빠였다. 다행히, 술에 취해도 위협적이지는 않은 사람인 듯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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