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에서

   카페에 들어 온 것은 주스가 1500원이라는 팻말 때문이었다. 책을 읽을 만한 곳을 찾아 거리를 헤매던 중이었다. 집에서 가져 온 노트북과 서점에서 산 사전, 그리고 읽어야 할 책이 들어 있는 가방이 무거웠다.
   주스는 2000원이었지만 그냥 앉았다 가기로 했다. 집 근처에서 유일하게 2층이 있어 편히 앉아 있을 수 있는 카페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나보다 먼저 온 사람이 너댓명 있었지만 다들 오래지 않아 나갔다.
   텅 빈 2층에서 가만히 책장을 넘겼다. 손가락이 움직였지만 눈은 움직이지 않았다. 마음도 움직이지 않았다. 책이 읽히지 않았다. 책을 읽는 대신 나는 노트북을 꺼내어 음악을 재생했다. 헤드폰이 쿵쿵, 울리기 시작했다.
   멍하니 앉아 음악을 듣고, 편지를 썼다. 포털 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가십 기사도 몇 개인가 읽었다. 날씨는 맑았다. 통유리 너머로 가로수가 바람에 흔들렸다. 나가는 길에 낙엽 하나를 주워야지, 생각했다. 어떤 색일지 모를 낙엽은 편지 봉투에 들어가 국경을 넘을 것이었다.
   주스 잔이 비어 갈 때쯤 한 사람이 홍차를 들고 계단을 올라 왔다. 창가에 앉은 그는 테이블 위에 노트와 인형을 꺼내 올려 뒀다. 왼손잡이였다. 왼손이 끊임 없이 움직이며 노트 위에 무언가를 남겼다. 글인지 그림인지, 어떤 내용인지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창과는 반대쪽, 가장 구석에 앉아 있었다.
   잠시 후 나와 같은 주스를 받아 들고 올라 온 또 한사람은 아무 것도 꺼내지 않았다. 텅 빈 테이블 위에 주스 한 잔 만을 올려 둔 그는 아무 말도,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다. 조용히 혼자 앉아 주스를 마시던 그는 한 통의 전화를 받고 밖으로 나갔다.
   책은 읽히지 않고, 편지는 이미 다 써버렸고, 며칠 전 피가 났던 왼쪽 귀는 헤드폰의 소리를 견디지 못하고 아려 왔다. 하지만 카페는 한가로웠다. 한 사람은 말없이 앉았다 떠났고 한 사람은 여전히 왼손을 끊임없이 움직였다. 그 한가로움이 너무 좋아 나는 자리를 뜨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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