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3.12.(토)

마우스를 수리했다. 잡화점에서 오천 원인가 주고 산 것이다. 이 마우스 전에는 인터넷 쇼핑몰에서 만 얼마를 주고 산 것을 잠시 썼다. 블루투스 마우스였는데, 1분쯤 쓰지 않으면 대기 모드에 들어가도록 설계된 것이었다. 1분은 정말 짧아서 마우스를 손에 쥔 채로도 흘려 보낼 수 있는 시간인데, 다시 움직일 때 대기 모드 해제에 드는 몇 초의 시간은 너무도 길었다. 오래지 않아 적응을 포기하고 이것으로 바꾸었다. 저 마우스는 서랍 속에 있을 것이다.

이것은 USB 수신기를 꽂아 쓰는 무선 마우스다. 수신기는 늘 꽂아 두는데 얼마 전에 랩탑을 어디 넣다가였다 빼다가였나 무언가 걸리는데도 생각 없이 힘을 주다 망가졌다. 랩탑의 USB 포트 둘 중 하나가 고장난 상태라 USB 메모리라도 쓰려면 마우스 수신기를 뽑아야 하는 것이 늘 불편했던 차라 새로 살까 했는데 블루투스 타입은 (대기 모드 진입까지의 시간이 좀 더 길고 대기 모드 해제가 좀 더 빠른 것 역시도) 답답해서 싫었다. USB-C 타입 수신기를 쓰는 것도 있지만 늘 꽂아둘 수 있을 만한 형태의 것은 찾지 못했다.

그래서 수리했다. 같은 모델을 하나 더 가지고 있었다. 휠이 고장나 쓰지는 않으면서도 버리지도 않고 둔 것이다. 이번에 망가진 것에서 휠 센서를 떼어 나머지에 붙였다. 잘 작동한다. 나중을 대비해 버튼 스위치들도 떼어 두었다. 광센서도 떼어둘까 하다 그게 고장날 정도 되면 새로 사지 싶어 말았다. 버튼이나 휠이 고장나 못 쓰게 된 적은 많아도 광센서가 고장난 적은 없다. 다리가 많아 귀찮기도 했다.

수리를 위해서는 납땜 인두가 필요했다. 몇 년 전에 6,000원인가를 주고 산 것이 있지만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지 오래다. 이유는 알아내지 못했다. 또 비슷한 수준의 것을 새로 사려고 했는데 다른 것을 찾아 상자를 뒤지다 납땜 인두를 찾았다. 이것은 아마도 1999년의 물건. 라디오 조립 대회에 나가느라 어느 문구점에서 3,000원을 주고 샀다. 친구들이 쓰던 일자형의 것은 5,000원이었나. 이건 손잡이가 총 모양이다. 모양이 아니라 가격을 보고 골랐다.

당시 대회에서는 장려상인가를 받았다. 소리는 잘 났으니, 아마도 납땜의 질이나 제출 순서 같은 것이 등수를 갈랐을 것이다. 대회에서는 설명서를 볼 수 없다고 해서 부품의 위치를 전부 외웠다. 설명서를 보고 해도 되는 대회였다. 외우는 것은 어렵지 않았으나 저항의 띠 색깔을 구분하는 것이 어려웠다. 갈흑적금, 같은 식이었고 내 눈은 갈색과 흑색과 적색을 잘 구분하지 못한다. 다행히 다 알아본 모양이지만. 몇 년 뒤에 한 번 더 대회를 나갔다. 이번에는 설명서를 외우지 않았다. 소리가 나지도 않았다. 어디서 틀렸는지는 모른다.

망가진 마우스에서 센서를 떼는 데엔 땜납 제거기를 썼다. 피스톤을 누른 후 버튼을 누르면 스프링의 힘으로 피스톤이 뽑히면서 진공 상태를 만들어 납을 흡입하는 구조다. 납을 녹인 후 흡입기 입구를 갖다 대고 버튼을 누른다. 6,000원짜리 인두와 함께 3,000원쯤 주고 샀다. 첫 번째 대회에 나갈 때 다른 이가 갖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가 아니었다면 존재를 알지 못했을 것이다. 당시엔 얼마였을까, 갖고 싶었지만 사거나 사달라고 하지는 않았다. 대회에서 부품을 하나라도 잘못 땜했다면 그걸로 끝이었다. 아니, 끝이라는 건 좀 과장이다. 기판이 복잡하지는 않으므로 꼼수를 써서 옆으로 흘리거나 쳐서 떨어뜨리거나 해볼 수는 있다. 끝이 될 가능성이 낮지는 않지만.

하는 김에 휠 버튼이 되다 말다 하는 유선 마우스도 열었다. 무선 마우스에서 뗀 스위치를 붙여 볼 수 있을까 했는데 사이즈가 영 안 맞아서 포기했다.

2022.03.10-11.(목-금)

곧 자정이다. 한 시간 조금 못 되게 걷고 들어온 참이다. 샤워를 하고 나와서는 돌연 집을 나섰다. 두 시간 정도 걸을까 했는데 생각 없이 아무데로 꺾었더니 금세 집을 향하는 길에 서 있게 되었다. 낮에는 의림지에 다녀왔다. 한 시간 반 좀 넘게 걸었고 흑백 필름을 넣어둔 카메라로 사진을 일곱 장 찍었다.

필름을 다 쓰고 나면 카메라를 팔 것이다. 원래 쓰던 것이 고장 나서 같은 모델을 중고로 샀는데 같은 고장이 났다, 고 생각했으나 배터리 문제였다. 비싼 것을 쓰니 제대로 작동했다. 원래 쓰던 것은 배터리를 갈아도 이따금 문제가 생기지만 심각하지는 않다. 이것을 팔면 필름을 몇 롤 살 수 있을 것이다.

내일 아침에는 에어프라이어를 팔기로 되어 있다. 원래는 오늘 오후 약속이었는데 상대의 사정으로 밀렸다. 2019년 초에 샀을까, 몇 번 쓰지 않았다. 코팅은 상했지만. 부엌이 좁아서 한 구짜리 전기레인지를 쓰다 국을 끓이는 동안 생선이라도 구우려고 에어프라이어를 샀는데 그렇게 잘 챙겨 먹지 않았다. 여기에 와서는 한 번도 쓰지 않았다. 조금은 더 부지런히 해 먹고 있으므로 전기레인지를 두 구짜리로 바꿀까 했다가 엉성하게 공사해 둔 배선이 못 미더워 휴대용 가스레인지를 샀다. 역시 자주 쓰지는 않는다.

낮의 산책은 예정에 없던 일이었다. 두 시인 줄 알았던 스터디 시작 시각이 실은 다섯 시였음을 두 시를 3분 앞두고 깨달았다. 한동안 밍기적거리다 역시 돌연 나섰다. 다녀와서는 곧 스터디 시작. 두 시간 정도 했으려나. 두 주 전이었던 저번 스터디에서 남긴 분량을 마쳤다. 이렇게 밀린 데에는 당시에 발제문을 제대로 못 쓴 내 탓도 있는데, 책을 덜 읽어서 이해가 안 되는 줄 알았으나 그런 건 아니었다. 결국 엉성한 발제문을 읽었다.

간밤에 발제문 마지막 몇 문장을 다 쓰지 않고 누웠다. 얼른 자고 일찍 일어나 마무리할 생각이었으나 일곱 시쯤에야 겨우 잠들었다. 점심께에 일어나 밥을 안치고 씻고 국을 데우고 배를 채우고 급히 썼다. 그리고는 깨달은 것이었다, 세 시간이 남았음을. 그러고보니 낮잠을 잘 수도 있었을 텐데 무거운 몸으로 산책을 갔네.

스터디를 마치고는 오디오를 만들었다. 이렇게 말하면 거창하지만 카오디오의 선 몇 개를 끊어 전원과 스피커를 연결한 것이 전부다. 진짜 ‘만들기’에 해당하는 부분은 시작하지 않았다. 케이스를 만들 것이다. 카오디오는 어제 근처 동네에 가서 만 원을 주고 사왔다. 지난주였나, 2만 원에 올라왔던 것이 그저께쯤 만 원으로 떨어졌다. 어제는 도서관엘 갔고 마침 판매 위치가 그 근처 ― 편도 도보 20분 ― 라 사기로 했다.

생산 시기는 2008년. 14년이라는 시간적 거리와 자동차라는 공간의 특수성이 반영된, 현란한 디자인. VU 미터 네 개가 달려 있다. 좋아하는 물건이다. 신기하게도 조작부를 통째로 뗄 수 있는데 설명서에 따르면 도난 방지를 위한 기능이다. 시기를 생각하면 한국 시장을 고려한 건 아닐 테지. 일본제이고 웹에서 한국어, 영어, 아랍어 설명서를 찾았다.

지금은 t.A.T.u.를 듣고 있다. 카오디오에는 “2010.4.25. ost… 인기가요 103″이라고 적혀 있는 CD-R이 들어 있었다. 사람 이름이지 싶은 세 글자가 더 적혀 있는데 가수 이름인지 CD 주인 이름인지 모르겠다. 그걸 빼고 책장에서 2003년쯤 구웠을 법한 CD를 가져다 넣었다. t.A.T.u. 1집이 언제 나왔더라, 당시에 산 CD 역시 아직 가지고 있다. 동봉돼 있던 포스터는 없다.

어제 저녁에는 현관문 손잡이도 샀다. 훔쳐 갈 거라곤 책밖에 없는 집이고 이 아파트가 도둑에게 큰 매력이 있을 것 같진 않지만 서울에 가면 며칠씩 집을 비우기도 하니까. 전자 번호키가 설치돼 있고 일반 손잡이의 열쇠는 받지 않았다. 집 근처에 열쇠 두 개를 포함한 중고 물품이 올라왔길래 다녀왔다. 도보 5분 거리. 열쇠는 세 개가 있었다.

밤에는 USB 미니 스탠드를 누군가에게 주었다. 서울 살 때 주워다 이제껏 쓴 물건이다. 외장 어댑터를 쓰도록 만든 물건이지만 어댑터는 없었다. 5V 전원이라 분해해 USB 케이블을 납땜했다. 서울에선 딱히 쓸 일이 없었고, 여기선 머리맡에 두고 이따금 썼다. 얼마 전에 이동식 등을 하나 샀으므로 ― 역시 주운 물건들로 조립한 스탠드에 테이프로 붙여 두었다, 임시변통 ― 처분했다.

그는 전날 새벽 두 시에 사과와 함께 문의를 해왔고 어제 저녁에 오기로 했다. 밤이 되어도 오지 않아 메시지를 보내니 2분 안에 온다고 했다. 길을 못 찾아 늦어졌다며, 7분쯤 후에 도착했다. 새로 사도 오천 원이면 될 텐데 새벽에 황급히 메시지를 보내네, 여유가 없으신가 하고 거래내역을 보니 골프채가 있었다. 그냥 알뜰한 사람인가 했는데 2분 거리를 차를 몰고 왔다. 사람이란 어렵지.

그제 낮엔 몇 년 전에 사서는 쓰지 않고 방치해 유통기한이 2년이나 지나버린 폴리우레탄폼 스프레이를 올렸고 어제 아침에 누군가 가져갔다. 아침에 오겠다길래 일어날 자신이 없어 아파트 현관에 두고 잤으므로 사람은 보지 못했다. 그가 메시지를 보내자 앱에서 ‘다섯 번 이상 나눔을 받은 사람입니다’였나 하는 경고가 떴다. 에어프라이어를 사기로 한 사람의 거래내역에는 볶아먹을 메뚜기를 산다는 게시물이 있었다.

어제는 종종 대선을 생각했다. 그제 밤, 윤석열이 당선될 조짐이 조금씩 보이자 사람들은 서로에게 죽지 말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선거 직전에 본 글 하나를 떠올렸다. (이 글을 인용하며 그 말을 한 사람도 있었고.) 선거 때마다 반복되는 깊은 좌절들을 생각했다. 일부는 누가 당선되느냐에 따라 곧장 달라질 어떤 삶들로 인한, 또 일부는 선거가 어떻게 되든 달라지지 않거나 나빠지기만 할 원칙들 혹은 방향들로 인한 좌절들을.

기본소득당에 대해서는 실제로 잘 모르긴 하지만, 투표소 앞에서 당황한 탓에 잠시 잊었는데, 기본소득당을 뽑지 않는 것은 정해져 있는 일이었다는 걸 뒤늦게 떠올렸다. 잘 모르는 가운데 아는 하나는 기본소득당이 지난 총선 때 민주당의 위성정당을 경유해 의석을 확보했다는 사실이다. 역시나 잘은 모르지만 용혜인 의원은 중요한 일들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후자의 좌절을 한층 더 깊게 만든다는 것은 분명히 알고 있다. 내가 정의당을 마뜩잖아 하는 이유들과 비슷한 방식으로, 그러나 아마도 더 강하게.

선거에 간절할 적이 있었던가, 도 생각했다. 한 번 있었다. 나는 참여할 일이 없었던, 17대 대선 한나라당 경선의 일이다. 이명박과 박근혜가 맞붙었다. 박근혜가 되기를 바랐다. 둘 다 사람들을 괴롭힐 것은 분명했다. 이명박은 4대강 사업을 공약으로 걸었다. 사람의 일이라면 사람이 책임지겠지만 강은? 박근혜가 차악이리라고 여겼다. 이명박이 이겼다.

대선에서도 이명박은 압도적으로 이겼다. 민주당 정동영 26.14%, 무소속 이회창 15.07%, 창조한국당 문국현 5.82%, 민주노동당 권영길 3.01%, 그리고 한나라당 이명박 48.67%. 당시 나는 한국사회당의 당원이었다. 개표 결과가 발표되고 당원 게시판에 글 하나가 올라왔다. 사죄의 글. 이명박을 막고 싶었던 이들 사이에서 정동영과 이명박이 박빙이리라는 예측이 돌았던 모양이다. 그 말에 그만 정동영에게 표를 주었음을 고백하는 글이었다. 누구의 글이었는지, 당시의 내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는 가물가물하다. 지금으로서는 그의 과한 열정이 안타까울 뿐이다. 이명박을 막고 싶었던 마음과 당에 진심이었던 마음, 어느쪽이든. 당시 한국사회당 금민의 득표율은 0.07%. 18,223표.

당적은 사회당이 진보신당에 흡수통합된 직후까지 유지했다. 정당정치에 관심이 없으므로 이만하면 되었다 싶기도 했고, 당시 진보신당에서 어떤 사건을 제대로 처리하고 있지 않은 데에 불만이 있기도 했다. 탈당원에는 후자의 이유만 적었을 것이다. 주위에는 대개 전자의 이유를 말했다. 사회당 내에서 흡수통합을 두고 논쟁이 벌어졌을 때에는 당원 게시판에 찬성 의견을 밝혔다. 당 대 당 통합이었다면 달랐을까, 흡수통합을 마다 않는 것은 일종의 희생이라고 여겼다. 가장 낮은 곳을 향하기로 한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는 식의 문장을 썼다.

흡수통합안이 가결된 날의 당대회에는 불참했다. 늦잠을 잤던 것 같은데. 집이 아니라 농성장에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후자라 해도, 농성장 사정이 급박해서 가지 못한 것은 아마 아니다. 이후의 일은 잘 모른다. 그다지 희생적이지는 않았던 것 같다. ‘활동가’로 분류될 법한 사람들을 기준으로 하면 좌파로서는 국내 최대 정파라고 했다. 그러나 지지세력은 많지 않았고 흡수통합이라는 형식상 진보신당을 장악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는데, 아마도 꽤 그랬던 모양이다. 종종 비난의 말을 들었다. 그들 중 일부가 ― 극소수인지 대다수인지 그 사이 어디인지는 모른다 ― 가 그곳을 나와 기본소득당을 만들었다, 고 했다. 옛 친구들에게 입당 요청을 받았으나 하지 않았다. 앞으론 당적을 두지 않기로 했다, 고 말했다. 사실이다.

이번 선거에서 정의당 심상정은 2.37%, 803,358표를 받았다. 진보당 김재연은 0.11% 37,366표, 기본소득당 오준호는 0.05% 18,105표. 노동당 이백윤은 0.02%. 9,176표.

2022.03.09.(수)

집 코앞에서 투표를 하기는 처음이다. (부재자 투표를 놓쳐서 서울에서 김해까지 갔던 한 번을 빼면) 투표소가 크게 멀었던 적이야 없지만 이만큼 가까운 적도 없었다. 아파트 정문께에 있는 경로회관에서 투표했다. 투표소에 도착해서, 문 앞에 놓인 손 소독제를 보면서야 누구를 찍을지 정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멈춰서 고민을 해보려다 또 하나 깨달았다. 공약을 제대로 보지도 않았음을. 결국 이를테면 전략 투표, 를 했다. 3번을 찍었다. 심상정.

정의당에 표를 준 적이 없지는 물론 않다. 구의원이나 시의원쯤 되는 선거에서다. 저번 대선 땐 누굴 찍었더라. 심상정에게 후원금을 보냈던 건 기억 난다. 방송토론 마지막 1분 발언을 성소수자 인권을 말하는 데에 쓴 것을 보고서였다. 민주당을 찍은 적도 있다. 김해에 적을 두었을 때엔 민주당 후보와 한나라당 후보, 두 당의 공천 경쟁에서 밀려난 무소속 후보 중에서 골라야 하곤 했다. 제천의 선거 ― 국회의원 선거구로는 제천시·단양군 ― 에는 곧 처음으로 참여하게 될 것이다. 이곳의 총선에는 2004년에 녹색사민당 후보가, 2008년에 민주노동당 후보가 출마했다. 시장 선거에는 그나마도 없었던 듯하다.

대통령 선거나 서울시장 선거, 어지간한 당에서는 다 후보가 나오는 규모의 선거에서는 한때 적을 두었던 사회당이나 몇 년 전에 꽤 관심을 가졌던 녹색당의 후보를 찍었다. 김소연과 김순자 중 한 명을 찍었던 것도 같고. 내가 찍는 후보의 당선에는 물론 선거라는 형식 자체에도 큰 희망을 두지 않으므로 그다지 열정적이지는 않았고 아마도 그런 이유로 잘 기억도 나지 않는다. 이전의 투표들이라고 소신 투표라기엔 민망하다.

3번, 정의당, 심상정을 찍는 게 전략 투표라니 배 부른 소리겠지. 기본소득당의 오준호 후보와 노동당의 이백윤 후보를 조금 살펴 보았다. 전자는 사회당에서 함께 활동했던 이다. 그나 그가 함께 하는 ― 나와 함께 했던 ― 이들을 응원하고 기본소득이라는 구상을 지지하지만 기본소득당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노동당에 대해서도 이백윤에 대해서도 역시 아는 바가 거의 없지만 사회주의를 표방하며 출마했다는 것은 안다. 이들 사이에서 고민, 을 하려다 말고 심상정을 찍었다.

심상정과 정의당에 대해서는 조금은 더 알고,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2012년 총선을 앞두고 소위 노심조(노회찬, 심상정, 조승수)를 비롯한 사람들이 의회주의에 빠져서 통합진보당으로 옮겨갔다. 결국 총선이 끝나자마자 통합진보당은 완전히 깨졌고, 진보 정치 세력은 파국과 절멸을 맞이했다”는 것을, 줄곧 많은 것을 접어 두고 있다는 것을 안다.[1]인용한 것은 홍세화의 말이다. 윤지연, 「홍세화, “이백윤에 던진 표는 사회주의 씨앗이자 변화의 가능성”」, 《참세상》, 2022.03.04. 심상정이 아니라 다른 후보였다면 아마도 정의당에 표를 던지지 않았을 것이다. 지난번엔 성소수자 인권에, 이번엔 장애인 인권에 마지막 발언 기회를 쓴 사람이자 여성 정치인인 이에게 표를 준 것이다. 선거에 관한 그나마의 관심은 주로 그 마지막 발언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이들에게 있으므로 전자는 그럴싸한 이유는 못 된다. 정확히 말하자면 여성 후보를 낸 당에 표를 주었다. (그런 당이라면 진보당도 있고 통합진보당 강제 해산 사건에는 약간의 부채감도 있지만 진보당과 나는 멀다.)

다시, 배 부른 소리에 관하여. 윤석열보다야 이재명이 나을 것이다. 당연히. 그러나 그것이 희망이 될 정도 혹은 희망이랄 정도는 되지 않는다. 당연히. 지난 정권 때 그랬듯 ‘복지 예산’이 즉각 삭감된다면 곧장 타격을 입게 될 ― 목숨에까지도 ― 이들이 있음을 안다. 문화 관련 예산이 줄어들거나 한다면 내게도 곧장 타격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목숨을 위협할 정도는 아닐 것이므로, 배 부른 소리다. 그래서 배가 부르냐고. 전혀 아니다. 나도 가난해서가 아니라, 노무현 정권 당시 경찰에게 맞아 죽은 이들과 현 정권 하에서 가난으로 죽은 이들을 기억하기에. 이재명이 한 명이라도 더 살릴 것이라고 진심으로 믿을 수는 없을 뿐이다.

전략 투표. 사실은 그렇지 않다. 장기적인 효과를 바라며, 예컨대 당장은 그렇다 하더라도 진보의 입지를 지키는 것이 이곳의 우경화를 늦추고 희망컨대 사회를 왼쪽으로 이끌 수 있으리는 마음으로, 한 투표 같은 것이 아니다. 배 부른 자의 비관에서, 회의에서, 비롯된 일일 뿐이다. 아무런 소신도 없으므로 적당히. 정확히는, 어느 당 어느 후보가 나오는지와 상관 없이, 애초에 내 소신과는 겹치는 곳 없는 세계이므로 적당히.

1 인용한 것은 홍세화의 말이다. 윤지연, 「홍세화, “이백윤에 던진 표는 사회주의 씨앗이자 변화의 가능성”」, 《참세상》, 2022.03.04.

2022.02.26.(토)

오랜만에 긴 산책을 했다. 얼마나 오랜만인지는 모르겠다. 얼마나 길었는지는 안다. 왕복 세 시간 정도 걸었다. 반환점은 대형 마트. 자전거 펌프와 밀대걸레를 사기로 하고 길을 나섰다. 원래는 집앞 논밭을 가로질러 이미 몇 차례 가 본 마트를 갈까 했는데 언젠가 자전거 펌프가 없는 걸 본 기억이 떠올라 다른 마트로 정했다. 거리는 비슷하다. 가 본 적은 없는 곳이다. 그 옆에 있는 잡화점에는 가 봤다. 중고 카메라를 산 날, 판매자의 차에 실려서 배터리를 구하러.

펌프는 봄맞이에 필요하다. 슬슬 날이 풀리므로, 자전거를 정비해 영월에 다녀올 생각이다. 밀대는 물론 걸레질에 쓸 것이다. 이사 온 후로 쓰던, 물걸레 기능이 있는, 무선 청소기를 처분해 필요해졌다. 엊저녁에는 오랜만에 유선청소기를 썼다. 무선청소기를 처분하고는 씻어둔 ― 실외처럼 여기는 베란다를 청소하는 데 써 왔다 ― 헤드를 끼우고 전선도 꽂았다. 전선을 신경 쓰며 움직이는 것도 여기저기 콘센트를 바꾸어 가며 꽂아야 하는 것도 성가셨지만 집이 좁으므로 큰일은 아니다. 저번 집보단 꽤 넓어서 방바닥에 쌓여 있는 물건도 많지 않고. 간만에 듣는 커다란 모터소리가, 공기역학적 설계니 뭐니 하는 것 없이 오직 모터 출력만으로 이루어진 저가형 청소기의 흡입력이, 묘한 해방감을 주었다.

마트를 오가는 산책은 집에서 출발해 시내 끄트머리쯤 되는 길을 조금 걸은 후 교외가 나오면 천川을 따라 쭉, 이라는 구상이었는데 실패했다. 제방 공사 정도는 되어 있지만 따로 산책로가 있지는 않은 지천의 지천쯤 되는 작은 천이라 평행으로 난 차도를 따라 걸었는데 잠시 딴생각을 하다 갈림길을 잘못 들었기 때문이다. 논밭과 공업사와 아파트 같은 것들이 보이는 차도를 한 시간 가량 걸어 마트에 이르렀다. “달리는 고물상”이라는 간판이 붙은 곳과 “염소탕에서 업종을 변경하여 두부집으로 영업합니다”라는 안내문구가 붙은 곳을 지났다. 어딘가에서는 홀쏘hole saw 날을 하나 주웠다.

가는 길에는 가게에 들러 아이스크림 하나를 샀다. 값을 치르고 나오는데 이어폰 너머로 작가세요? 하고 묻는 말이 들려 왔다. 내 행색이 그 정도인가, 생각하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더니 그는 카메라를 가리켰다. 커다란 필름카메라를 어깨에 메고 나온 참이었다. 아뇨, 취미로요, 하고 답했다. 아들이 사진과를 나와서 카메라를 보면 그냥 넘겨지지가 않는다고 했다. 좋은 취미 갖고 계시네요, 하고 덧붙였다. 아들은 쉰이라고 했다.

마트에 도착해서는 밀대 구색을 확인만 하고 집어들지는 않은 채 펌프를 찾아 나섰다. 종종 그렇듯 공구 코너에 발이 멈춰 한참을 구경했다. 늘 그러듯 공구 코너로 들어서서 바로 옆의 조명 코너와 자동차 용품 코너까지를 돌았다. 자동차에는 관심이 없지만, 자동차 코너는 못 생기고 편리한 물건들이 많아서 재밌다. 선반 여섯 줄을 꼼꼼히 훑은 후엔 정신을 차리고도 한동안 뭘 사러 가던 중이었는지를 곱씹어야 했다. 펌프가 있는 코너를 찾는 데에도 실패했다. 없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매장 한 바퀴를 돌고도 찾지 못해 직원에게 자전거 용품이 있는지를 물어보니 스포츠 코너로 가보라고 했는데 물론 이미 본 곳이었다. 한 번 더 보았지만 역시 없었다.

돌아가는 길에 또 공구 코너에 멈추었고 결국 등 하나를 샀다. 살까 말까 하던 차였던 30cm 정도 길이의 가느다란 LED 등이다. 인터넷 최저가보다 천 원이 비쌌지만 배송비를 더하면 이쪽이 천 원 샀다. 그리고는 밀대 코너로 가서 하나를 집어 들었다. 제일 싼 거였나, 두 번째로 싼 거였나. 꽤 크다. 바로 옆 잡화점 물건의 두 배나 되는 ― 6, 7000원쯤 비싼 ― 가격의 물건이다. 잡화점에는 손잡이가 플라스틱인 것이나 가느다란 금속제인 것이 구비되어 있다. 후자의 것을 사서 쓰다 부러진 적이 있다.

펌프는 잡화점에서 샀다. 인터넷으로 사면 배송비를 포함해도 몇천 원 차이로 훨씬 좋은 걸 살 수 있지만 그러지 않았다. 특별히 좋을 필요가 없기도 하고 택배를 피하고 싶기도 했다. 그래봐야 어제는 해외에서 오는 물건을 주문했다. 국내에는 팔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기는 하지만 그다지 유효한 변명은 아니다. 헤드폰 귀덮개 스펀지를 산 것인데, 그래봐야 단순한 물건이므로 전용 제품이 없다 해도 적당히 사이즈가 맞는 건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거기까지 뒤져보지는 않았다.

산 것들은 배낭에 넣었다. 펌프는 정수리쯤까지, 밀대는 그보다도 한 뼘쯤 더 솟았다. 잡화점 앞에 쌓여 있는 상자에서 테이프를 뜯어 돌돌 말아 끈을 만들었다. 펌프와 밀대 양쪽에 하나씩 위태로이 놓인 힘 없는 지퍼 손잡이 ― 이건 이름이 따로 있을까? ― 를 묶었다. 튀어나온 것들이 전신주나 행인을 치지 않도록, 그리고 천을 또 놓치지 않도록, 정신을 차리고 걸었다. 지천의 지천은 워낙에 작은 데다 겨울이라 유량이 적고 중간중간에 공사까지 하고 있어 돌아가는 길의 풍경도 온 길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다만 오리를 아주 많이 보았다.

원래는 장을 봐서 귀가해 요리를 할 생각이었지만 이 또한 실패했다. 급격히 배가 고파져 초밥집에 들어가 연어초밥을 주문했다. 매장에서 먹는데 굳이 일회용인 배달용 플라스틱 용기에 담아주어 당황했지만 이미 두어 번 경험한 거란 걸 깨닫고는 조금 곤란해졌다. 초밥과 생강절임, 락교절임, 와사비, 간장이 플라스틱 도시락에 담겨 있었다. 국그릇은 따로. 초밥에 얹는 양파절임과 소스가 또 각각의 그릇에. 어차피 비닐봉투에 든 간장을 따로 주면 그 자리에 소스를 담을 수 있고 세 가지 절임 중 두 가지를 한 칸에 넣을 수 있을 텐데, 하는 부질 없는 생각을 하다 애초에 연어초밥을 먹고 있는 주제란 데에 생각이 닿았다.

익숙한 길을 걸어 집에 돌아왔다. 도중에 수퍼에 들러 우유와 귤을 샀다. 귤은 밤에 배가 고파지면 먹을 생각이었는데 도착한 자리에서 여남은 알을 홀랑 다 먹어버렸다. 우유는 내일 점심 요리에 쓸 것이다. 그거 하나면 될 줄 알고 샀으나 알고보니 코코넛크림인지를 넣어야 먹을 만한 맛이 되는 것이었던 칠리커리 페이스트에 곁들일 재료다. 우유도 끊어야 하는데. (또 말은 이렇게 하지만 최근 며칠은 고기를 꽤 자주 먹었다.) 밤을 다시 대비하려, 잠시 나갔다 왔다. 빵집에서 30cm 정도 되는 연유(또 우유!) 바게뜨를 샀는데 이 글의 첫 문단을 쓰기 전에 절반을, 첫 문단만 쓴 시점에 남은 절반을 다 먹었다. 이게 무슨 짓이람.

귤을 다 먹고 빵을 사러 나가기 전에는 주운 홀쏘를 시험해 보았고 산 등으로 스탠드를 만들었다. 만들었다곤 해도 얼마 전에 목과 받침을 조립해 둔 것에 등을 달 자리를 마저 붙인 것이 전부다. 등은 아직 붙이지 않았다. 목은 작년 상반기에 주운 스탠드에서 떼어 둔 것이다. 받침은 지난 달에 주운 스탠드에서 떼어 둔 것이다. 목은 검은색 철제, 받짐은 에메럴드색과 흰색의 플라스틱제. 후자는 속에 철판이 들어 있다. 상반기 스탠드의 전선과 하반기 스탠드의 전선/터치스위치는 따로 남겨 두었다. 홀쏘는 돌려는 보았으나 뚫어보지는 못했다. 드릴 배터리가 다 된 탓이다. 출력이 약한 물건이라 어쩌면 아주 얇은 판만 뚫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혹은 대강 봐서는 알 수 없지만 날이 상해서 버려진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드릴은 MDF 판에 1mm 정도 깊이의 흔적만 남기고는 멈추어버렸다.

2022.02.18.(금)

일기 쓰기를 멈춘지 한 달 열흘이 되었네. 제천생활 반년을 결산하는 일기를 덧붙이려고 했는데 아직 쓰지 못했다. 그간은 거의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 스터디 발제문을 쓸 일이 있었지만 그 역시 쓰지 않고 발췌문으로 대신했다. 1월 말에 여기에 짧은 번역문 하나를 올린 게 전부인 것 같다.정말 아무것도 안 썼나. 가물가물하다.

정확히는 무언가를 쓰고 있긴 하다. 진척은 거의 없다. 원래는 작년에, 얼마 전까지만 해도 1월에, 며칠 전까지는 그제쯤 끝내려고 했던 보고서다. 보고할 내용도 마땅찮지만 그보다는 기운이 안 나서 못 쓰고 있다. 마감이 이제 정말 코앞이 되었다. 그제랑 그끄제 한 시간씩 썼고 어제는 컴퓨터를 켜지 않았다. 오늘은 어떻게든 진척을 보려고 카페에 와서 앉았으나 워드프로세서를 열지 않은 채 앉아 있다. 조금 전에는 엠씨더맥스의 노래가 흘러 나왔다. 십여 년 전에 즐겨 듣고 불렀던, 이제는 듣지도 부르지도 않는 노래. 음악 취향이 변한 탓은 아니다.

글만 안 쓴 게 아니라 대체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내고 있다. 하루에 몇 시간씩 애니메이션을 본다거나 하는 걸 빼면 말이다. 친구가 이사를 해서 이것저것 설치를 조금 해 준 것이 전부다. 그 외엔 늘 하던 설거지와 빨래 같은 것들. 그나마도 밥하기가 너무 귀찮아서 포장주문을 종종 했고 덕분에 플라스틱 그릇을 엄청 버렸다. 오늘 밤에는 (보고서 말고) 마감이 하나 있다. 내일은 셰어 총회. 보고서는 아무래도 다음주 초에나 쓰겠지 싶네.

1월부터 짚어도 한 일이 별로 없어서, 올해는 지금까지 10만 원 벌었다. 그 중 5만 원은 작년에 일한 돈이 들어온 것이므로 정확힌 5만 원 벌었다. 오늘 마감을 하면 열흘 뒤쯤 또 5만 원이 들어올 것이다. 3월부터는 혹은 4월부터는 번역서 작업을 시작한다. 계약금 같은 구체적인 사항은 아직 정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계약서를 아직 쓰지 않았다는 것이고 이건 언제든 엎어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 일이 흔치야 않지만). 하지만 내가 할 만한 ― 인문사회철학 어쩌고 하는 분야로 서점 도서목록에 오를 ― 책은 애초에 생계비에 못 미치는 돈만 나온다. 여러 쇄가 팔릴 가능성이 높지 않으므로 매절로 계약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더 나을지도 모르지만 꾸역꾸역 인세 계약을 하고 있다. 얼마 전엔 매절 계약 한 건을 거절했다 (매절이라는 이유만으로 거절한 건 아니지만 나머진 선택의 여지가 있었다면 이건 필요조건 같은 것이어서 여기서 논의가 멈췄다).

쓸모 없는 고집이다. 내가 쓸 수도 있었을, 어쩌면 써야 했을, 적어도 읽고 나서 할 말이 있는 책을 번역한다. 단행본을 기준으로 하자면 쓴 글보다 번역한 글이 분량이 더 많지만 스스로를 번역가로 여기지는 않는다 (단행본, 같은 이상한 기준을 드는 것은 그저 온라인 지면이나 잡지, 도록 같은 걸 더하면 쓴 글이 더 많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한 푼이라도 더 받을 길을 찾아서 이걸 생업처럼 만들고 싶지 않아서, 또 한편으로는 그저 남의 말을 옮겨 넘기고는 내게서 떠나 보내는 일로 만들고 싶지 않아서, 인세를 고집해 보고 있다. 지적재산권이니 저작권이니 하는 개념에, 그리하여 하나의 산물로 반복적으로 돈을 받는 데에 불만이 있지만 동시에 지금 관례 속에서 매절 계약은 이를테면 노동소외 같은 것이기도 하여서 나름대로는 마음이 복잡하다. 어떻든 몇 푼 안 되는, 따지고 보면 적자라고 해도 좋은 일이란 것이 유일한 위안이다.

생각해보니 수요일 스터디에 두꺼운 책을 읽고 그 중 일부를 발제하는 글을 써 가야 한다. 보고서는 언제 쓴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