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뱃갑과 경계

외관 ― 인종이나 차림새, 혹은 눈빛이나 냄새까지도 ― 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나쁜 일이다. 그렇게 생각하지만, 때로 누군가를 경계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일상적이지 않은 상대를 보고 경계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렇게 생각하지만, 죄책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며칠 전 집에 가는데 길에 서 있던 누군가 팔을 뻗고 말을 붙였다. 이리저리 페인트가 묻은 점퍼를 입고 있었다. 홍대 길거리에 흔한 미술가이려니 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기엔 상하의가 다 좀 더러워 보였다. "라, 라, 라…" 그는 말을 더듬었다. 표정은 어딘가 멍했다. 덩치는 컸다.
무서웠다 ― 불안했다, 고 쓰는 쪽이 더 정확할 것 같지만 ―, 하지만 피하지는 않았다. 몇 번 쯤 라, 를 반복한 끝에 그는 뒤에 이터, 라는 낱자들을 덧붙일 수 있었다. "라이터요?" 하고 묻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라이터를 건네자 그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다. 여전히 표정은 멍했다.
우습게도 약간의 안도를 한 것은 그가 꺼낸 답뱃갑을 보고서였다. 주머니에서 나온 것은 길에서 주운 꽁초도, 어디서 났는지 모를 꼬질꼬질한 담뱃갑도 아니었다. 기껏해야 하루 전쯤 가게에서 산 것처럼 보이는, 구겨지지 않은 담뱃갑. 아무 거나 달라고 해서 받은 것이 아니라, 이름을 말하고 골라서 샀을 브랜드.
그 담뱃갑을 보고야 나는 조금 안심할 수 있었다. 라이터를 돌려 받고, 서로 가볍게 목례를 하고, 집으로 마저 가면서 나는, 그 얼룩들을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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