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1.10-17.(수-수)

또 밀렸네. 대체로 기억나지 않는다.

2021.11.10.(수)

낮엔 아마 일을 좀 했을 것이다. 오후엔 밀린 열흘치 일기도 썼다. 밤엔 일을 좀 더 한 후에 새벽부터는 스터디 발제용 번역을 했다. 철야했다.

2021.11.11.(목)

아침 차로 서울행. 노는 약속이 있었다. 목적지는 서울식물원. 정식 오픈 전에 친구들과 한 번 갔었고 이번이 두 번째였는데, 저번엔 오픈 전이라서, 이번엔 이미 추운 계절이라서, 두 번 다 빈 화단이 많았다.

지하철을 내려 식물원으로 가다가 밥을 먹어야 함을 깨닫고 휴대전화로 식당을 찾았다. 바로 앞에 있는 대기업 빌딩 지하에 무언가 있대서 들어가 보았는데 식당가로 가는 길을 적은 안내판 같은 게 전혀 보이지 않았다. 거동이 수상했는지 안내원이 용건을 물었다. 식당가를 찾는다고 했더니 직원이시냐고, 아니면 들어갈 수 없다고 했다. 결국 역쪽으로 돌아와 어느 상가에서 칼국수집에 들어갔다. 《생활의 달인》을 비롯해 여러 방송에 출연한 30년 경력자가 운영한다는 곳이었다. 칼국수집 간판과 닭발집이었나 닭갈비집이었나의 간판을 함께 달고 있었다. 우리가 먹은 칼국수를 반죽한 것은 그 ‘달인’은 아니었다.

야외 정원을 잠깐 돌고 온실을 천천히 돌았다. 나와서는 카페에 앉아 한동안 시간을 보냈다. 그런 다음엔 친구가 일정이 있어 대학로로 이동했다. 저녁을 먹기엔 조금 이른 시각이라 낙산공원에 올라 노을을 보다 내려왔다. 몇 번 간 적이 있는 시래기국밥집을 향했는데 폐업. 간판은 글자가 삭았고 매장은 비어 있었다. 근처를 돌다 솥밥집을 발견해 추어탕을 주문했다.

무인주문 키오스크를 운영하는 곳이었다. 내 바로 앞에는 한 노인이 서 있었다. 주방에서 나온 사람이 주문을 도왔다. 그는 노인이 식사를 하는 동안에도 계속 말을 붙였다. 노인은 친구의 장례식에 가느라 멀리 다녀 온 참이라고 했다. 또 무슨 이야길 했더라. 주방의 그는 사근사근하지 않은 말투로 한참 다정한 말을 했다. 노인은 술도 한 병 시켰던가.

원래는 저녁을 먹고 제천으로 돌아올 예정이었지만 다음날 일정을 취소한 터라 하루 묵고 왔다. 처음 가보는 곳에서 잤다. 금세 잠들었다.

2021.11.12.(금)

원래는 화상회의로 친구와 스터디를 하기로 되어 있었다. 약속한 분량은 미리 다 번역해 두었고, 전전날 밤을 새면서 몇 쪽을 더 했다. 세 페이지쯤 남았는데 어렵지 않은 글이라 한 번에 다 읽고 끝내면 될 것 같아 하루를 미루었다.

그래서 이날은 그 세 쪽을 번역했다. 합정역 근처에 있는, 여러 해 전에 자주 갔던 카페에 앉아서 했다. 마지막까지 실내 흡연 정책을 고수했던 카페다. 오랜만에 갔더니 규모가 줄고 ― 테이블이 있던 자리 일부가 주방인지 뭔지가 되어 있었다 ― 화장실 문도 바뀌어 있었다. 개도 한 마리 있었다. 여전히 담배를 팔고 있었지만, 유기농 과일청 같은 것이 주력 상품으로 올라 있었다. 커피를 주문하고 스탠드가 설치된 자리에 앉아 번역을 마쳤다.

이른 저녁으로는 태국음식을 먹기로 했다. 역시 여러 해 전에 자주 갔던, 그 후로도 이따금 갔던 태국인이 운영하는 식당을 향했다. 여기도 폐업. 다른 가게가 들어와 있었다. 여러 해 전에 가 본 적이 있는 식당에서 보리밥을 먹었다. 한옥을 식당으로 쓰는 곳이다. 원랜 마당이 있었던 것 같은데, 거기도 모두 마루가 설치돼 있었다. 한옥의 대청마루가 아니라, 장판 깔린 바닥.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바로 방문과 방바닥이 나온다는 뜻이다. 기억이 틀렸는지도 모른다.

저녁 버스를 타고 제천으로 돌아왔다. 일찍 잠들지는 못했던 것 같다.

2021.11.13.(토)

오전엔 잤으려나. 점심은 중국집에서 먹었다. 평소대로 ― 햄과 짜장 소스를 뺀 ― 볶음밥, 이 나왔어야 했는데 햄과 짜장 소스가 들어 있었다. 국물도 계란국이 아니라 평범하게 짬뽕 국물. 잠깐 생각하다 먹기 시작했는데 주방에서 무어라 대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요리를 맡은 이가 서빙을 맡은 이에게 방금 거 잘못 나갔다고 말하는 듯했다. 서빙을 맡은 이가 와서 확인하고는 깜짝 놀라며 그릇을 거두어 가려 했다. 괜찮다고, 그냥 먹겠다고 하고 마저 먹었다. 다른 것은 남기지 않았고 햄만 골라 냈다. 채식의 신념, 같은 문제는 아니다. 햄은 냄새가 역하다.

오후에는 집 앞 카페에서 일. 저녁에는 미룬 스터디를 했다. 친구가 맡은 글에서 지난번에 하고 남은 약간, 내가 새로 번역한 글 전부를 읽었다. 평소보다 많이 읽었지만 평소보다 짧게 끝났다. 스터디 전에는 된장국을 끓여 밥을 먹었다. 국을 끓이고 남은 감자와 버섯과 양파로 감자조림을 했다. 감자가 제일 적게 들어갔지만 그렇게 부르기로 했다. 스터디 도중에 잠시 일어나 렌지 불을 껐다.

2021.11.14.(일)

점심은 분식집에서 라면. 무엇을 먹을지 정하지 못한 채로 시내를 향해 걷다가 마주친 낯선 분식집에서 먹었다. 메뉴에 공깃밥은 없었고 따로 묻지도 않았다. 주문을 하고 보니 카드가 없어 계좌번호를 받아 값을 치렀다. 아주 작은 가게였는데 네 명이 일하고 있었다. 통유리 벽에 붙은 바에 앉아 먹었다. 밖이 훤히 보였다. 밖에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새까만 필름이 붙은 유리다.

네 명 중 한 명은 아이를 데리고 있었다. 아이는 다른 자리에 앉아 태블릿으로 만화를 보며 식사를 했다. 김밥과 컵라면. 분식집에서 왜 컵라면을 먹이고 있을까 의아했는데 나가며 보니 짜장라면이었다. 이 분식집에서는 팔지 않는 메뉴다. 나와서는 카페에 앉아 저녁까지 일했다. 저녁은 처음 가는 식당에서 먹었다. 황태국. 날계란이 같이 나왔는데 그걸 다 익히기엔 솥이 충분히 뜨겁지 않았다.

2021.11.15.(월)

모르긴 몰라도 종일 일했을 것이다. 원래라면 전날 끝날 예정이었다. 게르만 어파에 속한 유럽 어느 언어로 된 원문의 기계번역 영어본을 한국어로 옮기는 일이다. 원문은 전혀 읽을 수 없지만 영어 문장만 놓고 보면 아무 문제 없을 수준이었다. 다만 행갈이나 표 같은 것이 제대로 인식되지 않아 오류가 생긴 곳이 종종 있었고 해당 부분을 긁어다 번역기를 돌리는 과정이 필요했다. 원어에선 별개의 어휘가 영어에선 하나의 어휘로 표현되는 경우도 몇 있었는데, 다른 문장에 하나씩 쓰인 것은 알 도리가 없지만 같은 문장에 둘이 함께 나오면 ― ‘A와 a를’이 ‘B와 B를’ 같은 식으로 번역돼 있으면 ― 티가 나므로 역시 원문을 확인하고 사전을 뒤져 뜻을 구분해 내야 했다. 단순노동이지만 모이면 시간이 꽤 드는 데다 종종 맥이 풀리곤 해서 예상보다 길어졌다.

2021.11.16.(화)

일찍 일어나 아침을 해먹고 버스를 탔다. 십여 분을 간 곳에서 내렸다. 소나무가 많은 어느 공원 앞이다. 공원 끝에 난 길을 따라 언덕을 올라가면 저수지가 나온다. 저수지를 한 바퀴 돌았다. 아주 맑은 개울이 흘러드는 저수지다. 초가을에 왔을 때보단 물이 줄어, 개울은 여전히 맑았지만 저수지는 조금 흐려져 있었다. 초가을에라고 저수지도 마냥 투명했던 건 아니지만. 카메라를 가져 갔는데 가방에서 한 번도 꺼내지 않았다. 사진은 휴대전화로 두어 장 찍었을 뿐이다. 개울에서는 소금쟁이처럼 수면을 밟고 선, 그러나 소금쟁이는 아닌 곤충 한 무리를 보았다. 무엇이었을까.

언덕을 내려와 공원을 지나 어느 카페에 앉았다. 프랑스 자수 공방과 로스터리를 겸한 곳이었다. 앉아서는 친구와 스터디. 역시 장애가 언급되는 글을 읽었지만, 지난 금요일의 것과는 다른 스터디다. 늦여름에 하고는 한참 멈췄던 것을 오랜만에 이었다. 꽤 길게 했다. 중간에 배가 고파져 케익도 한 조각 먹었다. 카운터에는 도서관 같은 분위기의 이용을 자제해 주세요, 모두가 편히 대화하는 공간입니다 같은 말이 적혀 있었다. 옆에서 말소리가 나도 눈치를 주지 말란 말인 걸까, 조용히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 옆사람에게 부담을 주지 말란 말인걸까 생각했다.

공원에서는 월남참전기념탑을 보았다. 사진을 찍어두지 않아 정확한 명칭은 모른다. 지난번에 그 공원에 간 것은 9월 15일이었다. 그때까지는 “월남참전기녑탐 건립부지예정지역”이라는 팻말만 서 있었다. (이건 사진을 찍어두었다.) 제천시월남참전기념탑건립추진위원회 명의의 팻말로, 2014년 11월에 세운 것이거나 2014년 11월에 확정된 사항을 적어둔 것이었다. 이날은 마침 이런 기사를 읽었다.

베트남전쟁에 참전했던 군인이 당시 전쟁에서 한국군이 다수의 민간인을 학살했다고 증언했다. 해병대 소속으로 베트남에 파병됐던 류진성 씨는 16일 서울중앙지법 민사68단독 조상민 판사 심리로 열린 변론에 증인으로 출석해 이같이 밝혔다. 이날 재판은 베트남전에서 한국군에 의해 가족이 살해당했다며 60대 베트남인 응우옌 티탄(61·여) 씨가 한국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의 4회 변론기일이다. […] 응우옌 씨는 8살이던 1968년 2월 베트남 꽝남성 디엔반현 퐁니마을에서 한국군에 의해 복부에 총상을 입고 1년 동안 병원에 입원했으며 함께 총격을 입은 가족들 모두 죽거나 다쳤다고 주장하며 작년 4월 소송을 냈다.

황재하, 「베트남 파병 군인 “한국군, 민간인 대량 학살” 법정 증언」(연합뉴스)

2021.11.17.(수)

일찍 일어나 밥을 해먹고 카페에 앉았다. 며칠 밀린 일을 드디어 마쳤다. 번역문 첫머리에 몇 가지 안내사항을 적어 송고했다. 얼마 전 송고한 원고에 소소한 수청을 요청해 온 메일 한 통, 얼마 전 마친 일의 임금 지급에 필요한 서류를 요청해 온 메일 한 통에 답장을 썼다. 이런 식의 메일을 몇 통 더 받겠지만, 당분간은 그래도 꽤 여유롭다. 저녁은 국수를 사먹었다. 집에 가서는 요 며칠 일하는 틈틈이 괜히 해 온 번역을 마무리했다. 정리하고 씻고 누운 게 두 시쯤이었을까. 세 시쯤 배가 고파 편의점에 다녀왔다. 한 시에 누웠다가 두 시에 다녀온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고는 오래지 않아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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