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1.07.10.(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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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부터 살았던 서울을 떠났다. 충북 제천으로 이사했다. 최초의 계획보다는 꽤 여러 해가, 최근의 계획보다는 2개월쯤 늦어졌다. 지금껏 한 이사 중 가장 규모가 컸다. 이동 거리를 기준으로 하든 짐 양을 기준으로 하든 집에 들인 돈을 기준으로 하든 이사에 들인 돈을 기준으로 하든, 어떤 면에서나 최대규모다. 그만큼 해야 할 일도 고민할 것도 많았지만 대부분 하지 않았다. 생략할 수 없는 몇 가지는 모두 외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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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부터 2008년까지 서울에서 대학을 다녔다. 2009년부터 5년쯤 노동조합 같은 데서 ― 운동단체 중에서 그나마 급여를 어느 정도 받을 수 있는 곳에서 ― 일하다 돈이 조금 모이면 시골로 이사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아무리 사기업이나 국가 기관이 아니라 해도 애초에 매일 출근하는 일 같은 것은 할 수 없는 인간이란 걸 알지 못했다. 대학원에 입학할 줄도 몰랐다. 같이 계획을 세웠던 (딱히 그에게 시골이 흔쾌하진 않았겠지만, 그다지 구체적으로 이야기한 것도 아니었지만) 연인과 헤어질 줄도 몰랐다. 여러 해를 미루며 두어 번의 연애를 더 했고 친구도 몇 명 더 생겼다. 없는 감상을 섞어 말하자면, 그 기억들을, 그리고 어떤 가능성들을 뒤에 두고 떠난다.

졸업 후에는 작은 언론사의 기자가 되었다. 고정적으로 출근하는 날 없이, 대충 따지자면 한 주에 이틀이나 사흘 정도, 그나마도 종일이 아니라 하루에 몇 시간 정도씩만, 일하는 자리였다. 만 이년을 일했다. 후에는 매일 출근하는 (그러나 사무실을 혼자 썼으므로 실은 종종 결근했던) 일을 두 해 했고 역시 주 사흘 쯤, 일 8시간 기준으로는 이틀 쯤 근무하는 일들을 한 해 정도씩 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개는 단발성으로 일했다. 하루나 이틀쯤 혹은 한주쯤 하는 일이 많았다. 한 달쯤을 꼬박 들여야 하는 일도 몇 번인가 했지만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곳으로 출근해야 하는 일은 없었다.

게으르게 벌었고 겨우 두어 달 생활비만 있어도 금세 일을 그만두고 새 일을 얼른 구하지도 않았으므로 돈은 모이지 않았다. 2017년부터였나, 돈 안 받고도 해 온 일들 ― 구경하고 읽고 쓰기 ― 에 얼마간의 돈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창작지원금이나 연구지원금 같은 이름으로 정부에서 주는 돈이었다. 덕분에 돈을 벌기 위해 하는 일들을 줄일 수 있었고, 그러고도 해마다 몇백 만원씩은 저축이 생겼다. 지난해엔 좀 더 마음을 먹고 저축을 시도했다. 그렇게 생긴 돈으로 2000만원짜리 전세를 구했다.

2018년이었나 2019년이었나, 동료들과 더덕주를 담으며 각자가 2021년에 이룰 일을 병에 써붙이기로 했다. 대학원생이었던 이들은 대개 졸업이나 진학 같은 것을 썼다. 나는 “학교탈출(≠졸업)”이라고 썼다. 이룬 셈이다. 살던 집의 계약 기간에 맞추어 올해 5월에 떠나기로, 지난해 말쯤 정했으나 게을러서 두 달이 늦어졌다. 봄에는 집주인에게 7월 12일에 방을 빼겠다고 말해두었다. 7월 9일, 드디어 이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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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 시내 외곽의 낡은 아파트 ― 40년 전에 지어진 5층짜리 아파트 ― 로 이사했다. 길을 건너면 논밭이 있다. 아주 넓지는 않아서, 논밭 너머로 또 아파트가 보인다. 고속터미널까지는 걸어서 30분 정도. 다른 방향으로 그만큼 걸으면 커다란 호수가, 이어서 그만큼을 더 걸으면 커다란 저수지가 있는 곳이다. 또 다른 방향으로 한 시간 반 가량 자전거를 타고 가면 좋아하는 경치가 펼쳐진다. 강원도 영월의 산과 강.

그 경치가 맘에 들어 영월로 이사할까 했었다. 그게 어렵다면 다른 시골마을이라도 좋았다. 다만, 인터넷으로 매물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다. 영월에선 세 나온 데를 찾지 못했다. 평창과 김제, 군산 등에서 몇 곳을 찾았다. 전세로 2000만원 내외면 갈 수 있는 곳도 있었고 몇천만 원 정도는 대출을 받아야 하는 곳도 있었다. 사진이 없거나 외부 사진만 있는 곳들이었다. 최소한도 확인하지 않고 겨우 그 한 채 보러 가기에는 너무 멀었고 나는 차도 없는데다 너무 게을렀다. 이사 시기를 조정해 바쁜 시기를 피하면 태워다 주겠다는 친구가 있었지만 이미 너무 오래 미루었으므로 고사했다.

이사한 곳을 비롯해, 소도시 구도심 외곽의 낡은 아파트 몇 곳을 검색했다. 제천에서는 이곳과 30년 된 아파트 하나를 보았다. 뒤의 단지에 딸린 집들이 전세가 500만 원, 1000만 원쯤 비싸고 좀 더 좁았지만 시설이 좀 더 나았다. 전세 2500만 원짜리를 골랐다. 부동산중개소에서 확인해 보니 집주인이 월세만 받는 걸로 마음을 바꾸었다고 했다. 이틀쯤 더 고민했다. 생계 대책 없이 하는 이사이므로 잔고를 전부 써버리면 곤란했지만 결국 3000만 원짜리로 다시 정했는데 그 사이 나가 버렸다고 했다. 그렇게 지금의 집에 오게 되었다. 아마도 여러 달 비어 있었던 모양이다. 부동산중개소와 통화한 후 1주일 뒤에 계약서를 쓰러 가겠다고 했는데 가계약금을 걸라고도 하지 않았다. 낡은 집이지만 고향집을 나온 후 지금까지 산 곳 중 가장 넓다. 한두 명과 함께 살았던 곳들을 포함해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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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달을 비어 있은 집은 지저분했다. 먼지가 많이 쌓였고 집을 보러 온 이들의 발자국도 가득했다. 죽은 벌레도 몇 있었고 곰팡이도 조금 있었다. 아주 심한 것은 아니었으므로 사람이 사는 동안은 괜찮을 터였지만 스스로 청소할 엄두는 나지 않았다. 청소를 제대로 해 본 적이 없으므로 효율도 떨어질 터였지만 포기하지 않을 자신도 없었고 내 청소를 믿고 맘편히 살을 댈 자신도 없었다. 결국 업체에 청소를 의뢰하기로 했다.

전세 계약은 부동산중개사무소에, 청소는 이사청소 업체에, 이삿짐 포장과 운반은 운수업체에 맡겼다. 집을 보러 제천을 두 번 다녀가면서는 지하철과 고속버스를 탔다. 이사 당일에는 예의 친구가 태워다 주었다. 오가는 길의 식사는 식당에서 했다. 잡다하게 필요했던 물건들은 근처 가게에서 샀다. 상당한 규모의 일을 벌였지만 스스로 한 것은 거의 없다. 기껏해야 인터넷 검색과 두 아파트 단지의 서너 집을 둘러본 것이 전부다. 청소업체나 이사업체 가격을 조사하는 일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다. 각각 한 곳씩에서만 견적을 받았고 주워들은 시세와 큰 차이가 없어 그대로 계약했다.

청소업체는 인터넷으로 구했다. 의뢰사항을 올리면 업체에서 견적을 보내주는 방식이었다. 서너 곳에서는 자동답장 기능으로 상세 문의를 달라는 연락을 해 왔고 한 곳에서는 156,000원이라는 액수를 보내 왔다. 12.7평에 156,000원. 평당 12,000원을 조금 넘는다. (식사를 했는지 말았는지 모르지만) 식사 시간을 포함해 9시간 가량이 걸린 모양이다. 시간만 17,000원을 조금 넘는다. (돈을 받고 하는 일들만 계산하면) 내가 받는 통상적인 시급보다 적은 돈이다. 나는 가지 않았고 청소 전후 사진만 받았다. 아마도 한 사람이 다녀갔을 것이다. 업주인지 피고용인인지는 모른다. 업체 주소는 강원도 원주로 되어 있었는데, 거기서 오간 것이라면 출퇴근에만 한 시간 넘게가 더 들었을 것이다. 스스로 청소하기는 애초에 포기해서 제대로 보지 않은 곳에서 곰팡이가 발견되었고, 약제비로 20,000원을 추가로 청구받았다. 인건비는 추가되지 않았다.

이사비용은 3년 전의 이사를 맡긴 업체에 문의했다. 당시엔 내가 먼저 짐을 싸두었고 기사님과 함께 상하차만 하는 방식이었다. 겨우 언덕 하나 넘으면 되는 거리였다. 트럭 한 대, 비용은 13만 원. 그후로 세탁기와 냉장고를 샀고 책꽂이도 몇 개 늘었다. (침대도 샀었지만 이사를 앞두고 미리 폐기했다.) 시간이 없지는 않았지만 엄두가 나지 않아 이번엔 포장부터 전부 맡기기로 했다. 기사님 두 분이 오시고 트럭 두 대 분량을 포장해 옮기며 사다리차까지 사용하면 82만원이 든다고 했다. 이사 일주일 쯤 전의 계산이다. 짐을 줄여보기로 하고 일단 한 대 기준으로 계약하되 당일에 다시 판단해 필요하면 한 대를 추가하기로 했다.

9일 아침, 기사님 두 분이 오셨다. 두 대 분량으로 계산할 정도는 아니지만 짐이 많은 편이라고 하셨다. 포장엔 두 시간쯤 걸릴 거라고 하셨는데 실제론 세 시간이 걸렸다. 짐을 넣은 상자들로만 트럭 한 대가 찼고, 책꽂이와 식탁, 세탁기 등 큰 가구들이 또 한 대를 채웠다. 계산법은 잘 모르겠지만 한 대 기준 비용을 청구 받았다. 새 집은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이라 사다리차를 쓰기로 했는데 하필 내가 살 곳이 있는 라인만 그게 어려운 구조였다. 기사님 두 분은 결국, 사다리차만 믿고 책으로 가득 채운 무거운 상자들을, 계단으로 옮기셨다. 출퇴근에 들인 시간을 빼고도 상차와 운송, 점심식사와 하차에만 열 시간 가까이가 들었다. 사람 두 명 트럭 한 대 기준 기본 비용에 더해 사다리차에 쓸 예정이었던 돈을 추가 인건비로 드렸다. (운전을 하지 못해 나는 모르는) 유류비 같은 것을 빼도 내가 받는 시급보다는 높을 것 같지만, (청소에 엄두가 나지 않은 것과는 비교도 안 되게) 나로서는 하지 않을 일이다.

거기에 한 끼 식사비 정도를 얹었다. 82만원을 다 드렸어야 했나, 계속 생각하고 있다. 청소 비용 지불은 중개업체 웹사이트의 안심거래인가 하는 기능을 이용했고 업체에 수수료로 5,000원 정도를 냈다. 그냥 계좌이체로 업체에 바로 지급했다면 그 돈을 아끼거나 팁으로 얹어드릴 수 있었을 것이다. 타지에 사는 집주인과 여러 차례 연락을 주고 받으며 계약서에 대신 도장을 찍었던 부동산중개사는 중개수수료로 10만 원을 받았다. 오며가며 쓴 돈을 빼면 100만원 조금 안 되게 들었다. 내 벌이나 씀씀이를 생각하면 꽤 큰 돈이지만 너무 적게 썼다고 느낀다.

외주에는 늘 죄책감이 따른다. 내가 적은 돈이나마 상대적으로 편히 ― 몸이 편할 뿐 아니라 어떤 수모를 당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곳에서 ― 벌기 때문이기도, 하기 싫은 일을 남에게 맡기면서 주저 없이 하한선 이상으로 돈을 내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결정적으로는 시간 때문이다. 시급을 높인다고 맘이 편해지지는 않을 것이다. 시간을 팔아 벌어 먹고 사는 삶이 여전히 불만이므로 타인의 시간과 수고를 사는 일은 기껍지 못하다. 매일 식당에서 밥을 먹으면서도 똑같은 죄책감을 갖는다. 하지만 스스로 하는 일은 갈수록 줄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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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차를 마치고 (아침부터 나와 나를 태우고 체전까지 온 후 짐 정리를 도운) 친구의 차에 얹혀 다시 서울로 향했다. 살던 집을 청소해야 했다. 뜻하지 않게 (짐 정리를 미룬 탓으로) 전날 밤을 새어버려 도무지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지만 (그래서 모텔에서 자고 이튿날 청소를 할까 했지만) 저녁에 서울로 도착한 즈음에는 오히려 몸이 가벼웠다. 하차를 조금이나마 도우며 몸이 풀리기도 했을 것이고 차에서 꾸벅거린 덕이기도 했을 것이다. 청소를 시작했다.

많이 버렸다. 읽지 않을 책들. 길게는 15년, 짧게는 5, 6년 전의 수업 자료들. 갖가지 고철들. 나무토막들. 사라졌던 자그마한 물건들을 여럿 보았다. 책꽂이 밑에 혹은 어느 상자 밑에 있었을 것이다. 가구를 받쳤던 동전들도 굴러 다녔다. 10원짜리 동전은 물론 평소라면 기를 쓰고 챙길 것들 ― 선물 받은 것들 ― 을 포함해, 대부분 쓰레기봉투에 쓸어 담았다. 분리수거에도 평소만큼 공들이지는 않았다. 기준이니 뭐니 하며 미루고 미루다 끝에 가면 늘 이런 식이다.

물건들, 을 겨우 다 치운 후 대강 비질을 했다. 그리곤 걸레질을 시작했다. 오로지 걸레 빨기를 싫어한다는 이유만으로 ― 나는 양말과 속옷과 옷을 구분하지 않고 세탁기에 넣지만 걸레는 결코 넣지 않는다 ― 대개는 입주 때 한 번 퇴거 때 한 번, 이렇게 두 번만 집 전체를 걸레로 닦는다. 방바닥이야 무언가를 쏟거나 했을 때 부분적으로라도 닦은 적이 있지만 창틀은 입주 때도 닦지 않았으므로 이번에 처음 닦았다. (제대로 닦지는 않았다.) 거미가 사라지기 전에 거미줄을 걷은 것도 아마 이번이 처음이다. 3년 전엔 창틀과 벽지와 장판이 깨끗한 집이었는데, 이제 더는 그렇지 않았다. 청소를 마치고 나왔지만 여전히 그렇지 않다.

열한 시쯤이었나, 싸구려 밀대걸레의 손잡이가 부러졌다. 자그마한 공간이므로 손걸레질이라고 못할 거야 없었지만 애초부터 없던 기세가 완전히 꺾였다. 대형폐기물 배출 신고를 해야 한다는 핑계도 있었다. 결국 인근 모텔에서 잠을 자고 이튿날 낮에 청소를 마쳤다. 카페에서 친구를 만나 수다를 떨고 저녁을 먹었다. 아홉 시 반 서울발 제천행 고속버스를 탔다. 짐이 좀 있어 터미널에서 집까진 택시를 탔다. 5분 거리를 가기 위해 택시를 잡는 데에 30분을 썼다. 택시 요금은 3,900원.

아무렇게나 부려 둔 짐들 사이를 헤맸다. 어느 봉투에서 속옷을, 어느 상자에서 수건을 겨우 찾아 샤워를 했다. 덮고 깔 것은 전날 따로 빼 두었고, 책들 아래에 깔려 있던 상자를 찾아 베개를 꺼냈다. 봉투 하나를 더 털어 휴대전화 충전기를 찾았다. 냉장고에 물이 없었다. 캔커피를 마시고 누웠다. 7월 10일, 제천에서 첫 밤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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