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이동 266번지

만으로 3년 반쯤 되었나보다, 포이동 266번지에 다녀 왔다. 2011년 화재를 겪은 후 우여곡절 끝에 집 몇 채를 새로 지었다. 그 과정에서 마을 한쪽에는 공터가 생겼고 그곳은 주차장이 되었다. 이따금 그 공간을 빼앗으려 압박을 가해오던 강남구청에서 최근에 용역 업체와 계약을 맺었다고 한다. 하루에 두어 번씩 그들이 찾아 온다고 했다. 그들을 막을 이들을 다시 모으려, 오늘 문화제를 열었다. 그곳에 다녀 왔다.

익숙한 얼굴들이다. 주민들도 그렇고 찾아와 일하는 이들도 그렇다. 물론 낯선 이들도 많았다. 낯선 이들은 낯설게 두면 되고, 익숙한 일하는 이들은 집회에서라도 이따금 보던 얼굴들이니 그대로 괜찮다. 주민들의 얼굴을 보는 것은 만 3년 반쯤 만이다. 너무 오랜만에 온 것이 미안해, 부러 인사를 않고 구석에 있었다.

그런데도 한 명, 두 명, 나를 알아보고 먼저 인사를 건네 왔다. 포이동 266번지에 처음 간 것이 2005년의 일이니, 6년 정도를 꾸준히 보던 얼굴들이다. 주민들 중에 내 이름을 아는 이는 아마 없을 테지만, 어디에 소속되어 있고 누구와 함께 왔는지를 그들은 알고 있다. 그런 이들이 먼저 와 인사를 건넨다. 오랜만이라는 말도 없다. 늘 그랬듯, 그저 안부를 묻고 와주어 고맙다는 말을 덧붙였다.

2009년, 그들은 오랜 싸움 끝에 주민등록증에 제 주소를 올렸다. 그래봐야 집 주소가 아닌 마을 주소다. 개포동 1266번지. 그들이 주소를 빼앗긴 사이 포이동 266번지라는 이름은 서류에서는 사라졌다. 하지만 그곳은 그들의 집이었고, 사람들은 계속해서 포이동 266번지라는 이름을 썼다.

오랜만에 찾아가니 조금 변해 있었다. 이제는 1266이라는 숫자가 익숙해진 모양이었다. 화재 복구 이후 쓰기 시작한 재건마을이라는 이름도 썩 익숙해진 모양이었다. 마을 사수대책위가 속한 단체의 이름도 언젠가 바뀌었는데, 그 역시 자연스레 입에서 나왔다. 대책위 간부들도 바뀐 모양이었다.

우선은 한 달에 한 번씩 문화제를 열기로 했다 한다. 며칠전엔 ‘지키미’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회의는 공개되므로 시간만 맞출 수 있다면 참석할 수 있다. 다시, 포이동에 드나들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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