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지하철에는 약간의 개운함이 있다. 상쾌한 공기, 뿌듯한 성실함 따위의 것은 물론 아니다. 내가 새벽에 지하철을 탄다는 건 밤새 술을 마셨거나 밤새 뒤척이다 끝내 잠을 포기했거나 둘 뿐이므로, 날씨야 어떻건 새벽은 늘 자욱하다. 새벽 지하철에는, 간밤 퇴근길의 빽빽함이 온데 없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약간의 개운함이 들어선다. 오늘 새벽에도 지하철은 한산했다. 뒤꽁무니 마지막칸, 넓은 공간에 나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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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문석과 1년
죽음이 망각되는 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망자의 삶이 송두리째 망각되는 것이다. 뉴스에서 소상히 알려 주는, 낯모르는 이들의 삶과 죽음, 그러한 방식으로 내 삶과 먼 곳에 있었던 이들의 죽음이 그런 경우에 속한다. 연쇄 살인범에게 살해당한 어느 피해자의 일생과 죽음, 혹은 누군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이름 없는 의인들의 죽음이 내게는 그러하다. 어떤 경우에는 그저 죽음만이 망각된다. …
예쁘고 고운 것만 보고 살고 싶은데
밤중에 창밖에서 비명 소리 비슷한 무언가가 들릴 때면 안절부절 못한다. 그 고음이 괴로움이나 두려움의 비명이 아닌, 괜히 질러 본 소리거나 즐거움의 소리임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마음이 가라 앉지 않는다. 비명에 이어 웃음이 들려 오지 않으면, 기어코 나가 밖을 살펴 보아야 한다. 예쁘고 고운 것만 보고, 밝고 고운 것만 들으며 살고 싶지만 녹록지가 않다. 지금 사는 곳에서는 …
아마 또 지고 돌아왔다
* 12월 28일, 민주노총 총파업 집회에 다녀왔다. 사람은 많지도 적지도 않았다. 서울시청 광장은 스케이트장으로 반토막이 나 있고, 그걸 또 경찰이 틈 없이 둘러싼 통에 붐비기는 했지만. 그래서 결국 무대가 보이는 곳으로 들어가지는 못하고 주변을 맴돌다, 카페에 들어가 찬바람을 피하다 하며 시간을 보냈다. 3시에 집회 하나, 4시에 또 하나가 예정되어 있었다. 이런 저런 안내 방송들이 이어지다 …
나는 오늘도 지고 돌아왔다
간만의 휴가를 맞아 서울로 놀러 온 친구를 포함해, 네 명이 모여 점심을 먹었다. 이런 저런 대화를 하다 철도 노조 이야기가 나왔다. 다들 민주노총 건물에 경찰이 들어갔다는 정도까지를 알고 있었다. 대강의 소식을 알아보니 연행 중이자 대치 중이라고 했다. 밥을 먹고 우리는 민주노총 사무실을 향했다. 시청역에서 민주노총 사무실까지 쭉 이어진 길 곳곳에 경찰이 진을 치고 있었다. 일부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