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쁘고 고운 것만 보고 살고 싶은데

밤중에 창밖에서 비명 소리 비슷한 무언가가 들릴 때면 안절부절 못한다. 그 고음이 괴로움이나 두려움의 비명이 아닌, 괜히 질러 본 소리거나 즐거움의 소리임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마음이 가라 앉지 않는다. 비명에 이어 웃음이 들려 오지 않으면, 기어코 나가 밖을 살펴 보아야 한다.
예쁘고 고운 것만 보고, 밝고 고운 것만 들으며 살고 싶지만 녹록지가 않다. 지금 사는 곳에서는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술집들이 모여 있고 밤마다 취객들이 넘치는 거리를 지나야 집에 당도한다. 얼굴을 찌프리고 걷는 여자와 그 뒤를 따르는 남자를 보면, 술에 취해 몸을 가누지 못하는 사람과 그 옆에 멈춰 있는 사람을 보면, (그래 봐야 불확실하지만) 위험한 상황이 아니라는 단서가 나오기 전까지는 멀찌감치 서서 지켜 보게 된다.
오늘은 한 남자가, 이미 늦었다는 여자를 쫓아 가며 아이스크림만 먹고 가라고 매달리는 모습을 보았다. 둘 다 술에 취한 것 같지는 않았고 나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조금 가다가는 지나가는 여자들을 붙잡고 반말로 호객하는 나이트 직원을 보았고, 또 더 가다가는 한껏 인상을 쓰고 어떤 남자에게 팔을 꺾이다시피 손목을 잡힌 채 걷는 여자, 그 손목을 잡은 남자, 그 옆을 걷는 남자를 보았다.
그 여자가 행인들에게 도움을 청하지는 않았지만, 옆을 걷던 남자가 손목을 잡은 남자에게 야 그거 성추행이야, 하고 말했기 때문에 눈을 뗄 수는 없었다. 멈춰 서서 그들이 걷는 것을 한참을 보다, 여자가 남자를 밀쳐 내고 지인들 사이에서 내는 낄낄거리는 웃음을 웃을 때에야 돌아서 발을 움직였다. 이윽고 그들의 일행인 다른 여자 한 명이 당도했다.
매일 밤 길에서는 흔들리는 취객들을 보며 마음 졸이고, 집에서는 제대로 들리지도 않는 골목의 소리에 마음 졸여야 하는 일상이 싫다. 안전하고 믿을 수 있는 세상에서 살지 못한다면, 의심스럽고 불안한 꼴을 볼 일 없는 한적한 곳에 살고 싶다. 그래 봐야 티브이 뉴스며 신문 기사며를 보며 또 마음 졸이고 화내겠지만. ‘남의 일’에 내가 아무리 마음 졸여 봐야, 당사자들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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