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7월 11일 토요일

친구가 토요일 집회에 가느냐고 물어왔다. 무슨 집회냐고 되물었다. 세월호라고 했다. 찾아보니 광화문 광장에서의 농성이 1년을 채웠다고 했다. 세 시였나, 네 시였나. 1주년 기념 집회를 하기엔 이른 시각이었지만 공지에 맞추어 광화문 광장에 갔다. 친구는 급한 일이 생겨 오지 못한다고 했다.
사전 집회인 모양이었다. 내내 지신밟기만을 했다. 저녁에 문화제가 있을 거라고 했다. 상쇠는 천막들을 하나하나 돌며 공간을 소개하고 그곳에 머무는 이들의 말을 들었다. 1년을 맞아 분향소를 옮기고 천막을 튼튼하게 새로 지은 참이었다. 신명나게라고 했던가, 걸게라고 했던가. 아무튼 지신밟기는 한 판 놀이 같은 것이어야 한다고 상쇠는 말했다. 그러나 조심스러웠는지, 흥청망청 노는 것과는 다르다고 했다.
몇 안 되는 천막들을 도는데도 꽤 시간이 걸렸다. 작가들의 작업실, 전시장, 상황실, 카페, 분향소, 숙소. 누군가는 짧게 말했고 누군가는 노래를 했다. 누군가는 큰 소리를 내기도 했던 것 같다.가수는 기타를 들고 끝까지 노래했고, 가수가 아니었던 이는 몇 소절을 부르다 막혀 웃으며 마이크를 상쇠에게 돌렸다. 지신밟기가 끝나고는 누군가 학춤을 췄다. 
그리고 또 뭐가 있었더라. 나는 행사에 집중하지 못하고 광장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 말고 커다란 비닐 주머니를 들고 있는 사람들을 발견했다. 수십 명이 들어갈 크기의 비닐을, 대여섯 쯤 되는 이들이 날아가지 못하게 잡고 있었다. 어느 순간 갑자기 사회자가 “가만히 있으라!”하고 외쳤다. 어느 객이 “싫어!”하고 답했다. 스피커에서는 갑자기 잡음 섞인 소리가 흘러 나왔다. 사건 직후 어느 집회에서 보았던, 바닷 속에서 건져올린 휴대전화에서 복원해 낸 영상의 음성이었다. 한 번 보았을 뿐이지만, 익숙했다.
자신들의 마지막 순간을 기록한 음성이 한동안 흘러 나왔던 것 같다. 비닐을 들고 있던 사람들이 갑자기 달리기 시작했다. 광장 가운데 서있던 사람들을 비닐로 덮었다. 스피커에서는 여전히 소리가 나왔다. 언젠가, 물 속을 지나는 공기방울 소리가 들린 것도 같았다. 나는 사람들을 피해 구석에 있었던 덕에 비닐 속에 갇히지 않았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찼다. 더 구석으로 나가 자리를 찾고 앉기 전까지, 조금 비틀거렸다.
사회자가 이런저런 말들을 했던 것 같다. 자, 이제 나갑시다, 하고 마지막에 외쳤던가. 사람들은 비닐을 찢고 바깥 공기를 들이켰다. 표정들은 크게 나빠 보이지 않았다. 그들이 누구인지 나는 몰랐다.
저녁에는 친구와 술 약속이 있었다. 지신밟기로 시작해 비닐 바다 퍼포먼스로 끝난 사전 집회를 뒤로 하고 약속 장소를 향했다. 가까웠으므로, 도착하고도 이삼십 분 가량의 시간이 남았다. 친구에게는 나도 아직 가는 중이라고 말해두고, 약속 장소 근처의 정자에 앉았다. 두 명의 선객은 노숙인의 행색을 하고 있었다. 한 명은 신문인지 잡지인지를 읽고 있었고 또 한 명은 누워 있었다. 먼발치서 또 한 명의 노숙인이 다가왔다.
그는 무언지 모를 짐을 한가득 지고 있었다. 그제서야 보니 두 선객도 짐이 많았다. 집을 지고 다니는 집없는 삶에 대해 생각할 겨를도 없이, 멀리서 걷던 그 또한 정자로 들어왔다. 그는 가방을 내려 놓지도, 먼저 온 사람들을 보지도 않았다. 대신 곧장 쓰레기통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가 찾는 것은 타다 만 담배였다. 음료가 남은 병도 몇 개 뒤적였지만 큰 관심은 없어보였다.
저렇게까지 해서 담배를 피우고 싶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곧 접었다. 나도 종종 밥값을 아껴 담배를 산다. 내 가방 속에 든 것도 그랬다. 가방에 손을 열어 담뱃갑을 열었다. 더듬어 보니 예닐곱 개비가 든 것 같았다. 이걸 건넬까 싶었지만 그랬다간 또 한 끼를 굶어야했다. 내가 주로 밥을 먹는 대학교 학생식당을 생각하면 담배 한 갑은 실은 두 번의 끼니에 맞먹는 가격이었다.
다시 가방 속을 더듬어 명함 케이스를 열었다. 명함을 꺼내고, 담배 네 개비를 넣었다. 친구와의 술자리에서 피울 몫이었다. 몰래 담배갑을 꺼내어 속을 보니 두 개비가 남아 있었다. 두 개비가 든 담뱃갑을 엉덩이 뒤로 밀어 넣고 잠깐 딴청을 피우다 자리에서 일어섰다. 갈곳도 없이 자리를 옮겼다.
그러고도 친구가 오기까지는 시간이 좀 남았다. 근처를 빙빙 서성이다 다시 정자 앞을 지났다. 누워 있던 이만이 남아 있었다. 그렇게 지나치려는데 내가 두고 간 담뱃갑이 보였다. 쓰레기통을 뒤지던 그는 이것은 보지 못했던 것이다. 아까 앉았던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담뱃갑을 열었다.
한 개비가 남아 있었다.
곧 친구가 도착했고, 우리는 술집에 들어가기 전에 길가에서 담배 한 대씩을 피웠다. 그가, 혹은 다른 누군가가, 남겨 두고 간 그 한 개비를 그곳에서 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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