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세상이 팔레스타인을 바라본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은 누구인가? (누르 무나와르·제임스 시먼즈·이하브 살룰, 2026)

원문: Nour A Munawar, James Symonds, and Ihab Saloul, “The world is finally watching Palestine. But who gets to narrate its story?” Middle East Eye, 2026.09.06.

2026년 6월 11일 멕시코 시티에서 월드컵 개막식에 열리는 동안 아즈테카 구장까지 행진한 시위에서 한 참여자가 팔레스타인기를 흔들고 있다. (Carlos Tischler/Eyepix Group via Reuters)


팔레스타인은 이번 여름 축구 월드컵에 진출하지 못했다. 그럴 필요도 없었다. 활동가들이 멕시코시티에서 열린 개막식에서 인간 팔레스타인기를 만들었고 시애틀에서 열린 이집트-이란 전에서는 관중석에서 팔레스타인기가 나부끼고 가자가 연호되었다.

인종학살의 역사가 있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가 본선에 올랐을 땐 응원단이 다른 인종학살을 겪고 있는 이들을 위해 “팔레스타인 해방”이라는 외침으로 구장을 가득 메웠다.

팔레스타인은 출전은 하지 못했지만 존재감만은 강렬했다. 지난 3년 간 팔레스타인기는 이스라엘의 인종학살을 규탄하는 상징에 그치지 않고 악랄한 공격과 부정의, 식민 억압에 맞서는 전 지구적 표현이 되었다.

대회는 7월에 끝났고, 그 진정한 승자는 팔레스타인이었다.

이 같은 가시성은 이제 어느 정도 책임을 물을 수 있게 해주었다. 지난해 9월, 국제연합의 조사위원회에서는 이스라엘이 가자에서 인종학살을 벌이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보건부에서 현재까지 확인한 사망자는 73,000명, 그 절반 가량은 여성과 아동이다. 주민 등록부에서 2,700여 가구가 지워졌다.

세계 최고 법원[국제사법재판소]에서는 남아프리카에서 제기하고 10여 개 국가가 합류한 인종학살 소송을 심리하고 있다.

한편 국제형사재판소에서는 전쟁의 일환으로 기아를 유발하는 등 반인도범죄와 전쟁범죄를 저지른 혐의로 이스라엘 총리 베냐민 네타냐후와 전 국방장관 요아브 갈란트에 대해 체포 영장을 발부했다.

하지만 그런 동시에, 팔레스타인인들은 절멸 당하고 있다.집과 병원, 학교, 기록보관소와 대학을 — 그들이 스스로의 이야기를 할 수단들과 함께 — 파괴 당하고 있다.

기억에 대한 전쟁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의 삶을 물리적으로만 파괴하지 않는다. 거기에는 언제나 두 번째 목적 — 팔레스타인의 기억을 지우고 무너뜨리려는 — 이 있다.

무나와르가 다른 글에서 말한 바 있듯, 팔레스타인 문화 유산의 제거는 이번 전쟁으로 시작된 일이 아니다. 1948년 나크바로, 사람들을 쫓아 내고 이름을 바꾼 마을들로 거슬러 올라가는 일이다 — 팔레스타인 및 아랍 공동체들이 오랜 시간 국가 권력이 지워버리려 하는 것을 지키기 위한 풀뿌리 활동으로 맞서온 현재 진행 중인 나크바로 말이다.

유네스코에서 확인한바 2026년 3월까지 가자에서 문화 시설 — 모스크, 교회, 박물관, 기록보관소 — 164곳이 파괴되었고, 팔레스타인 관계자들은 실제로는 더 많은 곳이 파괴되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국제연합의 전문가들은 가자의 대학 12곳 전부가 파괴되고 가자중앙기록보관소Central Archives of Gaza가 전소되었다고 기록하고 이것이 “학술학살scholasticide”에 해당할 수 있다는 문제를 제기했다.

이를 기록하려는 이들도 공격의 표적이 되었다. 2023년 10월 이후 팔레스타인 언론인 200명 이상이 살해 당했으며, 언론인보호위원회Committee to Protect Journalists에서는 이스라엘군이 기록된 그 어느 정부 군대보다도 많이 언론인을 표적 살해 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런 한편 외신 기자의 가자 취재는 여전히 금지되어 있다.

이미 죽은 이들도 마찬가지다. 이스라엘군은 가자의 공동묘지 최소 16곳을 불도저로 밀고 훼손하면서 매장된 시신들을 파헤쳤다. 국제연합 인종학살 위원회 역시 문화·종교 시설 공격을 전쟁 범죄에 해당하는 행위로 보았다.

한 민족의 기록보관소를 불태우고 대학을 쓸어버리는 것은 인종학살에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일이 아니다. 그들을 없애는 데에 핵심적인 일이다. 가자에서는 이 전략이 그 가장 총체적인 — 산 자와 죽은 자를 가리지 않는 것은 물론, 스스로를 대변할 한 민족의 역량 자체에 대한 공격이라는 — 형태에 이르렀다.

팔레스타인이 서구 대학들이 자유로이, 종종 부주의하게 쓰곤 하는 용어, “탈식민decolonisation”이라는 용어에 대한 가장 날카로운 시험장이 된 것은 바로 그래서다. 무나와르가 지적한 바 있듯, 유산의 탈식민화는 그저 강의안이나 참고 자료 목록의 갱신하는 일이 아니다.

무엇이 보존되고 재생되고 기억될지, 그 기억을 누가 행할지를 결정하는 권력의 재분배를 요하는 일이다. 이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팔레스타인이다.

경합하는 서사들

누가 기억하는가 하는 문제는 우리가 지난 6월에 암스테르담 대학교에서 개최한 암스테르담유산·기억·물질문화학교Amsterdam School for Heritage, Memory and Material Culture 제12차 연례 학술대회의 핵심이었다. 참여자들은 탈식민적 사유가 무엇을 가로막고 무너뜨리고 새로이 꿈꾸는지를 — 그리고 반동적 민족주의가 다시금 몰려오는 지금 그런 것들이 계속될 수 있을지를 — 물었다.

두 개의 기조 대담 중 하나였던 〈팔레스타인에서의 탈식민성: 법과 서사 주권Law and Narrative Sovereignty〉에서는 국제범죄 학자 알레트 스묄러스Alette Smeulers, 인종학살협약 전문가 마리커 데 혼Marieke de Hoon, 『팔레스타인 탈식민화하기Decolonizing Palestine: The Land, The People, The Bible』 저자 미트리 라헵Mitri Raheb이 한 자리에 모였다.

대담은 팔레스타인에서 국제법이 중립적인 중재자가 아니라 또 하나의 싸움터로 기능하고 있다는 데에서 출발했다. 또한 오랫동안 추방을 정당화하는 데 쓰여 온 기독교 시온주의의 종교적·문화적 서사가 어떻게 이미 그 자체로 이미 흔들릴 때가 되었는지를 살펴 보았다. 대담자들은 유럽이 국제법을 선별적으로 — 적들에게는 서둘러, 동맹들에게는 늑장을 부리며 — 적용하는 데에 문제를 제기했다.

대회의 논의는 계속해서 보다 우리 가까이에 있는 어떤 불편함으로 돌아갔다. 서구의 기관들은 지난 수십 년간 팔레스타인을 지우는 데에 권위를 빌려주었다. 너무도 자주 이스라엘의 말은 당연한 사실로 취급하면서 팔레스타인의 말은 못 미더운 의견으로 일축했고, 피식민 민족의 박탈을 동등한 둘 사이의 다툼인 양 보이게 만들었다.

논쟁적인 기억들, 경합하는 서사들을 주제로 열린 대담들은 학자, 특히 서구에서 활동하는 아랍 및 팔레스타인 학자가 그런 무조건 반사를 거부하고 팔레스타인인들을 제 고유한 앎의 저자로 복원하는 것이 어떤 의미일지를 물었다.

그런 거부는 강의실 안팎에서 드러나고 있다. 컬럼비아에서부터 암스테르담에 이르기까지, 학생들은 대학에 이 인종학살을 솔직하게 직시하기를 요구하는 시위와 농성을 벌이고 있다.

암스테르담유산·기억·물질문화학교에서는 우리 중 한 사람(살룰)이 편집을 맡아 팔레스타인에 관한 “지식 생산의 유럽중심적·오리엔털리즘적 전통과 헤게모니적 양식”에 대항하는 새 도서 시리즈 “팔레스타인: 과거, 현재, 미래의 서사들”의 발간을 시작하기도 했다.

쉼없이 외부자들에 의해 묘사되는 이곳에서, 가장 중요한 과업은 팔레스타인의 저자된 지위를 재구축하는 것이다. 어마어마한 상실에 비하면 미력한 방편이다. 하지만 서사 주권은 바로 그러한 노력 — 팔레스타인인들이 자신의 목소리로 말할 수 있게, 그 목소리가 들릴 수 있게 만하려는 끈질긴 노력 — 으로부터 구축된다.

폐허 위에서 재건하기

저자의 문제는 가자 재건의 문제이기도 하다. 도널드 트럼프가 구상하고 위원장 직을 맡은, 고위급에는 단 한 명의 팔레스타인인도 없는, 이른바 “평화위원회”는 수십억 달러를 약속하고는 거의 아무 것도 내어 놓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마치 가자가 투자자들을 기다리는 텅 빈 해안이기라도 한 양 고층건물과 요트 선착장으로 가득한 화려한 “새 가자” 조감도가 나돈다.

7월에 하마스가 가자를 통치하던 위원회를 해산하고 일상 행정을 궁극적으로 평화위원회의 뜻을 따르는 기술관료 기구에 이양하면서, 저 위계의 영향력은 더더욱 분명해졌다.

이스라엘은 심지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문장과 비슷하다는 이유로 그 팔레스타인 위원회[가자행정국가위원회]의 로고에 반대하기까지 했다. 팔레스타인 행정기구의 상징물조차도 비토를 면치 못한다.

가자는 텅 빈 해안 지대가 아니다. 주인들을 살해하고 원래 서 있던 것들을 지우면서 어떤 곳을 새로 짓는 것은 회복이 아니다. 다른 수단을 쓴 종족 청소다.

이 일대는 원래부터 여기 있었고, 이전에 재건된 바 있는 건축물들에서 본보기와 주의해야 할 것을 모두 찾을 수 있다.

모스타르의 복원된 다리와[역주1] 모술의 알-누리 모스크[역주2] — 주민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되살아난 — 는 재건의 어떻게 공동체의 회복을 뒷받침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반대로 팔미라에서는 재건이 정치 권력을 보여주는 쇼가 되었다.[역주3]

재건이란 언제나 과거가 누구의 것인지에 관한 논쟁이며 오직 그 과거의 주인인 이들이 주도할 때에만 치유가 될 수 있다.

가자에서 서사 주권에는 구체적인 형태가 있다. 팔레스타인인 없는 위원회가 아니라 팔레스타인인들이 재건과 유산 거버넌스를 주도하는 것, 기록물을 구제하고 디지털화하는 것, 무엇을 복원하고 무엇에 대해 기억물을 만들고 무엇을 팔레스타인 정체성을 증언하는 증거로 남겨둘지를 공동체들에서 결정하는 것.

유네스코에서 파괴된 유적지를 안정화하고 학습 공간을 다시 열고 가자의 언론인들을 지원하는 데에, 미화 1억 1,650만 달러가 필요할 것으로 예상하는 가운데, 570만 달러를 조달라면서 이러한 작업이 파편적으로나마 시작되었다.

이전의 학살들, 삭제들 때에도 늘 그랬듯 팔레스타인의 이야기를 둘러싼 다툼은 이 인종학살이 멈추어도 계속될 것이다. 건물이 무너지고 기록보관소가 불탄대도, 기억되려는, 스스로 기억하려는 마음은 사라지지 않는다.

학자, 학생, 그리고 우리 모두의 과업은 팔레스타인인들이 자신들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어떻게 살고자 하는지를 이야기할 때, 이제라도, 그 이야기를 할 권리가 그들에게 있음을 확고히 하는 것이다.


역주1 16세기 오스만 제국 시기에 지어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다리 ‘스타리 모스트’. 1993년 보스니아 전쟁 당시 무너졌으나 2001-2004년에 오스만 제국 당시의 기술과 자재를 활용해 원형대로 복원되었다.

역주2 12세기에 지어진 것으로 알려진 이라크의 모스크. 2014년에 IS에서 칼리프 국가를 선포한 곳이다. 2017년 모술 전투에서 패색이 짙어지자 IS에서 파괴했다. 이듬해부터 잔해에서 찾은 자재와 전통 기법 등을 활용한 복원 공사를 진행했고 2025년에 다시 개장했다.

역주3 2015년에 IS에서 일부 건물 등을 파괴한 시리아 팔미라 유적을 가리킨다. 2016년에 시리아 정부군이 팔미라를 탈환하면서 빠르게 재건이 결정되었으나 원래의 자재와 규모 등을 토대로 복원하는 대신 독재 정권의 치적을 쌓기 위한 보여주기식 모조품 제작을 서두른다는 비난을 받았다. 일부 유물의 복원이 이루어지기는 했으나 이후로도 계속된 IS와의 전투, 재정 문제, 내전과 정권 교체 등으로 아직 작업이 완료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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