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1년 전 오늘, 나는 사무실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무엇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바빴던 모양이다. 점심을 같이 먹은 동료들도 그랬던 것 같다. 저녁이 되어 퇴근할 즈음까지, 나는 진도 바다에서, 그리고 서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몰랐다. 사건 속보도, 어이 없는 오보도 모두 지나가고 수이 입 밖으로 내진 못해도 이미 늦은 것은 아닐까 생각하는 이들이 늘어갈 때쯤에야 사건 소식을 접했다.

종편 채널을 본 것은 아마 그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제일 쉼 없이 뉴스를 내보내는 곳이었다. 그런 식으로 어떤 생중계를 부여 잡고 있는 것은 두 번째였다. 2011년 한진 중공업 희망 버스 생중계가 처음이었고, 지난 해 세월호 실시간 보도가 두 번째였다. 희망을 갖지도 않았고, 모니터 한 켠에 적힌 구조자 숫자 ― 이제야 나는 그 때의 그 숫자판이 실은 서울시청의 부채 감축 현황 전광판과 다르지 않다는 걸 안다 ― 가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았다. 그럼에도 며칠째 밤마다 퇴근 후의 지친 몸으로 뉴스를 보았던 것은 아마 무력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구조에 대해서는 누구도 더 희망을 갖지 않게 되었던, 시신들이 조금씩 수습되기 시작했던 즈음의 일이었을까. 혹은 그보다 조금 일렀을지도 모른다. 인터넷 메신저 프로필 사진에 노란 리본을 건 사람들이, 옷이나 가방에 노란 리본을 단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도 달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지만 그러지는 않기로 했다. 어떤 일에 대해서든, 프로필에도 옷에도 문구를 싣는 일은 잘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보다도, 지금 저 리본을 달았다가 어쩌면 영영 떼지 못하리라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포기하고 묻고 지나치는 것이 아니라면, 이 리본을 떼고 이 사건을 과거로 돌리는 것을 불가능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리고 1년이 지났다. 그 사이 광화문에는 몇 번 가지 못했다. 드문드문 집회에 나가기는 했지만 분향은 하지 않았다. 서명판에 이름을 적었지만 그 외에 별다른 문장을 쓰지는 않았다. 몇 권인가 출간된 책들은 읽지 않았다. 다른 일로 그곳을 지날 때면 고개를 돌렸다. 그래 봐야 어디에 눈을 두든 농성 천막이, 혹은 플래카드가, 혹은 숨죽인 사람들이 보였다. 그렇게 1년이 지났다.

아직 추웠던 얼마 전, 쌍용차 노동자들의 오체투지 행진을 촬영하러 갔다. 행렬을 따라갔더니 가운데에 광화문 농성장이 있었다. 그들은 고인들을 기리며 절하고 다시 갈 길을 갔다. 그곳에서 노란 리본 하나를 주웠다. 또 하나를 주웠는지 받았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곳을 나설 때 내 손에는 리본 두 개가 들려 있었다. 하나는 가방에 걸었고 하나는 책꽂이에 두었다. 리본을 건 가방은 최근 메지 않는다. 리본이 달려 있어서는 아니다.

오늘은 비가 온다. 낮부터 가 있을까도 했지만 할 일을 다 마치지 못한 탓에 저녁에만 갈 수 있게 되었는데, 그나마도 비가 오면 피곤한 일이다. 비가 오면 집회에 나가기 귀찮은데, 라고 쓸 수는 없어 그저 “비가 온다”라고만 썼다. 어떤 이들은 이 말을 “하늘도 운다”로 읽을 것이다. 그렇게 읽히기는 싫었지만, 안 쓰기도 싫었다. 그렇게 적었다.

비가 온다. 저녁까지도 나는 할 일을 마치지 못한 채 집을 나설 것이다. 몇 주째 피로는 누적되어 있다. 가고 싶지 않지만 갈 것이다. 가고 싶지만, 가는 것 이상을 하지는 못할 것이다. 오늘 저녁에는 유족들이 있는 곳에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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