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균들의 연대

건강, 이라는 주제를 지금 꺼내 들기에는 때가 적당하지 않은지도 모른다. 건강, 한때의 유행어로 웰빙이니 참살이니 하는 걸로 불렸던 그것이 화두인 때는 이미 오래 전에 지나가 버렸으니 말이다. 요즘의 화두는 그저 생존이 아니던가. 하지만 그렇기에 건강은 지금 더더욱 중요한 주제다. 가진 것 없는 이들이 살아남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 어쩌면 밑천으로 삼을 수 있는 유일한 것이 건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건강하게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한편으로는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다른 자원이 필요하기 때문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건강이 단지 병 없는 몸, 병 없는 정신을 뜻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웰빙 열풍이 알려 주었던 수많은 팁들에서 알 수 있듯 건강하기 위해서는 돈이, 시간이, 어쩌면 열정까지가 필요하다. 또한 건강한사회를위한국민연대라는 단체의 다양한(?) 활동들에서 알수 있듯 건강이라는 것은 무엇이 병인지를 규정하는, 무엇이 정상인지를 규정하는 권력과 이어져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야기해 보기로 했다. “건강”이라는 것에 관하여.

 

건강한 사회를 위협하는 병균들

 

건강한사회를위한국민연대, 약칭 건사연 ― 질병 퇴치 운동 NGO쯤 되어 보이는 이름을 가진 이 단체의 홈페이지(pshs.kr)에 들어가면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은 “퀴어망제 사진보기”라는 커다란 배너다. 퀴어망제란 다름 아닌 퀴어문화축제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 단체의 홈페이지에 이런 배너가 있는 것은, 이 단체가 “정상적인 성 개념 확립”을 제 1 강령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이성애만을 생명을 잉태할 수 있는 인류의 정상적인 사랑이라고 믿는”, 그리고 “남녀 간의 결합으로 이루어지는 결혼 제도만이 정상적인 결혼 제도라고 믿는” 이들은 “대한민국 사회의 육체적, 정신적, 영적 건강을 위해 노력”하는 단체이다.

 

건강이 무엇이길래 이런 활동의 이름으로 쓰일 수 있는 것일까? 국어대사전은 건강을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아무 탈이 없고 튼튼함. 또는 그런 상태”로 정의하고 있다. WHO는 조금 더 나아간다. “병이나 질환의 부재 뿐 아니라,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완전한 웰빙의 상태”가 바로 건강이다. 문제는 여기서 탈이니 병이니 하는 것이 무엇인지, 튼튼함이니 완전한 웰빙이니 하는 것이 무엇인지가 열려 있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이 결정하면 그것이 사회적으로 합의되는 경우 ― 예컨대 암을 건강의 지표로 생각하는 사람은 없거나 매우 적을 것이다 ― 도 물론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을 것이다 ― 동성애는 이미 오래전에 DSM(미국 정신 질환 편람)에서 삭제되었지만 건사연 같은 이들에게는 여전히 치유되어야 할 병이다.

 

이런 사례를 우리는 장애의 경우를 통해 이미 알고 있다. 많은 이들이 여전히 장애를 누군가의 몸이나 정신이 갖는 결함으로 생각하지만, 다른 어떤 이들은, 적어도 많은 경우, 그것이 단순히 개인의 결함이 아니라 사회적 기준과 인프라가 충분히 보조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오는 문제라고 여기고 있다. 누군가가 지하철을 편히 이용하지 못하는 것은 그가 다리를 움직이지 못해 휠체어를 타기 때문이 아니라 지하철역에 엘리베이터가 없기 때문이라는 식으로 말이다. 그런 세상을 살아보지 못했으므로, 어딜 가나 계단이 아니라 엘리베이터와 경사로가 있는 곳에서 하지마비가 장애일지 아닐지를 우리는 아직 알지 못한다.

 

이처럼 건강을 개인의 문제로 사유할 때에는, 사회적 통념과 기준을 벗어나는 많은 것이 병이 된다. 건강이 정상성과 결부되어 사유될 때, 소위 ‘비정상적인 것’은 병이 된다. ‘비정상적인 사람’은 병균이 된다. 암탉이 울면 나라가 망한다고 했다. 암탉은 그저 자기 자리에서 울 뿐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체제를 무너뜨리려는 위협이 된다. 비성소수자가 건강한 사람이자 정상적인 사람이 되면, 성소수자는 그저 다른 삶을 사는 사람이 아니라 정상적이고 건강한 사회를 위협하는 병균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에이즈니 뭐니 하는 ‘그럴 듯한’ 담론과 결합하면 효과는 더욱 커진다. 티브이에 게이가 나오면 자기네 아들도 게이가 된다는, 그리고는 에이즈에 걸려 비참한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는, 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는 ‘병균’들이 가진 ‘전염성’이라는 위협에 대한 공포감을 보여주는 가장 흔한 현상이다.

 

병균들의 건강

 

암세포도 생명이잖아, 라고 외치는 사람은 드라마에나 나온다. 병균의 건강을 걱정하는 사람이 누가 있으랴. 물론,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직 한국에서 병균들 ― 성소수자들, 장애인들, 이주노동자들, 여성들을 물리적으로 퇴치하려는 시도가 흔하지는 않다. 물론 이렇게 말하기에는 많은 폭력이 행해지고 있고, 심지어 그 중 일부는 공적으로, 조직적으로 행해져 왔다. 최근 알려지고 있는, 한센인, 장애인들에게 행해진 강제 불임 시술 및 낙태는 이 병균들이 사회에 파고 들어오는 것을 막는 가장 간단하면서도 효과적인 방법이었을 것이다. 이주노동자의 이동을 제한하고 미등록 이주노동자 당사자 및 그 자녀들의 삶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제도들, 여성들의 사회 진출을 차단하는 시도들 또한 마찬가지다. 이를 테면 중산층 이상의 한국인 (때로는 백인까지도) 비장애인 비성소수자 비청소년 남성을 제외한 다른 모든 병균들은 살상되거나 추방되거나 감금된다. 그들의 삶이 어떻게 이어지는지에, 사람들은, 그러니까 중산층 이상의 한국인 비장애인 비성소수자 비청소년 남성들은 관심이 없다.

 

병균의 건강에 아무런 관심도 없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는 에이즈 예방약으로 알려진 트루바다 처방 기준에서 찾을 수 있다. 성소수자들 (정확히는 그들이 아는 유일한 성소수자인 듯한 게이 남성을) 비난하는 ― 때로 동정과 연민의 탈을 쓰고 행해지는 그 비난의 ― 가장 흔한 수사는 에이즈의 창궐이다. 그러나 트루바다는 현재 한국에서 HIV/AIDS 감염인 당사자, 그리고 당사자와 사실혼 관계에 있는 주민등록상 이성인 배우자에게만 처방된다. 저들의 논리에 따르면 에이즈 예방이 가장 절실한 것은 게이 남성들이지만, 그들은 감염된 피해자가 아니라 병균이므로, 약은 그들에게 처방되지 않는다.

 

장애인의 원활한 생활을 위한 보조기구 기술보다, 태아의 장애를 감별하는 기술이 더 빠르게 발전하는 듯 보이는 것이 단지 착각만은 아닐 것이다. 장애인 활동 보조 지원은 갈수록 줄어들지만 태아 기형 검사는 수많은 지자체들에서 지원하고 있다. 물론 현행법상으로는 장애 태아의 중절은 불법이다. 하지만 부모의 특정 장애 및 유전병을 이유로 한 임신 중절은 여전히 허용되고 있으며, 가족의 강요나 의사의 강권으로 불임 시술을 받는 장애인 당사자 역시 적지 않다. 병균의 전파는 이런 식으로 차단된다.

 

병의 전파나 장애아의 출생까지 가지 않아도 이야깃거리는 충분할지도 모른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은 의료 서비스에의 접근 자체가 어렵다. 등록 이주노동자라도 통역 가능자가 적은 언어를 사용하는 경우 역시 마찬가지다. HIV 감염을 이유로, 혹은 신체 장애를 이유로 치료를 거부 당하는 일 역시 부지기수다. 남성의 신체를 중심으로 의학 연구가 진행되는 탓에 여성들의 질환에 대한 연구는 늘 한 템포 늦다. 어쩌면 사람을 살리기도 바쁜 세상, 구태여 병균들의 건강을 챙기려는 사람은 많지 않다.

 

병균으로 태어난 게 잘못일까

 

병균들의 삶이 건강할 수 없는 것은 마치 원죄인 듯 보인다. 내가 짓지 않은 죄, 그러나 나의 출생에부터 각인되어 있는 죄로서의 원죄 말이다. 개개인의 삶에서 떼어 놓을 수 없는 어떤 것들 ― 성소수자임, 장애인임, 외국인인, 여성임과 같은 것들을 이유로 우리는 건강에 접근할 수 없는 삶을 살고 있다. 한 가지 더의 원죄를 꼽아 보자면 그것은 가난일 것이다. 가난 구제는 나랏님도 못한다고 했던가, 가난이 개개인의 책임이, 숫제 죄가 되어 버린 것은 이미 오래 전의 일이다.

 

건강을 이야기하면서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의료 서비스의 영리화다. 얼기설기나마 의료보험제도가 구비되어 있는 한국이지만, 큰돈이 드는 병은 금세 누군가의 삶을 가난으로 몰아넣곤 한다. 병에 걸리기 전부터 가난했다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건강과 맞바꿀 돈조차 없다면, 악순환에 빠져드는 수밖에 없다. 가난해서 병에 걸리고 병에 걸려서 가난해지는 악순환 말이다. 아주 약간의 여유라도 있다면 보험에 가입하는, 병원 갈 돈을 아껴서라도 보험료는 꼬박꼬박 내는 것은 저 악순환을 피하기 위한 또 다른 악순환이다.

 

얼마 전 내 통장에는 칠십만 원 가량의 돈이 들어 왔다. 돈을 보낸 것은 모 실비 보험 회사였다. 만성 요통으로 한 번에 십오만 원짜리 도수치료를 다섯 번 받고서 증빙서류를 제출한 참이었다. 허리는 다 낫지 않았지만 현금이 떨어졌으므로 나의 치료는 중단되었다. 얼마간의 본인부담금이 있으므로 보험금으로 들어온 돈은 칠십오만 원이 채 되지 않았고, 이 돈으로 다시 치료와 보험금 처리를 반복한다 해도 나의 치료는 다시금 중단될 것이다. 그나마 실비 보험 가입이 되어 있는 것, 그래서 잠깐이나마 치료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이 내가 가진 행운의 전부였다.

 

아직 영리 병원이 들어서지는 않았지만, 민영 보험의 활성화는 의료의 영리화를 부추긴다. 누구나가 실비 보험쯤은 가진 요즘, 병원에서는 의료보험 적용을 받지 않는 고가의 치료법을 권유한다. 저 ‘누구나’에 들지 못한 이들이 받을 수 있는 치료법을 실시하는 병원은 갈수록 줄어 간다. 한편, 그렇게 늘어난 치료법에 지불되는 비싼 돈은 누구에게 로 갈까. 내가 낸 십오만 원 중 얼마가 물리치료사의 몫일까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내 담당 물리치료사는 거의 종일 쉬지 않고 몸을 움직였다. 예약을 하지 않으면 진료 ―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첫 방문을 제외하고는 의사의 진료를 거치지 않고 도수치료실로 바로 들어갔다 ― 를 받을 수 없을 만큼 환자가 끊이지 않는 병원이었다.

 

물리치료사 친구는 서른을 넘기지 못하고 일을 그만 두었다. 잠시 휴식을 가진 것이 아니라, 아예 직업을 바꾸어 버렸다. 몸이 견딜 수 없다고 했다. 그렇다고 그가 전셋집이라도 하나 마련할 만큼 충분히 돈을 번 것도 아니다. 타인의 건강과 또 다른 타인의 수익을 위해 자신의 건강을 버렸을 뿐이었다. 이것은 물론 물리치료사만의 문제가 아니다. 노동 시간은 길고 임금은 낮으며 산재 보험 처리율마저 낮은 한국에서, 노동자로 산다는 것은 언제나 건강을 버리고 목숨만을 유지하는 일이다. 물려받은 것 없이 태어나 노동자가 된다는 것, 적어도 건강에 관한 한 한국에서 가장 흔한 원죄다.

 

병균들의 연대

 

초록은 동색이고 가재는 게 편이랬다. 아니, 그 말이 틀렸더라도 이제는 맞는 말로 만들어야만 할 성 싶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우리는 서로 다른 병균이지만 그래 봐야 같은 병균이다. 장애인 운동은 탈시설을 요구하고 있고 HIV/AIDS 감염인 운동은 요양병원을 요구하고 있지만, 장애인과 HIV/AIDS 감염인은 똑같이 진료를, 나아가 지역사회에서의 생활을 거부당하고 있다. 물리치료사 앞에서 나는 고가의 치료를 몇 번이고 받는 팔자 좋은 사람이었겠지만 직장에서 나는 내 허리를 바쳐 누군가의 돈을 벌어주는 평범한 노동자다.

 

또한 우리는 서로 다른 병균들만은 아니다. 여성 감염인, 성소수자 노동자, 노숙 장애인 ― 우리는 복합적인 병균들이다. 여러 개의 원죄를 동시에 안고 있는, 그래서 여러 개의 이유 아닌 이유로 배제 당하는 그런 병균들이다. 그리고, 우리는 알고 있다. 이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들 중 다수는, 이미 사람이 아니라 병균임을. 하지만 우리는 알아야 한다. 우리가 어떤 이유로 병균이 되었는지를. 서로 다른 병균들에게 서로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같은 메커니즘에 다른 이름이 붙었을 뿐인 것인지를. 병균들의 건강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우리가 누구와 함께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그래서 우리는 만나 보기로 했다. 다양한 병균들을. HIV/AIDS 감염인을, 여성 노동자를, 장애인을, 노숙인을, 트랜스젠더와 여성 파킨슨병 환자를. 이 수많은 병균들이 어디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어떤 생각과 어떤 일을 함께 할 수 있을지를 이야기해 보고자 했다. 이제 겨우 시작이지만, “건강”이라는 제목의 특집으로, 그 만남들의 결과물을 내어 놓는다. 이것이 우리가 더 많은 병균들을 만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병균들의 건강을 챙기는 사회를 만드는 첫 단계가 되기를 바란다.

 

이 글에는 두 가지의 “우리”가 등장한다. 하나는 이 웹진을 만들고 있는 우리고, 또 하나는 이 웹진을 읽고 있는 우리다. 서로 달라 보이는 두 집단을 하나의 단어로 묶어 칭한 것이 억지가 아니기를 바란다. 우리가 같은 병균이기를, 함께 읽고 쓰는 우리가, 다른 곳에서도 함께이기를, 바란다. 

 

 

 

* 이 글은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웹진 <글로컬 포인트> 제 3호에 실은 글이다.

여성혐오와 공적공간

여성혐오를 설명하는 여러가지 언어가 있을 것이다. 내게서 그것은 공적공간의 문제에서 출발한다. 흔히들 말하듯, 여성을 좋아하면서도 ― 아마도 성애의 대상으로 ― 여성혐오를 할 수 있다. "아마도 성애의 대상으로"라고 썼다. 이것이 일종의 비꼼임을 알아채기는 어렵지 않다. 그러나 모든 종류의 대상화가 나쁜 것은 아니다. 누군가를 대상으로 삼을 수 없다면, 나와는 다르면서도 어떤 실체를 가진 존재로서 대할 수 없다면, 관계란 성립하지 않을 것이니 말이다. 그럼에도 저 말이 비꼼인 것은 변하지 않는다. 많은 경우 성애를 성욕으로 바꾸어도 좋을 것이다. 욕망의 대상, 으로 삼는다는 것은 대상에게서 주체성을 원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것이 공적공간과 무슨 상관이람, 하고 나는 궁금해 한다. 생각지 않는 방향으로 한 문단이 흘렀다. 되잡아 보자면, 공적공간이 무엇인지부터 이야기해야 한다. 공적공간이란 사람이 자신을 사람으로서 드러내는 공간이다. 언어로써 자신의 의견을 표명하는 공간이고 타인의 의견에 대해 판단하는 공간이다. 욕망의 공간이 아니란 뜻이다. 여성을 좋아하면서도 여성혐오를 할 수 있는 것은 그래서다. 두 가지 행위는 다른 층위에서 벌어진다. 여성을 좋아하면서도 여성혐오를 한다는 것, 그것은 여성을 욕망의 대상으로 삼을 뿐 함께 공적공간을 이루는 상대로 여기지 않는다는 뜻이다.

여섬혐오 ― 그것은 여성의 말을 말로 여기지 않는다는 것, 여성의 의견을 의견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성을 언제든 처분가능한, 주체성 없는 사물로 여긴다는 것이다. 욕망의 공간에만 여성을 포함시킬 뿐, 나머지 삶의 공간에 ― 공적공간에 여성을 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제자들을 사랑하지만 청소년 참정에 반대하는 교사, 꼬박꼬박 봉사활동을 가지만 장애인 탈시설에 반대하는 자원봉사자, 얼핏 형용모순 같아 보이는 이 존재들은 이런 방식으로 가능해진다. 사랑하는 것보다 적대하는 것이 더 정치적인, 심지어 정치적으로 옳은, 경우들이 있다.

모두가 유족이다, 라는 말이 더 이상 비유가 아닌

어느 화장실에서 사람이 죽었다. 죽인 사람은 칼을 들고 한 시간을 기다렸다고 한다. 둘 사이엔 아무런 관계도 없었다. 죽인 사람은 남자였고 죽은 사람은 여자였다는 것이 그들의 관계를 그릴 수 있는 표지의 전부다. 남자라서 죽인 것이다. 여자라서 죽은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데에 반감을 가지는 사람도 있었다. 한 사람의 일탈을 갖고서 그렇게 일반화하지 말라고들 했다. "살아 남았다"는 다른 여자들의 말에 반감을 표했다. 유족들이 들으면 어떻겠냐고도 했다. 유족들, 거기서 나는 멈추었다. 遺族들. 남길 유, 겨레 족. 죽은 사람이 남긴 가족. 거기서 나는 멈추었다.

왜 하필 나의 가족이었냐는 감정이 깊어질지도 모른다. 유족들은 그래서 더 슬퍼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만이 유족은 아니었다. 유족들이 죽은 이와 공유하는 것은 '피'다. "살아 남았다"고 말한 이들이 죽은 이와 공유하는 것은 '여성임'이다. 죽은 이가 죽은 바로 그 이유를 공유하는 이들이다.

"나는 너다. 너의 죽음은 곧 나의 죽음이기도 하다." 사건 현장 근처에 붙은 한 추모 쪽지의 문장이다. 이 글을 쓴 이가 유족이 아니라면 누가 유족이란 말인가, 그런 데에서 나는 멈추었다. 죽음의 이유를 공유하는 살아 남은 사람들, 죽은 이가 자신의 죽음으로써 남긴 사람들. 모든 여성들은 여성 혐오 살인의 유족이다. 이것은 더 이상 비유가 아니다.

세월호 때도 그랬다. 세월호에 타지 않은 사람들, 다행히 빠져 나온 사람들. 한국인 모두는 죽은 이들과 죽음의 이유를 공유하고 있었다. 한국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음. 그 이상의 이유는 없었다. 모두가 생존자, 모두가 유족이었다. 우연한 죽음도 아니고 피할 수 없는 죽음도 아닌 죽음들. 그런 죽음들은 모두를 유족으로 만든다.

"모두가 유족이다, 라는 말이 더 이상 비유가 아닌"이라고 어딘가에 썼다. 몇몇이 공감을 표했다. 자신이 유족임을, 죽은 이와 자신이 중요한 것을 공유하고 있음을 아는 이들이었을 것이다. 그 죽음이 언제든 자신의 것이 될 수 있다고 여기는 이들이었을 것이다. 유족들의 사이에서 살고 있다.

녹색당에 투표하기로 했다

나는 한때 사회당의 당원이었다. 희망사회당, 한국사회당 등으로 이름이 바뀌는 동안, 2005년에서 2012년까지 당적을 두고 있었다. 2012년 진보신당과 사회당이 합당한 후, 나는 당적 없는 사람으로 돌아 왔다. 합당에 찬성했음에도 (당대회에 가지 않아 찬성표를 던지지는 못했다) 당적을 버리기로 한 것은, 당시 진보신당이 한 성폭력 사건 사후 조치를 미흡하게 한 탓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내가 정당 정치에 큰 관심이 없고 정당이라는 큰 조직을 부담스러워 하기 때문이었다. 사회당 활동을 하기부터 당원이 되기까지에도 수 개월 간의 망설임이 있었다. 당 활동을 하는 몇 년 동안에도 내적인 갈등이 있었다. 새삼 그런 이야기들을 하려는 것은 물론 아니다.

당적을 버리면서, 그래도 이후의 투표는 진보신당에, 지금의 노동당에 하리라 생각했다. 내가 오랫동안 활동해 온 정당, 내가 오랫동안 함께 해 온 이들이 활동하는 정당, 따라서 나와 많은 것이 맞는 정당이었기 때문이다. 합당 직후에 있었던 총선에서는 진보신당에 투표했던 것 같다. 대선 때에도 그랬을 것이다. 유세장에도 몇 번인가 찾아갔고 (이건 당을 지지해서라기보다는 선거운동을 하는 친구들을 보기 위해서였지만) 일상적인 뉴스에도 관심을 두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녹색당이 마음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눈에 띄다'와 같은 비장애인중심적 표현을 쓰지 않기 위해 택한 표현이지, 흔히 쓰는 대로의 의미로 택한 표현은 아니다.) 녹색당은 사회당의 소멸을 즈음해 창당한 정당이다. 당시 나는 그들 곧 진보신당과 합당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진보신당에 흡수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만만한 운동이 어디 있겠냐만, 그 중에서도 정당 정치는 만만치가 않다고 여겼다. 많은 돈이 필요한 것은 물론이고 이상과 현실을 조정하고 적당한 선에 타협하는 능력도, 그것을 위해 연구하는 능력도 필요한 활동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녹생당은 스스로의 길을 갔고, 적어도 내게는, 가장 흥미로운 정당이 되었다.

'적당히 타협'하지도, '이상만을 제시'하지도 않는 듯하다. 이상을 지키면서 당장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나하나 하는 것, 이것은 내가 생각하는 운동의 본령이며, 그 중에서 정책적으로 가능한 것을 현실적으로 제시하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제도권 정당 운동의 일이다. 이 둘을 가장 열심히 하는 것, 그것이 녹색당인 듯했다. 달리 말하자면 이는 언제나 전방위적인 실험과 연구를 하고 있다는 뜻이다. 밖에 있는 나이므로 자세히는 모르지만, 추첨식 대의원제나 공식 청소년 기구 등 다른 당에서는 만날 수 없는 실험들을 비롯해 페미니즘, 반나이주의, 반학벌주의 등을 활동의 근간으로 삼으려는 시도들을 끊임 없이 하고 있는 듯했다.

비록 한 장짜리였지만 선거 공보물은 흥미로웠다. 구체적인 공약들이 빽빽히 적여 있었고, 후보자들은 학력 없이 흑백사진과 함께 (이건 돈이 없어서겠지만) 실려 있었다. 청년 비례니  뭐니 하는 이름 없이도 청년 정치인들이 후보가 되었다. 탈핵, 동물권, 기본소득 등 지금 한국 현실정치에서 가장 급진적일 이슈들이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정책으로, 그리고 단순히 정책이 아니라 현재적인 실천으로 제시되어 있었다.

 

1번 여성 후보를 두고 남성 후보를 먼저 실은 정의당 공보물, 나무가 아깝다 싶을 만큼 구호만 있었던 노동당 공보물에 비하자면 녹색당 공보물은 더 좋게 읽혔다. 가장 순진한 사람들, 가장 선량한 사람들, 이런 것이 녹색당 창당 당시의 이미지였다면 이제는 가장 프로페셔널한 사람들, 가장 급진적인 사람들, 이런 것이 녹색당의 이미지가 되었다. 그래서 이번엔, 녹색당에 표를 주려 한다.

 

2016년 3월 20일

골목길에서 담배를 피우려던 참이었다. 맞은편에서 누군가 다가오다 주춤 멈춰 섰다. 저 이도 담배를 피우려나, 싶었지만 그는 담배를 꺼내지 않았다. 손에는 무엇인가 들고 있었다. 내가 담배를 꺼내어 입에 물고 불을 붙이는 동안, 그 이는 몇 걸음을 더 걸었다. 시야의 경계선에서 그는 내내 주춤거리고 있었다. 몇 모금을 들이 쉰 후에야 그는 내게 다가왔다.

 

“죄송한데 전화 한 통만 쓸 수 있을까요?”
“네, 잠시만요.”

 

그의 손엔 몇 번쯤 접힌 은색의 스티커가 들려 있었다. 스티커엔 전화번호 두 개가 인쇄되어 있었다. 전화기를 받아든 그는 그 중의 한 번호를 전화기에 입력하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잠시 후, 신호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여보세요, 상대방이 전화를 받은 모양이었다. 그는 갑자기 당황하더니 전화기를 어깨와 볼 사이에 끼고 두손으로 스티커를 주섬거리기 시작했다. 잠시만요, 몇 번 접힌 스티커를 겨우 펼쳐 속에 있던 글자가 나오자 그는 말을 이었다.

 

“거기 굿모닝 덕트죠? 다름이 아니라, 덕트 일을 좀 해 볼 수 있을까 해서요. 아뇨, 전에 해 본 적은 없고 공사장 일하면서 옆에서 도와 드린 적은 몇 번 있습니다. 아, 제 집이요, 충신동입니다. 충신동이, 대학로 근처입니다. 아, 네. 네. 아, 네. 아… 이게 지금 제 전화가 아니라, 그, 친구 전화기를 빌려서 건 거라서요, 제가 이 번호로 전화했다고는 생각하지 마시고, 이 번호로 연락하지는 말아 주십시오. 네, 네. 감사합니다.”

 

그의 통화는 길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