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7.19.(월)

할 일이 많지만 거의 안 했다. 조금 걸었다.

느지막히 일어나 뒹굴다 카페에 갔다. 카페 옆에 있는 수산물인지 해산물인지 어쩌고 하는 식당에서 밥을 먹으려 했는데 휴무. 카페에는 먹을 수 있는 샌드위치가 앙버터밖에 없었다. 나는 앙을, 그러니까 단팥을 좋아하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그것과 커피를 시켰다. 빵이 꽤 말라 있었다.

유통기한은 4월까지. 점원에게 말하자 놀라며 바꾸어 주려 했는데 나머지 하나도 같았던 모양이다. 케이크밖에 없다고 했다. 우유케이크를 골랐다. 차액을 묻자 받지 않겠다고 했다. 케이크는 유통기한이 따로 적혀 있지 않았지만 촉촉했다.

일을 조금, 정확히는 거의 안, 한 시점에 전화가 왔다. 달갑지는 않은 대화였다. 기운이 빠져 집으로 돌아와 누웠다. 케이크를 먼저 먹고 일을 시작하며 겨우 두어 모금 마신 커피는 어쩔까 하다 테이크아웃잔에 받아 왔는데 그 후로도 두어 모금만 마셨다.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 집까지 걸으며, 집에서 누운 채로, 통화를 조금 더 했다.

잤다. 너무 길게 잤다. 자면서는 그렇게 생각했는데 실은 한 시간 잤더라. 좀 더 누워 있다가 저녁을 먹었다. 마트 사은품으로 받은 라면과 정체 모를 즉석밥. 라면을 뜯어 싱크대 위에 세워 뒀는데 떨어졌다. 바닥에 닿은 부분을 잘라 내고 2/3 정도만 끓였다. 한 개 기준으로도 물이 많아 밍밍했다.

나가서 걸었다. 날이 저물기 직전, 이라고 생각했지만 해가 생각보다 길었다. 서너 시간을 걸을 작정이었는데 논밭 사이를 모르는 길로 이리저리 걷다 ― 오늘도 몇 번인가 막다른 길에 들었지만 아는 길로 돌아가지 않고 다른 모르는 길로 나섰다 ― 한 시간쯤 된 시점에 건너편 큰길가에 닿았다. 큰길을 따라 걸으면 집까지 한 시간쯤 걸리는 곳. 그렇게 총 두 시간을 걸었다. 오는 길에는 음료수를 하나 사 마셨다. 복권도 사고 싶었지만 ATM을 찾지 못해 빈손으로 귀가했다.

씻고 나와 누우려던 차에 친구의 연락을 받고 통화를 시작했다. 이번엔 즐거운 대화. 통화를 마치고는 레토르트 임연수구이 ― 이것이 원래 오늘 저녁 메뉴였으나 무언가를 씹어 먹을 기분이 아니어서 라면을 마시다시피 넘기고 산책길에 올랐더랬다 ― 와 정체 모를 즉석밥 또 한 개를 데워 먹었다. 밤이다. 낮에 안 한 일을 좀 해야겠지.

2021.07.18.(일)

오늘도 일과가 끝나지 않았지만 쓴다. 실내 온도는 종일 섭씨 30도. 온도계가 고장났나, 덥지는 않다. 땀도 딱히 나지 않는다. 바깥은 더웠고 땀이 꽤 났다.

어제 빼먹은 것부터. 제천 터미널에 내려 들어간 편의점에 곧이어 누가 또 들어왔다. 화장실을 쓸 수 있겠냐고 물었다. 점원은 거긴 화장실이 없다고 했다. 맞은편 편의점으로 가시라고도 했다. 화장실은 정말로 없을까. 단순히 개방하지 않는 걸까. 개방하기엔 너무 열악한 꼴을 하고 있는 걸까. 점원들은 어디를 쓸까. 음료수를 매대에 내밀었지만 점원은 나를 보지 않았다. 시선을 좇아가보니 형광등이 나왔다. 매미 한 마리도 불빛에 부딪고 있었다. 울지는 않았다. 둔탁한 충돌음과 빠른 날갯짓 소리가 이어졌다.

오늘도 오전은 뒹굴며 보냈나. 아니다. 책꽂이 하나의 위치를 잡고 책을 반쯤 채웠다. 그간 함께 공부한 이들의 학위 논문을 제일 위칸에 꽂았다. 요약문 발표를 듣거나 부분부분의 초고를 읽은 것이 많다. 전문을 읽은 것은 많지 않다는 소리다. 최종본 제출 직전에 전체 원고를 읽은, 내가 읽은 것과 책꽂이에 꽂혀 있는 것이 얼마나 같고 얼마나 다른지는 모르는 것이 몇 있다.

아래엔 잘 읽지 않는 전공서와 필요할 때 가끔씩 들추는 자료를 꽂았다. 그 아래엔 니체와 칸트를 한 권씩 꽂고 비워 두었다. 나머지는 어딨는지 아직 모른다. 또 그 아래엔 전시 도록이며 사진집이며를 채웠다. 버려도 될 것이 많지만 이고 지고 와서는 또 꽂았다. 제일 아랫줄은 아직 비어 있다. 그 아래 작은 서랍 두 칸도 비어 있다. 지난 집에 살 때 방이 좁아 책꽂이 바로 앞에도 무언가를 두느라 떼어 두었던 서랍 손잡이를 달았다. 나사가 두 개인데 하나밖에 없었다. 손잡이는 비뚤게 매달려 있다.

책을 꽂기 전에 바나나 두 개를 먹었고 책을 꽂으면서 커피 반 잔을 마셨다. 나머지 반 잔은 잊은 채 내다 버릴 포장재를 정리했다. 빨래를 돌리고 샤워를 하고 빨래를 널고 집을 나섰다. 버릴 것은 잊고 가방만 들고서. 단지 입구에서야 깨달았으므로 돌아오지 않고 식당을 향했다. 더우니까 오늘도 콩국수, 로 정했지만 멀리 가기 귀찮아서 카페에서 샌드위치로 때우기로 했다. 길을 잘못 들어 콩국수를 파는 곳 앞에 당도했다. 일요일 휴무. 조금 더 가서 집을 보러 왔을 때 간 적이 있는 생선구이 백반집 앞에 섰다. 일요일 휴무. 또 조금 더 가서 어제 터미널 가는 길에 본 콩나물국밥집을 찾았다. 일요일 휴무. 패스트푸드점에서 새우버거 세트를 먹었다. 배가 불러 감자튀김은 남겼다.

그제 갔던 프랜차이즈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정신이 산만했다. 트위터에다 스트레스니 평정심이니 하는 단어들을 끼적거리며 남은 번역을 마쳤다. 세 페이지 혹은 네 페이지를 옮겼다. 물론 퇴고는 하지 않고 창을 닫았다. 집에 들어 가방을 내려 놓고 카메라를 들었다. 방바닥을 굴러다니는 필름 하나를 주워 넣었다. 선물 받은 필름은 책상 위에 두었다. 버릴 것도 챙겼다. 분리수거함에 비닐과 플라스틱을 털어넣었다. 어째선지 종이 함에도 플라스틱이 가득이었다. 종이를 담은 봉투는 앞에 그대로 내려 놓고 단지를 벗어났다.

저수지 가에 앉아 사진 몇 장을 찍었다. 휴대전화로도 찍어 간단히 보정해 친구들에게 보였다. 다섯 시 반쯤이었나, 산책로로 나갔다가 햇살이 여전히 생각보다 뜨거워 걷지는 않기로 했다. 돌아오는 길을 잘못 들어 만난 정자에 누워 시간을 보냈다. 마감으로 괴로워 하는 친구를 놀리는 메시지, 객지에 도착해 자가격리 중인 친구를 응원하는 메시지, 아무튼 몇 개의 메시지를 보냈다. 사람 만날 일 없는 곳으로 왔고 아는 사람도 갈 데도 없으므로 딱히 사람을 만나지 않고 있지만 말은 전에 없이 많다.

집에 돌아와서는 또 좀 누워 있었나. 친구와 잠시 통화를 하고 밥을 먹었다. 어제의 정체 모를 즉석밥과 카페에 다녀 오는 길에 산 레토르트 고등어조림. 밥은 고등어살로 한 그릇, 조림 국물로 한 그릇, 총 두 그릇을 먹었다. 즉석밥은 마흔여섯 개가 남았다. 수소문해 보았지만 ― 괜히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보았지만 ― 여전히 누가 보낸 건진 모른다. 친구에게 식사 시작할 때 연락할 테니 혹시 소식이 끊기면 농약햇반 사건으로 신고하라고 말해 두었다. 연락은 하지 않았고 배탈이 나지도 쓰러지지도 않았다. 트위터에서 누군가 언급한 시가 마침 책상 위에 있는 (아직 읽지 않은) 시집에 실려 있어 괜히 한 번 읽어 보았다.

한 시간쯤 전에 밖에 비가 내리기 시작해 베란다 창을 닫았는데 아직 오고 있을까. 어두워서 밖은 보이지 않는다. 실내 기온이 좀 떨어질까. 지금은 가만 앉아 있으니 괜찮지만 움직이면 땀이 나겠지. 괜찮겠다 싶으면 책을 마저 꽂고 땀에 절 것 같으면 써야 할 원고들을 생각할 것이다. 후자를 택한다면 그저 누워 소일하고 말겠지만. 여기까지가 밤의 계획이다. 새벽에도 일을 할까, 정하지는 않았다.

2021.07.17.(토)

서울에 다녀왔다. 씻고 찬물을 들이켜고 바나나를 하나 먹고 앉았다.

지난밤엔 산책을 마친 후 번역을 조금 했고 짐 정리는 하지 않았다. 산책은 기약 없이 걷느라 아주 멀리까지 갈 것 같은 기분이었지만 마침 막다른 길에 들어 돌아 왔다. 한 시간 조금 넘게 걸었다.

아침에도 짐정리는 하지 않았다. 눈을 뜨니 앞에 개어둔 이불에 바퀴벌레가 앉아 있었다. 크지는 않았고 많지도 않았다. 잠깐 당황했지만 곧 진정했다. 개어둔 이불 같은 것은 없기 때문이다. 꿈이었다. 정말로 눈을 잠깐 떴다가 조금 더 잤다. 깨어서는 누운 채로 친구와 메시지를 주고 받았다.

열한 시쯤 집을 나섰다. 오늘도 버스를 탈까 했지만 다음 차가 25분 후래서 그냥 걷기로 했다. 집 앞 정류장에서 터미널까지 걸어도 20분이면 족하다. 그젠 분명 버스 두 대가 3분 간격으로 지나갔는데 어떻게 된 걸까. 웹 지도의 계산에 따르면 집에서 터미널까진 걸어서 33분이 걸린다. 처음엔 실제로도 그랬다. 주위를 두리번거리지도 어느 골목인지 고민하지도 않고 걸으니 25분으로 줄었다.

서울에 도착해서는 메밀국수를 먹었다. 마셨다, 에 가까운 속도로. 지하철로 목적지 근처에 도착한 것은 일정을 40분쯤 남겨두고였다. 근처 카페에 들어갔다. 친구가 앉아 있었다. 잠시 있다 같이 밖으로 나와 공원에 앉았다. 일정은 연극 관람. 친구와는 조금 떨어진 자리에 앉았다. 연극은 여러모로 어려웠다. 리뷰를 써야 한다. 다른 마감이 먼저 있으므로 천천히 생각할 것이다.

연극이 여러모로 어려웠다, 는 이야기를 하며 친구와 걸었다. 서점에 들러 책구경을 했고 밥을 먹었고 골목 구경을 했다. 커피를 사 들고 다른 공원을 또 좀 걸었다. 비가 오다 말다 했고 흰 구름이 크고 짙었다. 친구는 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 덩달아 나도 조금 찍었다. 다른 서점도 하나 구경했다. 여기 적지 못할 이야기를 조금 했다.

이사 선물은 아닌 선물과 정체 모를 선물을 받았다. 앞의 것은 필름과 편지. 뒤의 것은 즉석밥. 집에 도착하니 문 앞에 커다란 상자가 놓여 있었다. 커피 드립백을 저렇게 큰 상자에 담다니, 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즉석밥 상자 몇 개를 묶은 것이 내 집 주소가 매직으로 적혀 있고 택배 운송장은 붙어 있지 않다. 누가 왜 어떻게 보낸 것인지 전혀 알 수 없다. 비어 있은지 좀 된 것 같으니 이전 주인에게 온 것도 아마 아닐 것이다. 내가 여기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몇 안 된다. 심지어는 아파트 관리 사무소에서도 아직 모르는데. 내일 수소문해 봐야지. 그리고 내일은 꼭 짐을 조금 더 정리해야지.

2021.07.16.(금)

일과가 좀 남았지만 일기를 먼저 쓰기로 했다.

일곱 시인지 여덟 시인지에 깼나. 다시 잠들었을까. 열 시쯤부터 하루를 시작한 것 같다. 샤워를 하고는 다시 누웠다. 점심께까지 이리 누웠다 저리 누웠다 뒹굴었다.

옹심이칼국수를 먹은 집에서 콩국수를 먹었다. 집에서 5분쯤 혹은 7분쯤 걸어 나갔을 것이다. 설탕도 소금도 나오지 않았고 밍밍했지만 구태여 달라고 하지는 않았다. 국물은 좀 남겼다. 거기서 또 5분쯤 걸어서, 오늘은 프랜차이즈 카페 2층에 앉았다. 오래 일할 요량이었다. 거창한 포부가 있었던 것은 아니므로 세 시간 좀 안 되게 일하고 나왔다. 원고를 써서 보냈다. 거기서 또 5분쯤 걸어, 다이소를 다시 갔다. 수세미받이로 쓸 비누받이를 샀다. 수세미받이로 나온 것은 전부 플라스틱이었기 때문이다.

20분을 걸어 집에 돌아왔다. 오는 길에 허기를 느껴 빵집에 들렀다. 달콤제과인가 하는 동네 빵집(인지 아닌지 모른다)에 갔으나 매진이래서 근처의 프랜차이즈 빵집에서 자그마한 토스트 하나를 사먹었다. 생수도 사올 생각이었는데 깜빡하고 마트엔 들르지 않았다.

집에 와서는 샤워를 하고 잡무를 하고 그 다음엔 뭐했지. 두어 시간이 통으로 사라졌네. 잡무는 3분짜리였다. 외주 맡아 마친 일의 A/S. 내 일이므로 불만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조금 의아하다. 발주자가 직접 했어도 3분이면 되는 일인데 그는 내게 메일을 보냈고 사흘 만에 답을 받았다. (나도 그에게 외주를 맡긴 적이 있는데, 10분쯤 걸리는 A/S 필요 사항을 그에게 말하지 않고 내가 직접 처리했다.)

남은 소스와 면을 털어 토마토파스타를 저번보다도 더 배불리 먹었다. 해가 저물어 가므로 곧 산책을 나갈 것이다. 다녀와서는 또 샤워를 하고, 번역을 조금 하거나 짐정리를 조금 하거나. 할 것이다, 라고 쓰고 싶지만 해야 한다, 고 쓰는 게 안전하다.

어제는 베란다 창을 열어두고 서울에 다녀왔고 그 사이 비가 들이쳤다. 바닥에 물이 고였다. 오늘 아침에야 확인했다. 빨래는 젖어 있지 않았다. 새벽 사이 마른 걸까 비가 절묘하게 바닥으로만 든 걸까. 티셔츠 같은 건 그냥 대충 입고, 속옷과 수건은 새로 빨 것이다.

물가에 앉아 있으려 나갔다 뜻하지 않게 산책을 했던 밤엔 양말을 신지 않고 바로 운동화를 신었었다. 뭐라고 부르지, 발꿈치와 아킬레스건이 만나는 곳 쯤에 생채기가 생겼다. 이튿날엔 계속 벗겨지는 양말을 신었고 좀 더 긁혔다. 어젠 따갑다가 가렵다가 했고 오늘 낮엔 가렵기만 했다. 지금은 괜찮은 것 같다.

여전히 욕실장이며 수건걸이며는 주문하지 않았다. 커튼도. 치약도 여전히 찾지 않았다. 면도기도. 대신 어제 출장길엔 편의점에서 눈썹칼을 사 터미널 화장실에서 면도를 했다. 쓸데 없이 눈썹칼이 두 개나 생겼다. 오늘은 친구가 이사 선물로 커피 드립백을 보내 주었다. 주소를 알려준 적은 없다. 받을 사람이 주소를 입력하게 되어 있는 시스템으로 받았다. 내일이나 모레쯤 올 것이다.

무료한 하루다. 오늘도 적지 않은 것이 있다.

2021.07.15.(목)

이사 오고 첫 서울행. 일주일도 채 안 됐는데 서울 갈 일이 생겼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사 전에 잡아 둔 일정이지만. 명목상으로는 출장이다. 장애여성공감 극단 춤추는허리에서 어떤 일을 맡겨 주셔서 회의를 다녀왔다. 공감에서 불러주시면 가야 한다는 마음이 있지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서 마음이 무겁다는둥, 말을 충분하고 친절하게 하지 않는 사람이라 곤란할 거라는둥, 이건 비밀인데 사실 아무데도 별로 관심이 없다는둥 안 하는 게 나을 말들을 조금 하고는 결국 일을 맡기로 했다. 다들 잘 하실 테니 저만 잘 하면 되고 어떻게든 해 보겠다는 말로 마쳤다.

회의는 저녁이었지만 일찍 서울을 향했다. 곧 떠나는 친구가 있어 몇 명이 모였다. 강남고속터미널 근처에서의 점심 약속. 제천에서 9시 40분에 출발하는 버스를 탔다. 집에서 터미널까진 매번 걸어다녔고 이번에도 걷는 속도에 맞춰 집을 나섰다가 땀에 젖을 것 같아 시내버스를 탔다. 제천에서 시내버스를 탄 것은 처음이었지만 노선도가 어렵지 않았으므로 ― 경주였을까, 어디에선가 도무지 어느 버스가 어디로 간다는 건지 알 수 없는 노선도를 본 적이 있다 ― 어려움 없이 도착했다. 실은 방송을 잘못 들은 탓에 한 정거장을 지나쳐 내렸지만 버스로는 금세 도착했으므로 시간이 빠듯하진 않았다. 버스요금은 1400원, 최근엔 늘 잘 보지 않고 카드를 댔으므로 정확히는 모르지만 서울보다 조금 비싼 것 같다.

고속버스도 예정보다 조금 일찍 서울에 도착했다. 터미널에서 맛 없는 간식, 이랄까를 먹고 목적지로 이동. “3, 7, 9호선”이라고 적힌 팻말과 “9호선”이라고 적힌 팻말이 다른 방향을 하고 있었다. 9호선을 탈 것이었는데 전자는 계단을 가리키고 있어 후자를 따라 갔다. 고속터미널 지하상가는 정말 넓구나, 대체 언제쯤 지하철 입구가 나올까 생각하며 한참을 걸었더니 지하상가 출구가 나왔다. 9호선 고속터미널역이 아니라 9호선 신반포역을 가리키는 팻말이었다. 오는 길에 “9호선 신반포역”이라고 적힌 팻말을 보지 못한 것도 아니었다. 신반포역 방면 플랫폼인가보다, 결국 계단을 올라 건너편으로 가야 하겠네, 안일하게 생각했을 뿐이다.

출구를 나와 땡볕 아래를 조금 걸어 신반포역에서 지하철을 탔다. 고속터미널역을 다시 지나 목적지를 향했다. 지하철을 내려 10분쯤 걸었고, 식당에 들어선 즈음엔 땀냄새가 심하게 났다. 축하를 비롯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조금 했다. 주인공, 떠나는 친구는 일정이 꼬여 일찍 일어섰다. 나머지는 저녁까지 비는 내 일정에 맞추어 또 이런저런 수다를 떨다 갔다.

회의에는 한 시간 정도가 걸렸다. 일을 맡기로 하면 구체적인 일정이라든가를 정해야 할 터였으므로 두 시간쯤을 예상했는데 공감에서도 아직 확정된 안이 없었고 나는 백수이니 아무 때로나 정해서 알려주십사 하였으므로 이야기가 길어지지 않았다. 동서울터미널에서 제천행 버스를 타면 시간이 조금 덜 걸리지만 뜻하지 않게 또 강남고속터미널에서 버스를 탔다. 아홉 시 차를 탔으므로 제천에 도착한 것은 열한 시 언저리. 시내버스는 끊긴 시각이다. 집까지 걸었다.

짐정리는 시도조차 않고 곧장 씻고 누웠다. 일찍 자지는 않았다. 쓰지 않은 일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