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Toqa Abutaima, ” Flying kites: freedom,” We Are Not Numbers, 2026.09.14.

며칠 전 이스라엘 방위부 장관은 가자에서 날려 올리는 모든 것을 전쟁 행위로 간주하겠다고 발표했다 ― 연까지도 말이다. 어린 시절 내가 가장 좋아했던 놀이마저도 이제 전쟁 행위로 치부될 수 있단 말인가.
나의 고향, 아바산Abassan
나는 칸 유니스 남동쪽에 있는 아바산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자랐다. 이스라엘과 가자를 가르는 ― 금속 울타리, 철망, 가시 철사, 콘크리트 장벽으로 만들어진 ― 울타리에서 겨우 6km 떨어진 곳이다. 첫 번째 휴전이 이루어져 아바산으로 돌아가 보니 울타리는 높은 콘크리트 담장이 되어 있었다. 어렸을 땐 울타리 가까이로 가면 우리가 놀 수 있는 탁 트인 벌판이 나왔다.
사람 많고 시끄럽고 활기로 북적이는 가자 지구의 다른 곳들과 달리 내 고향은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도시에서 온 친구들은 노인이 살기 딱 좋은 곳이라며 놀려대곤 했다. 그러나 실은 가자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 중 하나다. 그런 곳에서 자라는 것은 특권이었지만, 대가가 있었다 ― 아바산은 이번 인종학살 때 가장 먼저 피란을 떠나야 했던 곳들 중 하나이기도 하다. 현재는 이스라엘의 군사 통제 하에 들어간 황색선 너머에 있고, 우리에게는 집으로 돌아갈 길이 없다.
Flying kites as a girl and as a young woman
학기가 끝나고 여름 방학이 시작되면 들판과 공터는 우리 차지였다. 우리 여름의 백미는 연날리기였다.
연을 만들 땐 엄마가 도와주곤 했다. 집 근처 나무들에서 연살로 쓸 나무를 모았다. 대개는 떨어진 야자수 가지를 모아다 칼로 깎아 원하는 모양으로 다듬었다. 그런 다음에는 낡은 비닐 봉투와 끈을 가져와 가장 어려운 ― 실제로 날 수 있도록 제대로 연의 모양을 잡는 ― 작업을 시작했다. 기성품은 일고의 가치도 없었다. 색은 화려했지만 값싸고 가벼운 비닐로 만든 것들이었고, 바람도 우리의 거칠고 극성맞은 손길도 버티지 못할 터였다.
연을 다 만들면 사촌들, 남동생, 나, 다같이 가까운 벌판으로 달려갔다. 다들 낮잠을 자는 시간이라 우리를 쫓아낼 사람이 없는 한낮을 골랐다. 남자아이들 무리에 나만 여자였다. 그들처럼 나도 맨발로 달리는 데 익숙해졌다. 슬리퍼를 신으면 놀려댈 거라, 생각만 해도 싫었다. 도착하자마자 연을 띄웠다. 나는 그들의 존경을 받는 경쟁 상대였다 — 맨발이었고, 그들보다 높이 연을 날렸으며, 놀이가 끝날 때까지 내내 연을 떨어뜨리지 않았다. 발 밑의 뾰족한 가시는 힘들었지만 하늘을 올려다보며 높이 솟은 내 연을 보고 있으면 그런 불편은 잊혀졌다.
여름 방학에는 차를 타고 해변에 가기도 했다. 연을 날리는 아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다른 아이들이 연을 날리는 동안 우리는 대개 수영을 하느라 바빴다. 우리에게는 운 좋게도 언제든 연을 날릴 수 있는 트인 곳이 있었다. 다른 아이들은 높은 건물들로 둘러싸인 도시나 북적이는 난민촌에서 자랐고, 바다에 와야만 연을 날릴 수 있는 경우가 많았다.
나이를 먹으면서 우리는 연을 날리지 않게 되었다.
2022년에 나는 국제여성의날을 기념하는 아동·청소년 행사에 참여했다. 연을 날리는 행사였다. 친구들은 연이 가라앉아 애를 먹었고 몇몇은 끝내 포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내 연만큼은 행사가 시작할 때부터 끝날 때까지지 내내 하늘에 떠 있었다. 모두가 박수를 치는데도 우쭐한 기분이 들지는 않았다. 나는 그저 아바산의 들판에서 연 날리는 법을 배운 아바산의 딸일 뿐이었다. 그들은 도시나 난민촌의 아이들이었다. 내 몸과 연은 하나 같이 느껴졌고, 나는 쉽사리 연을 날릴 수 있었다.

피란 중에 연 날리기, 이제는 할 수 없는
우리는 집에서 내몰렸고 천막촌 세 군데를 옮겨다니며 살아야 했다. 집과 고향을 잃은 슬픔에 잠겨 있는 내게 위안에 되었던 몇 안 되는 것 중 하나는 어른들의 도움을 마다하고 당당히 스스로 만든 연을 갖고 노는 아이들의 모습이었다. 아이들은 눈에 띄게 실력이 늘었다. 아이 하나가 갑자기 우리 천막에 나타나 “이모, 여기 천막에 연 떨어진 거 못 봤어요?” 하고 묻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연은 종종 바다 위에서도 볼 수 있었다.
이스라엘 방위부 장관 카츠가 연을 금지한다고 공표했을 때,[역주1] 처음에는 믿기지가 않았다. 천막촌 이웃 하나가 이 소식을 알려주며 앞으로는 아이들이 연을 날리지 못하게 하라고 당부했다. “이스라엘이 연을 무서워 한다고? 그게 진짜일 리 없어.” 나는 웃어넘겼지만 나중에 정말이란 걸 알게 되었다. 한 아이가 화를 내며 내게 물었다. “왜 연을 못 날리게 하는 거예요? 하늘도 자기네 거예요?” 대부분의 아이들은 “점령”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른다. “억압”이나 “아파르트헤이트”라는 말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누군가가 자신들이 먹을 빵을, 학교를, 심지어는 놀 권리까지, 앗아간다는 것이 어떤 일인지는 잘 알고 있다. 얼마 전에 한 친구가 전화를 걸어 왔다. 요즘 무엇을 하며 지내느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답했다. “아이들한테 연 날리지 말라고 하는 거 빼면 별 거 안 해,”
그러나 연 날리기는 그저 어린 시절에 하는 놀이가 아니다. 팔레스타인의 어린이들에게 하늘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비행기는 사람을 실어나르는 비행기보다는 전투기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연은 하늘이 평화롭고 안전하게 느껴지게 했다. 그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허락되지 않는 자유의 감각을 주었다. 연은 좁은 땅덩이에 갇힌 채 붐비는 천막촌에 사는 우리 삶과는 너무도 다르게, 한계도 국경도 없다는 듯 하늘 높이 솟아오를 수 있었다.
어릴 땐 이런 노래를 부르곤 했다. “아, 내가 끈과 종이로 만든 연이었다면 오렌지 과수원을, 내 작은 나무들을, 불타버린 그들을 볼 수 있을 텐데.”
기분이 이상하다. 연에 관해 글을 쓰거나 말을 할 때면 늘 과거형을 쓴다, 마치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의 이야기라는 듯. 하늘을 나는 연을 찍은 사진을 보면 상실감이, 슬픔이 느껴진다. 사랑하는 무언가를, 사랑하는 이를 잃을 때마다 늘 그렇듯, 조금도 다르지 않게.
↥역주1 「이번에는 이스라엘이 아이들의 연날리기를 빌미로 가자를 공격한다」 (유세프 파레스, 2026) 및 「팔레스타인 아동의 연날리기가 “전쟁 행위”라는 이스라엘 – 20260905 격주간 정세 보고」 (팔레스타인평화연대, 2026) 참고.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