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또 지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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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8일, 민주노총 총파업 집회에 다녀왔다. 사람은 많지도 적지도 않았다. 서울시청 광장은 스케이트장으로 반토막이 나 있고, 그걸 또 경찰이 틈 없이 둘러싼 통에 붐비기는 했지만. 그래서 결국 무대가 보이는 곳으로 들어가지는 못하고 주변을 맴돌다, 카페에 들어가 찬바람을 피하다 하며 시간을 보냈다. 3시에 집회 하나, 4시에 또 하나가 예정되어 있었다. 이런 저런 안내 방송들이 이어지다 3시 반이 조금 넘은 시각에야 사회자는 집회 시작을 선언하고 민중의례를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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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파업 집회였다. 어쨌거나 이름은 그랬다. 하지만 모두의 총파업은 고사하고 민주노총 총파업도 성사될 리 없었다. 집회 장소까지 가는 버스도 지하철도 문제 없이 다녔다. 하지만 어쨌거나 총파업 집회였다. 파업을 외치며 가는 길을, 파업에 참가하지 않거나 못한 노동자의 힘을 빌려 움직이기엔 괜히 찝찝했다. 집에서 서울시청까지는 5.2km쯤 되었다. 도보로 이동하는 데에는 정확히 한 시간이 걸렸다.(하지만 그 후 커피를 마시고 밥을 먹고 집으로 돌아오고 친구들과 술을 마시는 내내 나는 누군가의 노동력을 구매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집회 장소에 왔을 것이다. 택시를 타고 온 사람도 있겠고, 멀리서 단체로 온 이들은 대절 버스를 타고 오기도 했다. 총파업 운운하며 타인의 노동력으로 집회에 왔음을 비난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그냥, 그 상황이 내게는 이상하다. 진짜 총파업이 이루어지면 우리는 겨우 이만큼 되는 규모의 집회도 하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이, 타인의 노동력 없이는 아무것도 못할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무대에 오른 사람 중 하나가 철도 투쟁은 이미 승리했습니다, 하고 외쳤다. 민주노총은 침탈 당했고, 총파업은 아무런 힘을 내지 못했으며, 수서발 KTX 법인에 철도 사업 면허가 나왔는데도 그는 그렇게 외쳤다. 또 누군가 승리를 말한다면 슬플 것 같다, 고 앞의 글에 썼지만 슬프지는 않았다. 뭐라도 좀 알고 이해가 되어야 슬프든 말든 하는 법이다. 아무것도 알 수 없었고 아무런 감정도 들지 않았다. 그저, 누군가는 그렇게 외쳤다.

집회가 끝나갈 즈음, 이제 슬슬 행진이든 도로 점거든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야 하는 타이밍이 되었는데 사회자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리고는 집회의 종료를 선언했고 다음에 예정된 집회들을 광고했다. 모든 것이 끝나고도 어리둥절해 제자리에 서 있는 차에 사회자는 다시 마이크를 잡았고, 도로 점거가 시작되었으니 그리 이동해 달라고 말했다.
물론 가는 길은 막혀 있었다. 아니, 경찰이 막고 있었다. 버스로, 탱크로리로, 그리고 대원들로, 그들은 곳곳을 막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지하도 입구는 열어 두고 있었는데, 사람들은 한동안 지하도는 거들떠 보지도 않고 경찰들과 대거리를 했다. 몇 개의 골목을 돌고 돌아 나는 광화문 광장으로 나왔고, 그즈음 아까 경찰들과 싸우던 사람들은 지하도에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두시 간 남짓 되는 시간이었을까, 우리는 그렇게 길을 막고 서 있었다. 간간히 경찰들과 싸우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본격적인 충돌은 없었고, 어느 순간 앞에서는 점거의 종료를 선언했다. 왜 끝난 것인지 구석에 있던 나는 알지 못한채, 일행들과 함께 그곳을 벗어났다. 경찰들은 마치 우리에 동물들을 몰아 넣는 사람들처럼 방패를 휘휘 저으며 사람들을 인도로 몰았다. 어느새 도로에는 차들이 다니기 시작했다.

싸웠어야 한다, 고 말할 수는 없다. 경찰이랑 싸워 봐야 서로 아프기나 하지 무슨 득이 있으랴. 그러나 여전히, 그렇게 흩어지는 것은 이상하다고 느낀다. 아쉽기 이전에, 그저 이상하다고. 친구의 말대로, 우리는 추워서 집에 갈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어떤 집회가 잘 되건 안 되건 2008년의 촛불집회를 떠올리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희망적인 태도 따위 가져본 적 없는 나로서는, 촐불집회로 우리는 무엇을 하든 안 될 거란 사실을 배웠다고 눙치고 넘어가지만, 실은 그렇게 쉽게 넘길 수는 없는 문제일 것이다. 내게 촛불집회는 희망과 절망을 섞어 만든 거대한 족쇄처럼 보인다. 그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 함께 할 수 있다는 희망, 그러나 그들은 옛날처럼 한 가지 방식으로 함께 할 수 없고 그 인파가 함께 모여 무언가 해낼 수 있는 방법을 우리는 모른다는 절망을 섞어 만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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