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 청년 선언문 2.0 (가자청년궐기, 2011)

원문: Gaza Youth Breaks Out, “GYBO – Manifesto 2.0,” 2011.

행성 지구, 들립니까? 우리는 가자 청년입니다. 거기 아무도 없습니까? “가자 뭐?”

지난 번 선언문이[역주1] 생각보다 뜨거운 반응을 받고 있는 것 같다. 많은 이들이 우리를 지지했고 다른 많은 이들이 강경히 우리에 반대했으며 무관심한 것은 극소수였다. 모두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서로의 의견을 경청하는 경우는 드물었고, 그런 난장판 속에서 우리의 목소리는 묻혀버렸다.

세속적이다, 이슬람혐오적이다, 분열을 조장한다, 음모론적이다, 가공의 존재다 (?) ― 우리를 두고 너무 많은 말들이 따라 붙어서 세기를 포기하고 울어버렸다. 우리를 지지한 이들도, 우리를 박살내겠다고 다짐한 이들도 우리 선언문의 지점에서 멈춘 것 같다. “이스라엘 좆까. 하마스 좆까. 파타 좆까. UN 좆까. UNRWA 좆까. USA 좆까!”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무던히도 설명해 보았으나 허사였다.

나머지는 어쩌냐고? 팔레스타인 운동들부터 차근차근 이야기해 보자. 우리가 가혹했다. 맞는 말이다. 우리는 화가 나 있었다. 지금도 그렇다. 어떤 의도를 갖고 저런 순서로 저 “정당들”을 언급한 것은 아닌데, 이것이 상당한 혼란을 일으켰음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가 — 우리 정치 지도자들의 부패를 규탄했다는 이유로 — 2006년에 하마스에 투표한 수많은 이들을 모욕한다고 (그중에는 우리도 있는데), 주물납 작전[역주2] 때를 비롯해 우리를 위해 몇 번이고 피를 흘린, 팔레스타인 여러 분파 산하 저항 단체들의 순교자들의 기억을 모욕한다고 나무라는 이들에게는 이렇게 답하고 싶다. 정치인들을 비판할 팔레스타인 민중의 권리를 모욕하지 말라.

주물납은 전쟁이 아니었다. 학살이었고 도륙이었으며 결단코 전쟁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 학살이 벌어지는 동안 우리, 가자 민중 또한 우리의 피로 대가를 치렀다. 팔레스타인인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무언가를, 누군가를 희생했다. 저항 투사들만이 아니라, 가장 어린 이부터 가장 나이 든 이까지 모두가 그랬다. 폭탄이 떨어진대도 별반 다를 것 없었다. 우리는 저항가들을 거부할 생각이 없으며, 다시 한 번 밝힌다. 우리를 우리를 위해, 우리 팔레스타인을 위해 싸우는 이들을 결코 거부하지 않을 것이며 우리의 이전 선언문은 그런 의미가 아니었다.

그렇다. 우리는 하마스 정권에 투표했다. 우리 모두 그랬다. 우리는 파타 정권의 부패에 지쳤고 변화를 바랐으며 하마스가 그 변화가 되어주기를 바랐다. 바로 그렇기에 우리에게는 그들에게 분노를 표할 권리가 있다. 그들에게는 우리에 대한, 우리의 안녕에 대한, 우리의 안전에 대한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 어디에서나 서로 다른 분파에 속한 가족 구성원들이 합심해 사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파타는 서안에서 하마스 관계자들을 체포하고 하마스는 가자에서 파타 관계자들을 체포한다. 그렇다. 우리는 우리 정치인들을 규탄한다 — 제 분파에 소속된 수많은 팔레스타인인들이 순교, 애도, 그리고 팔레스타인에 대한 사랑으로 하나가 된 주물납 학살 일주기를 추모하는 중에마저 그들이 서로를 미워하는 것이 그들을 분열시켰기에 ‘정치인들’을 규탄하는 것이다.

당신이 인정하건 하지 않던, 믿건 믿지 않건, 부패는 실재한다. 거기에 지쳤기에 팔레스타인인으로 우리가 그것을 규탄하는 것은 우리의 권리다. 내적 변화에는 내적 요소들만 작용하는 것이 아니다. 바깥에 있는 이들이 깨달아야만 변화가 올 것이다. 부패가 실재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다시금 단결하기를 바란다면 부패를 막아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러므로, 세상에 그 부패를 알려야[역주3] 우리 정치 지도자들이 우리 말을 듣게, 우리를 위해 단결하게 할 수 있다면, 우리는 백 번이라도 그렇게 할 것이다.

우리를 도우려는 이들은 우리의 정치적 문제들에 대해 입을 다물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우리는 감히 우리 정치적 지도자들의 약점을 지적했다는 이유로 분열을 조장한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이런 분열들 때문에 팔레스타인에서의 삶이 어떠한지는 ‘내부’에 있는 이들밖에는 모른다. “비판하지 말라, 분열은 “비밀”에 부치고 차치해 두라”는 말로 우리의 입을 막으려 드는 것이야말로 더없이 유해하다! 우리 정치인들에게 하던 대로 계속 해도 된다고, 정치적 계획들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계속 지지할 거라고 말하는 것밖에는 안 된다. 바꾸어 말하자면, 하마스의 정치 지도자들 — 또한 다른 분파들의 지도자들 역시 — 을 비판함으로써 우리는 “계속 이런 식으로 하면 당신들이 얻을 것은 분열 뿐이고 그것이야말로 이스라엘이 원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들에게 우리의 순교자들과 수감자들, 선조들, 저 운동들을 낳고 기른 이들을 상기시켜야 한다. 우리는 그들에게 셰이크 야신Cheikh Yaseen을,[역주4] 마르완 바르구티Marwan Barghouti를,[역주5] 이렇게 대우해서는 안 될 다른 수많은 이들을 상기시켜야 한다. 이런 솔직할 일갈에 그들의 자식들 만한 적임자가 또 있겠는가?

우리의 익명성에 대한 문제 제기도 있었다. 그것은 이해한다.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인내하고 시간을 들이자는 우리의 호소를 경청하는 대신 티끌 만한 트집이라도 잡아 우리를 무너뜨리려 드는 터무니 없는 마녀 사냥이다. 예를 보자.

이 모임의 기반[샤렉청년포럼Sharek Youth Forum]이 (여러 나라에서 민주주의를 뒤엎기 위해 많은 일을 해 온) 합중국 전미민주주의기금National Endowment for Democracy의 지원을 받았다는 것이 수상해. (NED 설립자 중 한 사람인) 앨런 와인스틴은 “오늘날 우리[NED]가 하는 일의 상당 부분은 25년 전에는 CIA에서 은밀히 하던 일”이라고 말했지. 누구 이게 괜찮아 보이는 사람?

진심인가? 우리가 — 가자에 남은 몇 안 되는 청년 센터 중 하나였던, 젊은이들이 모이고 외국어를 배우고 인터넷을 쓰고 집에서는 할 수 없는 일을 하며 가자의 끔찍한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 중 하나였던 — 포럼을 폐쇄한 것이 달리 갈 곳이 없는 청년들에 대한 마지막 일격이었다고 말했다고 그 센터가 우리의 “기반”이며 우리가 CIA의 지원을 받는다고 단정한단 말인가? 또 어떤 이들은 우리의 선언문이 상당한 화제가 되어 서구 언론이 실린 것이 더없이 의심스럽다고 주장한다. 무죄추정 원칙은 다 어디 갔는가? 우리가 우리 성공의 첫 번째 희생자가 된 것 같다.

우리는 실존 인물들이며, 당장은 — 안전 상의 이유로 — 정체를 밝히지 않으려 한다 해도 그건 우리의 권리다. 하지만 조만간 우리가 실존한다는 추가적인 증거들이 나올 것이며, 《일렉트로닉 인티파다》 필진도 하나 가져 왔다.[역주6]

아사 윈스탠리Asa Winstanley: 맥스 아즐Max Ajl과 자리드 말신Jarid Malsin(둘 다 제가 개인적으로 신뢰하는 비주류 서구 언론사 기자 겸 블로거입니다)은 그들이 진짜라고 생각합니다.
http://twitter.com/jmalsin/status/21724694201769984
http://twitter.com/maxajl/status/21730678391439360

우리가 무엇을 지향하느냐고? 바로 자유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는 팔레스타인인들과 정치 지도자들이 시온주의 점령 세력에 맞서 하나로 뭉쳐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가 행동을 호소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바로 지금. 6개월 뒤, 1년 뒤, 또 한 번의 학살이 우리를 덮칠 때까지 기다렸다가가 아니라 바로 지금. 호소컨대 팔레스타인인은 단결하고 비폭력 저항, 보이콧이라는 효과적인 운동으로 조직화되어야 한다. “이스라엘”에 맞선 투자철회와 제재를 호소한다. 우리는 우리의 땅을 되찾기를 원한다. 이동의 자유를 되찾기를 원한다. 다른 우리 또래들처럼 교육 받을 기회를 찾아 외국에 갈 수 있기를 원한다. 세계와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기를, 미래를 품고 미래를 위해 노력을 동기를 가질 수 있기를 원한다. 공포는 지긋지긋하다. 비참은 지긋지긋하다. 꿈이 무너지는 것은 지긋지긋하다. 공습은 지긋지긋하다. 봉쇄는 지긋지긋하다. 슬픔은 지긋지긋하다. 우리가 가져야 할 그 모든 인권에 대한 침해는 지긋지긋하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세 가지다. 우리는 자유를 원한다. 평범한 삶을 살 수 있기를 원한다. 평화를 원한다. 이것이 과도한 요구인가? 우리는 가자의 청년들과 각지의 지지자들로 구성된 평화 운동이다. 가자와 팔레스타인의 진실을 이 세상 모두가 알 때까지, 그래서 더는 묵인도 요란한 무관심도 용납되지 않게 될 때까지 우리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혹여 우리가 실패한대도 다른 이들이 우리 자리를 채울 것이다. 더는 우리의 목소리를 무시할 수 없게 될 때까지.


이전 버전의 선언문

이스라엘 좆까. 하마스 좆까. 파타 좆까. UN 좆까. UNRWA 좆까. USA 좆까! 우리, 가자 청년들은 이스라엘에, 하마스에, 파타에, 점령에, 인권 침해에, 국제 사회의 무관심에 질려버렸다! 우리는 이스라엘 F16 전투기가 음속 장벽을 꿰뚫듯 소리를 지르고 이 침묵의, 부정의와 무관심의 벽을 무너뜨리고 싶다. 온 힘을 다해 소리를 질러 우리를 잠식하는 — 우리가 살아가는 이 좆 같은 상황들로 인한 — 이 어마어마한 좌절감을 떨치고 싶다. 우리는 악몽 속 악몽을 살가아는, 손톱에 붙잡힌 벌레와 같은 처지다. 희망을 품을 여지도, 자유를 누릴 공간도 없다. 우리는 이 정치 싸움에 붙잡혀 있는 것에 넌덜머리가 난다. 칠흑 같은 밤에 우리 집들 위를 맴도는 전투기들에, 죄 없는 농부들이 자기 땅을 돌본 죄로 완충 지대에서 총에 맞는 데에, 총을 차고 돌아나디며 제 신념을 걸고 시위에 나선 젊은이들을 구타하고 감금하며 권세를 휘두르는 수염쟁이들에, 우리를 우리 나라의 나머지와 갈라 코딱지 만한 땅에 가두어 놓는 치욕의 벽에,[역주7] 주머니에는 폭탄이 들어 있고 눈에는 악이 서려 있는 미치광이 테러리스트 취급 당하는 데에, 우려를 표하고 결의안을 쓸 때는 전문가 행세를 하면서 정작 자신들이 동의한 바를 강제해야 할 때엔 겁쟁이가 되어버리는 국제 사회의 무관심에 넌덜머리가 난다. 끔찍한 삶을 사는 것이, 이스라엘에 의해 감옥에 갇히는 것이, 하마스에 구타 당하는 것이, 나머지 전 세계에 완전히 무시 당하는 것이 너무도 지긋지긋하다.

우리 속에서 혁명이, — 이 에너지를 현상태에 도전하고 우리에게 모종의 희망을 줄 수 있는 무언가에로 돌릴 길을 찾지 못한다면 우리를 무너뜨리고 말 — 어마어마한 불만과 좌절감이 커져가고 있다. 좌절과 절망으로 우리의 가슴을 떨게 한 마지막 한 방울이 11월 30일에 떨어졌다. 총과 거짓말, 공격성으로 무장한 하마스 관계자들이 주요한 청년 조직인 샤렉청년포럼(www.sharek.ps)을 찾아가 사람들을 모두 내쫓은 후 일부는 감금하고 샤렉에는 활동 금지 조치를 내린 것이다. 며칠 후에는 샤렉 앞에서 시위를 벌인 이들을 구타하고 일부를 감금했다. 우리는 정말이지 악몽 속의 악몽을 살고 있다. 우리가 얼마나 시달리고 있는지 형언할 말을 찾기조차 어렵다. 우리는 이스라엘이 매우 효과적으로 우리를 폭격해댄, 가옥 수천 채와 그보다 훨씬 많은 삶과 꿈을 무너뜨린 주물납 작전을 겨우 살아 남았다. 그들은 의도한 대로 하마스를 없애지는 못했지만 우리를 영원히 겁에 질리게 하는 데에는, 그리고 모두에게 외상후스트레스증후군을 나누어 주는 데에는 확실히 성공했다. 도망 칠 곳이 없었으니까.

우리는 마음이 무겁다. 석양을 즐기기도 어려울 만큼 무겁다. 먹구름이 수평선을 뒤덮고 눈을 감을 때마다 눈앞에 암울한 기억들이 맺히는데 어떻게 즐길 수 있으랴. 우리는 고통을 숨기지 위해 미소 짓는다. 전쟁을 잊기 위해 웃는다. 지금 여기서 자살하지 않기 위해 희망을 품는다. 전쟁이 벌어지던 동안 이스라엘이 지구상에서 우리를 없어버리려 한다는 것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 몇 년 동안 하마스는 우리의 생각, 행동, 열망을 통제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하고 있다. 우리는 젊은 세대는 평범하고 건강한 삶이라는 불가능해 보이는 임무를 맡은 채 미사일을 마주하는 데 익숙해진 세대다. 우리 사회에 악성 암처럼 퍼져 있는, 공포 체제로 사람들을 마비시키는 것은 물론 제 길을 막는 생각들과 꿈들, 살아 있는 세포들을 모조리 죽여버리는 거대 조직이 거의 용납하지 않는 세대다. 우리가 갇힌 채 살아가는 감옥, 소위 민주 국가가 유지하고 있는 감옥은 새삼 말할 것도 없다.

역사는 가장 잔인한 방식으로 스스로를 반복하고,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 우리는 두렵다. 여기 가자에서 우리는 감금 당하고 심문 당하고 맞고 고문 당하고 폭격 당하고 살해 당할 것이 두렵다. 우리는 삶이 두렵다. 한 걸음 한 걸음 심사숙고 해야 하기 때문이다. 매사에 제한이 있다. 원하는 대로 돌아다니고 하고 싶은 말을 하고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없다. 때로는 생각조차 원하는 대로 할 수 없다. 점령이 우리의 머리와 가슴을 점령해 버렸기 때문이다. 아플 만치, 좌절과 분노로 끝없이 눈물을 흘리고 싶어질 만치 끔찍한 일이다.

우리는 미워하고 싶지 않다. 이 모든 감정을 느끼고 싶지 않다. 더는 피해자이고 싶지 않다. 지긋지긋하다! 아픔도 눈물도 고통도 통제도 지긋지긋하다. 부당한 정당화도 테러도 고문도 변명도 폭격도 잠 못 이루는 밤도 민간인들이 죽는 것도 암담한 기억들도 암울한 미래도 가슴이 미어지는 현재도 얼빠진 정치도 미치광이 정치인들도 종교 어쩌고 하는 개소리도 다 지긋지긋하다! 이제 그만 하라! 우리가 원하는 미래는 이런 것이 아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세 가지다. 우리는 자유를 원한다. 평범한 삶을 살 수 있기를 원한다. 평화를 원한다. 이것이 과도한 요구인가? 우리는 가자의 청년들과 각지의 지지자들로 구성된 평화 운동이다. 가자와 팔레스타인의 진실을 이 세상 모두가 알 때까지, 그래서 더는 묵인도 요란한 무관심도 용납되지 않게 될 때까지 우리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가자 청년들의, 변화를 위한 선언이다!

우리는 우리를 둘러싼 점령을 무너뜨리는 것부터 시작할 것이다. 이 정신적 감금에서 탈출해 우리의 존엄과 자존을 되찾을 것이다. 저항을 맞닥뜨린대도 고개 숙이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비참한 상황을 바꾸기 위해 밤낮으로 일할 것이다. 장벽을 마주치는 곳에서 꿈을 건설할 것이다.

당신이 — 지금 이 성명을 읽고 있는 당신 말이다! — 우리에게 힘을 보태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방법을 알고 싶다면 담벼락에 글을 남기거라 freegazayouth[at]hotmail.com으로 직접 연락 주시라.

우리는 자유를, 삶을, 평화를 원한다.

가자 청년에게 자유를!

역주1 2011년 연초에 공개한 선언문을 가리킨다. 전문은 아래에 수록되어 있다. 이 글은 해당 선언문 공개 며칠 후, 세간의 반응해 응답해 쓰인 글이다. 두 글이 공개된 정확한 간격은 확인하지 못했으나 2주 이내인 듯하다. 이 글이 실려 있는 단체 웹사이트의 첫 게시물은 2011년 1월 4일자, 마지막 게시물은 2012년 11월 10일자다.

역주2 Operation Cast Lead. 이스라엘이 2008년 12월 27일에 개시한 가자 공습의 작전명. 이스라엘의 민족 시인 하임 나만 비알릭의 시에 등장하는 납으로 만든 드레이들(명절인 하누카에 갖고 노는 전통 팽이)에서 따온 명칭으로 알려져 있다. 이스라엘은 2009년 1월 17일에 일방적으로 휴전을 선언했고, 이후 하마스에서도 공격을 멈추었다.

역주3 이 글과 앞의 선언문은 아랍어가 아니라 영어로 발표되었다. “《일렉트로닉 인티파다》에서 선언문을 영어로 발표한 이유를 묻자 GYBO의 한 멤버는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의 타겟은 국제 사회의 청중이며 우리는 이스라엘이 현재 가자의 엄혹한 상황, 특히 여전히 해외에 가거나 학업을 재개하는 등의 기본권을 차단하고 있는 봉쇄에 대해 비난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Rami Almeghari, “Authors of Gaza youth manifesto speak to EI,” The Electronic Intifada, 2011.01.17.

역주4 셰이크 아흐메드 야신 — Sheikh Ahmed Yassin이라는 표기가 더 흔히 쓰이는 것 같다 — 은 하마스의 창립자다. 2004년 3월 22일 새벽에 가자의 한 사원에서 예배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이스라엘군 헬기의 미사일 공격으로 사망했다.

역주5 “팔레스타인의 원로 지도자이자 파타 정치적 지평의 핵심 인물인 바르구티는 2002년부터 이스라엘 감옥에 수감되어 있다. 이스라엘 법원에서 (논쟁적이거나 조작된 증거로) 2차 인티파다 당시의 폭력과 관련된 여러 건의 유죄를 선고 받은 그는 팔레스타인에서나 국제적으로나 정치수로 잘 알려져 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바르구티의 감금은 당파를 가로지르는 단결을 비롯한 저항과 팔레스타인의 정치적 열망의 상징이었다.” 〈생지옥: 억압 수단으로서의 이스라엘 감옥 체제〉 (비제이 프라샤드, 2026)

역주6 역주3에 인용한 기사의 인터뷰에는 다섯 명이 참여했다. “이튿날 이 여덟 명짜리 모임의 구성원 중 다섯 명 — 아부 야잔, 아부 조지, 아부 아운, 에드워드, 자밀라 — 가 본지와의 인터뷰를 위해 가자시에 모였다. 여성 세 명이 포함된 이 모임은 전원 대졸자다. 이들이 페이스북에 게시한 〈변화를 위한 선언문〉은 인터넷에서 널리 퍼졌고 《가디언》, 《뉴욕 타임즈》 등 해외 언론에 보도되었다. 대부분 가자 각지의 난민촌 출신인 GYBO 구성원들은 당국과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신원을 숨기기 위해 가명을 쓴다. 사진 촬영 또한 거부했다.”

역주7 The wall of shame. 이스라엘에서 테러 방지를 명목으로 가자와 서안 지구에 건설하는 장벽을 가리킨다. 팔레스타인인들을 가두어 두는 역할을 할 뿐 아니라 서안 내부를 통과하며 토지 수탈 수단으로 기능하기도 한다. 후자에 대해서는 〈새 장벽이 수천의 팔레스타인 가족을 위협한다〉(제나 알 타한, 2026)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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