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Walid Daqqa, trans. by Nour Eldin Hussein, “On Parallel Time,” Mizna, 2025.
- 아랍어 원문 (2010)
- “역주”로 표기한 각주와 [, ]로 표기한 문구는 모두 한국어로 번역하면서 추가한 것이다.

나의 형제 아부 오마르에게.[1]
오늘은 3월 25일, 내가 감옥에서 보내는 스무 번째 해의 첫 날입니다. 어느 젊은 동지의 생일이기도 하죠. 이런 “특별한 날” — 나의 수감된 날이자 동지가 태어난 날 — 이면 내가 혼잣말로 묻곤 하는 질문들이 떠오릅니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된 레나가 이제 몇 살이더라? 세 아이를 낳은 나즐라는? 딸을 낳은 하닌은? 제 청춘에 작별을 고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지난 나는 인사를 전하지 못한 오베이다는? 그리고 — 내가 체포될 때 아직 어린 아이였거나 그 뒤에 태어난 — 내 동생들, 이제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엄마아빠가 된 그 “아이들”은 몇 살이더라?
전에는 이런 걸 묻지 않았습니다. 넓은 의미에서의 시간, 그것이 얼마나 흘러갔는지. 금세 끝나버리는 몇 분 안 되는 짧은 가족 면회 시간에 비하면 그런 것들은 신경 쓰이지 않았습니다. 손바닥에 빼곡이 적어둔 메모들, 사나에게[2] 맡길 온갖 일들 — 막중한 임무들 — 을 다 전하기에는 너무 순식간이거든요. 그 일들을 다 하는 건 말할 것도 없고 다 기억하기에만도 말입니다. 면회 때 펜이나 종이를 쓰지 못하게 하는지라 외우는 수밖에는 없습니다. 그래서 나는 몇 년 전부터 어머니의 얼굴에 패이기 시작한 주름을 생각하는 걸, 내가 당신의 진짜 연세를 걱정하지 않도록 새어버린 머리를 숨기려 헤나로 염색하기 시작한 어머니의 머리를 생각하는 걸 잊어버리곤 합니다.
진짜 나이라. 나는 어머니의 “진짜 나이”를 모릅니다. 어머니에겐 나이가 두 개 있죠. 하나는 내가 모르는 실제 나이고 다른 하나는 수감 나이입니다. 그 평행 시간에서 그녀의 나이는 열아홉이라 할 수 있습니다.
‘평행 시간’으로부터 여러분께 편지를 보냅니다. 장소가 고정되어 있는 평행 시간에서는 분이나 시 같은, 여러분의 시간에 쓰이는 표준 단위를 쓰지 않습니다. 그런 건 우리의 시간과 여러분의 시간이 면회실 창문을 통해 만날 때만, 우리가 여러분의 연대기적 방식과 교류해야만 하는 때에만 쓰죠. 여러분의 시간에서 우리가 여전히 사용법을 기억하는, 아직 변하지 않은 것은 그게 유일합니다.
젊은 인티파다 대표들의 입을 통해 — 실은 개인적으로 들은 말입니다 — 여러분의 시간에서는 많은 것이 바뀌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전화기에는 이제 회전식 다이얼이 없고, 동전을 넣는 게 아니라 카드를 써야 한다고요. 자동차 타이어도 추가적인 내부 구조물이 없고 튜브리스 방식이라고요.
적이 인상적이더군요! 타이어를 스스로 밀폐되는 재료로 만들어서 끼우기만 하면 저절로 금새 구멍이 막히고 공기가 새지 않다니요. 정말이지 감명 받았습니다. 그 자족적인 구조 — 튜브리스 구조 — 의 앞길에 간수들이 깔아 놓은 압정에 저항하는 수감자와 비슷하지 않나요. 대개 수감자에게는 그런 자동 수리 외에는 탈출구가 없습니다. 우리의 운전수 혹은 운전수들은 밟기 전에는 길에 놓여 있는 압정을, 걸려 넘어지기 전에는 길의 요철을 보지 못하죠. 지름길을 가느라 — 거리를 줄이고 수고를 더느라 — 그럽니다. 우리 운전수들이 조심성이 없는 건 아닙니다. 그저 속 튜브에 의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그게 피와 살이 아닌 양 — 종착지도 목적지도 없는 양 말입니다. 우리가 시장, 정치적 계략들의 시장에서 주고 받는 현금 같아 질 때까지 말입니다.
“이 타이어를 드릴 테니 차를 좀 내어 주시죠.”
차가 없는데 타이어가 무슨 쓸모가 있겠습니까?
팔레스타인과 아랍의 지도부가 개선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민족과 그 정치적 힘이 그런 내적, 가지회복적 구조를 갖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긴급 출동 서비스”를 자처하는 이들 — 오늘날 레바논 땅을 죄 망가뜨리고 있는 미국인들과 그 동류들 — 에게 기대지 않아도 될 테니까요. 그리고 — 정치 이야기는, 특히 오늘은, 하지 않기로 마음 먹었지만 — 정치 이야기를 해야 한다면, 평행 시간에서 우리는 여러분이 우리를 보지 않을 때도 여러분을 봅니다. 여러분이 우리 소식을 듣지 않을 때도 여러분의 소식을 전부 듣습니다. 마치 우리 사이에 중요한 인사를 태우는 차에 있는 한쪽만 칠해진 유리창이 있는 것 같이요. 우리 중에 마치 자신이 중요한 사람이기라도 한 것처럼 거들먹거리는 이가 생길 정도입니다. 우리가 중요한 사람이라고, 그들에게 설득당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아닐 것도 없죠! 그만큼 특별한 상황이긴 하니까요. 우리 말고는 전 세계의 수감자들에게 국가와 정부가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국가 없는 정부의 부처가 있고요![3]
우리는 —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말하자면 — 냉점이 끝나고 소련과 공산주의 블록이 붕괴하기 전부터,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전부터, 제 1, 2, 3차 걸프전 전부터, [1991년] 마드리드 회담과 [1993년] 오슬로 협정 전부터, 제 1, 2차 인티파다가 벌어지기 전부터 여기 평행 시간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저 혁명만큼이나 오래, 몇몇 분파들의 탄생 이전부터 평행 시간에 살고 있습니다. 아랍 위성 채널들이 생기기 전부터, 대도시에 햄버거 문화가 퍼지기 전부터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휴대 전화의 발명이나 갖가지 새로운 통신 시스템과 인터넷보다 우리가 먼저입니다. 우리는 역사의 일부이며 역사는 — 잘 알려져 있듯 — [현재를 구성하는] 조건이자 과거의 일입니다. 우리만 빼고 말입니다. 우리는 끝없는 과거 진행형입니다. 우리는 이 과거가 여러분의 미래가 되지 않도록, 과거로부터 현재의 여러분에게 이야기를 건넵니다.
우리의 시간은 여러분의 시간과 다르다고 말했습니다. 우리의 시간은 과거, 현재, 미래의 축을 따라 나아가지 않습니다. 고정된 장소에서 흐르는 우리의 시간은 우리의 언어에서 시간과 장소라는 전형적인 개념들을 몰아냅니다 — 여러분의 기준을 따르자면 그 개념들에 혼란을 일으킨다고 할 수도 있겠지요. 예를 들면 우리는 “언제”, “어디에서” 만날 거냐고 묻지 않습니다. 이미 만났고, 그럼에도 같은 곳에서 만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과거와 현재의 축을 유연하게 앞뒤로 오가며, 현재의 이 순간 이후의 모든 순간은 우리로서는 상호작용할 수 없는 미지의 미래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미래에 대해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 아랍 제 민족의 상황과 꽤 비슷한 상황이기는 하지만, 우리를 점령하고 있는 것은 외세이고 그들의 간수는 아랍인이라는, 우리는 미래를 찾다 여기 수감되었고 거기에는 미래가 생매장되어 있다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평행 시간에서 살아가는 우리 대부분은 어린 시절에 받곤하는 질문 — 크면 무엇이 되고 싶냐는 — 에 답을 내리지 못한 채입니다. 나는 지금까지도 — 마흔네 살인데도 — 커서 뭐가 되고 싶은지 모르겠습니다.
개념으로서의 시간이 물질에 내재하는 것이라면 — 시간이 물질의 운동하는 측면이라면 — 평행 시간에 있는 우리는 그런 시간의 단위가 된 셈입니다. 우리는 장소와 씨름하는 시간이며 장소와 내적 모순 상태에 있습니다. 우리는 시간의 단위가 되어버렸습니다. 우리는 아무개의 체포, 누구누구의 수감, 혹은 그들의 석방으로써 시간 축의 시점들을 표시하게 되었습니다. 평행 시간의 삶에서는 그런 것들이 중요한 연대기적 사건들입니다. 우리는 여러분의 시간 단위로 시와 날과 역사를 정의하는 법을 알지만, 그런 단위는 여기서는 쓰이지 않습니다. 여기의 단위는 아무개가 온 날, 아니면 누구누구가 풀려나기 전에 혹은 풀려난 후에, 사건 X가 일어났다는 식입니다. 아무개가 미래의 어느 시점에 체포될지, 어느 때에 이감될지 알 수 없기에, 우리에게는 미래의 사건을 규정할 도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미래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여러분의 연대기적 단위를 빌려다 씁니다.
여러분의 시간은 진짜 시간입니다. 여러분의 시간은 미래의 시간입니다.
평행 시간 속에서, 그리고 우리와 장소의 갈등 속에서, 우리는 이상한 사물들과 관계를 맺습니다. 평행 시간에 갇혀 있는 이들 말고는 누구도 이해 못할 관계를요. 수감자와 그가 체포되기 직전에 입었던 속옷과의 감정적 관계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미리 정해져 있는 사물들, 잃어버리면 너무 슬퍼 눈물까지 나올 그런 사물들과의 관계의 깊이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라이터나 담뱃갑 같은 물건들이 깊은 감정적 의미를 갖게 됩니다. “미래”에서 우리가 지니고 있었던 마지막 물건이라는 특별한 것이니까요. 한때 우리가 평행 시간 바깥에 존재했음을 확인시켜 주는 것 — 우리가 여러분의 시간에 소속되어 있다는 증거 — 랄까요. 그저 쓰다가 소용을 다하면 쓰레기통에 던져 버릴 수 있는 물건이 아닙니다. 평행 시간이라는 바다에 가라앉는 이의 마지막 구명 조끼입니다.
1996년에는 십 년만에 처음으로 스바루 경적 소리를 듣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우리의 시간에서 자동차 경적은 그저 지나가는 사람에게 경고를 보내는 용도가 아닙니다. 인간 감정의 가장 깊은 곳을 휘젓기 십상입니다.
평행 시간의 사람들은 장소와의 관계를 통해 사물과의 관계만큼이나 이상한 관계도 맺습니다. 거기 있으면 문득 수용실 천장에 있는 얼룩과 특별한 관계를 맺게 되죠. 물이 새거나 습기가 차서 생기는 얼룩들 말입니다. 문에 난 구멍이나 갈라진 틈과 관계를 맺기도 합니다. 수용실과 거기 난 구멍이 아니라 천국과 천국의 문에 관한 대화라도 되는 양 열정과 감정에 가득 차서 끼어들고 설명하고 하는 그런 대화를 누가 이해할 수 있을까요.
첫 번째 수감자: “4구역 만한 데도 없지 … 아, 4구역 시절이 좋았는데 … ”
두 번째 수감자: “맞는 말이야, 4구역에서도 7번 수용실이 최고였지.”
첫 번째 수감자: (그 시절을 생각하며 가슴이 아파 깊은 한숨을 내쉬다 끼어들며) “맞아, 그랬지. 그런데 그거 아나? 이 방에서는 아침이 되는 소리를 정확히 들을 수 있지 — 고속도로 차 소리 말이야.”
두 번째 수감자: (역시 끼어들며) “그게 뭐 별 거라고. 수용실 문 알지? 문이랑 벽 사이, 경첩 있는 데에 2cm짜리 틈이 있거든. 누워서도 밖을 볼 수 있을 만큼 넓은 틈이야. 지구 끝까지라도 다 볼 수 있단 말이지.”
첫 번째 수감자: “자네, 대체 무슨 소릴 하는 겐가. 4번 구역이 최고라니까.”
꿈이란 얼마나 소박한지, 인간이란 얼마나 위대한지, 감옥이란 얼마나 좁은지, 사상이란 얼마나 광대한지.
오늘 같은 날 이런 — 시간에 관한, 장소에 관한, 우리의 평행 시간에 관한 — 글을 쓸 생각은 아니었습니다. 정치에 관해서나 철학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실은 요즘 신경 쓰이는 것들 — 내가 사랑하는 것들, 싫어하는 것들 — 에 관해 쓸까 했습니다. 하지만 계획에 없던 글이라니, 계획에 없던 삶과 비슷한 것 같기도 합니다. 실은 그 무엇도 내가 계획한 바는 아니었습니다. 저항 투사가 되는 것도, 정당이나 분파에 가입하는 것도, 심지어는 정치에 참여하는 것 자체도 말입니다. 이 모든 게 실수라서, 혹은 어떤 이들이 생각하는 대로 정치란 불쾌하고 역겨운 것이라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 내가 생각하기에 이런 것들은 거대하고 복잡한 주제라서 하는 말입니다. 그렇게 살기는 했지만, 나는 정치인도 저항 투사도 아닙니다. 체포되기 전까지 그랬던 것처럼 그저 도장공이나 주요소 직원으로 살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많이들 하는대로 일찌감치 사촌과 결혼했을 수도, 그녀가 아이를 일곱이든 열이든 낳았을 수도 있었을 텝니다. 그랬다면 트럭을 한 대 사고 자동차 매매나 환율 같은 것들을 공부했겠죠. [1982년에 이스라엘의 침공으로 벌어진] 레바논 전쟁 때의 참상과 그 뒤의 — 사브라·샤틸라 [팔레스타인인 난민촌] — 학살을 보기 전까지는 그 모든 것이 다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 광경은 나를 충격과 경악에 빠뜨렸습니다.[역주1]
더는 충격과 경악을 느끼지 않게 될까봐, (어느 민족이든) 사람들의 고통이 느껴지지 않게 될까봐, (어떤 참상이든) 참상 앞에서 둔감해 질까봐 매일 불안했습니다. 내게는 그것이 끈기와 연대의 척도였습니다. 타인과 인류의 고통에 공감하는 것이야말로 문명의 핵심입니다. 인간 지성의 핵심은 의지이고 육체의 핵심은 노동이며 영의 핵심은 감정입니다 — 타인과 인류의 고통에 공감하는 것이야말로 문명의 핵심입니다.
매년 매일 매 시간 수감자의 삶에서 표적이 되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정치적 주체로서 표적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종교적 주체로서 표적이 되는 것도, 물질적 삶의 즐거움을 박탈당하는 벌을 받는 소비자 주체로서 표적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자신에게 맞는 정치적 신념을 채택할 수도, 뭐가 됐든 종교적 의식을 행할 수도, 심지어는 물질적 욕구의 상당 부분을 충족 받을 수도 있습니다 — 하지만 여전히 제1표적은 당신 속의 사회적, 인간적 존재입니다.
자아를 벗어나는 모든 관계가, 타인이나 자연과의, 당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모든 관계가 — 심지어는 인간으로서 간수와의 관계마저 — 표적이 됩니다. 그들은 당신이 미움을 품게 하기 위해 정말로 무엇이든 합니다. 사랑을, 당신의 미적, 인간적 감수성을 겨냥합니다.
감옥에서 스무 해를 보내고서 고백건대, 나는 여전히 감옥에서의 삶이 강요하는 미움에는, 조악함에는, 거침에는 젬병입니다. 고백건대 나는 여전히 소박하기 그지 없는 것들을 보면 아이처럼 좋아합니다. 여전히 다정한 응원이나 칭찬에 기뻐 어쩔 줄 몰라 합니다. 고백건대 텔레비전에 나온 꽃에, 자연 경관에, 바다에, 가슴이 마구 뜁니다. 고백건대 나는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즐겁습니다. 세상의 수많은 즐거움 중에 내가 바라는 것은 마을 골목골목에서 나와 학교로 가는 아이들의 모습, 그리고 흙먼지 날리는 추운 아침에 마을 광장을 향해 길을 나선 — 출근 채비를 마친 기운찬 — 이른 아침 노동자들의 모습, 이렇게 딱 두 가지 뿐입니다. 또한 고백건대, 이 모든 감정들, 이 모든 사랑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내 어머니의 비길 데 없는 사랑, 사나와 내 남동생 호스니의 사랑, 사방에서 나를 둘러싸고 있는 동료들과 친애하는 벗들의 — 우리가 주고 받는 — 사랑 덕분입니다.
고백건대, 나는 여전히 사랑을 횃불 같이 붙들고 있습니다. 끈질기게 그 사랑을 지킬 것입니다 — 앞으로도 여러분 모두를 사랑할 것입니다. 내가 나를 가둔 자들을 이길 수 있는 힘이 바로 그 사랑이며 사랑만이 그리 할 수 있기에.
밀라드 드림.
[영어] 번역자 주 ― 왈리드 다카는 1961년에 피점령지 팔레스타인의 바카 알-가르비야Baqa Al-Gharbiyyah에서 태어났으며 팔레스타인의 철학자, 정치사상가, 극작자, 무장 저항 투사였다. 무죄 증거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군 병사를 납치, 살해한 1984년 팔레스타인인민해방전선 작전에 연루된 혐의로 기소되어 유죄 판결을 받았다. 1986년에 시온주의 집단에 의해 종신형에 처해져 2024년 4월 7일에 사망하기까지 수감된 몸으로 지냈다 (al-Shaikh 2021a, 276). 위의 글은 2005년에 길보아 감옥에서, 수감 20년 되는 해의 첫날에 쓴 것이다.
갇혀 지냈음에도 다카는 정치적으로 왕성하게 활동했다. 이 글에서도 드러나듯 그는 식민화된 팔레스타인의 문화 지식인들과 자주 연락했으며 덕분에 옥중에서도 적극적인 정치 활동을 영위할 수 있었다. 특히 민주민족연합Democratic National Rally 당원이었으며 팔레스타인수감자운동을 이끌었다.[역주2]
다카의 활동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아마도 학습이었을 것이다. 이를 두고 그의 옥중 동지들은 그에데 아미르 알-타카파Amir al-Thaqafah, 문화의 왕자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 [옥중에서] 정치학 학사 학위를 취득한[역주3] 다카는 희곡, 뮤지컬, 소설, 논픽션 수기, 아동서, 정치·철학 이론 등의 형태로 학제적 형식의 수많은 — 대부분 아직 번역되지 않은 — 지적 결과물을 내어 놓았다. 오슬로 이후의 현상유지라는 맥락 속에서 나온 그의 작업들은 팔레스타인해방기구가 팔레스타인자치정부로 바뀌고 이어서 정치 방식으로서의 무장 투쟁이 공식적으로 포기된 데, 그리고 1948년[에 이스라엘이 점령한 영토 내에 남은] 팔레스타인인들이 민족 기구national body에서 “잘려 나간dis-memberment” 따른 절박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ibid., 274). 특히 다카의 지적 관심의 중심에는 오슬로 이후 팔레스타인인, 전망 없고 미래 없는 현재 상태 — 팔레스타인 정치적 존재의 평행 시간 — 에 존재하기를 점점 더 강요 받는 주체의 특수한 존재론이 있었다. 위의 글은 그러한 핵심 지적 기획의 초기적이지만 토대적인 사례다.
다카가 남긴 유산은 의지적이고 주체적인 미래에의 끈질긴 믿음을 요한다. 실제로, 다카는 아파르트헤이트 국가가 주입하는 무한한 현재라는 환각에 결코 굴하지 않았다. 1996년에 옥중의 다카는 기자 겸 번역가 사나 살라마를 만나 교제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시온주의 집단의 방해에 가로막혔지만, 1999년에 아즈미 비샤라 — 이 편지의 수신인이자 당시 크네세트 의원이었던 — 의 중재로 둘은 혼약을 맺었다. 결혼식이나 사나가 딱 한 번 몰래 포옹에 성공한 2015년의 일 같은 예외를 빼면, 결혼 생활 내내 둘 사이에는 철창이 있었다. 둘은 누트파 무하라라nutfah muharrarah, 해방된 씨앗을 통해 임신에 성공해[역주4] 2020년 3월 2일에 밀라드Milad — 아랍어로 탄생을 뜻하는 말이다 — 를 낳았다 (al-Shaikh 2021b, 84-5). 다른 글에서도 그랬듯, 다카는 아즈미 비샤라에게 보낸 이 편지를 미래의 딸의 이름으로 보냈다. 마 타히야티, 밀라드Ma’ tahiyyati, Milad.
— 누르 엘딘 후세인
주
↥1 편집자 주 ― 팔레스타인 정치학자 아즈미 비샤라Azmi Bishara를 가리킨다. 이 편지는 2005년에 다카가 비샤라에게 보낸 것으로, 허락을 얻어 여기에 싣는다. 도움을 준 마제르 알-조비Mazher Al-Zoby에게 사의를 표한다.
↥2 편집자 주 ― 다카와 결혼한, 언론인이자 활동가인 사나 살라메Sanaa Salameh를 가리킨다.
↥3 편집자 주 ―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억류자복지부Ministry of Detainees and Ex-Detainees Affairs를 가리킨다.
↥역주1 레바논 전쟁과 레바논 내 팔레스타인인 난민촌, 사브라·샤틸라 학살에 대해서는 〈남쪽의 팔레스타인인: 갈 데라곤 난민촌 뿐〉(아이함 알-사흘리, 2026) 참고.
↥역주2 팔레스타인수감자운동에 대해서는 〈34년째 수감 중인 왈리드 다카: 오슬로 협정은 팔레스타인을 분열시켰고, 지도부는 민중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베이루트 함무드, 2019) 참고.
↥역주3 이스라엘 감옥에 수감된 팔레스타인인 정치수를 위한 학위 과정에 관한 글로 하다림 감옥 대학 ― 감옥과 대학에 저항하기(카삼 알-하즈, 2025) 참고.
↥역주4 왈리드 다카가 감옥에서 밀반출한 정액으로 사나 살라메가 체외 수정을 통해 임신했다. 이 둘을 비롯해 팔레스타인인들이 감옥에서 정액을 밀반출해 아이를 낳 과정과 그 의미를 소개한 글로 Tareq S. Hajjaj, “How Palestinians started smuggling their sperm out of Israeli prisons,” Mondoweiss, 2023.08.11.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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