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Saleh Abbas, “How Palestinians have resisted weaponized ‘development’ from the British Mandate to the Gaza Board of Peace,” Mondoweiss, 2026.08.08.
* 원문이 매끄럽지 않은 곳이 종종 있는데, 일부는 그대로 번역하고 일부는 짐작을 더해 옮겼으나 따로 표시하지 않았다.

2026년 1월 15일, 가자 사람들에게 가자평화위원회Gaza Board of Peace가 강제되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샤프롱 격으로 나서고 재건, 신탁 통치, 평화라는 언어로 치장했다. 하지만 이 구상은 나크바 기획의 식민적 탈바꿈으로 보아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식민 열강은 경제적 수단과 “개발” 계획을 체계적으로 활용해 팔레스타인인들을 관리하고 분열시키고 내쫓아 왔다. 그리고 그에 맞서, 팔레스타인인들은 보이콧, 대규모 결집, 정치적 거부, 무장 투쟁을 통해 늘 저항해 왔다.
영국 치하, 1948년 시온주의 유대화 이후, 오슬로 시기, 가자평화위원회, 이상 네 개의 핵심 시기로 구분되는 개발 계획들을 살펴보면 지금의 재건 및 신탁 통치 제안은 그저 경제와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팔레스타인의 땅과 주권을 팔아넘기는 나크바 거래의 길고 악랄한 역사의 새 장에 지나지 않음이 분명히 드러난다.
팔레스타인 전기 도입
1921년, 영국 위임 통치 점령 하 팔레스타인에서, 영국 관료들은 핀하스 루텐베르크Pinhas Rutenberg를 데려다 팔레스타인전력회사Palestine Electric Company(PEC)를[역주1] 설립했다. 표면적으로는 팔레스타인의 모든 이에게 전기를 제공하고 팔레스타인을 새 시대로 발전시킬 중대한 기술적 진보이자 기반시설의 도약이었다.
하지만 영국은 위임통치령 팔레스타인 전역에 전기를 도입할 수 있는 법적 권한을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한 러시아계 유대인 공학자이자 시온주의자인 루텐베르크 단 한 사람에게 넘겨주었다. 그 결과, 전력 보급은 유대인 청착촌들을 풍요롭게 만들고 그 야심에 힘을 실어 주었다. 이 야심은 1920년대 중반 팔레스타인의 전력 합병이 시작되면서부터 드러났다. 이 시점에 PEC 전력망은 야파, 하이파, 타바리아 등지의 유대인 정착촌에 전기를 공급하면서 빠르게 확장되고 있었다. 해당 지역의 팔레스타인 마을이나 나블루스 같은 주요 팔레스타인 도시는 빼고서 말이다.
영국의 식민 야욕과 성장세의 정착자 사고방식이 뿌리 깊게 결합한 것이 이런 기획이 성장한 비결이었다. 그 덕에 갖가지 개발 계획이, 팔레스타인인들을 체계적으로 배제하고, 시온주의 정착자들에게 돌아갔다. 이는 그저 공용설비 계약 발주에 그치는 일이 아니었다. 팔레스타인인들이 중요한 공용설비를 통제하지 못하도록 선제적으로 차단하고 기반시설 권력을 시온주의자들의 손에 몰아준 것이었다.
이에 굴하지 않고 팔레스타인인들은 저항했다. 영국이 힘을 싣는 잠식의 확장[과] 시온주의적 전력화 사업 모두에 저항했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처음부터 유대인이 전력을 독점하는 걸 거부했지만 영국 위임통치 당국은 이를 무시했다. 이 같은 묵살에 팔레스타인인들은 1922년에 나블루스에서 열린 제5차팔레스타인민족총회Palestinian National Congress에서 루텐베르크 계획 보이콧을 선언했다. 돌아온 것은 루텐베르크 기획의 무한한 확장을 위한 전략전술의 지속적인 강화였다.
PEC가 성장하면서 정치적 전압도 치솟았고, 각지의 팔레스타인 마을에서 시위가 열려 “루텐베르크의 전신주는 우리의 교수대다 أعمدةُ روتنبرغ مشانقُنا” 같은 구호가 팔레스타인 전역에 울려퍼졌다. 적의 식민 기획에 대한 이 같은 날카로운 의식은 — 루벤베르크와 영국이 팔레스타인인들에게는 “동업 관계”를 일절 내어주지 않으려 해 외교적으로도 길이 막히면서 — 사보타주 활동이 배태되는 요람 노릇을 했다. 사보타주는 초기에는 크게 성공해 대규모 정전을 일으키곤 했다. 아랍 봉기Arab Revolt 시기에는 보다 강력한 활동이 전개되었으나 이때는 이미, 확대된 루텐베르크 전력망이 영국 당국의 보호와 보급 지원에 크게 의존하면서 정전에 더 잘 대처할 수 있게 된 뒤였다.
애초에 PEC에 권리를 양도했던 그 식민 지주가 이 전기 종양을 제거하려는 팔레스타인인들에게서 PEC를 지켜주려 돌아온 것은 놀랄 일도 아니었다. 윈스턴 처칠은 한 유대계 회사에 전기 사업권을 부여한 것을 자랑하면서 “팔레스타인의 아랍인들은 천 년이 지나도 팔레스타인에 수도와 전기를 제대로 설치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PEC가 확장하는 내내, 팔레스타인인들은 이 개발 기획의 악랄한 본성을 알고 있었다. 간단한 기획이었다. 팔레스타인에 전력망을 설치해 외세를 배불리는 것. 1940년대에 전기의 90%는 유대인 정착촌에서 쓰였다. 많은 팔레스타인인들의 눈에 루텐베르크가 심고 영국이 비호한 전신주와 전선은 그들과 그들의 땅의 숨통을 막으려 드는 교수대에 지나지 않았고, 그들은 눈을 부릅뜨고 그 교수대에 저항했다.
“식민 집단들이 팔레스타인에 온 것은 평화롭게 살기 위해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융화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땅과 자원을 차지하고 부모들을 제 땅에서 내쫓기 위해서 — 아랍 지역의 자원을 장악하려는 목적에서 — 였다.”
— 조지 하바시George Habash (〈청년이 우리의 미래를 건설한다The Youth Will Build Our Future〉, 《팔레스타인인민해방전선 소식지PFLP Bulletin》 31호, 1979)
팔레스타인의 유대화
팔레스타인 내 정착촌 전기 도입이 1948년 대규모 추방의 길을 닦았다면, 1950년대, 1960년대의 시온주의적 법적·경제적 개발은 식민의 재앙을 재빨리 착취했다.
나크바 몇 년 후, 팔레스타인인들의 권리를 빼앗고 유대인 정착자들에게 착취를 허락하는 일련의 법령을 통해 팔레스타인에서 시온주의 “개발”이 법제화되었다. 그 정점에는 1950년에 설치된, 빼앗은 팔레스타인 토지를 시온주의 집단[이스라엘] 소유로 넘기는 개발국Development Authority이 있었다. 그 결과로 (팔레스타인 토지 전체의 16.6% 가량에 해당하는) 백만 두남이 대거 빼앗겼고, 유대민족기금을 비롯한 유대 기관이나 개인 소유로 이전되었다.
이 현재진행형 나크바의 설계를 잘 보여주는 초기 시온주의 기획이 하나 있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 “갈릴리 개발”이라는 구호를 걸고 신규 정착촌들이 확대 중이던 보안·감시 초소 벨트를 따라서 팔레스타인 북동부에 물밀 듯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갈릴리 개발 기획은 팔레스타인 토지 수만 두남을 집어 삼키고 팔레스타인인들을 고립되고 감시 당하는 섬들로 몰아 넣었다. 이 전이는 팔레스타인의 저항으로부터 정착촌들을 보호하고 팔레스타인의 성장을 감시하는 데 기여했다. 이 정책은 1976년에 최고치에 이르러, 데이르 한나Deir Hanna, 아라바Arraba, 사크닌Sakhneen, 알 나스라Al Nasra 일대의 땅 2만 두남 이상을 추가로 몰수했다.
이 같은 수탈에 맞서 팔레스타인인들이 힘을 모은 저항을 우리는 “토지의 날Land Day”이라 부른다. 토지의 날은 대중 파업의 형식을 띤 집단적 참여로, 또한 서안, 가자, 레바논 내 난민촌들에서 번진 연대 행동으로 잘 알려져 있다.
토지의 날이 진공에서 나온 것이 아님을 밝혀 둘 필요가 있겠다. 1950년대 초가 되면서 이 기획에의 저항은 나크바가 부과한 시간, 공간, 물적 조건들에 의해 형성된 것임이 분명해졌다. 가자에서는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제 땅을 되찾기 위해 휴전선을 넘었다. 이런 활동들은 점차 성장해 종족청소에 저항하는 수단으로 무장 저항을 택했다. 한편, 새로 점령된 땅에 사는 팔레스타인인들에게는 법적 영역이 투쟁의 장이 되었다. 1952년, 새 점령자는 자의적인 시민권·영주권 요건을 부과해 수만 명의 팔레스타인인에게 무국적자 딱지를 붙이려 들었다. 피점령지 팔레스타인의 팔레스타인인들(과 좌파 유대인 활동가들)은 그에 대응해 크네세트에 항의했으나 소득이 없었고, 현지의 대중적 지지를 모으는 방향으로 돌아섰다. 지도부는 이 조치에 영향을 받는 마을 주민들을 만나 시위를 조직했고 법령 발효일에 총파업을 벌였다.
나크바 이후 몇 년 간의 식민 개발 저항 활동은 누적되는 재앙에 대응하는 급격하고 격렬하고 반작용적인 형태로 확대되는 양상을 보였다고 요약할 수 있다. 조직적이지는 않은 경우가 많았기에, 체계를 갖춘 정착자-점령 기획에 의해 통제될 수 있었다.
토지의 날은 “갈릴리 개발”이라는 허상에 땅을 내어주기를 거부한 민족 정치에 의거해 조직되었다. 조직적인 마을 회합, 시위, 농성, 지역 토지 방어 위원회 구성 등을 통해 정체성이 형성되고 적에게 이름이 붙었다. 이렇게 볼 때, 토지의 날은 점령자에 맞서 정체성과 목표를 확립하기 위해 민족 위원회들을 구성한 팔레스타인 대중 저항의 계보에 속한하고 할 수 있다.
점령 하의 개발: 오슬로 산업 지구의 허상
오슬로 합의는 불가능한 것에의 시도였다 — 무한히 확장하는 시온주의 점령의 턱 밑에서 이미 무너지고 있는 기반 위에 건국의 꿈을 세우려는. 이 모순은 여러 전선에서 분명히 드러났는데, 안보 협력에서 가장 두드러졌지만 경제와 개발을 점령자에게 의존하는 데에서도 그랬다. 개발은 PA가 PA 국가 정상화 기획의 약점을 제도화하고 그 경제·개발의 운명을 이스라엘에 융합시키는 수단이 되었다. 이는 경제적 평화와 팔레스타인 국가 개발로 가는 길이라며 서안의 산업 지구 기획들을 들이민 데서 특히 잘 볼 수 있다.
제닌 산업 지구 기획은 고용을 촉힌하고 팔레스타인 국가에 투자를 유치할 자유 무역 경제 통로로 제시되었다. 공식 문서는 이 기획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기업들의 합작 벤처 사업을 촉진할 정규적이고 예측 가능한 환경을 조성해 줄 것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이 협약에는 시온주의 경제 및 개발 중심 외국 기업 특구에의 경제적 유대를 고착시킬, 결국 팔레스타인의 주체성을 침식할 분명한 계획이 도사리고 있었다.
아달라Adalah와 비산센터Bisan Center에서 수행한 법률 조사로 제닌 산업 지구가 전적으로 PA의 권한 하에 있기는 하지만 특구 약정이 PA의 입주 기업 거부권을 박탈하고 (이 권리는 전적으로 개발사업자에게 부여된다) “정착자, 혹은 정착촌에서 운영되는 기업, 혹은 이스라엘 기업”에 임대될 현실적 가능성을 열어두었음이 (그렇게 될 공산이 크다) 밝혀졌다. 연계된 또 한 곳의 특구는 지구 홍보를 위해 개발사업자가 “이스라엘인들”과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명시적으로 허가해, 점령자가 득을 볼 수 있는 길을 확실히 닦아 놓았다.
제닌 산업 지구는 빈 땅이 아니라 마르즈 이븐 아메르Marj Ibn Amer의 팔레스타인 농지에 만들어졌다. 이미 정착자 토지 수탈로 강제수용 되고 있던 곳이었다. 그랬기에, PA에서 이 땅에 수출 지향 산업 지구 조성을 밀어붙였이는 대목에서, 이것이 팔레스타인인들의 농지와 자급자족에 대한 공격임이 분명해진다. 이것이 이 공격의 첫 번째 갈래 — 재구획, 강제수용, 농업 자급자족 침식을 통한, 땅 자체에의 공격 — 이다.
두 번째 갈래는 경제적 공격이다. 이것은 (시온주의 점령과 그 행정 괴뢰로부터의) 두 갈래 공격이 된다. 한쪽에는 재구획, 강제수용, 농업 자급자족 침식을 통한 땅 자체에의 공격이, 다른 한쪽에는 점령자의 진입 및 시장접근과 하이파 같은 그 경제적 중심지들에의 근접성에 의존하는 체제를 중심으로 한 팔레스타인 생산의 재조직화를 통한 경제적 공격이 있다. 이 기획이 뿌리를 내리면서, 이 기획이 필연적으로 팔레스타인인들의 땅에 대한 자결권을 빼앗아 점령자에게 넘겨주는 기능을 한다는 것이 더더욱 분명해졌다.
이런 시도들에 대한 저항은 여러 형태로 행해졌다. 한편으로는 국가 건설을 꿈꾸는 이들이 개발 전망에 품은 희망이 저항을 가로막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다 구체적으로는, 점령자의 이익에 반하는 것으로 위치지어졌다는 사실이, 그리고 이 개발 질서를 키우는 PA의 손이 저항을 가로막았다. 농부들과 지주들이 소송을 제기하고 연구자들, 법률가들이 특구 협약의 숨은 구조를 폭로하고, 팔레스타인 민족위원회들이 정상화 노력을 촉구하는 가운데 저항이 종종 파편적으로 나타났던 것은 바로 그래서다. 2008년에 지역조정국District Coordinating Body과 나크바추모민족최고위원회Supreme National Committee for Nakba Remembrance에서 발표한 성명은 기존에 제안된 산업 기획이 시온주의 집단과의 확실한 정상화를 위한 초석임을 분명히 했다. 해당 성명은 이후 단계들이 팔레스타인의 자기결정에 뿌리를 두고 “… 팔레스타인 민족의 불굴의 정신을 강화하고 점령과 그 경제에의 의존에서 해방되는 발걸음”이 되어야 한다는 말로 끝난다.
PA는 이 같은 기획들을 거부하는 팔레스타인인들의 편에 서는 대신 개발 사업에의 저항을 차단하는 수문장 역할을 자임했다. 국가 장치 — 점령자들과 함께 하는 개발을 통한 국가 건설이라는 허상을 약속하는, 해방을 향해 나아가는 대신 시온주의자 주인의 강탈에 거간꾼 노릇을 하는 장치 — 를 통해 저항을 견제하고 관리했다.
제국의 가자 재구상: 인종학살 위원회
가자평화위원회는 제국이 가능한 모든 잔혹한 수단을 써서 팔레스타인인을 뿌리 뽑으려는 인종학살 군사행동을 벌인 후에 왕좌에 앉으려 함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 식민적 가자 재구상을 이해하려면 인종학살이 벌어지는 동안 체계적으로 건축된 구조를 이해해야 한다. 인종학살의 설계에는 대규모 살해와 불구화maiming에[역주2] 더해 또 하나의 결과를 산출물이 있음이 이제는 명백히 드러났다. 바로 가자의 수무드를 가능케 하는 구조 — 10년이 넘는 점령과 봉쇄 앞에서도 여전히 점령자에게 눈엣가시인 민중 — 확실히 밝히고 체계적으로 공격해 파괴하는 것이다. 우리가 농지, 정수 시설, 지역 시장, 식량 보급소, 지역 기반시설, 도로, 병원, 모스크. 학교, 대학, 가자의 팔레스타인인들이 삶을 유지하고 땅에 뿌리박을 수 있게 해주는 일상의 사회적·공동체적 공간이 대대적으로 황폐화 당하는 모습을 목도하고 있는 것은 그래서다. 이것이 집단적 생산의 기반을 전부 무너뜨리는, 그리고 폐허가 된 후의 상황, 외부 원조, 개발 기반시설에 과도하게 의존하게 만드는 시오-제국주의의 책략이다. 원조 인프라는 언제든 내키는 대로 배급할 수도, 중단할 수도, 전용할 수도, 무기화할 수도 있다. 점령자가 다른 방식으로는 강제할 수 없는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집단 처벌 체제의 일환이 되는 것이다.
인종학살의 설계를 통해 삶이라고는 없는 진공을, 삶의 겨우 일부를 되돌리는 것만으로도 너무도 절박한 처지에 내몰린 이들을 조종, 갈취, 기만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것 — 이것이 점령자의 마스터 플랜이었다. 이 진공 공간에 등장한 것은 휴전도 구호도 아닌, 인종학살의 행정적 속편이었다. 평화위원회는 가자 팔레스타인인들의 삶의 물적 토대 파괴를 그저 포장만 바꾸었을 뿐이다’. 귀환이 허가되는 것들에 대한 조건부 관리가 뒤를 이어 받았다.
이 논리는 기아의 설계와 보스턴컨설팅그룹에서 지휘한 “가자인도주의재단Gaza Humanitarian Foundation”(GHF)의 죽음의 회랑에서 이미 드러난 바 있다. 기근을 일으키고 현지 역량을 파괴하고 남은 식량을 외부에서 관리하는 병목 지점에 몰아준 것은 인종학살 하에서 원조가 정치적으로 어떻게 기능하는지를 폭로했다. 구호라며 제시된 것이 처벌, 견제, 통제로 작동했다. 실상 GHF는 절박한 상황으로 내몰린 인구집단이 어떻게 외세가 관리하는 생존의 통로로 내몰려 조종, 갈취, 기만에 취약해지게 되는지를 보여주었다. 이런 의미에서, 평화위원회는 GHF가 굶주림과 원조의 관리를 통해 이미 예행 연습을 마친 것을 정치행정의 차원에서 공식화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렌즈를 통해 보면, 평화위원회의 얇디 얇은 베일이 벗겨진다. 위원회가 저항의 대중적 요람을 처벌하고 해방을 위한 저항 운동에 대가를 치르게 하기 위한 것임이 드러난다. 기아, 파괴, 추방, 그리고 생존 자체를 협상 수단으로 만들려는 시도를 통해 팔레스타인 민중은 혹독한 대가를 치른다. 위원회 인종학살자들은 인종학살로 지칠대로 지친 민중이 재건안을, 형태만 다른 관리되는 점령을 숨긴 트로이 목마를 받아들이게 만들 수 있으리라는 데에 사악한 도박을 걸고 있다. 하지만 이것 역시 가자 사람들이 제국의 몸에 가한 일격, 시온주의 집단과 인중학살을 후원하는 제국들의 악성 위기를 폭로한다. 이런 틀이 고안된 것은 그들이 다층적인 대규모 폭력으로 가자를 통제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위원회의 실행가능성이 줄곧 무장해제, 외부의 안보 대책들과 연관해 논의되고 가자의 “새날day after”을 누가 통제할지를 두고 결론 없는 다툼이 이어지고 있는 것은 바로 그래서다. 이 틀은 통제의 성공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통제가 부재하는 상황에서의 힘을 통한 자구책이다. 가자는 끝까지 점령자에게, 제국의 신탁통치자들에게, 혹은 투자자들의 망상에 미래를 내어주기를 거부했다.
가자는 인종학살에 우레 같은 거부로 응답했다. 피를 흘리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가자 민중은, 각지의 팔레스타인 민족은, 이 계획을 속속들이 거부했다. 기근의 설계를 거부했다. GHF의 죽음의 회랑을 거부했다. 아랍이든 비아랍이든 신탁통치의 언어를 거부했고 가자가 가자 사람들과 자기결정권 없이 재건될 수 있으리라는 망상을 거부했다. 이 같은 거부는 팔레스타인 자체에서 — 팔레스타인 저항세력들의 성명으로, 대중적인 구호들로, 시민사회의 맹비판으로, 그리고 외부에서 강제하는 안들에 대한 거듭되는 거부로 — 시작되었다. 또한 지역 사회단체들, 가자의 가정들을 통해 나왔다. 그들을 압박하거나 우회하거나 강제해 부역적이거나 기부자가 승인한 통치 형식들에 밀어넣으려는 시도들에 굴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스라엘의 지원을 받는 군사조직의 활동에 협조하기를 거부한 가족들이 폭격 당한 — 이것이 인종학살 상황 속에서 기존과는 다른 사회 기층을 만들어내려는 시도임을 분명히 보여주는 — 사례를을 보았다.
거부는 세계 각지의 거리 시위에서도 터져나왔고 2025년 8월에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팔레스타인을위한민족회의People’s Conference for Palestine를[역주3] 비롯한 팔레스타인 디아스포라 모임에서도 나왔다. 이 회의는 명시적으로 가자와 팔레스타인 해방의 현재 정치적 순간을 중심으로 조직되었다. 재외팔레스타인민중회의Popular Conference for Palestinians Abroad를[역주4] 비롯해 터키 등지에서 활동하는 다른 디아스포라 모임들, 네트워크들은 2026년 1월에 합중국 평화위원회 및 관련 제재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 같은 일련의 거부는 가자가 굴복 당하지 않으리라는, 팔레스타인의 정치적 의지를 빼앗김으로써 재건되지는 않으리라는 것을 보여준다.
가자는 끝까지 점령자에게, 제국의 신탁통치자들에게, 혹은 투자자들의 망상에 미래를 내어주기를 거부했다. 그리고 가자는 삶 자체의 재건을 고집하면서 — 건축 자재 반입이 차단되는데도 집집마다 진흙과 잔해로 거처를 짓고 봉쇄와 물자난 속에서도 잔해를 활용해 지역을 재건하면서 — 이런 시도들에 계속 저항하고 있다. 이는 봉쇄 속 수무드의 모범들이다.
현재의 국면은 우리에게 역사가 우리 민족과 우리 땅에 대한 시온주의-제국주의적 정복에 대해 그간 역사가 알려 준 바를 종합할 것을 요구한다. 또한 이 경험을 구체적인 배움으로, 우리 민족 앞의 위협에 맞서기 위한 정치적, 구조적, 조직적 전략으로 전환할 것을 요구한다. 적을 분명히 이해하기를, 해방과 동떨어진 개발을 분명히 거부하기를, 해방을 향해 스스로를 재건하고 살아가고자 하는 우리 민족의 끈기를 지지하는 데에 분명하고 구체적으로 뿌리박기를 요구한다. 현재의 국면은 경제를 개발하고 점령과 개발 갈취에 저항할 수 있는 수무드를 길러낼 방법을 새로이 그리고 냉철하게 재평가하기를 요구한다. 무엇보다 중요하게, 평화, 개발, 원조의 언어로 정체를 숨기고 찾아오는 모든 식민적 공격에 맞설 수 있는 통일된 팔레스타인의 전망을 요구한다. 가자는 여전히 이 글에서 살펴 본 역사적 패턴 속에 있다. 가자는 가장 잔혹하고 농축된 형태의 식민 야욕을 폭로한다. 전력화부터 유대화, 오슬로의 산업화, 그리고 GHF와 평화위원회에 이르기까지, 개발을 통한 정복이라는 주제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식민 열강은 팔레스타인의 삶의 물적 토대를 파괴 혹은 포획하고는 관리 하 개발이나 항복과 맞바꾼 생존을 들이밀며 다시 나타난다. 수 세대에 걸쳐 저항해 온 팔레스타인인들처럼, 이런 교훈들, 그리고 그 축적된 경험들로부터 우리의 사명을 분명하게 인식해야 한다 — 해방은 팔레스타인이 진정으로 건국을 이루거나 발전하기 위한 전제 조건이지 그 부산물이 아니다.
↥역주1 이스라엘전력공사Israel Electric Corporation의 전신이다.
↥역주2 「죽음보다 고통스런 ― 재스비어 푸아의 『불구로 만들 권리』를 통해 보는 팔레스타인 인종학살」(린제이 호지스, 2024) 및 「장애화 당하는 팔레스타인」(리아 락슈미 피엡즈나-사마라신하, 2024) 참고.
↥역주3 2024년에 북미 팔레스타인 단체들의 연대체로서 구성되었으며, 다음 대회는 캘리포니아 산호세에서 2027년 7월에 열릴 예정이다. peoplesconferenceforpalestine.org/
↥역주4 2017년에 터키를 시작으로 조직되어 레바논 기반으로 활동하는 디아스포라 팔레스타인인 국제 연대체. 2026년 1월, 미국정부에 하마스 연계 단체로 분류되어 제재 대상 목록에 올랐다. palabroad.org(현재 접속 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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