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문석과 1년

죽음이 망각되는 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망자의 삶이 송두리째 망각되는 것이다. 뉴스에서 소상히 알려 주는, 낯모르는 이들의 삶과 죽음, 그러한 방식으로 내 삶과 먼 곳에 있었던 이들의 죽음이 그런 경우에 속한다. 연쇄 살인범에게 살해당한 어느 피해자의 일생과 죽음, 혹은 누군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이름 없는 의인들의 죽음이 내게는 그러하다. 어떤 경우에는 그저 죽음만이 망각된다. 비교적 가깝지만 겹치지는 않았던 삶들의 경우가 그러하고 너무도 가까워서 그 삶을 지울 수 없는 경우가 그러하다. 함께 했던 이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해 날마다 우는 사람들, 때로는 시신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의 경우가 후자에 속할 것이다. 익숙하지만 챙겨 찾지는 않는 연예인의 죽음, 오래 전 어느 시기에 삶을 나누었던 이의 죽음, 면식은 없지만 먼 곳에서나마 나와 같은 삶을 살고 있음을 알고 있는 어떤 이의 죽음이 그 나머지에 속할 것이다.
권문석의 1주기 추모식에 다녀왔다.
내게 권문석의 죽음은 마지막의 방식으로 망각되어 있었다. 무대에 올랐던 누군가는 여전히 그의 죽음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어 슬프다고, 또는 슬퍼하지만은 않으려 애쓰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누군가는 그가 여전히, 어디에선가 일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라고 말했다. 내게 그는 가끔씩 마주치는 사람, 그래서 가끔씩만 생각나는 사람, 그러나 교류가 많지 않아 생각할 거리 역시 많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가 죽었지만, 애초에 그의 삶이 내 삶에 크게 접해 있지 않았으므로, 죽음으로 인한 빈자리를 나는 경험할 수 없다. 그래서 그의 죽음은 쉽게 망각되고, 그를 떠올리는 나의 기분은 여전하다. 어디선가 우연히 마주칠 사람, 실없는 소리를 한두 마디 나누고는 곧 흩어질 사이.
그와 처음 만난 것은 2007년 가을이었다 ― 정확히 기억나지 않아, 연도를 찾아보았다. 그리고 이 문장을 쓰면서, 그가 죽은 직후에도 무언가 써보려 하다 포기했던 것이 떠올랐다. 그와 처음 나누었던 대화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처음부터 반말을 썼던 것을 기억한다. 말은 빠르고 발음은 불분명해, 몇 번인가 못 알아듣고 되물었던 것도 같다. 마지막으로 만난 것은 지난 해 봄, 그가 세상을 뜨기 한 달 전쯤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자리에서 그가 처음 건넨 말은 왜 그렇게 살이 쪘냐는 물음이었다. 눙을 치며 받아 넘겼다.
그가 처음 내게 건넨 말도, 마지막으로 건넨 말도, 그래서 권문석이라는 사람도 마뜩치 않았다. 그 사이의 여섯 해 동안 띄엄띄엄 건넨 말들 중 그 인상을 바꿔 놓을 만한 것은 크게 없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내게 그러하듯, 그는 반가운 사람 중 하나였다. 빼어나다고 할 수 없는 언변으로, 지친 표정으로, 항상 어딘가 신이 나서 말을 늘어놓는 사람, 멈추지 않고 무언가 고민하고 그것을 털어 놓는 사람, 그래서 반가운 사람들 중 하나였다.
가까이서 일한 적 역시 없으므로 그가 평소에 어떠했는지는 알지 못한다. 다만 늘, 전날 늦게까지 일했다며 퀭한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을, 그럼에도 여전히 말하고 있는 것을 보았을 뿐이다. 그의 친구들은 그에게 투명인간이라는 별명이 있었다고 말했다. 살금살금 다가와 장난을 치는 투명인간이 아니라, 누구에게도 드러나지 않는데도 늘 일하고 있는 투명인간이었다고, 그의 친구들은 말했다.
내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그가 한 고민이나 그의 생각, 그가 살았던 방식들은 아니다. 정당 홈페이지에서 혹은 신문 기사에서 본 그의 이름과 몇 줄의 문장들, 처음으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보았던 그의 얼굴, 그 사이 보았던 그 얼굴의 그림자들 ― 그런 것들만이 남아 있다. 그런 단편들의 뒤에 갑자기 죽음이 이어질 수는 없기에, 그의 죽음은 내게서 망각되었다.
권문석의 1주기 추모식에 다녀왔다.
그의 친구들은 그에게 편지를 한 통 써달라고 했다. 권문석 못난 놈, 이라고 적고 싶었지만 나는 그의 친구가 아니었으므로 아무것도 적지 못했다. 그의 장례식에, 사십구재에, 1주기 추모식에 모두 가 끝날 때까지 앉아 있었지만, 나는 여전히, 그의 죽음을 알지 못한다. 상상하지 못하고, 기억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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