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도 지고 돌아왔다

간만의 휴가를 맞아 서울로 놀러 온 친구를 포함해, 네 명이 모여 점심을 먹었다. 이런 저런 대화를 하다 철도 노조 이야기가 나왔다. 다들 민주노총 건물에 경찰이 들어갔다는 정도까지를 알고 있었다. 대강의 소식을 알아보니 연행 중이자 대치 중이라고 했다. 밥을 먹고 우리는 민주노총 사무실을 향했다.
시청역에서 민주노총 사무실까지 쭉 이어진 길 곳곳에 경찰이 진을 치고 있었다. 일부는 대기 중이었지만 아예 길을 막고 있는 곳도 있었다. 작은 승강이 끝에 도착한 민주노총 사무실 앞에는 경찰이 포위선을 치고 있었고, 그 안 쪽으로 경찰이 진을 치기 전에 도착한 지지자들과, 건물 앞에 놓인 에어매트 몇 개가 보였다.
경찰은 들여보내 주지 않았다. 옆 건물 옥상으로 올라가 아래를 보내 건너편에서는 경찰 저지선을 뚫으려는 사람들이 경찰에게 맞고 있었다. 최루액을 쏘는 모습도 보였다. 이때까지도 나는 정확한 상황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근처를 배회하며 주워들은 정보들을 이어 붙여서야 겨우, 철도 노조 간부에 대한 체포 영장을 발부 받은 경찰이 수색 영장도 없이 민주노총 건물을 습격했음을 알 수 있었다.
일행 중 일부는 경찰의 태세가 느슨한 틈을 타 포위선 안으로 들어갔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고, 종일 하릴 없이 주변을 맴돌았다. (어느 노조 소속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노조에서 소화전으로 뿌린 물에 맞기도 했고, 방패를 사이에 두고 경찰과 맞붙기도 했다. 몇 번인가 거세게 밀렸고 신발과 바지 밑단이 다 젖었지만 큰일은 없었다.
모두가 포위선 뚫기를 슬슬 단념해 갈 무렵, 민주노총 건물에 철도 노조 간부는 없다는 소식이 공식적으로 확인되었다는 말이 들려 왔다. 신나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경찰 대원들이 물벼락을 맞을 때 신나 했던 그 사람들인지는 모르겠다. 적어도, 그 두 무리의 사람들 모두가 건물 밖에서 항의하고 경찰과 대치하던 사람들이 맞을 때 분노했던 사람들의 일부이기는 했을 것이다. 사람들은 그렇게, 화내다가 웃다가 했다.
철도 노조 간부가 이미 새벽에 건물을 빠져 나갔다는 소식을 경찰이 그대로 믿어 주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변두리에 있어서 모습을 보지는 못했지만, 경찰은 건물에 남아 있던 사람들 모두의 신원을 결국 확인했다고 들었다. 밤 9시 께였을까, 건물에서 나온 이들이 행진 아닌 행진을 했고 사람들은 ― 그리고 나도 ― 그들을 박수로 맞았다. 어떤 면에서 그들은 영웅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들이 영웅이 되어서는 절대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경찰의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자기 자리를 지킨, 그것도 다름 아닌 제 신념의 자리를 지킨 영웅들이다. 그러나 어쩌면 그저 노조 간부들을 ‘위해’ 고생한 이들이자 영장도 없이 들이닥치니 경찰에게 당한 권력의 피해자들이다. 게다가, 그들처럼 자리를 지킨 사람들 건물 밖에도 많았다. 고생 끝에 건물을 나선 그들에게 박수를 쳐 준 이들 모두가, 경찰의 위협과 폭력에 굴하지 않고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참이었다.
경찰의 무리한 체포 작전이 실패로 돌아간 것은 우스운 일이지만 신나는 일은 아니다. 그 성패에 관계없이 그것은 그저 어이없는 일이고 화나는 일일 뿐이다. 화나야 할 일이 실패한 꼴을 본다 해도 신이 날 수는, 그 화가 가라앉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들이 무엇을 신나 했는지 알 듯 모를 듯하다.
누군가는 철도 노조가 투쟁으로도 승리하고 법적으로도 승리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그저 패배만을 보았다. 경찰은 이미 법을 무시하고, 법을 이기고 그곳에 와 있었다. 법적인 승리, 는 힘없는 수사일 뿐이다. 지도부를 내어 주지 않은 것이 투쟁의 승리라고 하기엔, 그 하루 동안 너무 많은 사람들을 내어 주었다. 애당초, 경찰이 법을 무시하고 그곳에 온 셈에서, 철도노조도 민주노총도, 그 모든 역사를 갖고서도 싸움에 진 셈이다. 더 이상 정부와 경찰이 절차적 정당성을 갖출 필요도 못 느낄 만큼 우리는 이미 진 상태에 있었다.
내일부터 민주노총 확대 간부 파업이 시작되고, 한 주 동안 현장을 조직해 28일에는 총파업을 시작하겠다고 한다. 그것이 성사될지 어떨지 나로서는 알 수 없다. (내가 아는 것은 기껏해야, 내가 파업에 일조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점 정도다.) 정말로 총파업을 할 수 있다면 그 때쯤은 투쟁의 승리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요구안이 받아들여지건 그렇지 않건, 파업만으로도, 적어도 나는 그것을 승리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은 연승이 아니라, 역사를 부정당한 오늘의 패배를, 그 설움을 양분으로 삼은 첫 승리일 것이다. 사람들이 이렇게 여기지 않는다는 나는 슬플 것 같다. 오늘 두들겨 맞은 그 사람들을 기억한다면 더더욱 슬플 것 같다. 그것이 연승으로 명명된다면, 내게는 그것이 오히려 패배일 것이다. 노동운동의 역사가 부정당하고 무시당한 데에 대한 분노로 만든 새 시작이 아니라, 어쨌거나 지도부는 잡히지 않았고 (그렇게 다치고 끌려가면서) 겨우 경찰을 놀려 주었다는 것으로 기세등등해 져 해 낸 일로 된다면 말이다.
집회에 갔을 때든 기사를 접했을 때든, 나는 늘 졌다고 여겼다. 그래서 지금 이 모양인지는 모르겠지만, 여전히, 졌다고 여겨야 할 것 같다. 오늘도 우리는 승리했습니다, 집회를 마친 후 초췌한 몰골로 이렇게 외치던 사람들의 삶도 즐거워 보이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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