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노인이, 자신의 장례식을 치를 이들을 위한 국밥값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고 들었다. 면식이 있기는커녕 빈소의 위치를 알아내기도 어려울, 기사를 통해서만 접한 사람이었지만 조문을 하고 싶었다. 평소라면 먹지 않는 육개장과 편육, 그런 것이라도 자리를 차지하고 꾸역꾸역 씹어 삼키고 싶었다. 이튿날이었다. 그가 남긴 돈이 십만 원이라는 사실을 안 것은. 장례식에 찾아올 사람들을 ― 그런 이가 있는지조차 알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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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아렌트, 세월호
얼마 전에 구글에 들어 갔다가 우연히 한나 아렌트 탄생 108주년 기념일임을 알게 되었다. 세월호에 대해서는 여전히 이런 저런 말을 하기 어렵지만, 예전에 읽었던 한나 아렌트의 문장 몇 줄과 함께 세월호가 떠올랐다. 그래서 썼다. 아이작 디네센(Isak Dinesen)은 한 인터뷰에서 “한 친구는 저에 대해 제가 모든 슬픔이 그것을 이야기로 만들거나 그에 관해 이야기함으로써 견뎌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
A의 입대를 전송했다
얼마 전 A의 입대를 전송했다. 춘천의 102보충대. 나는 군인이었던 적이 없으므로, 군 부대에 들어가 본 것도, 그리고 (용산 대로변에 있던 미군부대를 제외하면) 군부대에 그만큼 가까이 가본 것도 처음 있는 일이다. 아직 군복은 입지 않았지만, 그만큼 많은 군인들을 본 것도 처음이었다. 그만큼 많은 남성들 사이에 서 보는 것도 아주 오랜만의 일이었다. 무서웠다. 군대라는 것도, 징병이라는 것도, …
돈과 방 상태는 반비례한다
얼마전 A와 월세 이야기를 하고 있던 중이었다. A는 “돈과 방 상태는 반비례하니까 어쩔 수 없지”라고 말했다. 이해하는 데에는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월세가 높을수록 대개 방은 좋아지니까. 비례를 반비례로 잘못 말한 것 아니냐고 물으려다 깨달았다. 이때의 ‘돈’이란 금액이 아니라 부담으로 측정된다는 사실을. 정확히 말하자면, 월세에 대해 갖게 되는 마음의 상태와 방의 상태(혹은 방에 대해 갖게 되는 …
을지로, 충정로, 아현, 오줌과 담배
을지로에서 새벽까지 술을 먹었다. 가본 적 없는 골목을 나서 집으로 돌아오면서는 잠깐 길을 잃었다. 빙빙 돌다 접어선 아는 길을 타고 집을 향했다. 자전거에 몸을 싣고 있었다. 소변이 마려워 충정로 역에 들어갔다. 지하도 입구는 열려 있었고 불도 켜져 있었지만, 화장실이 있는 방향으로 들어가는 길에는 셔터가 내려져 있었다. 셔터 앞에는 노숙인 몇 명이 잠을 자고 있었다. 다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