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여성인지 묻기: 페미니즘의 첫 번째 경유지

여성의 전화 소식지 <베틀>에 실은 글. 급한 마감을 맞추느라 엉망으로 썼는데 그냥 그대로 나갔다 흑.

 

 

 

누가 여성인지 묻기: 페미니즘의 첫 번째 경유지

 

 

 

‘양성평등기본법은 성소수자 관련 개념이나 정책을 포함하지 않는다. 따라서 대전시 성평등 기본조례의 관련 내용은 수정되어야 한다.’ 이것은 ‘성소수자 보호 및 지원’을 명시한 대전시 성평등기본조례에 대해 여성가족부가 밝힌 입장이다. 결국 대전시는 조례를 개정했다. 10월 6일 서울 대한문 앞에서는 이를 규탄하는 여성 성소수자 궐기대회가 열렸다. 이곳에서 장애여성공감 배복주 대표는 (받아 적지 않았기에 정확하진 않지만) 이렇게 말했다.

 

“양성평등기본법이 성소수자 문제를 다루지 않는다면, 장애인 문제는 장애인복지법에서만 다루어야 합니까?”

 

누군가는 이 말을 단순한 수사의문문으로 여길 것이다. 그러나 이 말에는 많은 것이 담겨 있다. 사회는 계속해서 사람들을 나누고 위계를 매긴다. 낮은 위계의 사람들에게는 제약을 가한다. 그리고는 그 제약이, 마치 그 사람들의 탓인 것처럼 꾸며낸다. 낮은 위계에 놓인 사람들의 권리를 되찾으려는 운동이 이 구도에 갇힐 경우, 법은 선심 쓰는 모양새를 취한다. 장애인 복지 관련 법들, ‘다문화 가정’ 관련 법들, 그리고 양성평등기본법 같은 것들이 이러한 경우다.

물론 소수자들의 권리를 구체적으로 다루는 법의 필요성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법이 어떤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는지를 우리는 항상 명심해야 한다. 법은 ‘정상인’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비정상인’들에게는 부수적인 법들만이 주어진다. ‘비정상인’들은 그 법 속에 갇혀, 끝내 ‘비정상’으로 남고 만다. 법의 양성평등이 성소수자를 부정할 때, 정체모를 그 양성은 정상이 되고 성소수자들은 비정상이 된다. 그래도 좋은 일일지도 모른다. 양성이 정상이라면, 그 양성에 속하는 여성 또한 정상인 셈이니까.

늘 이등시민이던 혹은 시민조차 되지 못했던 여성도 이렇게 정상이 되고 시민이 되는 것일까. 그러나 양성평등기본법은 여성을 위한 법이다. 여성은 여전히 이등시민이고 그 자체로 ‘비정상’이다. 누가 여성인지, 아직도 도무지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여성 성소수자 궐기대회의 모토는 “왜 성소수자를 배제하느냐”가 아니라 “나는 여성이 아니란 말입니까”였다. 과연 여성이란 누구일까. “여성 성소수자”가 여성에 성적 소수자성을 덧붙이는 것이라면 우리는 또 다른 다양한 여성들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청소년 여성과 청년 여성과 노년 여성처럼 다양한 나이를 덧붙일 수도 있고 노동자 여성, 반대로 자본가 여성과 같은 것들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여기서 다시 이 속성들을 뗄 수 있을까? 나이와 여성을, 계급과 여성을 다시 나누어 “여성”만을 남길 수 있을까?

아무런 속성도 갖지 않은 여성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성소수자”이기 때문에 “양성”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다른 어떤 속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여성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이 세계에 실은 여성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고백하는 것일 뿐이다. 그렇다면 다시 돌아가, 저 속성들을 다시 붙여야 한다. 그러나 “여성”이라는 것의 실체가 없다면, 실은 “성소수자”나 “노년”, 혹은 “노동자” 같은 것들은 “여성”에 덧붙는 속성이 아니다. 오히려 저 모든 것들이 “여성”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양성평등”이란 애초에 불가능하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실체 없는 남성과 여성을 내세우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양성평등이 아니라 성평등 이라는 말을 쓴다(사전에는 없는 단어지만 말이다!). 수많은 요소들이 교차하면서 만들어지는 성이라는 요소를 빌미 삼은 차별과 불평등에 저항하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남성과 여성 같은, 언뜻 분명해 보이는 표식 뒤에 있는 진짜 성을, 진짜 사람들을 알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은 성평등이라는 말을 쓴다.

이에 궐기대회에서는 여섯 명의 성소수자 여성이 자신의 삶을 이야기했다. 노동운동하는 레즈비언 여성의, 학교에 남성으로 입학해 여성으로 졸업한 트랜스젠더 여성의, 성소수자 청소년 여성의 삶이 이야기되었다. 그 어디에도, 아무 수식어 없는 순전한 여성 같은 것은 없었다.

 

여성이라는 단 하나의 표식으로 수많은 여성들을 뭉뚱그리면, 정체 모를 이등시민이 탄생한다. 실체가 없으므로, 확인할 길 없는 편견을 덧씌우기도 쉽다. 된장녀, 김치녀, 김여사 … 이런 말들은 특정 여성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실체 없는 “여성”이라는 이등시민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이등시민들이 받는 제약은 그 자신의 탓으로 돌려진다고 말했다. (여성가족부는 아니지만 같은 정부 기관인) 교육부가 최근 그 증거(?)를 들이댔다. 바로 학교성교육표준안이다. (꼽자면 문제야 끝이 없지만) ‘성적 지향’과 같은 용어 사용 등을 비롯한 성소수자 관련 내용 교육을 배제해 또한 문제가 되기도 했던 이 ‘교육’안의 초등학교 고학년용 자료에 포함된 성별 차이 항목에서는 남성은 운동과 게임에, 여성은 외모와 수다에 관심을 갖는 뇌를 갖고 있다고 적혀 있다. 이런 관점에서 쓴 것답게, 성폭력 관련 항목은 성폭력의 원인으로 ‘여성이 데이트 비용을 적게 낸다’를 드는 한편 성폭력 예방법이랍시고 ‘거절하는 법’을 내세우고 있다. ‘여성은 이러이러한 존재고, 그러므로 이러이러해야 한다’라는 전형적인 사고의 흐름이다.

전혀 상관없는 일 같아 보일 수도 있지만, 양성평등기본법을 둘러 싼 문제와 학교성교육표준안의 문제는 정확히 같은 궤를 따르고 있다. 실체 모를 여성만을 생각하며, 다양한 여성들을 낳는, 다양한 여성들에게 영향을 주는 권력의 문제를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마도 성기 모양 정도나 생각하며 떠올렸을 여성이란 존재가 겪는 문제들을 권력 관계에 대한 고려 없이 설명하는 법은 한 가지뿐이다. 여성 자신의 문제로 돌리는 것 말이다.

 

페미니즘(여성주의라고 불러도 좋고 아예 여성해방론이라고 불러도 좋다.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다.)의 출발점은 바로 거기다. 실체 모를 여성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누가 여성인지를 묻는 것, 여성이라는 이름에 얽힌 권력들을 묻는 것, 그것이 바로 페미니즘의 출발이다. 여성이라는 실체 없는 표식 뒤에 숨겨진 다양한 여성들의 삶, 그곳이 바로 페미니즘이 가장 먼저 가고자 하는 곳이다.

페미니즘을 비롯한 모든 행동주의 철학은 고유의 현실인식을, 그리고 그 현실인식을 위한 방법론을 갖는다. 페미니즘의 방법론이란 성의 이름으로 무엇이 어떻게 위계화 되고 있는지를 살피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여성이 남성보다 낮은 지위에 있음을 확인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맥락에서 배제되는 것들이 무엇인지 따져야 한다. 누구나가 성별화되는 이 세계에서, 성의 이름을 얻지 못한 것들을 갖는 이들이 어떻게 ‘누구’조차도 아니게 되는지를 따져야 한다.

“우리는 여성이 아니란 말입니까?”하고 물었던 여성들은 다시 이렇게 묻는다. “여성가족부가 말하는 여성은 누구인가?” 이것은 또한 우리 자신에게도 항상 물어야 하는 것이다. 여성이란 누구인가? 성이란 무엇인가? 그 답을 찾는 것이 페미니즘의 첫 번째 여정이고 그 답이 있는 곳이 ― 양성평등이 아닌 ― 성평등을 향한 페미니즘의 여정, 그 첫 번째 경유지다.

2차 민중총궐기, ‘차벽’ 사라지니 ‘평화’가 왔나

12월 5일, "2차 민중총궐기"가 있었다. 청와대를 향해 행진하다가, 정확히는 행진을 하려다가, 경찰에 막혀 한참을 싸우고 얻어 맞았던 11월 14일 1차 민중총궐기에 이어진 행사였다. 이번에는 청와대를 향하지 않았다. (아이러니컬하게도 11월 14일 청와대에는 대통령이 없었다. 12월 5일 청와대에는 대통령이 있었다.) 차벽도 없었다. 몇 개의 차선을 쓰느냐, 차도의 차들을 보내느냐 마느냐를 두고 약간의 승강이가 있었지만 참가자들은 큰 탈 없이 서울광장에서 혜화동까지 행진했다. 혜화동, 11월 14일 살수차의 물줄기에 맞아 의식을 잃은 백남기 씨(사회자들은 줄곧 '백남기 농민'이라고 부른)가 입원한 병원이 있는 곳이었다.

한겨레는 <2차 민중총궐기, ‘차벽’ 사라지니 ‘평화’가 왔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냈다. 물론 표면상 이것은 사실이다. 막는 이가 없으니 싸울 일도 없었고 싸울 일도 없으니 집회는 잠잠하게 끝이 났다. 그러나 나는 의아했다. 왜 저들은 막지 않았을까? 잠잠히 끝나면 그것은 평화인 것일까? 이번에도 청와대를 향했다면 어땠을까? 청와대를 향한 길이 막히지 않는다면 행진은 어떻게 끝나게 될까?

행진 코스를 서울광장에서 혜화동까지로 정한 것은 물론 기획단이다. 가고 싶은 곳을 간 셈이다. 그러나 그곳이 정말로 가고 싶은 곳이었을까? 정부를 상대로 요구안을 제시하는 집회와 백남기 씨의 쾌유를 기원하는 (말하자면) 기도회가 뒤섞인 집회의 모습은 꽤 기묘했다. 아마도 모두가 백남기 씨의 쾌유를 바라고는 있었겠지만, 아마도 많은 이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혜화동으로 행진하는 이유를 알지는 못했다.

아마도 혜화동으로 행진한 것은 저들에게 싸울 빌미를, 때릴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혜화동을 향한 길이 막힌다면 저들이 과잉진압을 한다는 것은 더 이상 부정할 수 없는 일이 된다. 막히지 않는다면 '평화 집회'가 성사되고 이쪽의 명분을 살릴 수 있다. 그런 계산은 아니었을까. 그랬다면 성공한 셈이다.

그러나 그렇다면, 아마도 정말로 가고 싶은 곳에 가지는 못한 셈이다. 가고 싶은 곳에 가지 못했는데, 도무지 갈 수 있는 방법이 없어 보이는데, 그것을 두고 평화라고 해도 좋은 걸까. 그것이 나의 고민이다. 무력 충돌이 없는 것이 평화라면 집회를 안 하는 게 최선 아닌가, 케케묵은 말이다. 길을 막는 것조차도 누군가에게는 폭력이다. 그날도 행진으로 좁아진 길을 급히 달려가는, 그러나 갈 틈을 찾지 못해 곤란해 하는, 앰뷸런스가 있었다.

얼마 전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시위는 언제나 폭력 시위고 진압은 언제나 과잉 진압이다. 시위는 위력을 보인다는 뜻이다. 위력을 보이려면 언제나 무언가를 멈추어야 한다. 그것이 공장 설비건 교통이건 간에, 기존의 힘에 맞설 힘이 있음을 보이는 것이 시위다. 그런 점에서 시위는 언제나 폭력 시위다. 그것을 막는 것이 진압이다. 그러나 민주주의 국가에서 자신의 뜻을 내보이려는 이들을 막는 것은 언제나 과잉이다. 책임자를 만나려는 이들의 길을 막는 것은 언제나 과한 처사다. 그런 점에서 진압은 언제나 과잉 진압이다.

나는 경찰과 몸싸움을 하는 것도, 경찰자를 망가뜨리는 것도, 혹은 상가에 불을 지르는 것도 마뜩지 않다.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는 방식으로 시위를 하고 싶다. 기껏해야 길을 막거나 어딘가를 점거하는 정도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화 시위 운운하는 것은 더욱 마뜩지가 않다. 최근에 이런 말도 한 적이 있다. 파괴 없는 시위에 무슨 파괴력이 있을까. '평화'를 위해 가고 싶은 곳을 가지 않는 것이 평화일 수는 없다. 억압하는 무언가를 파괴하는 것, 그것이 평화 아니던가.

자유!

자립생활은 자유다, 그는 그렇게 외쳤다. 장애인 탈시설 콘서트 <자유로운 삶, 시설 밖으로!>에서였다.

몇 년 전 학생 단체의 활동가로, 혹은 좌파 매체의 기자로 살 때의 일이다. 한 번은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의 농성장에서 한 사람을 인터뷰했고 한 번은 시청 앞의 농성장에서 한 사람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인터뷰를 했던 그에게 시설에서 나와 제일 좋은 점이 뭐냐고 물었을 때 그는 자유! 라고 짧게 외쳤다. 어떤 것을 할 수 있어서, 어떤 것을 하지 않아도 되어서 하는 구체적인 이야기가 아니었다. 자유라는 추상 명사가 그에게는 아마도 아주 구체적인 무언가였을 것이다. 그 자유를 갖고서 그가 한 일은 대단치 않았다. 난생 처음으로 자기 옷을 자기가 골랐다고 했다. 스물 몇 살 때의 일이라고 했다. 그 다음으로 한 일은 공원에서 한데잠을 자며 농성을 하는 일이었다. 장애인이 시설에서 나와 지역사회에서 살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할 것을 요구하는 농성이었다.

시청 앞에서 그와 이야기를 나눴던 때엔 우리 둘 말고도 여럿이 있었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이 오가던 중 누군가가 그에게 애인이 있느냐고 물었다. 있었는데 도망 갔어, 그것이 그의 대답이었다. 같이 살던 시설에서 나갔다는 뜻일까. 있었는데, 나 이렇게 되고 도망 갔어. 그것이 그의 두 번째 대답이었다. 언제 그렇게 되셨어요? 열 몇 살이라고 했더라, 사고로 장애인이 되었다고 했다. 그날 그는 삼십 대 후반이거나 사십대 초반이었다. 스무 해도 더 지난 일이었다. 스무 해 전에 깨어진 관계를 두고, 있었다고 말하는 것이 어떻게 그렇게 자연스러웠을까. 장애를 얻고, 시설에 들어가고, 시설 안에서만 생활하고. 아니, 어쩌면 목숨만을 부지하고. 그 긴 시간이 멈춰 있었던 것이 아니라면, 그 긴 시간 동안에는 삶이랄 것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면, 그토록 자연스러울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보다 또 두어 해 전에는 종로구청 앞에서 나도 종종 한데잠을 잤다. 장애인 시설 비리를 고발하고 관할관청인 구청의 조치를 촉구하는 농성이었다. 그곳에서는 종종 눈물을 흘렸다. 종일 누워서 벽만 바라본다는 어느 장애인의 이야기를 들으며, 종일 묶인 채 지낸다는 어느 장애인의 이야기를 들으며, 아침에 주는 약을 받아 먹으면 멍한 채로 하루가 간다는 어느 장애인의 이야기를 들으며, 종종 눈물을 흘렸다. 삶이 저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종종 한데잠을 잤다.

세 농성장에서 만났던 여러 사람들은 이제 시설에서 나와 살아가고 있다. 그곳에서 만났던 이들 중 몇은 나와서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자립생활은 자유다, 라고 외쳤지만 온전한 자유는 아닐 것이다. 콘서트 무대 옆에 걸린 문구들 중에는 시설이 천국이 아니듯 지역사회도 천국이 아니라는 말이 있었다. 활동보조가 없어서,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교통시설이 없어서, 일자리가 없어서, 장애등급제가 있어서, 부양의무제가 있어서, 어쩌면 나와서 산다는 것 또한 지옥 같은 일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들은 나와 살기를 택했고 다른 이들도 나오게 하기로 결심했다. 자유! 그 짧은 외침은 그들 모두에게 구체적인 무언가였을 것이다. 내게는 실체 없는 그 단어가, 그들에게는 모든 것을 걸어도 좋을, 단단한 무언가일 것이다. 그들의 감각을 믿었기에 나는 오늘, 장애인 탈시설 선언 콘서트 <자유로운 삶, 시설 밖으로!>에 다녀왔다.

남성적 셈법

나는 늘 궁금했다. 이번 파업으로 예상되는 손실이 몇천 억이라는 언론 보도를 볼 때마다 말이다. 파업 노동자들이 공장에 쌓인 상품이나 기계를 부수는 것이 아닌데도, 손실액은 언제나 컸다. 파업을 하지 않았다면 이만큼 만들어 팔았을 것이라는 예측에 기대고 있었기 때문이다. 파업으로 인한 예상 손실액은 실은 노동자들이 평소에 얼마나 많은 일을 하고 있는가 이상의 것을 드러낼 수 없는 숫자였지만, 늘 "손실"로 셈해졌다. 기업과 사주와 언론은 늘 그 예상 생산량을 당연한 듯 기업의 것으로 여겼다. 그래서 나는 늘 궁금했다. 세상에 저런 셈법은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 하는 것이 말이다.

얼마전 누군가의 말을 통해 그런 경우를 또 하나 알게 되었다. 정확한 문장이 기억나지는 않지만, '여성들의 성형과 흡연에 분노하는 남성들'에 관한 말이었다. 자신의 건강을 담보로 하는, 그러니까 예상 손실이 있다 해도 오직 자신의 건강 뿐인, 여성들의 그 행위에 남성들은 왜 분개하는가. 그의 말에 따르면 그것은 그 남성 자신의 예상 번식에 따르는 예상 손실 때문이다. 아무 근거 없이 여성을 자신의 번식 행위에 대입시키고 그 결과로 나올 어떤 일들을 자신의 성취로 예상하며, 따라서 그 일에 있을 어떤 부정적 영향을 자신의 예상 손실로 셈한다는 것이다.

조금은 안 듯한 기분이 든다. 그 셈법의 출처를.

두 번의 거짓말

집회에 가기 위해 학교를 나서던 참이었다. 중간에 들러야 할 곳이 있었으므로 종종걸음을 걷고 있는데 누군가 말을 붙여 왔다. 학생은 아닌 것 같았다. 등산복을 차려 입고 머리에는 헤어밴드를 두른 사람이었다. 신림역 이야기를 꺼내었으므로, 길을 물으려는 것인 줄 알았으나 아니었다. 교통카드를 충전할 곳이 없다고 했다. 신림역은 멀고 낙성대역이 제일 가까우니 이쪽으로 가라고 하였으나 그는 그곳에서 온 참이라고 답했다. 몇 마디를 더 꺼낸 그는 지하철 표 살 돈이 없다고 했고, 잠시 후에는 기차표 값이 없다고 했다. 목포인지 순천인지에서 왔다고 했다. 옛날에는 이만 원이면 되었지만 이제는, KTX, 사만 원이 필요하다고 했다(실은 서울에서 목포까지 KTX를 타면 오만 원이 넘게 든다.). 길가던 학생 두 명이 만 원씩을 주어 이만 원을 갖고 있다고 했다.

그는 몇 번이나 자긴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착한 사람이라고도 했던 것 같다. 그가 나쁜 사람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는데도 몇 번이나 그 말을 반복했다. 나는 그저 그의 몸에서 냄새가 난다고 생각했고 앞니가 하나도 없던 그의 잇몸께에 남은 금색의 물체들이 무엇인지 궁금해 했으며 그가 더듬는 말을 알아 듣기 위해 약간의 인상을 썼을 뿐이었다. 내가 그랬듯, 이런 점들이 사람들로 하여금 그로부터 거리를 두게 하였을 것이고 그것이 그로 하여금 그런 말을 하게 했을 것이다. 네가 조금 더 한 생각이 있다면, 지금 이것이 그 스스로 하는 거짓말일까 누군가 시긴 거짓말일까 하는 고민 정도였다. 그는 또 몇 번인가, 말을 더듬지 말라고, 돌리지 말고 남자답게 말하라고 누군가 알려주었다고 말했다. 그 누군가가 길 가던 사람인지 그를 보낸 사람인지 나는 알지 못했다.

이런 많은 정보들을 얻기 전, 그러니까 그가 지하철 표값이 없다고 했을 즈음, 나는 현금이 없다고 거짓말을 했다. 지갑에는 만삼천 원 쯤이 들어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고 카드를 들고 다니느냐고, 그럼 저기서 돈 좀 찾아 달라고 말을 했다. 오죽하면 모르는 사람 붙잡고 이러겠느냐고, 나쁜 사람 아니고 멀리서 온 사람이니 한 번만 도와 달라고 했다. 타지 사람인 것을 척 보면 알지 않느냐고 했지만 그는 나보다 훨씬 자연스런 서울말을 썼고, 얼굴을 기억해 뒀다가 다음번에 자신이 서울에 왔을 때 마주치게 되면 돈을 돌려 받으라고, 아니면 전화번호라도 달라고 말했지만 계좌 번호를 달라고는 하지 않았다.

거짓말을 한 직후에 거절까지 할 배짱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그를 좇아, 거기에 있는줄도 몰랐던 현금인출기 앞까지 갔다. 저 정보들은 그 몇 분을 걸으며 들은 것들이었다. 그 길을 걸으며 나는 가방 속을 더듬어 지갑에서 현금을 꺼내 가방 구석으로 밀어넣었다.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서였다. 현금인출기는 어느 건물 현관에 있었다. 그는 현관 앞에서 인출기 위의 간판을 가리키며 저기라고, 따라 들어가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누가 말해 주었으니 자기는 떨어져 있겠다고 말했다. 건물에 들어가 가방을 열어 보니 삼천 원이 나뒹굴고 있었다. 만 원은 이미 어딘가 써버린 모양이었다. 이번에는 지갑을 열어 카드 몇 개를 꺼내 가방 깊숙이 묻었다. 지갑에는 카드 세 개가 들었다. 얼마 안 남은 생활비가 든 통장의 카드, 다음 학기 등록금이 든 통장의 카드, 그리고 원래 생활비 카드였지만 여기저기 등록된 후원금 자동이체를 감당할 수 없어 이번달엔 비워 둔 카드, 이렇게 세 개가 들었다. 앞의 두 개를 꺼내 가방 깊숙이 묻었다.

세 번째 카드를 현금인출기에 넣었다. 예금 조회 버튼을 누르고 비밀 번호를 입력하자 잔액이 표시되었다. 물론 0원이었다. 시간이 지났는데도 내가 돈을 갖고 나오지 않자 애가 탔는지 그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멀찍이 선 그를 보며 나는, 월급날이 내일 모레인데 아무래도 마지막 잔액이 자동이체로 나간 모양이라고 또 거짓말을 했다. 곤란한 표정을 짓는 그에게 이리 와서 보셔도 된다며, 다시 한 번 세 번째 카드를 넣고 예금 조회 버튼을 누르고 비밀 번호를 입력했다. 여전히 망설이는 그를 다시 불러 화면을 보인 다음, 그런데 가방을 보니 삼천 원이 굴러 다니고 있더라고 말했다. (어쩌면 세 번의 거짓말을 한 셈이다.) 이거라도 받으세요, 죄송합니다, 하는 말과 함께 돈을 건네고 그와 함께 문을 나왔다.

그는 어떻게 말하는 게 좋겠냐고 나에게 물어 왔다. 어떻게 말하든 줄 사람은 주고 안 줄 사람은 안 주지 않을까요, 나는 늘 이런 식이다. 그리고는 다시 인사를 건네고 가던 길을 재촉했다. 그러고 보니 현금 인출기까지 오는 길에 그는 내게 두 번 악수를 청했다. 그가 먼저 손을 내밀었고 나도 손을 내밀었지만, 둘의 손은 닿기만 했을 뿐 둘 중 누구도 상대의 손을 쥐지는 않았다. 두 번 모두 그랬다. 그는 삼십 대 중반쯤 되어 보였는데, 자신은 스물 아홉이라고 했다. 나에게는 자신보다 나이가 많아 보인다고, 이미지가 그렇다는 말이라고, 보면 안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착한 사람인 것도 보면 알지 않느냐고 했었다.

그와 헤어지고 다시 종종걸음을 걸어 중간에 들러야 할 곳에 들러 할일을 마치고 나오며 나는 손등에 길게 난 생채기를 발견했다. 지갑에서 돈을 꺼내어 숨기기 위해, 혹은 카드를 꺼내어 숨기기 위해 급히 손을 놀리다 다친 모양이었다. 가방 입구께에 달아둔 뱃지의 바늘이 튀어나와 있었다. 뱃지를 떼어 필통에 옮겨 꽂았다. 생채기에 난 피는 흐르지도 않은 채 이미 굳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