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Emily Jacir, “Time Standardization, Clock Towers & Colonialism in Ireland and Palestine,” The Funambulist Iss. 36, 2021
* 이 글이 실린 호의 표제는 “그들에겐 시계가 있고 우리에겐 시간이 있다”이다. 서문의 국역본은 여기에서 읽을 수 있다.
에밀리 자시르는 2016년, 2017년에 아일랜드현대미술관에서 《대포를 위한 메모》라는 장소특정적 작업을 전시했다. 아일랜드 부활절 봉기Easter Rising[(1916)]와 영국의 팔레스타인 점령[(1917)] 100주년을 기해 그녀는 긴밀하게 얽혀 있는 두 곳에 강제된 시간 구획time-keeping과 시간 표준화를 짚어 본다.

1916년, 부활절 봉기 — 영국British 지배 종식과 독립 아일랜드공화국 수립을 위한 봉기 — 당시 오후 2시 25분에 멈췄던 중앙우체국General Post Office(GPO) 시계는 더블린 표준시에 맞춰져 있었다. 런던은 오후 2시 50분이었다 (G.M.T.) 오코넬 거리의 GPO는 봉기 지도부의 본부이자 아일랜드의용군Irish Volunteers, 아일랜드시민군Irish Citizen Army의 회합 장소로 쓰였고 1916년 4월 24일에 패드레그 피어스Padraig Pearse가 〈아일랜드 공화국 선포문Proclamation of the Irish Republic〉을 낭독한 것도 이 건물 앞에서였다. 1880년 (시간정의)규정법Statutes (Definition of Time) Act은 아일랜드의 법정 시간을 더블린 표준시Dublin Mean Time(DMT)로 규정했다. 더블린 표준시는 더블린 카운티의 던싱크 천문대에서 측정한 지역 표준시로, 런던 그리니치 천문대에 비해 일출·일몰이 25분 21초 늦다. 부활절 봉기가 벌어진 후 영국 정부는 군사적·상업적 목적으로 더블린 표준시를 그리니치 표준시에 맞춘다고 공표했다. 같은 해 9월에 제정된 1916년(아일랜드)시간법Time (Ireland) Act 1916은 아일랜드의 법정 시간을 그리니치 표준시로 규정했다.
1917년에는 영국군이 예루살렘 식민 점령을 시작했다. 5년 후에는 영국국 예루살렘 총독 로널드 스토어스의 명령으로 야파문Jaffa門([아랍어로는]바브 알-칼릴Bab al-Khalil)의 시계탑이 철거되었다. 영국이 상상하는 성경 속 예루살렘의 모습에 맞추어 도시를 뜯어 고치기 위해서였다. 시계탑은 오스만 제국 술탄 압둘 하미드Ⅱ세의 즉위 25주년을 기념해 예루살렘 지역 유지들이 지원한 자금으로 1907년에 설치된 것이었다. 나블루스, 아카Akka, 하이파, 사파드, 나사렛, 야파, 예루살렘 등 팔레스타인 각지에 이런 시계탑 일곱 기가 있었다.
백 년 후, 부활절 봉기와 벨푸어 선언 백주년을 맞아, 나는 아일랜드현대미술관에서 《대포를 위한 메모Notes for a Cannon》(2016-2017)라는 제목으로 두 점의 장소특정적 작업을 전시했다. 그 자체로 식민적 장소인 킬만햄왕립병원Royal Hospital Kilmainham에 있는 미술관이다. 실제로 맥스웰 장군이 봉기 지도부의 사형을 명한 곳이 바로 이곳에 있는 집무실에서였다. 팔레스타인과 아일랜드가 공유하는 — 오늘날까지도 수많은 잔재가 남아 있는 — 영국 식민 지배의 역사를 폭넓게 조사해 작업했다. 아일랜드는 대영제국 최초의 식민 실험장이었으며 아일랜드인은 수백 년을 영국의 점령 하에 살았다. 1917년부터 1948년까지, 그레이트브리튼은 팔레스타인 땅의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외교, 통치, 군사, 경제의 기반을 다지는 데에 그 어느 나라보다도 큰 도움을 주었다. 두 곳이 영국에 식민 지배 당한 기간은 매우 다른데, 팔레스타인이 비교적 늦게 편입되었다는 것은 팔레스타인이 이미 통치, 치안, 행정 양식이 잘 확립된, 또한 아일랜드에서 수백 년간 반식민 운동과 싸우고 반란을 진압한 경험이 축적되어 있는 체제에 편입되었다는 뜻이다. 내 작업들은 이런 폭력적인 식민의 역사와 외력에 의한 사회적, 문화적, 종교적, 정치적 질서 붕괴가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그런 것들이 어떻게 계속해서 우리가 현재 처해 있는 조건들을 형성하는지를 검토했다.
“아일랜드와 팔레스타인은 분열, 점령, 박탈의 역사를 공유한다. 두 곳의 땅과 문화에는 제국주의와 정착자 식민주의가, 그리고 그에 대한 끈질긴 저항이 새겨져 있다.”
아일랜드와 팔레스타인은 분열, 점령, 박탈의 역사를 공유한다. 두 곳의 땅과 문화에는 제국주의와 정착자 식민주의가, 그리고 그에 대한 끈질긴 저항이 새겨져 있다. 둘 다 무역항을 끼고 있고 “종교 전쟁”으로 보이게 하려고 종교 분쟁과 연관 지어진 식민 기획 이(었)다. 단식 투쟁 등 아일랜드에서 쓴 급진적 전술이 팔레스타인이 점령에 저항하는 데에 영감을 준 것을 비롯해, 아일랜드와 팔레스타인 사이에는 오랜 연대의 역사가 있다. 아일랜드는 북부의 카운티 여섯 곳을 빼고는 독립을 쟁취했지만, 오늘날 더더욱 가혹하고 끔찍한 후과가 이어지고 있는 나크바라는 사건을 겪은 팔레스타인은 점령을 벗어나지 못했고 여전히 그러하다. 1948년에 팔레스타인에서 탈출할 수밖에 없었던 난민들은 현재 아랍 세계의 사건들로 인해 두 번, 세 번, 때로는 네 번에 이르도록 탈출을 반복하기까지 한다.
《대포를 위한 메모》는 여러가지 면모를 갖고 있지만 그 본질은 공적 공간들에서의 시간 구획, 나아가 시간의 미끄러짐과 표준화에 대한 탐구다. 다양한 시간들이 살아지고 체험되는 방식들을 탐구했다.
시간법이 1916년 부활절의 사건들이 벌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리고 1916년 [5월에 시작되어] 8월 로저 케이스먼트Roger Casement의 교수형으로 정점에 이른 지도부 사형이 집행되는 중에 통과되었다. 1916년 10월 1일을 기해 더블린 표준시가 GMT로 대체되자 지방 의회들, 정치인들, 농부들, 일부 기업 집단에서 상당한 비판과 반발이 나왔다. 아일랜드의 혁명가 마르키에비치Markievicz 백작 부인은 이 변화에 크게 반발하며 “여론이 분노로 들끓었다”고 적었다. 그녀는 부활절 봉기에 참여했고 사형에 처해졌음에도 그녀의 말은 성별의 문제로 축소되었다. 이 일에 관해 당시 신문사들에 투고된 글들을 수집했는데, 그 중 하나에 이런 말이 있다. “아일랜드의 태양이 잉글랜드의 태양으로 대체되었다.”
더블린 표준시로 1916년 10월 1일 일요일 오전 2시, 아일랜드의 시간이 영원히 달라졌다. 겨울을 맞아 영국 시계들이 한 시간 늦춰질 때, 아일랜드의 시계들은 35분만 늦춰졌다. 아일랜드의 영국의 시계를 맞추기 위해, 그리 함으로써 “연합 왕국” 전역에 단일한 시간 체제를 확립하기 위해서였다. 아일랜드의 시계는 이제 모두 잉글랜드를 따르게 되었다.
“아일랜드의 시계는 이제 모두 잉글랜드를 따르게 되었다.”

야파문 시계탑이 철거된 1922년에는 예루살렘의 시간도 영원히 달라졌다.
예루살렘 야파문의 유명한 시계탑은 보기에 좋지 않고 유적인 성벽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근거로 철거되었다. 1907년에 세워진, 유럽 시간과 아랍 시간을 모두 보여주는 정밀한 시계를 자랑하는 탑이었다. 현 성도 총독 로널드 스토어스 경이 [철거 시점] 약 18개월 전에 “건축 유적 보존, 기술 교육 장려, 나무 심기, 유서 깊은 도시 예루살렘의 전반적인 환경 미화”를 목표로 설립한 친이스라엘회Pro-Jerusalem Society에서 철거를 추진했다.
해럴드 J. 솁스톤Harold J. Shepstone, 〈예루살렘 성벽 복원Restoring the Walls of Jerusalem〉, 1924.
시계탑의 동쪽 면과 서쪽 면에는 알라프랑가alafranga(변역하자면 “유럽풍”) 즉 유럽 표준 시간이, 남쪽 면과 북쪽 면에는 알라투르카alaturka(번역하자면 “오스만풍”[)] 현지 시간이 표시되었다. 알라투르카, 오스만식 시간 계산법은 일몰과 일출을 따른다 (일몰이 0시, 일출이 12시). 알라투르카 시간은 한나절을 열두 시간으로 나누는데, 그 길이는 계절에 따라 달라진다. 야파문 시계탑에서 내게 가장 중요한 측면은 바로 이것, 하나를 없애고 하나만 남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틀 안에 두 개의 서로 다른 시간 측정 양식을 유지했다는 점이다. 같은 공간에서 나란히 살아지는 두 개의 시간 체계. 영국 식민 권력이 없애고자 했던 것은 바로 이것, 두 시간 체제의 병용과 그 동시성이었다. 영국의 근대화는 하나의 틀 안에 이런 두 개의 서로 다른 시간 측정 양식이 공존하는 것을, 주민들의 일상에서 실제로 살아지는 현실을 용납하지 못했다.
“미관과 소위 “진정한” 기원을 명목으로 진행된 시계탑 철거는 예루살렘에서 일상의 시간을 표시하는 두 가지 체제를 동시에 포용할 수 있는 대안적인 근대화의 전망을 지워버렸[다 …]”
보기 좋고 소위 “진정한” 기원“authentic” origins을 명목으로 진행된 시계탑 철거는 예루살렘에서 일상의 시간을 표시하는 두 가지 체제를 동시에 포용할 수 있는 대안적인 근대화의 전망을 지워버렸을 뿐만 아니라 또한 예루살렘에 예루살렘에 대한 역사적 환상을 덧씌웠다. 흥미롭게도, 아일랜드에서는 공식적으로는 DMT가 적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각 카운티나 시에서는 지역 시계를 진짜 현지 시간 내지 시태양시視太陽時에 맞추었고 일부 기차역에서는 두 개의 시계로 DMT와 현지 시간을 함께 표시했다. 표준시는 18세기 중엽에 오스만 제국에 전래된 후 점차 많은 정부 기관에서 토착 알라투르카 시간 체제와 함께 쓰이게 되었다. 오스만 제국은 주로 군대를 비롯해 통신, 운송, 외교를 다루는 여러 기관에서 알라프랑가 시간을 사용했다.

철도와 전신의 시대가 오기 전에는 세계 어디에서나 각 지역이 자오선 상의 위치에 따른 고유한 시간을 썼다. 1870년대가 되면서 전 세계를 항해하기 위한 본초자오선을 설정하고 철도 시간표와 통신을 위해 각지의 현지 시간을 통합해야 한다는 압박이 생겨났다. 1871년에 앤트워프에서 열린 제1차 세계지리학대회International Geographical Congress는 (비교적 작은 규모의) 항행 도표에 그리니치 자오선을 쓰자는 안을 의결하고 이를 15년 내에 의무화 하기로 했다. 1884년에 워싱턴 D.C에서 열린 본초자오선회의Prime Meridian Conference에 참석한 오스만 대표는 오스만국에는 언제까지나 두 개의 시간이 — 모든 공용 시계의 알라투르카 시계판 옆에 표준시 시계판이 — 있을 것이라 선언했다.

아카의 오스만 시계탑은 오늘날까지도 남아 있다. 내가 1999년에 처음 촬영한 당시에는 시계판은 전부 사라지고 빈 구멍만 남아 있었다. 1948년에 이스라엘국이 선포된 후의 시계 이미지를 확인하려고 아카이브들을 뒤져 보았으나 허사였고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 이른바 복원 이전의 것이라고는 내가 찍은 영상밖에는 갖고 있지 않다. 이 시계탑은 2001년에 “복원”되었고 특별 행사를 열어 — 각각 히브리어, (유럽식) 아라비아 숫자, 로마자 숫자, 동아랍 숫자로 된 — 시계 네 개를 새로 설치했다. 야파문 시계탑은 예루살렘 옛 성도의 성벽을 “복원”하고 예루살람을 현대적이지 않은 “고대의” 성경 속 장소로 보존하기 위해 철거되었다. 아카의 “복원된” 새 시계들은 팔레스타인에 유대인의 존재를 소급적용시키려는, 그 땅의 실제 역사와 관계들을 지우는 동시에 고대 장소들, 전통들과의 역사적 연속성을 부과하려는 시온주의 기획의 일례다.
아일랜드현대미술관 전시를 위해 처음에 제안한 것 중 하나는 전시 기간동안 미술관을 더블린표준시로 운영하고 공공장소에 있는 시계를 전부 DMT로 바꾸고 강연 및 행사 일정을 전부 DMT에 맞추고 매일의 활동과 웹사이트를 DMT에 맞추는 것이었다. 미술관에서 그렇게는 할 수 없다고 해서 그 다음으로는 왕립병원 시계를 2016년 11월 24일 오후 2시 25분에 멈추고 전시 기간 동안 종을 울리지 말자고 제안했다. 전시가 끝나고 2017년 2월 27일부터 시계를 재가동하는 안이었다. 세 번째 제안은 전시 기간 동안 매일 알라투르카 정오에 대포를 쏘는 것이었다 — 미술관에서 아일랜드군에 연락해봐주기까지 했다.

네 번째 제안 — 장소특정적 사운드 개입 — 이 실현되어, 왕립병원 시계탑에 설치되었다. 전시 기간 동안 더블린표준시로 매일 낮 열두 시에 시계탑에서 종이 열두 번 울려 현재의 아일랜드 표준 시간(GMT)과 35분 어긋나는 정오를 알렸다. 그리니치표준시 정오에는 단발의 포성이 울렸다. 마지막으로 알라투르카 정오에는 기도 시간을 알리는 소리가 일대에 울렸다. 기도 시간을 알라투르카에 맞추어 알렸다는 것은 전시 기간동안 태양을 기준으로 볼 때, 또한 DMT. GMT를 기준으로도, 시간이 조금씩 달라졌다는 뜻이다. 설치된 사운드들은 그렇게, 제각기 다른 방식으로 시간을, 그리고 식민이 강제한 시간 표준화에 밀려난 두 개의 상이한 시간 기록·표시 체제 간의 유사성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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