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Hanin A. Elholy, “Life is an endless battle in Gaza, The Electronic Intifada, 2026.10.16.

가자에 대한 전쟁은 멈추었는가?
많은 이들이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우리 소식을 그다지 듣지 못한다.
하지만 가자 사람들은 여전히 싸우고 있다. 종류만 달라졌을 뿐이다. 우리는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지친 영혼으로 저항한다.
나는 그런 이들 중 하나다. 그리고 이 글은 가자에서의 내 삶이 어떤 의미에서 끝없는 싸움인지에 대한 이야기다.
2021년에 약혼했을 당시, 내 남편 아흐마드Ahmad는 UN팔레스타인난민기구, UNRWA에서 영어교사로 일했다. 한 달에 900달러, 비교적 안정적인 급여를 받았다.
나도 교사였다.
나는 가자시 알-잘라al-Jalaa 거리에 있는 정부에서 운영하는 학교에서 근무하며 7학년, 8학년을 가르쳤다. 한 달에 400달러를 벌었다.
둘의 봉급을 더하면 재정적으로 그럭저럭 안정적인 수준의 삶을 살 수 있었다.
남편은 여전히 결혼식으로 진 빚 — 가구 임대료, 식장 대관료, 지참금 — 을 갚는 중이었다. (가자에서는 결혼식에 돈이 많이 들고, 그 빚을 갚는 것은 신랑의 책임이다.)
나는 가자 북부 베이트 라히야Beit Lahiya에 있었던 아파트 월세와 생활비를 맡았다.
2023년 10월 7일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
우리의 봉급이 줄었다. 가자 정부는 50일마다 260달러씩만 주었고 UNRWA에서는 직원들을 내보냈다.
남편도 다른 교사 여럿과 함께 일자리를 잃었다.
우리가 만들어두었던 재정적 안전망이 하룻밤새 사라졌다.
남은 2023년과 2024년 내내 우리는 저축과 온라인 일자리, 인도적 지원에 의존했다. 나는 결혼식날 남편에게 받은 금반지를 비롯한 금붙이들을 처분했다.
우리는 가자의 새로운 생활 환경에 적응하려 애썼다. 아흐마드는 가르치는 일에, 자료를 입력하는 일에, 경비 일에 지원했다.
2023년 후로 삶은 훨씬 더 비싸졌다.
월세 내는 아파트 혹은 공짜 천막
가자 남부의 칸 유니스Khan Younis에서 한참 피란 생활을 한 후 2025년 2월에 가자시 남쪽 텔 알-하와Tel al-Hawa에 있는 가족의 집으로 돌아왔다.
우리 집은 2023년 12월에 파괴 당해서, 베이트 라히야로 돌아가지는 못했다.
텔 알-하와에 있는 가족의 집도 심하게 훼손됐다. 절반은 무너지기 직전이었다.
동네의 다른 집들도 사정은 비슷했다. 모든 건물이 심하게 망가진 채 겨우 서 있었다.
남편은 북부에 남았고, 나는 내 아이와, 그리고 시가 식구들과 함께 1층에 살았다.
2025년 3월부터 10월까지의 기근을 여기서 함께 보냈다.
비좁은 곳 — 큰 방 하나, 주방, 그리고 화장실 — 에서 지냈다. 사생활을 갖고 싶었다. 자그만 내 가족끼리 살고 싶었다.
우리가 기근을 살아서 넘긴 것은 신의 뜻을 통해서였다.
렌틸콩과 파스타, 쌀만 먹으며 몇 달을 보냈다. 채소나 참치캔은 사치였다.
우리가 갹출한 — 얼마 되지 않는 — 돈은 거의 전부 식비로 나갔다. 대부분 아이들에게 먹였다.
우리는 종일 굶다시피 했고, 오직 죽지 않을 만큼만 먹었다. 단 한 번도 배불리 먹지 못했다.
내겐 특히 힘든 일이었다. 임신을 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2025년 6월에는 남편이 다시 교사 일을 시작했다. 오래 일하고 돈은 얼마 못 받았다.
그즈음 나는 둘째를 낳았다.
남편은 일을 해도 소용히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두 달째 봉급을 못 받아서 더더욱 그랬다. 가자 현금 위기 때였는데,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인종학살로 기존의 은행은 업무가 중단되었고, 환전 브로커들이 제공하는 “서비스”를 이용하는 수밖에 없다. 브로커들은 현금 50달러를 받으려면 100달러를 보내라고 하기도 한다.
남편은 집에서 새로 태어난 아기를 돌보고 나를 돕기로 했다.
쉬운 선택이라고는 없는
지난 3년 동안 나는 이스라엘의 폭력 때문에 피신을 거듭했다.
지금은 가자시, 아부 마젠Abu Mazen 교차로 근처의 한 아파트에서 지낸다. 교차로에 서면 나무 몇 그루와 시장들, 그리고 바다가 보인다.
오는 11월이면 여기서 산 지, 방 하나에서 남편과 두 아이와 함께 지낸 지 1년이 된다.
우리 가족 네 명을 비롯해 남편 쪽의 세 가족 열한 명이 한 지붕 밑에 산다. 한 가족 당 방 하나씩이다. 사실상 사생활이 없어서 온종일 히잡을 입고 지낸다. 밤 열한 시까지도 소란스럽다.
주방과 화장실을 같이 쓰고 모든 지출을 분담한다. 세 식구 다 해서, 월세, 수도, 전기, 식료품 등을 포함해 한 달에 750달러 정도가 든다.
일자리가 거의 없다시피 하니, 가자에서는 이걸 나눠서 내도 감당하기가 힘들다.
우리 네 가족의 소망은 텔 알-하와에 있는 무너진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집이 그럴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가로 6m, 세로 4m짜리 벽을 세우고 전기와 수도를 수리해야 한다. 가스레인지, 가구, 심지어는 식기까지, 나머지도 전부 새로 사야 한다.
다 하면 2,000달러 이상 들 것이다.
하지만 피할 수 없는 물음이 있다 — 또 파괴 당하면 어쩌지?
얼마 안 되는 수입을 파괴 당한 집을 고치는 데 써도 될까, 또 다시 집을 잃게 될 뿐이라면? 우리의 삶이 무너질 때마다 몇 번이고 계속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우리가 오늘 다시 지은 것이 내일도 서 있을지, 확실한 것이 전혀 없다.
하지만 줄곧 다음 번 피란을 기다리며 불확실성 속에서 살아가는 것은 사는 것이 아님을 깨닫고 있다. 다시 짓고 새로 시작하려는 모든 시도가, 모종의 안정감을 되찾는 한 가지 방법이다.
그러지 않기를 바라지만, 일이 잘 안 풀리면 가자를 떠나는 것도 고려해 볼 것이다.
적당히 벌고 집과 건강 보험이 있는, 물리적으로 안전한, 외국에서의 생활을 생각하면 마음이 끌린다.
더 이상 쉬운 선택이라고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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