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별기억추모

떠난 이를 기리는 방법을 생각하던 중에 아래의 편지를 읽었다. 계정을 팔로하고 있으니 아주 우연은 아니지만, 올라오는 게시물은 모두가 추모와 기억에 관한 것이므로 더더욱 그렇지만, 평소처럼 대강 넘기던 중에 하필 하나 골라 읽은 것이 이것이었다.

편집국 여러분께

제가 회원으로 있는 마이애미 아미고스 대표 릭 로드리게스 씨의 제안으로 여러분께 이 편지를 씁니다. 세상을 떠난 제 동생, 엘리어 대컬의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엘리어는 지난 봄에 아미가 500 컴퓨터를 샀습니다. 에이즈로 죽음을 맞기 겨우 넉 달 전이었죠.

아프기 전엔 보스턴에서 몇 년을 지내며 보스턴시민심포니, 북부연안심포니오케스트라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했고 유망한 신예 작곡가이기도 했습니다. 패션디자인을 전공했고 그림 실력을 키웠죠. 사진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작업에 사진을 넣기도 했습니다. 과학소설을 많이 좋아해서, 그런 데서 가져온 소재를 활용하곤 했어요.

병이 깊어지면서 저와 어머니가 돌보아줄 수 있는 마이애미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고, 병 때문에 창작은 거의 포기해야 했습니다. 두 해 동안이나 병에 시달리면서 컴퓨터를 갖고 싶어하게 되었어요. 집에 갇힌 채로라도, 침대에서 내려올 수조차 없게 되더라도 창의력을 펼칠 수 있는 길을 찾았던 거죠.

엘리어는 금세 복잡한 컴퓨터를 다 익혔을 뿐 아니라 엄청나게 아프고 마비도 급격히 심해지는 와중에도 너무도 아름다운 자기만의 그림을 그리고 곡을 썼어요. 과학소설과 미래에 대한 엘리어의 사랑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 많아요.

동생은 삶을 앗아가려 드는 병마의 공격에 굴하지 않고 늘 미래를 생각했어요. 앞으로 할 작업 계획을 잔뜩 세웠죠. 더 이상 글자를 쓰지 못하게 된 뒤에도 누운 채로 마우스를 움직이며 밤늦게까지 작업을 계속 했어요. 아프다는 것도 잊어버린 듯 말이에요. 한여름 무렵에는 입원을 했고, 1988년 8월 18일에 죽음을 맞았습니다.

아픈 동생을 돌보는 일은 주로 제가 맡았습니다. 그는 제게 동생이기도 했지만 더없이 아끼는 친구이기도 했어요. 저도 음악과 미술에 관심이 많아서, 동생의 작품이 얼마나 빼어난지를 잘 알았습니다. 하지만 엘리어가 세상을 떠난 후 그것들은 내내 컴퓨터 속에 갇혀 있습니다. 제겐 컴퓨터를 배울 시간이 없었거든요.

엘리어를 돌보는 데에 제 모든 시간을 들여야 했었습니다. 어디에 도움을 구해야 할지를 몰랐던 저는 그의 책에서 소프트웨어 제작자의 이름과 주소를 찾아 어디라도 좋으니 마이애미에서 사용법을 배울 수 있는 곳을 알려달라는 편지를 썼어요. 마이애미 아미고스라는 곳을 알려주며 로드리게스 씨에게 연락해 보라는 답장을 받았고 그렇게 했습니다. 그 분의 초대로 모임에 참하고 회원가입도 했고요. 모임에서 많은 분들이 다가와 도움을 주신 덕에 이제 동생의 작업물을 열 수 있습니다. 다음 모임에 동생의 그림을 몇 점 가져가 보여 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엘리어의 작업을 보존하고 에이즈 연구 자금 모금에도 활용하는 것이 제 최종 목표입니다. 동생이 얼마나 용감하게 싸웠는지를 아는 몇몇 친구들이 기금 설립에 힘을 보태주기로 했습니다. 저는 동생의 작품으로 보답할 거고요. 마이애미 아미고스 덕분에, 이제 그 목표를 이룰 수 있을 것 같아요.

1998년 12월 12일,
마음을 담아
사라이 대컬 드림.

《아미가 월드Amiga World》 1989년 3월호. 인스타그램 The AIDS Memorial 게시물(1/2, 2/2)에서 재인용.

딱히 대단한 생각을 한 건 물론 아니고. 죽은 이의 유산에 관해 생각하던 중이었다. 고인이 아주 사적인 삶을 살았다면, 그래서 남은 자가 그의 삶을 나누고 싶을 때 아주 내밀한 기억을 말하는 수밖에는 없다면 그 추모는 어떤 기분일까. 남은 자에게는 너무도 소중하고 다정한 사람이었지만 그 소중함과 다정함이 남들에게 전해지기에는 어려운 것이라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다른 이들에게서 잊혀지는 것을 참을 수 없다면.

반대로 저 편지를 쓴 이가 그리는 그의 동생처럼, 고인이 타인과 나누기 위해 남겨둔 것이 있다면 또 어떠할까. 나눌 길을 덜 고민해도 된다는 점에서는 어쩌면 축복이겠지만 나누어야만 한다는 점에서는 어쩌면 짐일 것이다. 보여주고 들려주기 위해 만든 것들을 보여주고 들려 주었는데도 다른 이들의 마음에 자리 잡지 못하고 또 잊혀진다면. 작가 자신이 겪었을 좌절보다 더 큰 좌절을, 대신 나눈 남은 이가 겪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 모든 것이, 누구를 위한 일일까. 잡다한 생각들의 틈사구니에 그런 생각이 끼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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