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들의 영광

그냥 사람들이랑 술을 마시며 떠들다가 문득 떠올랐다. 구세대의 사람들이 유신 시절에 향수를 느끼는 건 어쩌면, 그 시절을 거치면서 비로소 먹고 살 만하게 되었다거나 하기 때문은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그저 그 시대만이, 별달리 가진 것 없는 사람들에게도 그럴싸한 이름이 주어졌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삶에 명분이 주어지는 흔치 않은 시대 아닌가. 단지 먹고 살기 위해 … [읽기]

채식주의자의 하루

* 학교에서 밤을 샜다. 새벽에 학교에서 내려가, 아침으로 순대국밥을 사 먹었다. * 점심으로는 조기구이를 해 먹기로 했다.  냉동되어 있는 조기를 녹여 두려, 부엌에 갔다. * 이틀 전, 부엌에서 악취가 났다. 음식물 쓰레기에서 나는 냄새려니 하고, 음식물 쓰레기 봉투를 내다 버리고 창문을 열어 두었다. 그런데 오늘, 여전히 같은 냄새가 나고 있었다. 창문이 작아서 역부족인가보다 싶어 뒷문도 … [읽기]

끌려 나오고 끌려 들어가고

쿠키를 굽고 있다던 친구네에 가려던 참이었다. 같이 가기로 한 다른 친구와 만나기로 한 시각이 다가올 즈음 한일병원의 소식을 들었다. 노조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갑자기 해고된―그들의 형식 내에서는, 고용 승계가 되지 않은―식당 노동자들이 점거 농성을 벌이고 있는데 구사대와 경찰의 탄압으로 위험한 지경이라고 했다. 오래 전에 잡은 약속인데다 친구가 손님 맞을 준비까지 하고 있대서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약속을 … [읽기]

학교 단상

* 학교에는 자하연이라는 연못이 있고, 그 앞에는 자하연 식당이 있다. 외부 업체에서 20년, 혹은 30년 쯤 운영해 온 곳이다. 아니, 그런 곳이 있었다. 실장이라는 사람은 그곳에서 청춘을 보냈다고 했다. 옆에 딸려 있던 이름 없는 작은 카페―학생들은 장난 삼아 자하벅스라고 불렀던―도 함께 사라졌다. 식당이 있던 자리에는 식당이, 카페가 있던 자리에는 카페가 새로 생긴다. 공모로 정한 새 … [읽기]

선거 기간의 어느 저녁

살던 하숙집 주인이 집을 팔고, 새 집주인은 건물을 헐기로 했다는 통에 엉뚱하게도 쫓겨나게 생긴 친구가 방을 구하러 다니고 있다. 혼자 다니기 심심하다길래 산책 삼아 같이 전단지 붙은 전봇대를 돌고 있는데 누군가가 다가와 방을 구하냐고 물었다. 부동산 중개업자였다. 원하는 월세를 대니 어디론가 데려갔는데, 다 비슷비슷하게 생긴 건물들 사이에서 자신이 보여주려던 방을 못 찾았다. 건물 세 곳을 …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