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8.09.(월)

역시 놀았다. 아주 많이 누워 있지는 않았다. 점심은 순댓국. 이건 그다지 오랜만이 아니다. 친구가 힘든 일이 있어 좀 다독여 주었다. 이런 일은 얼마만이지. 잡화점에 들렀지만 아무것도 사지 않았다. 유리 물병을 살까 말까 하다 말았다. 근처에서 저녁으로 먹을 빵을 샀다. 오후엔 낮잠을 잤다.

저녁엔 화상회의가 있었다. 대화방에 메시지를 남겼다. “선생님들 저도 어제 무리를 좀 했더니 몸이 안 좋아서 오늘은 쉬어야 할 것 같습니다…” 한두 마디 답이 온 후엔 “죄송합니다…”라고도 남겼다. 무리를 했다기엔 실상 한 게 없어서 말을 흐린 것은 아니다. 나보다 먼저 참석이 어렵다고 밝힌 이들이 있었고 나까지 그러고 나니 참석자보다 불참자가 많아져서였다.

빵으로 대강 허기를 때우고 일찍 누웠다. 길게 잤다.

2021.08.08.(일)

별일 하지 않았다. 많이 누워 있었다.

일찍부터 택시며 버스며를 타고 이리저리 돌아다니긴 했다. 점심엔 멀리서,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바질과 새우, 오징어 등을 볶아 얹은 태국식 덮밥을 먹었다. ‘고기와 바질 볶음’이라는 설명 뒤로 닭고기, 돼지고기, 쇠고기, 해산물이라는 네 가지가 적혀 있었다. 해산물을 선택하면 육류는 안 들어가는 거냐고 물으니 그렇다고 했다. 바질이 이런 맛이었나, 하며 먹었는데 생각해보니 고수가 들어 있었던 모양이다.

다 먹고 계산하고 나오다 영수증을 보니 덮밥과 함께 뜻모를 (태국어) 이름의 천 원짜리 메뉴가 하나 적혀 있었다. 이건 뭔가요, 하고 물으니 계란 프라이라고 했다. 주문을 받으며 계란 프라이는 드릴까요, 하고 묻길래 고기를 안 먹으면 혹시 달걀도 안 먹느냐는 뜻이려니 하고 그건 넣어 달라고 했더랬다.

오후엔 잠시 돌아다닌 후 대개 누워 있었다. 저녁엔 오랜만에 피자. 음식을 배달시키는 일은 잘 없다. 서울에 살 땐 집에서 오 분 거리쯤에 있는 피자스쿨에서 자주 사다 먹었다. 여기서 제일 가까운 피자집 ― 피자스쿨 ― 은 걸어서 십 분 쯤, 피자가 식어 굳기 충분한 거리에 있다. 지난 한 달 간 몇 번 생각했지만 한 번도 먹지 않았다. 이번엔 도미노 피자를 사다 먹었다. 많이 먹었다.

금세 누웠지만 잠은 적게 잤다.

2021.08.07.(토)

오전은 별 일 하지 않고 보냈다. 점심은 분식집 라면. 일전에 갔던 분식집엘 가다가 그 옆에 500원 싼 데가 있길래 그리로 들어갔다. 같은 건물이거나 바로 옆 건물. 500원은 인건비 차이일까, 누군가가 (더) 저임금에 (더) 고통 받고 있을까, 생각하면서도 그랬다. 아마도 주인 부부일 듯한 이들이 일하고 있었다. 노동량이 더 적어 보였다. 좀 더 지저분하거나 그랬다는 뜻이다. 구체적으로 어땠는지는 그새 잊었다. 또 오진 못하겠다고 생각했다. 테이블이 끈적하거나 그랬겠지. 끈적한 테이블과 젖은 수저에 관해 쓰다가 만 글이 있단 게 생각나네.

그리고는 카페로 옮겼다. 최근엔 주로, 이사 오고 며칠 되지 않은 시점에 ‘힙한 카페’라고 칭했던, 내가 집을 나서는 시간보다 늦게 문을 열어서 한동안 가보지 못했던 그 카페에서 일한다. 널찍하고 쾌적하다. 음악 소리가 조금 큰 편이지만 곡 자체가 정신 사나운 경우는 많지 않다. 콘센트가 있는 구석 자리에 앉아 밀린 일기와 가계부를 썼다. 테이블을 조금 밀다 얼마 안 마신 커피를 다 쏟았다. 한 잔을 더 시켰다.

맞은편 테이블에 좀 시끄러운 일행이 앉았다. 일을 하긴 어렵겠다 싶어져 집을 향했다. 급한 대로 침실에 두었던 책상을 거실로 옮기고 소형 책장 하나를 침실에 넣었다. 눕혀 두었다. (침대 없이 살기로 해 그저 이불이 깔려 있을 뿐이지만) 베드테이블 겸 간이 수납장으로 쓸 생각이다. 도배든 페인트칠이든 한 후에 세우려 했던 행거도 설치했다. 거의 한 달째, 빨래를 마친 옷가지를 개어 방 한 켠에 쌓아두고 살았다. 행거는 땟물이 흘렀다.

문자 그대로 흘렀다. 알콜로 닦았으나 시원치 않아 주방청소용 세제 스프레이를 뿌렸기 때문이다. 흘리내리는 누런 거품을 닦았다. 때를 지워도 여전히 꾀죄죄했다. 칠이 많이 벗겨졌고 여기저기가 찌그러졌다. 아마도 십 년 넘게 쓴 물건이다. 동생이 쓰던 것인데 천장이 낮은 집에 살 때 봉 높이가 맞지 않아 테이프로 고정했던 흔적이 남아 있다. 가늘기까지해서 쓰러진 적이 있고, 잠시 같이 살다 각자 집을 구했던 시점에 좀 더 튼튼하고 깨끗한 내 것과 바꾸어 주었다. 나는 옷이 얼마 없으니까 약해도 괜찮았다. 그새 옷이 많이 늘었다. 입던 옷 하나가 이젠 더는 못 입겠다 싶은 상태가 되면 옷 하나를 새로 사는데 그러면서도 낡은 옷을 버리지 않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지난 번 집에 살면서는 책꽂이가 늘면서 둘 곳이 마땅찮아져 쇠톱으로 썰어 폭을 좁혔다. 아슬아슬하게 서 있다.

집 바로 뒤 아파트 단지에서, 중고거래 사이트에 올라 온 냉풍기를 샀다. 물을 흘려 기화열이 어쩌고 하는 방식. 딱히 찬바람이 나오리라는 기대는 없이, 선풍기 가격이라 제대로 살펴보지도 않고 그냥 갔다. 생각보다 컸다. 다행히 가벼워서 달랑달랑 들고 집까지 걸었다. 수조를 닦았는데 끝없이 녹색의 무언가가 묻어났다. 나물 데친 물, 을 제하면 내가 아는 녹색 물이란 영화에 나오는 독극물밖에 없는데― 생각하며 몇 번이나 닦았다. 물을 흘리는 종이 그물이 녹색이란 건 뒤늦게 알았다. 두어 번 썼더니 수조에 다시 녹색이 감돌기 시작했다.

사러 가기 전에는 책 한 권을 주문할까 말까 한다는 친구의 연락을 받았다. 사러 나선 즈음에는 응급실에 들렀다는 친구의 연락. 전자는 책을 샀고 후자는 약을 처방 받은 시점 쯤 집을 다시 나섰다. 콩국수를 먹기로 했는데 토요일 단축 영업인지 재료 소진인지 이미 식당이 문을 닫고 있었다. 조금 더 가서 냉모밀을 먹었다. 면만 삶으면 되는 메뉴 치고는 꽤 느리게 나오는 곳이다. 주방장은 마스크를 쓰지 않는다. 둘 다 저번에도 그랬다.

꽤 기다린 후 금세 먹거 나와 프랜차이즈 카페에 앉았다. 책을 읽었다. 현호정의 『단명소녀 투쟁기』(사계절, 2021). 이미지가 다채롭고 전개가 빠른 짧은 소설. 사랑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 라고 해야 할까. 사랑으로서의 죽음이나 죽음으로서의 사랑을 생각하며 읽었다. 작가가 생각한 것은 아마도 조금 다르다. 소녀와 죽음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이 점에 있어서는 작가가 말하고자 한 바를 꽤 따랐을 것이다.

잡화점에 들러 망치를 샀다. 다른 것도 하나 샀는데 뭐였더라. 드릴 비트도 필요했지만 팔지 않았다. 여전히 거실에 뒹굴고 있는 욕실 선반을 설치하는 데에 필요한 공구들이다. 집에선 괜히 목함 하나를 칠했다. 또 뭘 했지. 어쩌면 앞에 쓴 짐정리의 일부는 이 시간에 했을지도 모른다. 두세 시쯤 잤다.

2021.08.05-06.(목-금)

충주에서 회의가 있었다. 외지에서 기차를 타고 온 동료들을 제천역에서 만났다. 충주에서 차를 몰고 온 이가 우리를 태우고 이동했다. 동선이 이렇게 된 것은 내 탓이다. (제천과 충주는, 두 곳의 기차역 사이는 가깝지만) 집에서 충주의 회의장소까지 대중교통으로 가는 것은 만만찮다. 꼭 이래야 할 만큼 힘든 여정은 전혀 아니지만 동료들의 친절에 기댔다.

제천에서 점심을 먹고 충주호가 보이는 어느 카페로 이동했다. 원래는 거기서 회의를 시작할 예정이었지만 오랜만에 만났고 경치가 좋았으므로… 볕이 가라앉을 무렵(이라곤 해도 여전히 꽤나 뜨거운 시간)에 일어나 호반을 좀 걸었고 저녁을 먹고 동료의 집으로 갔다. (동료들은) 열띤 회의를 했다. 나는 머릿수만 채웠다.

전날 저녁에 휴대전화가 고장났다. 어딘가가 접촉불량이 되었는지 화면이 나오다 말다 했다. 커버를 열어 커넥터를 모두 분해했다가 다시 연결하니 괜찮아졌다, 고 생각했는데 이날 아침에 다시 화면이 검어졌다. 같은 방법으로는 해결되지 않았다. 접촉불량인 커넥터를 찾았다. 손으로 꾹 누르고 있는 동안은 화면이 들어 왔다.

종일 뒤판을 열어 둔 채로 그렇게 전화기를 썼는데, 저녁쯤이 되자 그조차도 잘 통하지 않았다. 각자 자료를 찾으며 진행해야 하는 회의였고 나는 랩탑도 챙기지 않았으므로 되다 말다 하는 전화기를 붙들고 일하는 시늉만 했다.

동료의 집에서 잤다. 아침엔 혼자 나가 집앞 강가를 잠깐 걸었다. 바쁜 사람은 먼저 돌아갔고 여유가 있는 이들은 이른 점심쯤 되는 끼니로 올뱅이해장국을 먹고 어느 공원에 들어섰다. 한 사람이 갑자기 컨디션이 안 좋아져서 공원은 둘러보지 않기로 했다. 카페에 앉아 그를 실어갈 사람을 기다렸다.

세 시 버스로 제천으로 올 생각이었지만 한 시 반 기차를 탔다. 열두 시쯤 파했으므로 더 빨라도 좋았지만 그 시간대엔 차가 없었다. 역에서 한 시간 여를 무료하게 보냈다. 꼬마문고였나 하는 서가가 있었지만 그야말로 어린이용 동화책밖에 없다시피 했다. 수학 문제 위주의 추리퀴즈집을 꺼내들었다가 금세 다시 꽂았다. KTX 잡지의 잡다한 기사를 몇 편 읽었고 대개는 멍하니 보냈다. 아침부터 전혀 켜지지 않게 된 전화기를 만지작거려 보았지만 효험이 없었다. 기차는 6분을 연착했다. 대전발 제천행. 제천이 종착역이므로 잠을 자려 했지만 겨우 잠들자 도착이었다.

역 앞에서 적당히 버스를 탔다. 이곳의 정류장에는 버스별 상세 노선도가 붙어 있지 않다. 주요 경유지만이 적혀 있을 뿐이다. 다행히 집앞까지 오는 버스였다. 이불 빨래를 돌려 놓고 느긋하게 짐을 풀고 있는데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스터디를 잡아둔 것을 잊고 있었다. 예정대로 세 시 버스를 탔다면 크게 지각했을 것이다. 시작을 20분 늦추고는 정리인지 채비인지를 서둘렀다. 저녁 먹을 시간쯤까지 스터디를 하고 저녁 먹을 시간을 넘겨 수다를 떨었다.

수다가 끝날 즈음 연락이 온 다른 친구와 또 수다를 떨다 보니 어느새 아홉 시. 근처 분식집에서 대강 먹으려고 집을 나섰는데 한참을 가서야 카드도 현금도 챙기지 않은 것을 발견했다. 집에 있던 다른 휴대전화를 들고 나온 것이 다행이었다. 급히 은행 앱을 설치했으나 본인 인증에는 신분증이 필요했다. 메신저 앱을 설치하고 몇 번의 전화 인증을 거쳐 전자지갑을 활성화했다.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사먹었다. 고기 반찬 두 가지가 포함된 것으로.

밤에는 짐을 좀 정리할까 했지만 그냥 씻고 누웠다. 새벽에 여러 번 깼다. 늦게까지 잤다.

2021.08.04.(수)

전날 드디어 글을 보냈으므로 대체로 여유롭게 보냈다. 글이 엉망이라 새로 써야 할 것 같은 위기감에 사로잡혀 있긴 했지만 시작하지는 않았다. 친구의 글을 한 편 읽었고 〈우리는 농담이(아니)야〉 감상문을 쓰다 말았다. 작업 중인 책의 원고를 반쯤 검토했다. 이렇다 할 수정은 아마 하지 않을 테고, 오탈자를 찾는 정도의 검토.

점심은 뭘 먹었더라. 저녁으로는 낯선 아파트단지 근처 상가에서 곤드레밥을 먹었다. 찬이 많이 나왔다. 파스타를 먹어볼까 하고 땡볕을 걸었으나 브레이크타임에 걸렸다. 5분 정도 남은 시점이었지만 문이 잠겨 있었고 근처를 한 바퀴 돌고 다시 오려다 발견한 곳에서 곤드레밥. 돌아오는 길에는 양과자점이라는 간판을 단 곳에서 작은 빵을 몇 개 샀다.

저녁엔 짐 정리를 아주 조금. 아주 아주 조금. 분명히 무언가 하긴 했는데 딱히 달라지진 않았다. 밤에는 산책했다. 비도 안 왔는데 허리춤 높이의 산책로 가로등마다 종종 청개구리가 붙어 있었다. 불빛에 모이는 벌레를 노린 거였을까, 벌레는 개구리가 없는 데에만 모여 있었다. 개구리들은 살갗이 말라 탁한 색이었고 하나같이 기운이 없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