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남성의 생명은 중요하다 ― 아동과 여성에게만 집중해서는 안 된다 (헤디 비테르보, 2021)

원문: Hedi Viterbo, “Palestinian Men’s Lives Matter: The Problem with Singling Out Children and Women,” Jadaliyya, 2021.05.20.

지난 일요일, 가자시에서 이스라엘의 공급으로 파괴된 주거용 건물의 잔해를 수색하는 모습. AP/아델 하나Adel Hana


가자 지구 사상자에 대한 국제 언론 보도는 아동에게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그들의 고통과 죽음을 전면에, 중심에 놓는다. 종종 팔레스타인 여성도 언급된다. 인권 캠페인들에서도 마찬가지로 — 서른 해 전에 신시아 인로가 만든 용어를 쓰자면 — “여성및아동womenandchildren”에 초점을 맞추곤 한다.

그런 한편, 팔레스타인 성인 남성의 고통과 죽음이 그만큼 주목 받는 일은 없다시피 하다. 그들의 이름, 얼굴, 사연은 너무도 자주 묵살된다.

하지만 가자 사망자의 대부분 — 현재 이스라엘이 가하고 있는 공격으로 인한[역주1] 사망자의 절반 이상, 이번 세기 사망자의 70% 이상 — 은 성인 남성이다. 아동과 여성만을 지목하는 데에는, 설령 더없는 선의에 따른 것이라 해도, 이 남성들의 목숨을 깎아내릴 위험이 있다.

국제 사회가 팔레스타인 남성들을 도외시하는 주된 이유 하나는, 아동과 여성은 정의 상 특히 취약하거나 무고하거나 둘 다라는 믿음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세계에서 일부 취약성이 연령이나 성별과 연관된다고는 해도, 모든 “아동”, “여성”, “남성”을 뚜렷이 구분되는 단일한 집단들로 이야기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아동권리협약 — 세계에서 가장 널리 비준된 조약이다 — 에 따르면 “아동child”은 일반적으로 18세 이하의 모든 이에게 적용되는 개념이다. 이 정의를 따르자면 가자 인구의 절반이 아동이다. 이 집단에 속하는 팔레스타인인들의 연령, 환경, 특성은 매우 다양하다. 예컨대 어떤 17세 아동은 상당 수의 가자 “[성인] 남성”보다 덜 취약할 것이다. 여성및아동을 취약하고 무고한 단일 집단으로 뭉뚱그리면 문제는 악화될 뿐이다.

힘 없는 희생자로서의 아동과 여성이라는 이미지는 또한 그들이 팔레스타인 민족 투쟁에서 능동적으로 역할하고 있다는 사실을 무시한다. 특히 아동은 팔레스타인 역사 내내 정치 행의 최전선에 있어 왔음에도 1987-1993년 인티파다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국제 사회의 주목을 받았다. 이후 성인이 되어 한 인터뷰에서 많은 이들이 이 대중 봉기에 참여한 경험이 자신을 더 강하게, 자립적이게, 정치적·사회적으로 의식 있게, 그리고 책임감 있게 해주었다고 말했다.

팔레스타인에서나 다른 곳에서나 아동은 종종, 때로는 성인들보다도 더, 놀라운 회복력과 지혜를 보여준다. 경제적으로 가족을 부양하는 노동 아동이 그 한 예다. 병든 부모를 보살피는 아동 돌봄제공자도 그렇다. 이민자 부모를 위해 통역사 노릇을 하는 아동도 마찬가지다. 그 외에도 수두룩하다.

다른 한편에서는 성인 — 성인 남성을 포함해 — 이 종종 아동에게 기댄다. 예컨대 — 3년 전 이스라엘 감옥에 수감되어 전 세계가 이스라엘을 규탄했던 서안 출신 16세 소녀 — 아헤드 타미미Ahed Tamimi[역주2] 말을 생각해 보라. 그녀는 당시 “미성년자들이 정말이지 감옥에서 제일 강한 이들이었다”며 “어른들에게도 힘을 주곤 했다”고 말했다.

또한 세계 여러 지역의 전쟁에 대한 연구들에 따르면, 군 복무 연령대 남성은 특히 취약한 집단이다. 무엇보다도 즉결 살해, 자의적 구금, 강제 징병의 위험이 높다.

이렇듯 취약성은 연령과 성별로 환원하기에는 너무 복잡하다. 취약성을 아동, 여성과 — 그리고 그들과만 — 연관 짓는 것은 다양한 연령, 성별의 팔레스타인인들에게 해가 되는 처사다.

무고함으로 말하자면, 전시국제법은 민간인과 전투원, 두 개의 집단을 구분한다. 무장 폭력에 가담하지 않기에 무고하다고 상정되는 전자는 특별한 법적 보호를 받는다. 반대로 후자는 적법한 군사 표적으로 간주된다. 이에 더해 — 제네바협약, 아동권리협약, 국제연합 비상사태및무력충돌시여성과아동의보호에관한선언 등 — 여러 국제 문서들은 전시에 아동과 여성을 특별히 보호한다. 그로 인해 “여성 및 아동”이라는 말은 “무고한 민간인”의 약칭으로 쓰이곤 한다.

이렇게, 무고한 피해자로서의 아동과 여성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팔레스타인 남성은 죽여도 되는 표적이라는 함의를 품게 된다. 이런 관념은 결국 이스라엘군의 손에 들어가 이스라엘군의 폭력을 정당화하는 데 쓰인다.

이스라엘만 그런 것이 아니다. 합중국은 비슷한 이유를 들어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 같은 국가에서 드론으로 남성들을 공격하는 것을 정당화한다. 팔레스타인인, 아프가니스탄인, 이라크인 등의 무슬림 남성을 위험한 테러리스트로 묘사하는 것은 너무나 익숙한 이슬람혐오적 패턴이다. 이런 식으로, “전투원” 딱지는 점차 그저 연령(성인), 성별(남성) 뿐만 아니라 종교(무슬림), 국적, 인종과도 동치되게 된다.

인구 밀집 지역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한다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 이스라엘은 또한 가자 사람들이 아동의 존재를 군대나 주거지역에 대한 공격을 막기 위한 방패로 이용한다고 비난한다. 이런 혐의를 날조하는 것은 선제적으로 법적 방어 논리를 마련하기 위해서다. 팔레스타인 아동들이 전투에 가담한다면 이스라엘은 성인 전투원만을 겨냥할 수 없게 되며 따라서 그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주장은 편리하게도 이스라엘 군인들이 아동을 비롯한 비전투원 팔레스타인인들을 수십 년 간 인간 방패로 써 왔다는 사실은 모른 체 한다. 이런 일을 수 차례 승인한 바 있는 한 이스라엘 지휘관은 2014년에 합동참모부 부의장으로 진급했으며 현재는 크네세트(이스라엘 의회) 의원직을 맡고 있다. 더욱이, 민간인이 군사 지대 가까이에 있으면 인간 방패가 된다 치더라도, 가자 — 세계에서 인구 밀도가 가장 높은 곳 중 하나인 — 에서만 그런 일이 있는 것도 아니다. 도심 내 혹은 근처에 대규모 군사기지들이 있는, 이스라엘의 1967년 이전 국경 내 지역들 역시 그러하다.

2014년 이스라엘의 가자 공격 당시 마야 믹다시가 설득력 있게 말한 바 있듯,

이스라엘 전쟁기계는,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에서의 합중국 전쟁 기계와 별다를 것 없이, 팔레스타인 퀴어, 여성, 아동을 보호하지 않는다. 그들을 살해한다. 불구화한다.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그들을 내쫓는다. 그저 팔레스타인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말이다. … 오늘날, 팔레스타인 여성및아동과 팔레스타인 남성의 차이는 시체가 되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그 시체가 지배·주류 담론의 틀, 누가 공적으로 애도 받을 수 있는 이스라엘 전쟁 기계의 “희생자”인지를 규정하는 그 틀에서 유통되느냐 마느냐에 있다.

팔레스타인의 아동과 여성이 국제 사회의 지원을 받아야 한다는 데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성인 남성 역시 마찬가지다. 전자에만 집중하는 것은 몸을 사리는 것이다. 세상의 수많은 이들이 남성에게는, 특히 식민화되고 주변화된 공동체의 남성에게는 연민을 덜 품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는 탓이다. 그런 선택적 공감을 강화해서는 안 된다.

이 모든 이유로, 팔레스타인에 관한 국제 사회의 대화는 달라져야 한다. 팔레스타인 남성은 살고 번성할 자격이 있다. 그들의 생명은 중요하다. 그들에게 충분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이스라엘은 결코 그 폭력을 책임지지 않을 것이다.


역주1 이스라엘이 다마스쿠스문 일대에서의 회합을 금지하고 셰이크 자라 지역 팔레스타인인 주민들을 강제 퇴거한 데 더해 알-아크사 모스크를 침탈하면서 하마스에서 5월 10일을 기해 이스라엘에 미사일을 발사했고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에 보복 공습을 가하면서 11일간 전쟁이 이어졌다. 〈존엄과 희망 선언문〉(단결 인티파다 통문, 2021)의 역주 참고.

역주2 2001년생 활동가. 2017년에 자신의 마을에서 이스라엘 정착촌 반대 시위에 나섰다가 진압군 폭행, 투석 등의 혐의로 체포, 기소되었다. 형량 거래를 통해 혐의를 인정하고 7개월 여의 징역을 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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