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분 간의 노동자대회

   메이데이 이후로 처음으로 노동자 집회에 갔다. 다양한 이들이 모이는 집회를, 이름 따라 노동자 집회라고 규정해 버리기엔 망설임이 따르지만, 대개 그런 곳은 실제로 노동자 집회가 된다. 떨리는 마음으로, 여의도 공원 앞에 줄지어 서 있는 대절 버스들의 사이를 지나 광장으로 들어 갔다.
   광장을 가득 메운 수만의 사람들을 보자 숨이 막히고 다리가 풀려 왔다. 예전에는 그것이 집회가 싫어서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어디서든 그랬다. 공연을 보기 위해 장사진에 끼어 있을 때도 그랬고 쇼핑을 하기 위해 인파를 뚫어야 할 때도 그랬다.
   광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은 질서 없이 움직였다. 행사 천막을 가로지르기 위해 피켓을 아무렇게나 발로 밀었고 사람들 한가운데에서 서슴 없이 담배를 피웠다. 서로의 몸이 부딪히는 데에 아무런 거부감도 없는 사람들이 내 곁을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그곳에서 질서는 중요한 것이다. 무리마다 한 사람씩이 확성기를 어깨에 매고서 하나하나 지시한다. 자, 다들 일어서 주세요, 앞으로 두 발만 이동하겠습니다, 줄은 두 줄로 맞춰 주십시오, 무엇을 위한 질서인지는 불분명하다.
   황망히 다니다가 우연히 멈춰 선 곳은 스크린 앞이었다. 아직 본 행사를 시작하기 전, 각계 인사들의 영상 메시지를 재생하고 있었다. 화면에 나온 사람들은 하나 같이 투쟁, 을 외치며 말을 마쳤다. 그렇지 않은 몇 안 되는 이들 중에 사회당 대표가 끼어 있었다.
   정당 정치에 크게 관심도 없으면서 사회당에 당적을 두고 있는 것은 어쩌면, 내가 겪어 온 당 대표들이 아무도 쇳소리를 내지 않았기 때문일는지도 모른다. 물론 그들의 말이 나를 답답하게 하는 때야 있지만, 그들의 말이 나를 떨리게 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행사가 시작된다. 사회자는 망설임없이 말한다, 민중의례를 진행하겠습니다, 모두 자리에서 일어서 주십시오. 수만의 사람들이 일제히 일어선다. 그들의 앞에는, 무대에서 가장 가까운 그곳에는, 전장연의 장애인 활동가들이 있다. 대다수가 휠체어에 앉아 있다, 민중의례를 시작해도 그들은 앉아 있는다.
   말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없게 만드는 똑같은 쇳소리들, 스스럼 없이 피어 오르는 담배 연기, 여기저기서 부딪히는 어깨들, 모두 일어서라는 말, 줄을 맞추라는 말, 그것들의 사이에서 나는 길을 잃었다. 한쪽에서 나부낀 동인련의 무지개 깃발이 아니었더라면, 멀지 않은 곳에 있었던 성폭력 대책위의 천막이 아니었더라면, 나는 광장에 발을 들이지조차 못했을 것이다.
   전태일 평전은 읽어보지 않았다. 그에 대해 내가 아는 것이라고는 길에서 주워들은 것이 전부다. 절절한 그의 유서와 비에 젖은 그의 동상이, 오늘의 노동자 대회와 겹쳐져 머릿속을 떠 돈다. 그가 살아 있었다면, 그리고 이들과 같은 모습이었다면 나는 그를 사랑하지 못했을는지도 모른다.
   결국 도착한지 10 분만에, 나는 그곳을 떠나야 했다. 나는 그곳에 있는 수많은 이들을 지지하지만, 그곳에는 내 자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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