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뱃갑과 경계

외관 ― 인종이나 차림새, 혹은 눈빛이나 냄새까지도 ― 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나쁜 일이다. 그렇게 생각하지만, 때로 누군가를 경계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일상적이지 않은 상대를 보고 경계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렇게 생각하지만, 죄책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며칠 전 집에 가는데 길에 서 있던 누군가 팔을 뻗고 말을 붙였다. 이리저리 페인트가 묻은 … [읽기]

전단지 붙이던 사람

학교에서 학술대회 포스터를 붙였다. 늘 그랬던 것처럼, 동아리나 학생회 혹은 학술대회 포스터/자보는 피하고 상업 광고는 개의치 않고 가렸다. 어느 게시판에 포스터를 붙이고, 그 옆 다른 게시판에 또 붙이고 있는데 누군가 말을 건다. 짜증 섞인 목소리다. "저기요, 제가 방금 붙였는데 그 위를 저렇게 덮으시면 어떡해요." 방금 붙인 포스터를 보니 악기 레슨 전단지를 1/3 정도 가리고 있다. … [읽기]

자전거

간만에 학교에서 홍대 집까지 자전거를 타고 왔다. 언제나처럼, 한 시간 정도가 걸렸다. 간만에 타는 큰 자전거는 시원시원해서 좋았지만 상체를 숙이고 타자니 허리가 아팠다. 작은 바퀴에 익숙해 진 몸이, 큰 바퀴를 움직이려다 가끔 당황하기도 했다. 신림역 앞은 혼란스러웠다. 인도쪽으로는 차가 이중으로 주차되어 있었고, 불과 십 미터 앞에 차가 오는데 중앙선을 밟고 유턴하는 차도 있었다. 엉켜도 멈추지 … [읽기]

저들의 영광

그냥 사람들이랑 술을 마시며 떠들다가 문득 떠올랐다. 구세대의 사람들이 유신 시절에 향수를 느끼는 건 어쩌면, 그 시절을 거치면서 비로소 먹고 살 만하게 되었다거나 하기 때문은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그저 그 시대만이, 별달리 가진 것 없는 사람들에게도 그럴싸한 이름이 주어졌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삶에 명분이 주어지는 흔치 않은 시대 아닌가. 단지 먹고 살기 위해 … [읽기]

채식주의자의 하루

* 학교에서 밤을 샜다. 새벽에 학교에서 내려가, 아침으로 순대국밥을 사 먹었다. * 점심으로는 조기구이를 해 먹기로 했다.  냉동되어 있는 조기를 녹여 두려, 부엌에 갔다. * 이틀 전, 부엌에서 악취가 났다. 음식물 쓰레기에서 나는 냄새려니 하고, 음식물 쓰레기 봉투를 내다 버리고 창문을 열어 두었다. 그런데 오늘, 여전히 같은 냄새가 나고 있었다. 창문이 작아서 역부족인가보다 싶어 뒷문도 …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