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때와 같이 이어폰의 볼륨을 최대로 높힌다. 고막을 자극하는 묵직한 스타카토에 발걸음도 휘청거린다. 3월 끝물의 한낮을 비틀거린다. 3월은 끝나 가지만 아직 봄은 오지 않았다. 더 이상 아침에 춥지 않고 여기저기서 꽃들이 피고는 있지만 아직 봄은 오지 않았다. 아침저녁으로 학교와 집을 오가는 나에게 아직 봄꽃들은 인사해 주지 않는다. 나와 마주치는 건 한밤의 냉기에 오그라든, 져버린 꽃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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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7월 11일 토요일
친구가 토요일 집회에 가느냐고 물어왔다. 무슨 집회냐고 되물었다. 세월호라고 했다. 찾아보니 광화문 광장에서의 농성이 1년을 채웠다고 했다. 세 시였나, 네 시였나. 1주년 기념 집회를 하기엔 이른 시각이었지만 공지에 맞추어 광화문 광장에 갔다. 친구는 급한 일이 생겨 오지 못한다고 했다. 사전 집회인 모양이었다. 내내 지신밟기만을 했다. 저녁에 문화제가 있을 거라고 했다. 상쇠는 천막들을 하나하나 돌며 공간을 …
“사회적 약자”의 자리를 빼앗아 그 자리에 또 다른 “사회적 약자”를 가두었다
지난 5월 21일, 서울남대문경찰서 앞에는 한 장의 공고문이 붙었다. 6월 28일자 집회 신고는 5월 29일 0시부터 가능하며 경찰서 정문 옆 경사로에서의 대기 순번대로 신고서를 접수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6월 28일은 제 16회 퀴어문화축제의 퀴어퍼레이드가 예정되어 있는 날이다. 보수 개신교회들에서, 퀴어퍼레이드 저지를 위해 집회를 열겠다고 선언한 날이다. 5월 21일은 퀴어퍼레이드 부대 행사에 대한 서울광장 사용승인이 나온 바로 …
1년
1년 전 오늘, 나는 사무실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무엇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바빴던 모양이다. 점심을 같이 먹은 동료들도 그랬던 것 같다. 저녁이 되어 퇴근할 즈음까지, 나는 진도 바다에서, 그리고 서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몰랐다. 사건 속보도, 어이 없는 오보도 모두 지나가고 수이 입 밖으로 내진 못해도 이미 늦은 것은 아닐까 생각하는 이들이 늘어갈 때쯤에야 …
포이동 266번지
만으로 3년 반쯤 되었나보다, 포이동 266번지에 다녀 왔다. 2011년 화재를 겪은 후 우여곡절 끝에 집 몇 채를 새로 지었다. 그 과정에서 마을 한쪽에는 공터가 생겼고 그곳은 주차장이 되었다. 이따금 그 공간을 빼앗으려 압박을 가해오던 강남구청에서 최근에 용역 업체와 계약을 맺었다고 한다. 하루에 두어 번씩 그들이 찾아 온다고 했다. 그들을 막을 이들을 다시 모으려, 오늘 문화제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