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과 실천적 지식인의 역할 (브루스 로빈스 인터뷰, 2026)

원문: Bruce Robbins, interviewed by Philip Weiss, “Palestine and the role of the activist intellectual,” Mondoweiss, 2026.07.12.

브루스 로빈스는 컬럼비아대학교 문학 교수다. 그가 새로 출간한 『저항이 허락되는 이들Who’s Allowed to Protest』 대학 내 팔레스타인 지지자들이 “언론에서 미국의 기관들에 존재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는, 폭력과 테러의 지지자들로 지목되는 새로운 공산주의자들”이 된 신 매카시주의new McCarthyism를 탐구한다. 로빈스는 자유주의자들은 시위자들의 권리를 지키지 못하고 있다고 쓴다. 우익 비평가들이 시위자들을 철모르는 엘리트주의자로 깎아내리는 동안 좌익의 “부당한 특권unwarranted privilege” 비판 역시 엘리트들의 역할을 약화시켰다. 로빈스의 책은 특권을 가진 이들이 소리를 높여야 할 의무를 개관함으로써 이에 답한다.

이 책은 오랜 시간 법학 교수를 지냈으나 인종학살에 맞서 시위를 벌인 학생들의 권리를 강경하게 지지하다 결국 자리를 잃은 캐서린 프랑케의 사례는 물론 수강생들을 학내 가자 농성장에 데려갔다가 컬럼비아대학교로부터 조사를 받은 로빈스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한다.

《몬도와이스》 설립자이자 선임편집자인 필립 와이스가 이 책, 컬럽비아대학교 가자 농성장, 실천적 지식인의 역할에 관해 로빈스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몬도와이스: 어떻게 팔레스타인을 의식하게 되었는지 말해 달라

브루스 로빈스: 청년기 나의 급진화 경험은 베트남전이었다. 열여덟 살이었고 징병 추첨 번호를 받았는데, 파병되면 우리는 죽이거나 죽거나 하게 되는 거라고 생각했다. 합중국이 늘 세계 여기저기의 잘못된 사람들을 지지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 논리적 귀결은, 우리의 이스라엘 지지는 어떠한가, 하는 것이었다. 나는 유대인이고 자라는 동안 주위 사람 전부가 어느 정도 이스라엘을 지지했지만 말이다.

에드워드 사이드와의 만남과 관해 말해 달라

70년대 말, 80년대 초에 나는 스위스에서 강의를 했는데, 그가 스위스의 프랑스어를 쓰는 대학들의 영문과 모임에 연사로 초청되었다. 내가 대담자로 지명되어 그가 내게 대담자가 읽어야 할 것을 보내주었다. 그것에 힘입어 나도 그에게 당시에 쓰고 있던 것 — 내게 매우 매혹적이었던, 망명자로서의 지식인 — 을 보냈다. 내가 다시 합중국으로 돌아오게 될 줄은 몰랐다.

몇 주 후, 전화가 울려 받아보니 에드워드 사이드입니다, 라고 했다. 당신 글이 정말로 좋았습니다. 공항에 마중 나와 주세요. 우리가 이야기할 것이 매우 많습니다, 라고. 평생 받아 본 중에 가장 좋은 전화였다. 그는 내가 글을 발표하고 합중국에서 다시 일을 구할 수 있도록 도와 주었다. 그에게 큰 빚을 졌다.

사이드는 팔레스타인인들을 위한 정의를 위해 싸우고 있었다. 1982년이었고 그는 여전히 두 국가 해법을 요구하고 있었다. 오슬로가 잘못된 93년 이후에 그는 한 국가 해법으로 돌아섰는데, 그것이 지금 나의 입장이기도 하다.

당신의 책은 당신이 컬럼비아대학교에서 윤리강령 위반으로 기소된 2024년에 가자 농성장에서 있었던 일을 다룬다

2024년 1월에 잔혹행위의 문학적 재현이라는 강의의 수업계획을 세웠다. 당시에 책을 쓰고 있던 주제였다. 4월 22일의 주제는 가자에서의 잔혹행위였고, 강의실 밖에는 농성장이 있었다. 기본적으로 가자에서의 잔혹행위에 항의하는 농성이었다. 그래서 수강생들에게 보라고, 저기서 수업을 할 역사적인 기회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유가 무엇이든 같이 가기 불편한 사람이 있다면 가지 않아도 되고 불이익은 없을 것이라고, 하지만 기회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같이 가자고 했다. 그래서 일부는 가고 일부는 가지 않았다.

얼마 후에, 수강생 두 명이 한 강을 듣지 못해 평등하게 교육 받을 기회를 침해 당했다며 나를 신고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몰랐는데 다른 학생들이 말해주길, IDF에 복무했던 이들이라고 했다. 한 번은 《타임스》지와 인터뷰를 했는데 기사에 IDF 제대군인 [문제]도 언급됐다. 내가 그 둘이 IDF 제대군인이라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 이야기가 나왔다. 그리고 IDF와 컬럼비아대학교의 관계에 대해 무슨 말이든 했다가는 곤란에 처하게 된다. 캐서린 프랑케도 그렇게 내쳐졌다.[역주1] 컬럼비아대학교가 IDF 제대군인들을 일반교양 프로그램에 받아주기로 했는데, 이제 막 전장에서 나온 IDF 제대군인들이 우리 학생이 되는 건 학교에 유익하지 않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던 것이다.

이스라엘의 관점에서 보면 이해는 된다. 그들은 자신들이 사악한 야만인들에게 총을 쏜다고 배웠다. 그러다 갑자기 컬럼비아 교정에 와서 보니 자신들이 사악한 야만인으로 이야기된다. 그리고 팔레스타인인들은 좋은 쪽으로 이야기된다. 뭐랄까, 상당히 무서운 기분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서둘러 법적 공방을 준비해야 했다. 한 차례 심문이 있었고, 나는 내 입장을 해명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몇 달이 지났다. 그쪽에 서신을 보냈다. 그랬더니 새로 제기된 혐의들이 있다고, 한 차례 더 심문을 해야 한다고 했다. 또 몇 달이 지났다. 그러다 학과장에게서 전화가 와서는 판결이 나왔다고, 징계에 관한 내용은 없고 그저 유죄 판결이 나왔다는 내용만 있는 결정문을 받게 될 거라고 했다. 정말 정말 이상한 일이다. 결국 웃기게 끝났다. 내가 받은 처벌은 내 연구실에서 학장과 15분간 대화를 나누고 한 젊은 변호사에게 한 시간 반짜리 교육을 받는 것이었다. 그녀는 그저 1964년 민권법 6편을 다시 위반하지 않는 법을 알려주는 거라고 했다.

그 수강생 두 명이 IDF 제대군인이 맞는지 아닌지 아는가

모른다.

6편에 국적 부분이 있나

트럼프 행정부에서 문제가 되는 범주를 국적까지로 확대한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스라엘인은 모두 IDF에 복무해야 하므로, [IDF를 비판하면] 기본적으로 나라로서의 이스라엘을 비판하는 것이 된다.

학생들은 농성장에 가서 무엇을 배울 것이었나

무어라 말하기 어렵다. 학기 말이었고 모든 것이 정말 혼돈이었다. 하지만 꽤 놀란 것 같았다. 상당히 인상적인 곳이었으니 말이다. 농성장에서는 차이들의 공동체를 보여주었고, 그 모습은 아름다웠다. 바로 그 자리에서 유월절 행사가 열리기도 했다. 유대교에 신념을 갖고 있어 그 자리에 온 유대인 아이들도 많았다. 이슬람이 됐든 무엇이 됐든 신념이 있어 그 자리에 온 무슬림 아이들도 많았다. 그리고 모두가 말하자면 아름답게 서로 섞였고, 바깥 세상으로부터 서로를 지켰다. 바깥에는 위협들이 있으니까 말이다.

모든 면에서 서로에게 좋은 사람이 되려 정말로 애쓰는 이들이 유토피아적 공동체 같은 느낌이 좀 있었다. 농성장 옆에서 영어를 썩 잘 하지 않는, 아마 중국인인 것 같았는데, 한 남자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나는 인종학살 피해자다. 미국이 내게 인종학살을 저지르고 있다. 나로서는 전혀 말이 안 되는 소리다. 농성장 사람들은 더없이 다정하게 그를 둘러싸고는 그에게 물을 건네고 그를 안아주었다. 그들은 모두를 이런 마음으로 대했다. 이런 사람들을 두고 폭력적으로 갈등을 일으킨다고, 캠퍼스의 안전을 위험에 빠뜨린다고 한다. 그들이야말로 아무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을 사람들이다.

두 해가 됐는데, 학생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아는가

좋은 질문이다. 잘 알고 있는 것 하나는 정학 처분을 받고 체포된 우리 과의 유대인 대학원생의 사례다. 그는 대학원생회 대표였다. 학교에서는 이듬해에 대학원생 계약에 대한 협상이[역주2] 예정되어 있었던 날 하루 전에 그를 퇴학시키기로 했다. 이를 통해 학교 관리직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조금 볼 수 있었다. 다른 교수들이 그가 다른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애쓰고 있는 것으로 안다. 그의 사례가 전형적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여럿이 이미 인턴십을 취소 당하거나 취직 기회를 잃거나 하는 등등의 일을 겪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이런 사건들을 통해 컬럼비아대학교는 어떻게 달라졌나

밖에서 봐도 알 수 있는 것 하나는 여전히 문을 걸어 잠그고 있다는 점이다. 학교 신분증이 없으면 교정에 들어갈 수 없다. 정말이지 이 공동체에 모욕적인 일이다. 116번 도로는 열려 있어야 한다.

이번 학기에는 강의를 하지 않는다. 하지만 교원 자치에 대한 관심이 되살아나는 게 보인다. 그래서 AAUP, 미국대학교수협회American Association of University Professors에서 매우 훌륭한 입장을 취하고 마흐무드 칼릴 같은 이들을 지지하는 야간 집회를 조직했다. 컬럼비아대학교 기숙사에서 체포된 학생인데, 학교에서는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고 여전히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학교가 트럼프 행정부에 굴복했거나 이사회 인사들이 트럼프 행정부와 해서 학교에다 시위자들에 트럼프 행정부에서 요구하는 방식대로 대응하라고 했거나라고 할 수 있다.

컬럼비아 같은 대학들이 중도의 보루라고 썼다. 그런데 2018년에는 컬럼비아 측에서 50년 전에 총장실을 점거했던 학생들을 경의를 표했다고도 했다

1968년을 기념한 건데, 이렇게 풍성한 역사가 있는 학교에 다니고 싶지 않느냐는 어조였다.

학생 봉기를 기린 건 아니었던 건가

내가 기억하기로는 그렇다.

존 브라운의 농장이 국가사적지로 등재된 것과 좀 비슷한 것 같다

정확하다.

책에서 실천적 지식인, 특권이 있고 혁명가는 아닌 이들의 역할을 탐구했다

늘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주제다. 베트남전 시기에, 조직화된 노동 운동은 너무 애국주의적이고 전쟁에 열광해서 우리가 같은 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 순간들이 있었다. 내가 보기에는 매우 편협한 태도였다. 나를 형성하는 데 가장 크게 기여한 정치적 경험이 중산층의 경험이라는 생각과 씨름해 왔다. 그것을 바로잡고 싶었고, 그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중산층은 당신에게 많은 것을 주었다

그렇다. 절대적으로. 내가 촘스키의 「지식인의 책임The Responsibility of Intellectuals」으로 돌아간 것은 그래서다. 이 글은 고전이다. 하버드 힐렐에서[역주3] 한 강연이다. 아주 거칠게 요약하자면, 촘스키가 하는 말은 이런 것이다. 나 같은 사람들은, 우리가 받은 교육만 생각해도, 특권층이다. 그 특권을 없앨 수는 없다. 그것을 활용하고 마땅한 책임을 다하는 것은 할 수 있다.

당신은 어떻게 하나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일까? 나는 뉴욕시에 산다. 뉴욕시장은 조란 맘다니다. 팔레스타인 정의라는 대의를 지지해 온 조란 맘다니가 대체 어떻게 당선됐을까? 내가 생각하는 것 하나는, 그가 경선에서 이긴 것은 부분적으로는 뉴욕에서 가장 가난한 이들이 아닌 이들에게 호소한 덕이라는 것이다. 대학 학위가 있는 이들, 그리고 우리 체제를 생각하면, 월세를 벌고 복지가 있는 괜찮은 직업을 구하려고 고군분투하는 이들, 사회적으로 가장 혜택을 받지 못하는 층이 아닌데도 체제에 맞서고 있다고 느끼는 이들에게 호소했다. 여론 조사를 보면 이들이 매우 중요한 집단이었고, 우선 이들을 잡은 후에는 더 나아가서 쿠오모에서 투표했던 이들에게도 경제적 부담 완화라는 메시지를 확실히 전달할 수 있었다. 유색인이 다수인 지역의 주민들 말이다.

책에 불평등의 본질에 관심이 없는 사람은 도덕적으로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썼다. 그런데 이 글을 읽는 건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다

음, 그 문제가 우리가 이런 정부를 갖고 있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힐러리 클린턴이 《월 스트리트》에서 30분짜리 강연에 25만 달러를 받았다고 밝히자 사람들은 민주당원이 그런 짓을 하다니 우습다고들 했다. 그녀는 그렇지 않다고, 모두 그렇게 한다고 했다. 기존 민주당 지지층에게는 그다지 좋게 들리지 않는 말이다.

트럼프 연합에는 확실이 인종주의적, 이민족혐오적인 요소들이 있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만이 아니라] 체제 자체를 보면서 공정하지 않다고 말한 이들이 많이 있다.

미국이 한 번도 공정한 적이 없었다는 것은 당신도 알고 나도 안다. 여성이거나 흑인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내 생각에, 트럼프가 끔찍한 일들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민주당 쪽 사람들이 불평등에 대해 충분히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근에 한 교수가 컬럼비아대학교 유대인 학생들은 JVP 아니면 공화당, 두 진영으로 나뉘어 있다고 했다

나도 이 엄청난 JVP[역주4] 열풍에 주목하고 있다. 컬럼비아대학교에서는 JVP가 금지되었고, 학교에서는 우리 학내에는 JVP가 존재할 수 없다는 식의 새로운 규칙을 만들기도 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다. 하지만 나는 전반적으로는 좋다고 생각한다. 우리 편이 훨씬 많다.

당신의 책은 유대인으로 사는 것에 대해서는 직접적으로는 논하지 않는다. 당신과 유대인이 아닌 캐서린 프랑케에게 다른 잣대가 적용되었다고도 했다. 하지만 당신에게는 이스라엘이 하고 있는 일을 합리화하는 유대인 동료들도 있을 테고 이 비극과 그에 대한 자신의 책임에 짓눌리는 젊은 유대인들도 있을 것이다

교수라면 함직한 이론적 논의 같은 것들을 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런데 사람들이 하는 일 중에는 절대적 악의 근원을 찾는 것도 있다. 그러면 다른 것에 대해서는 더 생각하지 않아도 되니까. 그래서 하마스, 하마스거리는 거다. 그것만 있으면 된다. 시리아에서는 아사드면 되고. 그러면 우리는 선이 된다. 우리가 왜 선한지는 말할 필요도 없다. 애초에 우리가 누구인지 물을 필요도 없다. 우리는 그저 저쪽에 있는 악을 보는 거다. 그러니 저들을 폭격해야 하는 거다.

베트남 때는 여기 합중국에 대한 혐오가 있었다. 오늘날에도 그렇다. 우리 이미지가 별로다. 유대인도 그렇다

나는 딸이랑 손녀가 있다. 그들이 여행을 가면 나는, 그들의 아비가 유대인인 걸 이런저런 사람들이 알아보면 곤란한 일이 생길 텐데 하는 생각을 한다. 이스라엘이 하고 있는 일 때문에 말이다. 이스라엘이 전 세계 유대인들을 엄청나게 위험에 빠뜨렸다고 생각한다.

반유대주의는 시온주의자들이 말하는 대로 영원하고 피할 수 없는 것이 — ‘도처에 있지. 저들은 그냥 우리를 혐오해. 그러니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 무엇을 하든 다 정당화 돼’가 — 아니다.

컬럼비아대학교에서의 반유대주의 논의에도 그런 분석이 반영되나

논의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아마도 당연한 전제로 받아들여진다. 이야기되는 것은 반유대주의의 무기화다. 컬럼비아 학내에서는, 특히 유대인 교수들이, IHRA[에서 정의하는 반유대주의 개념] 도입에 반대하는 조직화를 많이 하고 있다.[역주5] 우리 중에는 해당 기준을 위반하는 발언을 했다고 공언해 고발 당하려고 시도한 이도 많다. 하지만 무시 당했다.

캐서린 프랑케에 대해 더 이야기해 달라

캐서린 프랑케는 정말이지 놀랍게도 정학 당하고 퇴학 당하고 체포 당한 학생들을 지키고 있다. 학생들을 변호하는 데에 전문가로서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고 있다. 학생들이나 동료 교원들을 지키기 위해서 하는 만큼 열심히 자기 자신을 지켜 본 적은 없는 사람일 거다.

감동적이다

그렇다. 그런데 그녀의 변호인도 매우 감동적이다. 아마 알 텐데, 소속 로펌에서 캐서린 프랑케 건을 수임하면 안 된다고 했다. 그랬더니 엿이나 먹으라며 그만 뒀다. 훌륭한 신조가 있는 게다. 캐서린은 그런 것을 불어넣는 사람이자 그런 것에 둘러싸여 있는 사람이다.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데, 《몬도와이스》 독자들에게 권하고 싶다. 제목은 〈근무 시간Office Hours〉이다. 트럼프 행정부나 컬럼비아대학교 행정부에서 말하는 것들을 법적으로 분석하는 채널이다.^역주6

10월 7일 후에 주요 로펌들에서 전국 법대 학장들에게 서신을 보냈다. 아마도 하버드 급진주의자들의 서신에 대응해, 이봐, 너네 학생들이 여기 서명하면 우리한텐 취업 못할 거야, 하는. 기성 체제에서 나온 매우 중요한 메시지였다. 그런 흐름이 끊어졌나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은 가자 인종학살이 여론의 변화를 불러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이들도 자신들이 지고 있음을, 특히 젊은이들을 잃고 있음을 안다. 이게 바로 사람들이 가자에서 배운 바다. 이거야말로 절대적인 악이라는 인식이 나온 것이다. 우리는 소셜 미디어에서 이를 여과 없이 목도했다. 무슨 말을 해도 이걸 괜찮아 보이게 할 수는 없다. 대다수까지는 아니지만, 전보다 훨씬 많은 이들이 그렇게 생각한다. 내가 기분이 좀 더 좋은 것은, 실은 깊은 곳에서는 생전에 이런 변화는 보지 못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유대인 공동체의 변화, 그리고 민주당에서 유대인 공동체가 맡고 있는 문지기 역할에 대해 해 줄 말이 있나

유대인 공동체 내에서 의견이 바뀌고 있다는 사실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몰리 크래버플의[역주7] 책이나 그 책에 대한 반응을 알고 있나? 우리에게는 고귀한 유대 반시온주의 전통이 있고, 이건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학대하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숱하게 있었던 것이 그리 오래된 일도 아니다.

내 경우에는, 젊은 시절 시나고그에서 떠날 당시에는 내가 유대인이라는 것이 내게 어떤 의미가 될지 분명히 알지 못했다. 지난 25년 동안 같은 마음인 사람들, 이스라엘을 맹렬히 비판하는, 보편주의자인 이들과 어울렸는데 놀라운 시간이었다. 내 민족에 대한 소속감을 주었다. 의도하거나 예상했던 것은 아니지만, 일종의 축복이었다.

추기. 이 기사가 게시된 후, “컬럼비아 팩트 체크”라는 한 독자가 트럼프가 민권법이 출신 국가를 포함하도록 확대 적용해 IDF를 보호한다는 로빈스의 발언을 지적했다. 해당 독자는 1064년에 민권법이 통과될 때 “법령에 출신 국가가 명시되었다”. 아래는 로빈스의 답변이다.

“더 정확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트럼프 행정부가 민권법의 해당 편을 이스라엘군에 대한 모든 비판을 출신 국가를 토대로 한 비판이 되도록 해석하기로 했다는 것이 저의 관점입니다. 나치 비판이 독일 민족에 대한 비판이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들이 내세울 수 있는 최선의 — 훌륭하지는 않은 — 논거가 이스라엘에서는 군 복무가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거의) 보편적이므로 IDF에 대한 모든 비판은 출신 국가에 토대로 하는 비판이라는 거죠. 이는 민권법에서 의도한 바가 전혀 아닙니다.”


↥역주1 Katherine Franke. 민권 소송 변호사 출신으로 컬럼비아대학교 젠더·섹슈얼리티법연구소장을 지냈고 로스쿨 종신교수였다. IDF에서 전역한 이스라엘 학생들이 팔레스타인계 학생 등을 괴롭힌다는 문제를 제기하고 학내 시위대 강제 진압을 비판하는 등의 발언으로 학교 측의 강도 높은 압박을 받은 끝에 사직했다.

↥역주2 대학원생 노동조합과 학교 측이 조교 노동 조건 등 대학원생의 지위와 처우를 협상하는 것을 말한다.

↥역주3 Harvard Hillel. 하버드대학교의 유대인 학생 기구.

↥역주4 평화를위한유대인의목소리Jewish Voice for Peace. 미국에서 “팔레스타인의 자유와 시온주의 너머의 유대주의를 위해 활동하는 전국구 풀뿌리 단체”로 스스로를 소개한다.

↥역주5 트럼프 행정부는 2019년에 인종, 피부색, 출신 국가를 토대로 한 차별을 금지하는 민권법 제6편을 근거로 “반유대주의 퇴치를 위한 행정명령”(행정명령 제13899호)(영어)를 발표했고, 2025년에는 바이든 행정부에서 무력화된 해당 행정명령을 복구·강화하는 “반유대주의 퇴치를 위한 추가 조치”(행정명령 제14188호)(한국어)를 발표했다. 2019년 행정명령에서는 “2013년 이후로 반유대주의 사건이 증가하고 있으며 특히 학생들은 학교나 대학에서 반유대주의적 괴롭힘을 마주하고 있다”고 지적했고, 대학을 비롯한 민권법 적용 기관들에 관련 조치를 시행할 때 국제홀모코스트추모연맹International Holocaust Remembrance Alliance(IHRA)에서 제시하는 반유대주의 정의 및 사례들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역주7 Molly Crabapple. 미국의 작가. 2026년 4월에 출간한 『우리가 사는 여기가 우리 나라다Here Where We Live Is Our Country』는 19세기 말 러시아 제국에서 결성된 동유럽 반시온주의, 사회주의 노동계급 단체 유대인노동자일반연맹General Jewish Labour Bund의 역사를 다룬 책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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