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칸 유니스 나세르의료단지에서 두 살 난 마흐무드를 기다리는 아흐메드 알-히르시Ahmed al-Harsh의 가슴이 타들어갔다.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마흐무드Mahmoud는 2023년 11월 이스라엘이 알-시파 병원을 공격했을 때 가족 없이 이집트로 보내져야 했던 수십 명의 미숙아 중 한 명이다. 아흐메드는 작은 아이를 안고 싶어 군중을 뚫고 버스로 다가갔다. 사방에서 사람들이 밀어대는 통에 아이는 속절없이 울음을 터뜨렸다. 아흐메드가 다가가 그를 끌어안았다. 마침내 아들이 돌아온 것이 믿기지 않았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모함메드 루바드Mohammed Lubbad 역시 빼앗긴 아들을 마침내 되찾으리라는 희망을 붙잡고 있었다.
알-히르시와 루바드, 두 사람 다 마흐무드가 자신의 아들이라고 확신했다.
둘 다 증명할 길은 없었다. 전쟁은 출생 기록조차 남기지 않고 다 없애버렸고, 의료 체계가 무너져 유전자 검사를 할 수도 없다. 이 아기가 누군지는 아무도 모른다.
2023년 10월, 이스라엘의 공습이 아흐메드 알-히르시의 집을 덮쳤다. 그는 중상을 입고 살아남았다. 친척 열한 명은 살아남지 못했다. 임신 8개월차였던 그의 아내 파티마Fatima는 가자시 알-시파 병원에서 긴급 제왕절개로 아이를 낳았다. 알-히르시는 부상 때문에 출산에 함께 하지 못했다. 파티마는 이틀 후 세상을 떠났다.
알-히르시의 집이 폭격 당하기 전날에는 모함메드 루바드의 집이 폭격 당했다. 그도 위험할 정도로 다쳤고, 마찬가지로 아내가 아이를 낳을 때 함께 있지 못했다. 그의 아기도 같은 방식으로, 8개월 차에 긴급 제왕절개로 태어났다.
11월 11일, 이스라엘 병사들이 가자에서 제일 큰 병원인 알-시파를 공격했다. 심장병동이 폭격 당했고 전기가 끊겼다. 신생아병동의 인큐베이터와 호흡기가 멈췄다. 서른아홉 명 가량의 미숙아가 입원해 있었다. 세계보건기구는 알-시파 병원을 “죽음의 지대”라 불렀다. 일부 영아는 사망했다. 11월 20일, 28명이 이집트로 보내졌다. 그들은 2년을 이집트에 머물게 된다. 대부분이 가족 없이 도착했고, 가족들이 자기네 아기의 생사를 알 방도는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출생 신고는 거의 불가능했다. 엄마가 누군지, 아빠가 누군지, 가족이 살아 있기는 한지를 아무도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기록은 사라졌거나 애초부터 없었다.
전쟁은 가자 어린이들 한 세대의 삶을 통째로 뒤집어놓았다. 가자 보건부의 최신 통계에 따르면 2023년 10월 이래로 73,000명 이상이 살해 당했고 그 중 21,000명 이상이 아동이다.
살아남은 아이들에게서는 무어라 말하기도 어려운 것들을 앗아갔다.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게 만들었다. 가족을, 이름을 앗아갔다. 아이들 수천 명의 삶의 가장 기본적인 사실들이, 이름이, 가족이, 속할 곳이 사라졌고 그것을 바로잡아 줄 이 하나 남지 않았다.
‘외로운 생존자’의 힘겨운 삶
타사힐 알-아크라스Tasahil al-Akhras는 고아들, 특히 가족을 모두 잃은 “유일한 생존자”들에게 심리적 지원을 제공하는 단체에서 일하는 심리학자다. 그녀는 “한날은 아이가 가족들에게 둘러싸여 품에 안겨있다가도 다음날이면 순식간에 혼자 남겨진다”고 말해다.
가자 사회개발부에서 파악하고 있는 부모 중 한 명 이상을 잃은 아동은 64,165명이다. 이 중 55,175명이 이번 전쟁으로 고아가 됐다.
2024년 4월에 유니세프에서 추산한 바로는 가자 아동 전부 정신건강 지원을 필요로 한다.
알-아크라스가 만난 아동 중 하나인 야라Yara라는 (사생활 보호를 위해 여기에는 가명을 썼다) 열여섯 살 소녀는 부모님과 형제자매, 양가 조부모님과 부모님의 형제자매까지, 온 일가를 전부 잃었다. 그녀 곁에 살아 있는 사람이 단 한 명도 남지 않았다.
알-아크라스는 야라는 현재 다른 어느 대가족과 함께 작은 천막에 살고 있다고 말한다. 그 가족의 아버지는 일을 하지 않는다. 전쟁이 생계를 파괴한 탓이다. 그 결과 약물사용자가 되어 고전하고 있다. 먹을 것은 늘 부족하다. 천막은 겨울에는 물바다가, 여름에는 찜통이 된다. 야라에게는 달리 갈 곳이 없다.
전쟁 전의 야라는 붙임성 있는 아이였고 반에서 가장 뛰어난 학생 중 하나였다고 한다. 그랬던 소녀는 이제 보기 힘들다. 알-아크라스는 그녀가 외상후스트레스 징후를 보인다고 말한다. 제 속으로 침잠해버렸다. 자신이 겪은 일을 도통 이야기하지 않는다. 원래 살았던, 폐허가 된 집 앞을 걷지 못한다. 밤마다 악몽에 시달린다.
그녀는 온라인 수업을 들으려 애쓰지만 천막 생활은 그럴 만한 여지를 거의 주지 않는다. 청소와 요리를 하고 제 아이가 아닌 아이들을 돌봐야 한다. 같이 놀 친구도 안심할 수 있는 장소도 없다.
야라는 자신도 가족과 함께 죽었기를 바란다.
아이들이 결코 치유될 수 없는 환경

알-아크라스는 자신이 하는 일의 한계를 잘 알고 있다. 아이들에게 이야기할 공간을, 두려움과 슬픔과 분노를 언어화할 길을 열어 줄 수 있다. 불안, 악몽, 공황 등 트라우마에 따르는 증상들을 완화해 줄 수 있다. 아이들을 돌보는 사람들에게 방법을 알려 줄 수 있다. 하지만 이 아이들은 끝나지 않고 계속되는 트라우마를 — 폭격을, 피란을, 반복되는 상실을, 무너지지 않는 기댈 곳이 단 하나도 없는 삶을 — 겪고 있다.
알-아크라스는 안전한 곳이라고는 없는 곳에서 진짜 회복은 시작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녀가 아이들에게 안정적인 가정을 줄 수는 없다. 두려움을 가시게 해 줄 수도 위협을 덜어 줄 수도 없다. 평범한 일상을 혹은 학교를 혹은 안전이 유지되는 장소를 약속할 수 없다. “가끔은, 치유를 허락지 않는 현실 속에서 그저 고통을 덜어주고 있을 뿐이라는 기분이 들어요.”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2025년 10월에 소위 휴전이 발표된 후로도 살해는 멈추지 않는다. 가자 보건부는 협정이 발효된 후 몇 달 동안 가자지구의 다섯 개 주 전역에서 공습, 폭격, 총격으로 팔레스타인인이 1,000명 이상 살해된 것으로 기록했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들의 삶에 새로 경계를 그으려 설정한 소위 황색선에서 먼 곳에서 살해된 이도, 그 지척에서 살해된 이도 있다.
지난 5월, 이스라엘 총리는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의 60%를 통제하고 있다고 공표하고 70%로 확대하라고 주문했다.
구호 활동은 총격과 마찬가지로 단속적으로 이루어진다. 10월부터 6월 말 사이, 협상에서 약속된 트럭의 1/3만 진입이 허용되었고 이스라엘은 과자나 청량음료는 들여 보내면서도 육류, 유제품, 채소 등 기본적인 영양가 있는 식재료는 막았다. 남은 의료 시설들도 무너지기 직전이다. 가자의 병원 절반 이상이 부분적으로만 운영되고 있으며, UN에 따르면 온전히 가동되는 곳은 단 하나도 없다.
피신할 곳도, 몸을 숨길 곳도 없다. 적은 가자의 어디 한 구석조차도 내버려 두지 않으려 한다.
전쟁 전에는 부모를 잃은 아이가 홀로 남겨지는 일은 드물었다. 가족 중의 누군가가 아이를 거두었다. 알-아크라스는 부모를 잃은 아이도 자신이 아는 사람들, 아는 장소들 가까이에서 다른 가족과 다름 없는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고 말한다.
하지만 모두를 잃은 아이들은 종종 낯선 이들의 보살핌을 받게 된다. 가자의 공동체는 여전히 긴밀하지만 낯선 이의 집이 늘 안전하지는 않다. 알-아크라스는 어떤 아이들은 그들을 돌보아 주어야 할 이들에게 가혹한 대우를 받는다고 말한다.
보육원이 있기는 하지만 규모도 작고 수도 적다. 예컨대 2025년 1월 기준으로 SOS어린이마을SOS Children’s Villages에서는, 라파에 있었던 건물이 파괴된 후로 칸 유니스의 피란촌에서, 영아부터 17세까지 33명의 가자 아동을 돌보고 있었다. 공식적인 대안돌봄은 사회개발부 소관이지만 역량이 태부족이다.
아동이 받는 영향
모든 아동이 무너지는 것은 아니다. 대신 어떤 아이들은 조용해진다. 그런 아이들은 겉으로는 괜찮아 보인다. 놀기도 하고, 심지어는 웃기도 하지만 깊은 곳에 슬픔이 숨어 있다. “슬프다”고 말하는 아이는 좀처럼 없다. 고통은 다른 식으로 배어 나온다. 악몽으로, 야뇨로, 전쟁을 그린 그림으로, 긴 침묵으로.
깊은 상처 하나가 반드시 아이의 평생을 좌우하는 것은 아니다. 알-아크라스는 이를 분명히 한다. 한결 같고 다정한 어른 한 사람. 어느 정도의 안전감.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 서서히 안정되는 삶. 이런 것이 있으면, 최악의 일을 겪은 후라도, 향방이 달라질 수 있다. 아이에게는 지지해주는 관계망이 필요하다. 문제는 전쟁이 없애버리는 것이 바로 그것이라는 데 있다.
나세르의료단지로 돌아가보다. 마흐무드는 이 모든 것을 모른다. 그는 두 살이다. 두 남자가 자신을 아들이라 부른다는 것도, 그 중 누구도 그걸 증명할 수 없다는 것도, 증명해 줄 기록을 전쟁이 없애버렸다는 것도 알지 못한다. 지금은 아흐메드 알-히르시와 살고 있지만 모함메드 루바드는 여전히 그가 자신의 아들이라 믿고 있다. 마흐무드는 어떤 면에서는 야라와 정 반대다. 그녀는 모두를 잃었다. 그에게는 자신을 아들이라 말하는 이가 둘이 있다. 하지만 둘 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에 속하는가 하는 똑같은 물음을 안고 자라갈 것이다.
그런 아이가 수만 명 더 있다. 마찬가지의 상실을 저마다 안은 채, 이미 펼쳐지기 시작한 무서운 미래를 마주한 아이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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