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3월 20일

골목길에서 담배를 피우려던 참이었다. 맞은편에서 누군가 다가오다 주춤 멈춰 섰다. 저 이도 담배를 피우려나, 싶었지만 그는 담배를 꺼내지 않았다. 손에는 무엇인가 들고 있었다. 내가 담배를 꺼내어 입에 물고 불을 붙이는 동안, 그 이는 몇 걸음을 더 걸었다. 시야의 경계선에서 그는 내내 주춤거리고 있었다. 몇 모금을 들이 쉰 후에야 그는 내게 다가왔다.

 

“죄송한데 전화 한 통만 쓸 수 있을까요?”
“네, 잠시만요.”

 

그의 손엔 몇 번쯤 접힌 은색의 스티커가 들려 있었다. 스티커엔 전화번호 두 개가 인쇄되어 있었다. 전화기를 받아든 그는 그 중의 한 번호를 전화기에 입력하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잠시 후, 신호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여보세요, 상대방이 전화를 받은 모양이었다. 그는 갑자기 당황하더니 전화기를 어깨와 볼 사이에 끼고 두손으로 스티커를 주섬거리기 시작했다. 잠시만요, 몇 번 접힌 스티커를 겨우 펼쳐 속에 있던 글자가 나오자 그는 말을 이었다.

 

“거기 굿모닝 덕트죠? 다름이 아니라, 덕트 일을 좀 해 볼 수 있을까 해서요. 아뇨, 전에 해 본 적은 없고 공사장 일하면서 옆에서 도와 드린 적은 몇 번 있습니다. 아, 제 집이요, 충신동입니다. 충신동이, 대학로 근처입니다. 아, 네. 네. 아, 네. 아… 이게 지금 제 전화가 아니라, 그, 친구 전화기를 빌려서 건 거라서요, 제가 이 번호로 전화했다고는 생각하지 마시고, 이 번호로 연락하지는 말아 주십시오. 네, 네. 감사합니다.”

 

그의 통화는 길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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