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기간의 어느 저녁

살던 하숙집 주인이 집을 팔고, 새 집주인은 건물을 헐기로 했다는 통에 엉뚱하게도 쫓겨나게 생긴 친구가 방을 구하러 다니고 있다. 혼자 다니기 심심하다길래 산책 삼아 같이 전단지 붙은 전봇대를 돌고 있는데 누군가가 다가와 방을 구하냐고 물었다. 부동산 중개업자였다. 원하는 월세를 대니 어디론가 데려갔는데, 다 비슷비슷하게 생긴 건물들 사이에서 자신이 보여주려던 방을 못 찾았다. 건물 세 곳을 찔러보고도 실패한 그는 결국 외진 골목에 우리를 두고 가 버렸다.

건물을 찾아 가던 중에 지나친 어느 모퉁이에는 서울 시장 선거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나이 지긋해 보이던 그는 포스터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저 박원순이는 구의원 한 번 안 해 본 사람이 서울 시장에 나오다니 저게 말이 돼, 라며 열을 냈다. 서울시장은 대한민국 소통령이라며, 오천만 인구 중 이천오백만이 서울을 중심으로 하는 유동인구라고, 이 살림이 보통이 아닌 거라 국회의원이든 뭐든 해 보고 와야 한다고, 한참을 말했다.

입법부에서 의원으로 일하는 것이 어쩌다 행정부 수장의 필요 경력이 되었을까, 서울시 살림이 큰데 연습 삼아 한국 살림을 하는 국회의원이라도 하라는 건 대체 무슨 말일까, ‘살림’이 그렇게 중요하면 어디 종가 며느리를 시장으로 뽑지, 경력이 중요하면 투표 말고 공채로 하자고 그러지 왜, 하는 온갖 생각을 하며 그를 좇아 갔다.

그냥 이런저런 생각들을 흘려 보냈다.

의회가 정한 것을 행정부가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찾아 집행하는 게 제일 나을 것 같다는, 예전에 잠깐 했던 생각도 언뜻 스쳐 보냈고, 살림을 그렇게 만만하게 보는 남성들이 이런 데엔 또 그 말을 가져다 쓴다는 생각과 여성을 그렇게 만만하게 보는 남성들이 보수 정당의 여성 후보는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궁금증도 흘려 보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배일도 후보 생각도 잠시 했다.

그가 첫 번째 건물에서 허탕을 칠 즈음, 투표 제대로 해, 학생들, 하는 말을 던졌는데, 거기다 대고 웃으며 저 서울시민 아니에요, 하는 답을 할까 말까 한참을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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