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듯이

한 달 쯤 되었을까, 인터넷을 사용할 수 없는 곳에서 써서 저장만 해 두었던 글.
요즘은 잘 잔다, 아주. 과도하게.

최근 한 2주 정도 불면증에 시달리면서, 이곳에 올라와 있는 지난 글들을 하나하나 다 읽어 보았다. 언제 어떤 기분으로 썼는지 선명히 기억나는 글들과, 아무런 기억도 되살리지 못하는 글들이 섞여 있는 가운데, 이상한 말들이 몇 개 섞여 있었다.

평소 욕은 전혀 쓰지 않는다. (아마) 누구나가 욕으로 생각할 성적 비하를 담은 말들은 물론이고, 대개가 욕이라고는 생각지 못할 미쳤다, 거지같다, 바보같다, 는 등의 말도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그런데 밤마다 읽어 본 글들 곳곳에서 ‘미친 듯이’라는 말을 찾았다. 지금 인터넷을 사용할 수 없는 곳에서 글을 쓰고 있어 확인해 볼 수는 없지만, 미친 듯이 달렸다, 혹은 미친 듯이 흘렀다 같은 말들이었던 것 같다.

미쳤다는 말도, 미친 것 같다는 말도, 그리고 미친 듯하다는 말도 모두 쓰지 않지만, 그 중에서 보다 더 문제적인 말을 고르라고 한다면, 내 글들에서 몇 번이나 발견한 ‘미친 듯이’를 꼽을 것이다.

판단력, 공격성, 일관성 등 몇 가지 기준에서 ‘정상적인’ 정신의 기능을 벗어난 상태를 가리켜 미쳤다고 말한다. 의미가 확대된 이 말을, 평정심이라 할 만한 상태를 벗어난 경우, 혹은 일반적인 수준을 벗어난 경우를 비유하는 데에도 쓰인다.

그 모든 경우가, 정신장애를 비하하는 것이라고 여겨서, 나는 쓰지 않는다.

백 번 양보해서―물론 그래야 할 이유는 전혀 없지만―만약 정신장애를 비하하지 않는 사회라면, 평균이든 최빈(最頻)이든 기준을 벗어난 상태를 가리키는 말을 따로 두고 써도 좋을 것이고, 그 말이 ‘미쳤다’는 표현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보기도 한다.

미친 듯이, 라는 말은 그 범위를 조금 벗어난다. 이 말이 어떠한 이미지를 그리는지, 혹은 어떠한 뉘앙스를 풍기는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이 이미지는, 정신장애에 대한 비하를 차치하고서도 문제가 된다.

‘미친 듯이’라는 말 하나밖에 없음이 증명하듯―다양한 정신장애, 그리고 각 장애의 다양한 양상이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갖는 이미지는 상당히 획일적이다. 전적이라고 해도 좋을 판단력의 상실, 극도에 달했다고 해도 좋을 공격성, 이런 식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몇 되지 않는다.

미친 듯이 달렸다, 고 쓰면서 나는 무슨 생각을 했던 것일까.(구토, 라는 카테고리에 있는 글들은 언제나 갑자기 떠오른 것을 그대로 받아 적고 수정하지 않는 글들이다. 그러니까, 나 자신도 종종 무슨 생각인지 모르고 쓰는데다, 알고 썼다 하더라도 잊기 일쑤다.)

아마, 대개의 사람들이 갖고 있는 이미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장면을 떠올리고 있었을 테다. 미쳤다는 말이 비하의 뉘앙스 없이 정신장애와 같은 뜻으로 쓰인다 하더라도, 그 다양한 양상을 하나로 묶어 버리고 ‘정상인’들이 경계하게 만들 만한 이미지, 아마 그런 것을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설사 나는 경계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더 신경 써야겠다고, 더 고민해야겠다고, 여기에 써 둔다.

요즈음의 채식

나는 채식주의자다.

생선과 알, 유제품을 먹으니 채식인이라기엔 좀 부족할지 몰라도, 채식주의자임은 틀림없다. 자본주의의 정점에 비교적 가까운 곳에 살지만(물론 심적으로만 가깝고 경제적으로는 반대쪽 정점 가까이에 있다) 틀림없이 반자본주의자인 것처럼.

2008년 늦봄에 육류를 끊었으니 채식도 어느덧 만 3년이 다 되어 간다. 실수로 몇 번쯤 입에 육류를 대었고, 닭고기를 먹은 일이 두 번 있었다.

그리고 최근, 닭을 한 번, 돼지를 두 번, 소를 한 번 먹어 보았다. 양념 치킨에 편육, 동파육 그리고 불고기까지 다양하게.

오랜만에 먹어보니 꿀맛, 이라거나 하는 느낌은 없더라. 반갑지도 시원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특별히 죄책감이 들지도 않았다. 채식을 시작하기 전처럼, 그냥 평범한 음식을 먹는 기분이었다. 약간 생소했을 뿐.

하지만 어떻든, 스스로의 규칙을 깨고 몇 차례 육류를 먹은 후 생활이 다소 바뀌었다. 말하자면, 어차피 고기도 먹었는데 뭘, 하는 식의 태도가 생겼달까. 덕분에 실수로 먹게 되는 육류에 훨씬 관대해졌다든가 하는 변화가 생긴 것이다.

육류가 든 줄 모르고 주문한 메뉴를 버리지 않고 골라 내고 먹는다거나, 동행이 먹다 남긴 육류가 든 음식을 조금씩 먹는다거나 하게, 혹은 할 수 있게 되었다. 아직으로선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 조금의 육식을 하게 된 대신 그만큼의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게 되었으므로.

비누의 사례를 생각하면 조금 걱정스럽다. 채식을 시작하고 얼마지 않아 세제도 끊었다—비누와 치약, 주방 세제 모두를. 그러다가 지난 겨울 길어 버린 머리를 주체할 수 없어 비누를 쓰기 시작했는데, 머리를 자른 지금도 때로 비누를 쓰고 종종 주방세제를 쓰기도 한다.

느슨해진 채식이 아직은 좋지도 나쁘지도 않지만, 비누를 생각하면 조금 걱정스럽다.

지정석

서울과 경기를 오가는 지하철은 다소 절망적이다. 승객 대부분이 시와 도의 경계를 넘는 장거리 이용객이라서, 또 그 상당수가 고령이라서 앉을 자리를 얻기가 쉽지 않기 때문만은 아니다. 직장 혹은 학교, 그것도 아니라면 놀이 공간 가까이서 살 것을 허락받지 못한 이들, 무임승차권*이 나오는 지하철 열차가 아니면 갈 곳―이동 수단으로서도, 그야 말로 ‘곳’으로서도―을 바랄 수 없는 이들이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경기도에 있는 선배의 병원을 한 주에 한 번씩 다닌다. 이제 겨우 두 번을 갔는데, 언제나 지하철에는 자리가 없었다. 그야말로, 아파서 병원에 가는데 병원에 가느라 더 아플 지경. 그래서 호시탐탐 자리를 노리던 중, 지난주에 한 시간 반을 서서 병원에 갔다가 또 사십분 쯤을 서서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자리 하나를 잡았다.

두 정거장 쯤 지났을까, 아직 경기도를 채 벗어나지도 못한 어느 역에서 자리를 구하지 못한 노인을 발견했다. 자리를 내어 주고 또 서서 두어 정거장을 가자 그가 나를 불렀다. 내게 앉으라며 자리에서 엉덩이를 떼던 그는, 이제 내 자리로 가야지, 하고 말했다. 객차를 가로질러 그는, 한 자리가 빈 노약자석을 향했다.

그가 그 자리로 가던 중에 누군가 먼저 그 자리에 앉아버렸다는 그는 어떻게 되었을까. 배려라는 멋들어진 이름으로 선심 쓰듯 사회가 내어주는 자리는 게토―이 말을 써도 좋을지 모르겠지만―가 된다. 그가 다시 일어나 늙은 몸을 끌고 비척이며 노약자석으로 간 것은, 내가 노약자석에 앉을 수 없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이유도 모르면서, 만원 지하철에서 노약자석이 아닌 자리에 앉아 있는 것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나 않았을까. 그를 노약자석에 가두어 두고 싶지 않았던 나는, 아니에요 그냥 앉아 계세요, 하고 말해도 좋았을 텐데. 미처 그리 할 만한 여유가 없었다. 그저 몸이 무거워서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 우대권이라는 말은 기만적이다. 대중교통이 공공재라면, 충분한 편의를 제공하지 못하는 데에 대한 사죄의 뜻으로 표 정도는 당연히 공짜로 주어야 한다, 고 나는 생각한다. 불편한 계단만 끝없이 늘어놓고 엘리베이터를 충분히 설치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라며 ‘교통 약자’들이 사용할 때마다 사죄금을 주어도 모자랄 판.



나와 직접 대면을 하지는 않는, 주위의 노동자들에게 굳이 인사를 하지는 않는다. 청소 노동자에게 인사를 건네주세요, 따위의 포스터나 자보를 보면서 나는 생각한다. 그들의 노동에 지금 이상의 보상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나의 인사가 아니라 임금과 처우를 통해서여야 한다고. 대접 받지 못하는 육체노동에, 나의 인사가 조금의 자존감을 줄 수 있을까 한 때 고민했던 적이 있지만, 딱히 그렇지는 않으리라 생각했던 것 같다.

인사를 하는 경우가 있다면, 눈이 마주쳤을 때 정도다. 계단을 닦고 있던 이가 내가 지나갈 틈을 내어 주느라 허리를 펴고 나를 치어다 볼 때, 식당 퇴식구에서 식판을 정리하는 이가 내 것을 받아들기 위해 나를 바라 볼 때, 정도다. 화장실 청소를 하는 이와는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애초에 동시에 같은 공간에 있지 않으려 노력한다. 남자 화장실을 청소하는 여성 노동자들의 고충을 익히 들어 왔으므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청소 시간에 화장실을 사용하지 않는 것뿐이므로.

계단을 닦는 이와 마주치는 건 흔치는 않은 경험이다. 기껏해야 한 달에 한두 번 있을까 한 일이니, 내가 인사를 하는 노동자는 주로 식당 퇴식구에 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럴 일이 사라졌다.

언제부턴가, 퇴식구에 벽이 생겼다. 식판을 밀어 넣을 약간의 틈만을 두고, 그와 나의 얼굴 사이에는 건너편이 보이지 않는 벽이 생겼다. 내게 보이는 것은 고무장갑을 끼고 바쁘게 나의 식판을 받아 가는 그의 손뿐이다. 그에게는 아마, 내 손조차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인사를 할 기회는 사라졌다.

어쩌면, ‘소비자’로서 자신을 대하는 사람들과 굳이 얼굴을 마주하기가 불편한 노동자들의 감정을 위해 만든 벽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했으리라 생각할 만큼, 학교에 대한 신뢰를 갖고 있지는 않다. 아마, 식사하는데 잔반통이 보이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그랬겠지, 정도가 학교의 이미지에 걸맞다.

이제 나는 누가 어떤 표정으로 내가 밥 먹은 흔적을 씻어내는지 알지 못한다. 그 속에서 그 누군가는 어떤 표정으로 일을 하고 있을까. 그곳이 그의 자리일까, 그의 우리일까, 나는 알지 못한다.

가난을 증명하기

0.
결과부터 말하자면, 일단 잘 해결되었다. 필요한 것이 필요한 사람에게, 필요한 때에 가게 되었으므로.

1.
지금껏 살면서, 가난을 증명해야 했던 적은 크게 없었다. ‘증명’하면서까지 도움을 청해야 할만큼 가난해 본 적도 없었거니와―누구에게서든 생활비를 빌려야 했던 부모님에게는 있었겠지만―, 가난함을 주장하기에는 소위 사회적 자본, 혹은 문화적 자본이라는 것을 너무 많이 가지고 있었다. 아버지의 기자라는, 나의 서울대생이라는, 지위 같은 것들 말이다.

2.
가난을 증명해야 하는 경험, 을 처음으로 해 본 것이 바로 며칠 전의 일이다. 학교에서 조교 자리가 하나 났고, 나를 포함해 지원자가 둘 있었다. 결정권자인 지도교수님은 우리 둘, 그러니까 지원자 둘이서 합의해 결과만 알려 달라고 하셨다.

3.
장학금이 필요한 사람에게 가도록 한다, 그 과정에서 지도교수와의 친분은 고려하지 않는다, 는 원칙을 가진 선생님 입장에서야 가장 합당한 안이었겠으나, 당사자인 우리로서는 크나 큰 고역이었다. 서로 마주 앉아, 양보해 달라는 말도 양보하겠다는 말도 하지 못한 채, 그저 자신의 상황이 얼마나 시급한가를, 심지어 조심스레, 말할 수밖에는 없었다.

4.
온전히, 라고는 할 수 없지만―일을 하고 돈을 벌 수 없는 물리적 상황이 있다는 뜻이다― 대체로 지금의 나는, 말하자면 ‘자발적 빈곤’의 상태에 있다. 과외라든가 하는, ‘돈 때문이 아니면 절대 안 할 일’을 실제로 하지 않고 있으니, 일단은 그렇게 말해도 좋을 것이다. 돈 안 되는 일을 좀 줄이면, 예컨대 수업을 하나쯤 적게 들으면, 그리고 스스로의 양심이나 신념을 조금 접어 두면, 돈을 버는 것이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닐 테니까.

5.
가난을 증명하기도, (다소간) 자발적인 빈곤 상태에서 지원을 요청하기도 매우 생소하면서도 곤란한 경험이었다. 눈곱만큼도 자발적이지는 않는 빈곤 상태에 있는 사람들이, 기계 같은 공무원들을 상대로, 실은 희망이 없음을 알면서도, 해보는 수밖에는 없는 가난의 증명은 과연 어떤 기분일지 나로서는 가늠할 수조차 없음을, 여실히 느꼈다.

6.
전화로 십 분쯤, 이튿날 대면해서 이십 분쯤을 서로가 서로에게 자신의 가난을 증명하는 데에 보냈는데, 서로 한 마디씩 할 때마다 말수는 줄어들고 표정은 굳어 가고. 그 불편함이, 단순히 내가 혜택을 받으면 상대방은 받지 못하게 된다는 사실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7.
누군가 가난을 증명해야 하는 일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도록, 아니 그렇게 되도록 하는 데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법인화 반대 자보를 얼른 써야 하는데. 꼴에 학교 좀 오래 다녔다고, 좀 뻘쭘해서 미루고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