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17.(일)

여섯 시에도 깼고 여덟 시에도 깼고 열 시에도 깼다. 그 사이에 몇 번 더 깼을지도 모른다. 몇 번이고 다시 잠든 것은 전전날 밤을 샜고 전날도 길게는 못 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몇 번이고 다시 깬 것은 전전날 밤을 새고도 마감하지 못한 글을 여전히 쥐고 있었기 때문이다. 최종적으로는 열한 시쯤 깼고 한동안 기운을 못 차리다 열두 시쯤 일을 시작했다. 두 시에 송고했다. 그리고는 비빔면으로 요기했다. 단호박도 익혀 먹었다. 아닌가, 비빔면을 먹고 나서 일을 시작했나, 오늘도 일과가 아리송하다.

오후에는 뭘 했더라, 누워서 보낸 시간이 꽤 될 것이다. 인터넷 공유기 택배 상자를 비롯해 재활용품 이것저것을 내다 놓았다. 빨래를 돌렸고, 그러던 차에 어제 급히 이은 랜선에 창을 못 닫게 된 것을 떠올리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원래 선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선에 문제가 생긴 게 아니라 근처에 굴러다니던 ― 아무데에도 연결되어 있지 않은 ― 선을 공유기에 꽂았던 것을 깨달았고 원래 선을 제대로 연결했다. 제일 느리고 제일 싼 상품이라 그래봐야 얼마 안 되지만, 아무튼 제 속도가 나온다.

어제 다녀온 전시 감상문을 썼다. 쓰던 중에 저녁을 먹었다. 메뉴는 김치찌개. 귀찮아서 간만에 계량컵 없이 밥을 했는데, 양이 적었다. 결국 소면을 삶아 남은 찌개에 말아 먹었다. 그리고는 또 한동안 누워 있었다. 뒤늦게 설거지를 하려고 보니 그새 잘 말라붙어 버린 터라 물을 부어 두고는 감상문을 마저 썼다. 중간에 딴짓을 좀 한 모양이다, 평소에 비해 오래 걸렸다.

점심을 하려다 냄비 코팅이 꽤 상해 있는 걸 발견했다. 설거지를 제대로 안 해 무언가 붙어 있는 거려니 하고 새로 닦았는데 그대로길래 힘을 주어 한 번 더 닦았지만 여전했다. 손끝으로 만져보니 파여 있었다. 코팅이 상한 냄비는 버린다. 이제 냄비를 새로 사야 하는데, 뭐가 됐든 무언가 사는 건 너무 귀찮은 일이다. 한동안은 프라이팬에 국을 끓일지도 모른다. 몇 년 전 언젠가는 몇 달을 그렇게 지냈다. 지금은 그때보단 요리를 열심히 하는 편이므로 그만큼 오래 가지는 않겠지만. 냄비는 손잡이를 분리해 두었다. 코팅팬은 금속으로 분리배출하면 되는 걸까.

오늘 언젠가는, 오래 전 어느 농성장에서 종종 보았던 이인 공기의 단편 〈방이 아닌 집〉을 읽었다. 몇 해 전에 산 〈일리 없는 세상〉을 꺼내 두었다.

설거지를 하고 자야 한다.


그래도 한동안은 컴퓨터 앞에 앉아 있은 것 같은데 한 일이 너무 없어 의아했다. 알고 보니 일기 두 편을 썼다. 새벽에 자고 오후에 일어나기를 반복하다보니 시간감각이 엉망이다.

2021.10.16.(토)

대여섯 시간을 자고 열 시쯤 깼다. 좀 뒹굴거리다 열한 시쯤부터 씻고 어쩌고를 했을 것이다. 체크아웃 시각, 정오를 3분 남기고 숙소를 나왔다. 점심은 숙소와 조금 떨어진 ― 전날의 서점과 가까운 ― 곳에서 채식 메뉴가 있다는 멕시코 음식점에서 먹었다. 이런저런 채소와 곡물을 또띠야로 싼 것. 소스에 유제품이 조금 들어간 것이었는데 다른 걸로 바꾸지 않고 먹었다. 방역 수칙 중 하나인 면적 당 인원 제한을 철저히 지키는 곳이었는지, 빈자리가 있었는데도 한참 기다려서야 들어갈 수 있었다.

길을 건너고 골목골목을 걸어 서점에 다시 들어섰다. 이번엔 몇 분 일찍 도착했는데도 문이 열려 있었다. 서가를 한참 노려봤다. 전혀 알지 못하는, 하지만 제목이 눈에 들어 온 책 두 권을 샀다. 두 권 다 시집이다. 이제니의 『있지도 않은 문장 은 아름답고』와 박소란의 『있다』. 전자는 동명의 작품을 읽어보고 골랐다. 후자는 동명의 작품은 실려 있지 않아 아무데나 펼쳐 읽고 골랐는데 마침 “있다”는 말이 들어가 있었다. (물론 어지간하면 한 번쯤 들어갈 만한 단어지만.)

결제를 하려는데 카운터에 (이제 구할 수 없는 줄로 알았던) 친구의 책 『mori in progress: 까마귀의 모음 1집』이 놓여 있어 그것까지 담았다. 좋아하는 책이다. 물론 이미 다 읽었지만 내 것을 다른 친구에게 선물한 터라 새로 한 권 사두기로 했다. 그렇게 산 세 권과 얻은 한 권, 원래 가방에 있었던 다른 한 권. 다섯 권의 책(과 다른 이것저것)을 짊어지고 또 자리를 옮겼다. 가는 길에 처음 보는 서점을 마주쳐서 또 들어갈 뻔 했지만 그럴 시간도 책을 들 힘도 없었으므로 어렵지 않게 단념했다.

조금 걷고 한동안 버스를 타고 또 조금 걸어 도착한 곳은 전시 《몸이 선언이 될 때》. 어쩌다보니 셰어 동료들과 함께 나도 참여하게 된, “‘낙태죄’ 뒤에 존재한 위계와 배제의 문제, 음지화되어 있던 다양한 몸의 경험들, 알 기회를 뺏겼던 건강권과 연결된 정보, 견고한 편견에 눌려 차마 말하지 못했던 여성 및 소수자의 섬세한 감정 등을 포착”하는 전시다. 작은 공간이지만 영상이 여럿 있어 한 번 쭉 보는 데만도 한 시간이 넘게 들었다.

약속해 둔 (나보다는 조금 일찍 도착한) 친구와 오랜만에 만나 잠깐 인사를 하고 각자 전시를 본 후에 다시 만났다. 카페에 들어가 안부를 좀 나누었다. 홍차를 내세운 카페라, 친구는 감기차, 나는 홍삼라떼를 마셨다. 쌀 브라우니인가 하는 것도 먹었는데 떡 같은 식감이었다. 모두 친구에게 얻어 먹었다. 나는 『있지도 않은 문장 은 아름답고』를 선물했다. 친구는 카메라로 나를 한 컷 찍었다.

다시 버스를 타고 어제의 친구를 만났다. 길이 막히는지 버스가 한참만에 도착했다. 내가 탄 후로는 큰 정체 없이 움직였다. 친구를 만나 집을 하나 더 보고 저녁을 같이 먹었다. 또, 순대국. 고깃집 사이를 한참 두리번거리다 멀리서 두부촌인가 하는 간판을 발견해 다가갔는데 두부 요리를 파는 식당이 아니라 그냥 두부를 파는 곳이었다. 그렇다고 이런 식으로 곧장 순대국으로 점프할 필욘 없는데…. 아무튼 잘 먹었다. 『있다』를 선물했다.

터미널에 도착한 것은 출발 삼십 분 전. 화장실도 가고 차도 마시고 하며 시간을 보내고는 버스에 앉아 얼마 지나지 않아 잠들었다. 제천에 들어서서야 눈을 떴다. 겨우 열 시 반이지만 시내버스는 끊긴 뒤였고 택시를 다니지 않았다. 호출에 응하는 택시도 없었다. 집까지 걸었다. 짐을 풀고 씻고 어쩌고. 그 전엔 생각보다 일찍 도착한 공유기를 설치했다. 케이블 모뎀과 공유기를 잇는 선이 말썽을 부려 다른 선을 꽂았다. 그 선은 창을 통과해야 해서 창을 제대로 닫지 못하게 되었지만 제대로 작동했다. 늦지 않게 누웠고 오래지 않아 잠들었다.

2021.10.15.(금)

잠깐 편의점만 다녀오고 꼭 시작해야지, 라고 썼지만 이십 분을 딴짓하다 겨우 일어섰다. 다행히 그러고 나서는 큰 지체 없이 일을 시작했다. 한 시간 가량 한 후에는 샐러드를 만들어 먹었다. 오늘내일은 집을 비울 것이므로, 그제 생각없이 사버린 대용량 샐러드팩을 늦지 않게 먹어야 했다. 역시 오래 가지 못할, 조금 남은 버섯을 썰어 볶고 두부를 잘게 썰어 튀겨 곁들였다. 두부는 이번에도 향이 묘했지만 맛은 괜찮았고 배탈도 나지 않았다. 밤 동안 샐러드를 두 번 해 먹을 생각이었으나 한 번에 다 먹었다. 두 그릇을 따로 만들긴 했다, 연이어서.

그리고는 또 한 시간 정도 한 후에 비빔면을 해 먹었다. 설거지는 곧장 했던가 또 한동안 일한 후에 했던가. 재활용품을 내어 놓으러 나갔다 오기도 했다. 샐러드를 먹으면서는 공중파 예능 프로그램을, 비빔면을 먹거나 설거지를 하면서는 미국 시트콤을 봤다. 자료를 찾아 인터넷과 책장을 뒤지는 데에도 시간을 좀 썼다. 이런 데 쓴 시간을 빼고 일한 시간 ― 일한다고 앉아서 트위터 본 시간을 포함해 ― 만 생각하면, 계획했던 것의 80% 정도 효율로 일했다. 집을 나서기까지 한 시간 정도 여유가 있지만 제때 마칠 수는 없다는 뜻이다. 고로, 먼저 접고 일찍 나서기로 했다. 오늘이 마감이지만 늦을 수도 있다고 미리 언질해 두었으므로 담당자에게 아주 큰 일은 아니리라고 믿으며.


저기까지 쓴 것이 네 시 오십일 분의 일이다. 곧장 샤워를 하고 짐을 챙겼다. 다섯 시 반쯤 터미널을 향해 출발. 아직 어두웠고 길에는 행인이 없었다. 시내 구간에 들어서면서 처음으로 마주친 사람은 환경미화원. 조금 더 가서는, 아직 버스가 올 기약이 없는, 버스 정류장에 앉아 있는 사람 하나를 지나쳤다. 터미널 근처에서는 (밭일할 때 흔히 쓰는) 차양을 두른 모자에 헐렁한 작업복, 고무 장화 차림을 하고서 어느 대문 기둥에 발을 얹고 스트레칭을 하는 사람을 보았다. 피부는 거의 보지 못했지만 초로, 적어도 중년이라는 느끼이었는데 아주 유연했다. 터미널 앞 편의점 테이블에도 사람이 하나 앉아 있었다. 편의점에서 주전부리를 사 먹었다.

여섯 시 이십 분 차니까 도착하면 이십 분이나 남겠네, 했는데 알고 보니 십 분에 출발하는 차였다. 십오 분쯤 남기고 도착해 요기를 하고 승강장에 들어선 것이 여섯 시 삼 분전쯤. 벤치에 앉아 삼 분을 보내고 여섯 시 정각, 그러니까 정확히 출발 십 분 전이 되자 버스에 시동이 걸렸다. 승객은 대여섯 명 정도. 밤을 샜지만 잠이 오지 않아 두 시간을 뜬눈으로 앉아 있었다. 서울에 내려서는 우동을 사먹었다. 옛날 우동이라는 이름에 ― 한국 우동의 “옛날”은 언제일까 ― 마늘 플레이크가 올라가 있어 옛날에도 저렇게 먹었을까 생각했는데 자세히 보니 흔히 쓰는 튀김 고명이었다. 다른 데서 보던 것보다 조금 더 납작하고 색이 짙었다.

일곱 시 이십 분 차를 타려다 여섯 시 십 분 차를 탔으므로 약속 장소에도 한 시간 일찍 도착했다. 약속을 여유 있게 잡아 두었으므로 약속 시각까지는 한 시간 반 가까이가 남았다. 친구에게 도착을 알리는 대신 동네를 구경하기 시작했다. 아무 골목이나 발을 들이밀고 걷다가 눈에 띄는 곳에 카메라를 디밀었다. 도착했을 때부터 비가 조금 날렸던가, 아무튼 좀 돌아다니다 보니 빗방울이 굵어졌다. 골목골목을 거슬러 약속장소인 지하철역으로 돌아와 근처 카페에 들어갔다. 이미 비는 다시 잦아든 뒤였지만.

단 커피를 주문하고 앉아 전화기를 만지작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친구는 약속 시간에 맞춰 도착했다. 용무는 친구의 집 구하는 여정을 돕는 것. 친구가 알아둔 부동산 중개사 사무소에서 소개하는 집들을 돌며 옆에서 (조용히 마음으로만) 힘을 보탰다. 오전 오후를 모두 그 일로 보냈고, 점심께에는 서점에 다녀왔다. 강좌 수강신청 선착순으로 당첨된 책을 수령하러였는데 오픈 시각을 조금 넘기고 도착했지만 문이 닫힌 채였다. 종종 제시간보다 늦게 여는 곳이라 미리 공지를 확인했는데도. 다시 한 번 공지 게시판을 열었더니 개점 시각 이십 분 전쯤에 올라온 글이 있었다. 두 시간 정도 늦어지게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점심에는 서점 근처의 중식당에서 채식 짜장과 탕수버섯을 먹었다. 조금 남은 시간 동안 작은 서점 하나를 구경한 후 남은 집 구경을 마저 했다. 그렇게 오후 일정까지 마치고는 초저녁이라기에도 조금 이른 시각에 숙소에 들어가 누웠다. 두 시간 정도 자고는 피자를 사다 저녁을 먹고 다시 누웠다. 그리고는 잠들지 못했다. 또, 네 시까지였나 다섯 시까지였나. 그간 보던 ― 이미 몇 번을 봤다는 그 ― 시트콤의 마지막화까지 다 보았다. 마지막 시즌을 한 바퀴 돈 것이다. 또 잠들지 못하는 날이 있다면 이전 시즌으로 거슬러 올라가겠지.


샤워를 하다 피를 봤다. 면도기에 상처가 난 것이다. 면도날이란 예리하여 아주 깔끔한 상처를 내므로, 그다지 아프지는 않다. 이날은 1cm 조금 넘게 베였다. 모공이 부어 있었는지 다른 세 곳에서 점점이 피가 배어 나왔다.

2021.10.14.(목)

기깔나게 하루를 날려 먹었다. 일을 안 했다는 뜻이 아니라 ― 물론 안 하긴 했다 ― 쉬거나 놀거나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일을 할 생각이었지만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섯 시쯤 한 번, 일곱 시 반쯤 한 번, 열 시 반쯤 한 번 깼다. 열두 시가 좀 지나 일어났다. 씻고 어쩌고 하니 금세 한 시. 밥을 해 먹으려다가 시간을 아껴 일하기로 하고 집을 나섰다. 시내 쪽으로 한참을 가다가 괜히 발길을 돌려 반대쪽 주거 지역으로 갔다. 일대를 배회하다 베트남 음식점에 들어가 태국 음식(이거나 대충 비슷한 것)을 먹었다, 똠얌꿍 국수. (실은 상호엔 베트남이란 말이 들어가지만 동남아 음식점을 표방하는 업체다.)

그리고는 카페에 앉았다. 일기를 쓰고 가계부를 정리했다. 또 뭘 했지, 그래도 한동안 앉아 있었는데 별일 하지 않았다. 평소에 앉는 일하기 좋은 높이의 테이블에 사람이 있어서 슬펐고 앱으로 주문하다 한 번 결제 오류가 나서 슬펐고 다시 주문하면서 제대로 안 보고는 뜨거운 걸로 시켜서 슬펐다. 대각선 끝에 있는 테이블이 시끄러워서 슬펐다.

주로 양육을 화두로 이런저런 지인들의 이야기에 열중하고 있었다. 타지의 어느 대학에 갔다가 아이들 기가 세서 같이 못 지내겠다며 수능을 다시 치고 집과 같은 지역권의 다른 학교로 갔다가는 그마저 그만 두고 아르바이트로 번 돈을 모아 미국 일주에 나섰다가 어찌저찌 천직을 찾았다는 이의 이야기가 들렸다. 나중에는 스타크래프트 맵핵 같은 것에 비유해 가며, RPG 게임 매크로를 종일 돌리는 이의 이야기를 했다.

내 바로 뒤에는 초등학교 저학년 쯤 되어 보이는 이가 혼자 앉아 있었다. 자그마한 동네 카페, 같은 곳이 아니므로 흔한 풍경은 아니었다. 예의 테이블에 앉은 이들 중 누군가의 아이인 모양이었다. 보호자들과 두세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앉아, 그는 조용히 있었다. 무엇을 하는지까지는 보지 못했다.

결국 성과 없이 일어나 귀가했다. 와서도 주로 책상에 있었지만 별것 하지 않았다. 오는 길에는 지난 주에 산 카메라의 판매자에게 테스트를 마쳤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그제였나, 테스트 해보셨냐는 메시지를 받아 배터리가 오는 대로 알려드리겠다고 답했는데 하루를 더 묵힌 셈이다. 집에 와서는 인터넷 공유기를 주문했다. 지금도 쓰고 있지만, 공유기가 최근에 오락가락하기 시작했다. 컸다 켜면 대개는 괜찮아지므로 평소라면 ― 그러니까 재작년이나 작년 초쯤이었다면 ― 그냥 쓰고 정 안 되면 휴대전화 인터넷으로 때울 만한 상태지만 화상회의가 잦은 시절이므로 새로 사기로 했다. 원래 쓰던 것보다는 조금 좋은 것을 샀다.

저녁은 집에서 먹었다. 밥을 안치고 어제그제 먹고 남은 된장찌개와 된장국을 데웠다. 김치와 명란젓을 썰고 두부를 삶았다. 두부는 살짝 상한 것도 같은 향이었지만 나는 새로 뜯은 두부에서도 종종 비슷한 느낌을 받으므로, 그리고 맛은 멀쩡했으므로, 그냥 먹었다. 그것이 두세 시간 전의 일인데 아직 배탈이 나거나 하진 않았다. 밥 먹기 전에 돌린 빨래를 널고 설거지를 하고 걷은 빨래를 갰다.

시내까지 산책을 다녀왔다. 오늘이 시한인 쿠폰으로 커피를 샀다. 텀블러를 가져갔더니 점원이 할인이 어쩌고 사이즈 업이 어쩌고 하며 용량을 물었다. 모르겠다고 했더니 옆에 있던 계량컵으로 물을 받아 부어 보았다. 큰 사이즈도 다 들어간다며 200원을 추가해 사이즈 업을 하겠냐고 물었다. 큰 걸로 하겠냐고 바로 물었다면 그냥 기본 사이즈로 달라고 했을 텐데, 생각하며 그러겠다고 했다.

카드로 200원을 결제했다. 계량컵은 그리 깨끗해 보이진 않았는데, 다 보이는 데 둔 걸 보면 뭐가 묻은 게 아니라 착색된 거겠지. 텀블러에 음료를 붓고 얼음을 담는 모습 역시 다 보였다. 입구에 부딪고는 들어가지 못한 얼음들이 얼음통으로 다시 떨어지는 모습이. 이거야 씻어서 가져간 거지만 씻지 않은, 혹은 대강 헹구기만 한 텀블러였어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겠지.

오는 길에는 잠깐이지만, 그래봐야 도로와 몇 미터 떨어지지 않은 구간이지만, 논밭 사이도 걸었다. 별을 보거나 달을 보거나 도로 반대 방향의 멀리서 퍼지는 인가의 불빛을 보거나 했다. 개가 짖는 소리도 들었다. 고양이도 만났던가. 그건 낮이었나. 기억은 안 나지만 벌레 소리도 들렸을 것이다. 내일이 마감이므로 이제 정말로 일을 시작해야 한다. 잠깐 편의점만 다녀오고 꼭 시작해야지.

2021.10.13.(수)

일찍 잘까 싶다, 고 썼고 일찍 누웠지만 결국 서너 시쯤 잠들었다. 열한 시쯤 일어났나. 샤워를 하고 애호박과 양파와 버섯과 두부와 김치를 썰었다. 마늘 두 알도 다졌다. 양파버섯볶음과 된장찌개, 김치전을 했다. 김치전은 대실패. 김치국물을 듬뿍 넣었으므로 맛이야 멀쩡했으나 전도 떡도 죽도 아닌 무언가가 나왔다. 먹고는 다시 누웠다.

오후엔 일이 있어 멀리 나갔다가 뜻하지 않게 마트에서 장을 보고 돌아왔다. 단호박과 샐러드거리, 또 뭘 샀더라, 아무튼 찬거리를 좀 샀다. 저녁으로 먹을 초밥도 샀다. 계획 없이 갔으므로 이번에도 장바구니를 가져가지는 않았고 500원이면 살 수 있었으므로 잠시 고민했다. 다행히 택시로 귀가할 예정임이 떠올랐다. 박스에 차곡차곡 담아 무릎에 안고 택시를 탔다.

저녁을 먹고도 이렇다 할 일은 하지 않았다. 토요일에 주문한 카메라 배터리가 와 있는 걸 집을 나서면서야 발견해서 카메라 테스트도 좀 했다. 최종적으로는 현상해 봐야 알 일이지만 일단 대강 잘 작동하는 것 같았다. 그 외에는 써야 할 글 생각을 좀 하다가 웹서핑을 좀 하다가 그랬다. 그런데 왜 두 시가 다 돼서 누웠을까.

다시 네 시에 자는 게 패턴이 된 모양이다. 잠이 오지 않아 뒹굴다가 배가 고파 일어나 비빔면을 해 먹었다. 다시 누웠지만 역시 잠은 들지 않았다. 눈 감고 뒹굴다가 시트콤 보다가를 반복했다. 마지막으로 확인한 시각은 세 시 오십 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