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4.07.(목)

제천으로 이사 오던 시점에 제천에 대해 갖고 있었던 유일한 구체적인 정보는 영월과 ― 영월군 주천면과 ― 맞닿아 있다는 사실이었다. (여기 사람들과 교류하지 않으므로 지금이라고 딱히 이렇다 할 정보를 갖게 되지도 않았지만.) 그러므로 구체적인 계획도 딱 하나 있었다. 주천에 다녀오기. 주천면에서는 두어 해 전에 ‘한 달 살기’를 했다. 스무닷새쯤 어느 민박집에서 지냈다. 매일 평균 두 시간을 걸었다. 안 걸은 날도 있고 다섯 시간을 걸은 날도 있다. 다섯 시간을 걷지는 못하겠지만 아무튼 주천에 가기, 주천강변에 적당히 앉아 물소리 들으며 하늘 보다 오기. 그것이 유일한 계획이었다.

이사 270일을 넘겨, 드디어 다녀왔다. 여름에는 더워서 겨울에는 추워서 못 가기도 했지만 근처만 걸어도 그럭저럭 괜찮아서 흥이 덜 나기도 했다. 가을에도 가지 않은 것은 아마 그래서. 얼마 전에는 날짜까지 정하고 맘을 먹었는데 하필 비 소식이 있었다. 그날은 버스를 탈 생각으로 일찍 일어나기까지 했던 것 같은데 그렇게 또 미루고 말았다. 일찍 일어나는 것은 대개 무리라 어지간하면 자전거로 갈 것이었다. 자전거는 거의 270일 내내 아파트 자전거 거치대에 묶여만 있다. 거의, 인 것은 근처에서라도 몇 번 탔기 때문이 아니라 처음 한동안은 실내에 두었기 때문이다. 아마 한 번도 풀지 않았다. 봄이 오면 영월에 가겠다며 2월 말에 펌프를 샀는데 아직 바람도 넣지 않았다.

아마 오늘 처음으로 자물쇠를 풀었다. 하지만 이내 채웠다. 그저 자물쇠를 바꾸기 위해서였기 때문이다. 다른 자전거를 타고 다녀왔다. 영월에. 드디어. 자전거는 그제 중고로 산 것이다. B의 집 ― 서울 ― 에 두려고 샀다. 이미 자전거가 있으므로 가격 상한선을 낮게 잡았고, 오로지 그것을 지키기 위해 제천에서 샀다. 다음 서울행 때 버스에 싣고 가야 한다. 3만 원. 물론 중고 자전거는 서울에 훨씬 많지만 그곳엔 사려는 사람도 많으므로 어지간히 부지런하지 않고서는 이런 가격에 나오는 걸 사긴 힘들다. 우연히 1분 전에 알람이 뜬 걸 보고 열어봐도 이미 예약중이라고 떠 있게 마련이다. 그들도 우연히 30초 전에 뜬 알람을 본 거라고 생각하는데 합당하겠지만, 기분대로 말하자면, 분명히 있다. 전화기만 바라보며 매물을 기다리고 올라오자마자 살펴보지도 않고 거래 약속을 잡는 사람이.

자전거를 산 건 3년쯤 만일까. 그 전 것, 그러니까 밖에서 먼지만 맞고 있는 저것도 중고로 샀다. 아마 25만 원. 특별히 좋은 걸 원하지는 않았다. 그저 나쁘지 않은 로드바이크면 됐는데, 내 키에 맞는 것 중 제일 싼 것이 그 가격이었다. 저가형은 ‘표준 체형’에 맞춰서만 나온다. 중앙대 앞에서 샀고 곧장 팔당을 향해 출발했다. 출발하고 나서야 기어와 브레이크에 문제가 있음을 알았다. 자전거는 삐걱대고 나는 길을 잃고 ― 분명 한강을 따라 달렸는데 정신 차려보니 양재천을 따라 서초구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 ― 한 통에 팔당은 가지 못하고 하남까지만 다녀왔다. 서울에서도 자주 타지는 않았다. 서울을 도무지 못 견딜 쯤이 되면 한 번씩 서울을 벗어나는 데 쓰는 것, 최근 몇 년 간의 자전거는 그런 것이었다. 여기는 못 견딜 게 없으므로 쓸 일이 더 없다. 그런데도 굳이 서울에 둘 것을 또 산 건 놀이를 위해서다. 말하자면 데이트 같은 것.

이번 자전거도 기어와 브레이크에 문제가 있다. 하지만 이번엔 판매 글에 미리 적혀 있었다. 낡긴 했지만 이만큼 싼데도 오히려 품질이 낮은 자전거들보다 오래 안 팔리고 있었던 건 그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기어는 직접 조정하면 되고 브레이크도 사둔 것이 있다. (저번 자전거 때문에 기어 고치는 법을 배웠고 브레이크도 사뒀다.) 그러니 괜찮았다. 그래서 샀다. 그런데 30% 정도만 사실이었다. 기어는 안 되던 걸 전혀 안 되지는 않는 선까지만 고쳤다. 선을 갈아야 할 모양이다. 브레이크는 세트를 갖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교체용 패드만 여분이 있었다. 일단은 브레이크와 바퀴 간격을 조금 좁혀서 급한 대로 설 수는 있는 정도로만 해두었다. 선과 브레이크를 사야 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기어는 조금 뻑뻑하지만 아무튼 작동은 하게 고쳤다고 생각했는데 바퀴를 허공에 두고 돌릴 때만 그랬다. 종종 안 된다는 건, 이번에도 역시, 출발한 후에야 알았다.

여기서 주천면소재지까지는 17㎞. 지도 앱의 계산으로 한 시간 이십 분 정도가 걸린다. 집 근처에서 두어 번 꺾어 송학주천로 ― 제천시 송학면과 영월군 주천면을 잇는 도로 ― 에 들어서면 쭉 직진하면 된다. 물론 옆길로 빠지지 않고 큰길을 따라 가면 된다는 것일 뿐 길이 곧은 것은 아니다. 낮은 산들 사이를 구불구불 가는 길이다. 오르막도 내리막도 많다. 급경사는 없지만 나는 조금만 오르막이어도 자전거에서 내려 버리고 만다. 기운이 없기도 하지만 기어를 바꾸어도 못 오를 정도로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쉼없이 패달을 저으며 느리게 가는 건 너무나 지루한 일이므로, 그냥 걷기로 하고 만다. 한 시간 반 가량 걸려서 도착했다. 어처구니 없게도 늘 하던 대로 담배는 챙기면서 마실 건 안 챙겨서 괴롭게 갔다. 물론 수퍼 같은 건 없는 길이다. 주유소를 발견해 반색했지만 매점은 흔적만 있었다. 면사무소 옆 마트에 도착해서야 아이스크림과 이온음료로 목을 축였다.

원래는 자전거를 세워두고 걸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새벽 늦게 잠들었고 오전 느지막히 일어나 뭉그적대기까지 하여 두 시가 지나 출발하였으므로 자전거를 타고 안쪽 동네로 들어갔다. 영월군 무릉도원면 요선암 돌개바위. 이름을 아는 곳들 중에서 제일 좋아한 곳이다. 이름을 모르는 곳을 더 좋아했는데 그건 좀 더 멀어서, 이 정도로 만족하기로 했다. 너럭바위에 한참을 누워 있었다. 일어나서는 바위들을 징검다리 삼아 여기저기 다니며 사진을 몇 장 찍었다. 오래된 디지털 카메라를 가져갔다. 생산된지는 20년이 넘었고 내가 갖고 있은지도 15년은 된 물건이다. 언제부턴가 날이 추우면 자동초점 기능이 말썽을 부려 쓰지 않고 넣어두었다. 수리점 세 군데쯤을 갔는데, 수리점은 모두 따뜻했으므로, 문제 없이 작동했다. 이런저런 검사만으로는 원인을 찾지 못했다. 그들 중 누군가는 밖에 나가서 작동해 봤을까. 그래봐야 밖에서는 검사 장비를 쓸 수 없으니 도리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강을 따라 동네를 조금 돌고 다시 면사무소 부근으로 돌아와 밥을 먹었다. 그 사이 새로 생긴 펜션과 새로 생긴 벤치를 지났다. 밥을 먹고는 카페에 들어갔다. 주천에서 지낸 당시에도 있었지만 가보지 않은 곳이다. 여섯 시 십구 분에 들어갔는데 영업 마감이 여섯 시라고 했다. 전에 종종 갔던 다른 카페로 갔다. 잠시 외출중이라며, 여섯 시 오십 분에 돌아 온다고 적혀 있었다. 결국 그 사이 새로 생긴 카페 하나를 찾아 거기서 쉬었다. 일곱 시까지 영업이라고 적혀 있었지만 일곱 시 십오 분에 나오기까지도 문을 닫을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내가 나오고 나서야 주인인지 직원인지가 청소를 시작하는 듯했다. 안에는 다른 손님이 있었다.

오는 길도 똑같이 17㎞. 속도를 내는 데에도 유지하는 데에도 애초에 관심이 없지만 ― 평지에서는 대개 잠시 페달을 밟아 속력을 높인 후에 그대로 한참 미끄러지고 멈출 때쯤 다시 발을 놀리기를 반복한다 ― 귀갓길에는 유독 세월아 네월아 하는 성격이라 잔뜩 긴장했다. 다리가 지치기도 했고. 가는 길에야 해 지기 전에 도착해야 사진이라도 몇 장 찍는다, 같은 동기가 있지만 집에야 언제 들어가든 딱히 상관 없으니까. 하지만 오늘을 해야 할 일이 있으므로 상관이 있다. 쉬고 싶은 마음이 들어도 세 번 중 한 번 정도만 쉬며 왔다. 속도는 갈 때랑 비슷해서 한 시간 반이 조금 안 되게 걸렸다.

그렇게 말끔하게 끝났으면 좋았을 텐데 실은 한 시간 사십 분이 걸렸다. 의림지 방향이라는 표지판이 보였고, 어 집 앞이네 이 길인가보다, 하며 그리로 들어섰기 때문이다. 짚 앞이라고 칭하긴 하지만 2㎞는 족히 떨어진 곳이다. 게다가 그 길이 의림지까지 직선으로 뻗은 것도 아니었다. 그래도 거리는 1㎞밖에 차이나지 않았다. 다만 오르막이 많았다. 괜히 크게 지쳐서 귀가했다.

요선암에서의 30분 정도를 위해 40㎞ 넘게 자전거를 탔다. 이상한 일이다. 무릉도원면과 주천면의 안쪽 마을을 돈 거리를 빼고 집과 면소재지를 오간 것만 쳐도 35㎞다. 이 길의 대부분은 특별히 볼거리는 없는, 교외의 차도다. 옆으로는 논이나 밭이나 산이 있지만 중간중간 공장이 있고 큰 차들이 다닌다. 종종 ‘혐오시설 반대’나 ‘도둑놈을 잡자’ 같은 플래카드도 있었다. (후자는 아마도 영농조합의 누군가가 횡령을 벌여 걸린 듯했다.) 그다지 유쾌한 길만은 아니다. 어떤 곳에서는 “혐오시설” 건립이 검토되지조차 않고 ― 물론 지금은 서울 도심을 떠올리고 있다 ― 결국 검토당한 이런 곳의 사람들만이 이기심으로 반대를 외치는 이들이 되고 마는 경로 같은 것들을 생각해야 하는 길이다. 혐오시설이라는 것이 축사라면 다른 것도 생각해야 한다. 적어도 직접적으로는 인간과만 관계하는 곳이라 해도, 그곳의 노동자들을 생각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건 평소에 생각해야 하지.

그러므로, 기진맥진했지만 오는 길이 훨씬 좋았다. 가로등 따위는 당연히 없다. 희끄무레한 하늘을 등지고 보이는 검은 산들 ― 산 너머에 읍내든 시내든 뭔가 있는 듯했다 ― 과 인가가 있는 곳에 드문드문 달린 불빛만 보이니까. 커다란 건물들의 그림자도 보이지만 공장인지 농작물 창고인지 알 수 없다. 애초에 그림자이므로 존재 자체가 덜 의식되기도 하고. 검은 것들에 둘러 싸여서는 달과 별을 보며 달렸다. 이런 건 그래도 즐겁지. 그래도, 인 건 그저 자전거 타기를 즐기지 않기 때문이다. 가깝다면 걸었을 것이다. 의림지와 의림뜰만이 가까우므로 그곳에만 다니는 것이다.

문제는 길도 안 보인다는 것. 전조등을 달고 달려서 큰 요철은 보였지만 굵은 모래가 흩어져 있지는 않은지 같은 건 알기 어려웠다. 그런 데서 브레이크를 잘못 잡으면 죽어도 이상하지 않다. 내리막이 많으니까. 한 번도 미끄러지지는 않았다. 그러면 다음 문제는, 전조등으로는 코앞만 보인다는 것. 얼마나 이어지는지를, 끝나기는 하는지를 알지 못한 채 꾸역꾸역 오르막을 올라야 한다는 사소한 절망.

2022.04.06.(수)

오랜만에 맥주를 마시며, 쓴다. 조금 전에 사 온 것이다. 네 캔 만 원, 을 잠깐 고민하다 삼천오백 원짜리 한 캔을 샀다. 네 캔을 사면 기약 없이 냉장고에서 자리만 차지할 테니까. 집을 나섰는데 먼발치서 실랑이 하는 소리가 들렸다. 술에 취해 혀가 굳은 듯한 중노년 남성들. 노래방을 가네 마네 하는 중이었다. 셋. 한 명은 지금 노래방에 갔다가 집에 가면 열두 신데 내일 할 일이 있으니 그냥 파하자고 했다. 한 명은 딱 한 시간만 놀다 가자며 택시를 부르면 된다고 했다. 한 명은 여자 부르지 마, 라고 몇 번이나 말했다. 다들 같은 말을 반복했지만 그가 제일 많이 반복했다.

택시를 부르면 된다는 사람은 아름답게 놀고 가자고도 몇 번 말했다. 한 시간 놀고 택시 타고 얼른 집에 가자, 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택시를 불러 노래방에 가자는 말이었다. 아름답게, 우리끼리 깔끔하게, 놀자는 것인 줄 알았는데 그 역시 아니었다. 여자 부르지 마, 그건 아니지, 하는 말들은 모두 그를 향한 것이었다. 그는 막무가내로 택시를 불렀다. 어디어디 편의점 앞으로 와달라고 했다. 그들이 선 곳은 아파트 후문. 편의점은 바로 옆 건물. 그 건물에는 노래방도 있다. 노래연습장. 그건 아니지, 한 사람이 저기 노래연습장 있잖아, 하니까 그는 연습은 안 되지, 했다.

맥주를 산 것은 독서를 위해서다. 독서를 시작하기 위해서. 낮에는 조금 읽었다. 우선은 집 앞 카페에 갔다. 이곳의 소소한 장점 하나는 카페가 거의 언제나 한산하다는 것. 오늘도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하지만 조용하지도 않았다. 지난여름부터 얼마 전까지 대개 비어 있었던, 그래서 혼자서도 앉고 둘이서도 앉았던 육인용 테이블에 요새는 종종 여섯이 앉아 있다. 거리두기정책이 완화된 후의 일이다. 원래는 구석에 있던 것을 가운데로 옮기기까지 해서, 그런 날이면 카페 어느자리에 앉든 소음에 방해를 받고 만다. 오늘도 그랬다.

조금이나마 더 집중해 보겠다고 전화기도 집에 두고 나간 터라 거의 허공만 보다시피 하며 조금 앉아 있다가 카페를 나왔다. 집을 지나 건너편 저수지를 향했다. 물가 벤치에 앉았다가 누웠다가 하면서 읽었다. 가는 길에는 제천에서의 첫 뱀을 만났다. 뭔가 꿈틀거리길래 커다란 지렁이인가 했는데 작은 뱀이었다. 고왔지만 금세 도망쳐버려 자세히 보지는 못했다. 벤치에는 흙먼지가 쌓여 있었다. 새똥의 흔적도 있었다. 개의치 않고 누웠다, 고 쓰고 싶지만 그런 성정은 못 되어서, 그나마 제일 말끔한 것을 고르고 맨살이 닿는 ― 반팔 티셔츠 차림이었으므로 ― 곳엔 가방을 깔았다. 마침 그곳이 볕이 제일 잘 드는 곳이어서 뜻하지 않게 일광욕을 했다. 하필 그곳이 볕이 제일 잘 드는 곳이어서 종종 맨눈으로 햇살을 받았다.

오래지 않아 책을 덮었다. 물수제비를 뜨려 했는데 납작한 돌을 찾을 수 없었다. 납작한 게 아니더라도 돌을 전혀 찾지 못했다. 나름대로 산책로로 정비해 둔 곳이라 보도블록과 고운 흙과 마른 풀만 있었다. 나뭇가지 하나를 주워 괜히 물을 휘휘 저었다. 그리고는 물에 던져 넣었다. 마르면서 둘둘 말린 나무껍질 하나도 주워 물에 던져 넣었다. 다시 누워 책을 읽기 시작하자 바람이 세차게 불기 시작했다. 손가락으로 잡은 데만 빼고 책장이 계속 넘어갔다. 슬슬 화장실도 가고 싶어져서 미련 없이 귀가했다.

그리고는 뭘 했더라. 책을 읽지는 못했다. 달리 무언가를 한 건 아니니까 카페에서와 비슷했을 것이다. 정신을 차리려 산책을 나가 한참을 걸었다. 마침 가볍게 장도 봐야 해서 논밭으로 가지 않고 인가 사이로 난 크고 작은 길을 걸었다. 지나간 적은 있으나 어디인지는 잘 모르는 골목들을 돌아다녔다. 5분 전쯤 지난 곳을 또 지났을 때, 그러니까 길을 잃었을 때, 전화기를 꺼내 길을 확인했다. 곧장 집을 향했다.

오는 길에는 최근에는 잘 안 다닌 길 하나를 지났다. 몇 달째 비어 있은 ― 정확히는 마른 풀 같은 것들로 덮여 있었던 ― 곳에 울타리가 쳐져 있었다. 아파트가 들어서는 모양이었다. 그 자리에 서 있었던 사유지 경작 금지 표지판은 뽑혀서 옆에 내팽개쳐져 있었다. 인구가 늘 동네는 아닌 것 같은데 아파트는 계속 생긴다. 이곳은 아주 크지는 않다. 560세대쯤. 아주 크지는 않다, 는 건 서울에서 본 광고들에 비교해서이므로 실은 여기 기준으로 어떤지는 알지 못한다. 아파트 단지 몇과 멀지 않은 곳이다. 학교가 있었던가, 학원은 많이 있다. 이 아파트 이름인지 슬로건인지에는 에듀 어쩌고 하는 말이 들어가 있었다.

돌아와서는 배가 고파져 밥을 해 먹었다. 최근에는 냄비밥을 해 먹는다. 전기레인지는 화력을 조절해도 식거나 달아오르는 데 시간이 걸리므로 다소 성가시다. 점심에는 조금 설익은 밥을 먹었다. 이번에는 잘 됐다. 밥을 먹고도 책을 펼 기미가 보이지 않아 편의점에 다녀왔다. 맥주는 마시기 시작했지만 책은 아직이다. 오랜만에 맥주를 마시며, 늘 그렇듯 할 일을 미루며, 썼다.

2022.03.19.(토)

오전에는 셰어 스터디 화상 모임. 무려 “미라클 토요일”(실은 오전 열 시)에 “연구자 네트워킹”인데 생각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신청했다. 첫날이라 운영 방식 안내와 자기 소개 정도만, 하였으나 한 시간 반 가량. 점심은 뭐 먹었더라. 아, 라면 먹었다. 어느 분식집 갔다가 주문이 많이 밀려 있대서 다른 분식집 갔다. 낮에는 카페에서 일했다. 몇 달 내리 놀다시피 하다 이제 막 일을 시작한 참이다. 꾸준히 해야 하지만 아주 바쁘지는 않다. 주말이라고 카페마다 사람들이 들어차 있어서 네 번째로 들어간 곳에서야 겨우 자리를 잡았다. 앞의 셋에도 빈자리가 없지는 않았지만 콘센트를 쓸 수 있는 곳이 없었다.

카페 2층의 계단 옆자리. 난간 대신 유리벽이 서 있는 곳이었다. 격자 형태로 철제 기둥이 있었는데 어디선가 그리고 전기가 흘러드는 모양이었다. 손끝을 대면 의식하지 않고서는 모를 정도였지만 팔꿈치가 스치면 찌릿, 전기가 튀었다. 테이블에 앉으면 팔꿈치 바로 옆으로 기둥이 있었다. 10cm 쯤 테이블을 밀면 됐겠지만 그냥 앉아 있었다. 서너 시간 동안 서너 번 전기를 맞았다.

저녁에는 중고 거래. 유통기한 지난 필름과 고장난 카메라 한 대를 샀다. 정확히 말하자면 배터리가 없어 작동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는 카메라. 작동 여부를 모른다는 말은 고장났다는 말의 완곡한 표현, 으로 여긴다. 그게 마음이 편하기도 하고 정황상 그럴 것이 분명한 경우도 많고.

이것은 아주 이상한 마음이다. 고장난 카메라를 사고 싶다는 마음 말이다. 고칠 수 있다는 확신이 있는 것도, 고치면 쓸데가 있는 것도 아닌데 그냥 그렇다. 필름값을 빼면, 고장난 카메라를 만오천 원쯤 주고 산 셈이다. 전자식이라 직접 고칠 수 있을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고 수리를 맡기면 결국 멀쩡한 걸 살 만한 돈을 치르게 될 것임을 알면서도 그랬다. 비슷한 성능에 가격은 같은 멀쩡한 매물도, 심지어는 아주 싸게 나와서 되팔면 돈을 남길 수 있을 만한 매물도 있었지만 마음이 동하지 않았다. (어느쪽이든 실제로 사용할 일은 없는 모델들이다. 자동카메라에는 관심이 없다.)

사이즈가 맞는 드라이버가 없어 잡화점에도 다녀왔다. 카메라 값과 드라이버 값을 합치면 만팔천 원. 그리고 분해 시작. 수리설명서는 찾지 못했다. 나사를 다 풀어도 몸통이 분리되지 않았다. 이리저리 밀고 당기고 한 끝에 겨우 분해법을 알아냈다. 분해를 하고 나서야. 억지로 여느라 몇 군데를 부러뜨렸다는 뜻이다. 결과적으로 수리에 성공했다면 원통했겠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결국 고치지는 못했다.

최근에 즉석카메라를 분해해 수리했지만 완전분해는 하지 않았고 이전에 완전분해해 고친 카메라는 순 기계식이었다. 이리저리 전선이 얽힌 걸 이만큼 연 건 처음이거나 아주 오랜만이다. 그리하여 잊고 있었던 사실을 수리하던 중에 떠올렸다. 플래시가 있는 카메라는 함부로 열면 안 된다는 사실. 배터리를 분리해도 콘덴서에 고압 전기가 충전되어 있어서 감전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떠올린 직후, 과장 없이 1초쯤 후, 손가락이 콘덴서 다리에 닿았다. 카페에서랑은 비교도 안 되게 강한 전기가 흘렀다. 오른손 약지에 작은 물집이 생겼다. 절연장갑은 따로 없어서 고무장갑을 꼈다. 며칠 전 청소로 너무 더러워진 한 짝은 버린지라 오른손에만. 결국 왼손도 한 번 감전. 여긴 물집은 안 생겼다. 한참 후에야 플래시 접점을 찾아 방전시켜 가며 작업했는데 그 후로는 한 번도 손이 닿지 않았다.

문제가 있는 위치를 대강은 알아냈다. 모퉁이의 작은 기판. 다이오드니 콘덴서니가 탄 것 같지는 않았다. 회로가 끊어졌거나 합선되는 듯했는데 얇은 플라스틱 필름형 기판이라 알아보기도 어려웠고 애초에 정확한 위치를 안들 고칠 도리도 없었다. 필름을 휘었다 폈다 하던 중에 몇 번인가 잠깐 정상작동 상태가 되긴 했으나 딱 거기까지.

나름대로 귀엽게 생긴 모델이라 장식품으로 세워 두었다. 오천 원이나 만 원쯤에 내어놓으면 장식품으로 팔릴지도 모르지만 아마 그러지 않을 것이다. 고친 즉석카메라를 이만 원에 되팔면 즉석카메라 값 오천 원, 이것 값 만오천 원을 벌충할 수 있지만 아마 그러지 않을 것이다. 무언가 파는 건 아주 귀찮은 일이다.

2022.03.12.(토)

마우스를 수리했다. 잡화점에서 오천 원인가 주고 산 것이다. 이 마우스 전에는 인터넷 쇼핑몰에서 만 얼마를 주고 산 것을 잠시 썼다. 블루투스 마우스였는데, 1분쯤 쓰지 않으면 대기 모드에 들어가도록 설계된 것이었다. 1분은 정말 짧아서 마우스를 손에 쥔 채로도 흘려 보낼 수 있는 시간인데, 다시 움직일 때 대기 모드 해제에 드는 몇 초의 시간은 너무도 길었다. 오래지 않아 적응을 포기하고 이것으로 바꾸었다. 저 마우스는 서랍 속에 있을 것이다.

이것은 USB 수신기를 꽂아 쓰는 무선 마우스다. 수신기는 늘 꽂아 두는데 얼마 전에 랩탑을 어디 넣다가였다 빼다가였나 무언가 걸리는데도 생각 없이 힘을 주다 망가졌다. 랩탑의 USB 포트 둘 중 하나가 고장난 상태라 USB 메모리라도 쓰려면 마우스 수신기를 뽑아야 하는 것이 늘 불편했던 차라 새로 살까 했는데 블루투스 타입은 (대기 모드 진입까지의 시간이 좀 더 길고 대기 모드 해제가 좀 더 빠른 것 역시도) 답답해서 싫었다. USB-C 타입 수신기를 쓰는 것도 있지만 늘 꽂아둘 수 있을 만한 형태의 것은 찾지 못했다.

그래서 수리했다. 같은 모델을 하나 더 가지고 있었다. 휠이 고장나 쓰지는 않으면서도 버리지도 않고 둔 것이다. 이번에 망가진 것에서 휠 센서를 떼어 나머지에 붙였다. 잘 작동한다. 나중을 대비해 버튼 스위치들도 떼어 두었다. 광센서도 떼어둘까 하다 그게 고장날 정도 되면 새로 사지 싶어 말았다. 버튼이나 휠이 고장나 못 쓰게 된 적은 많아도 광센서가 고장난 적은 없다. 다리가 많아 귀찮기도 했다.

수리를 위해서는 납땜 인두가 필요했다. 몇 년 전에 6,000원인가를 주고 산 것이 있지만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지 오래다. 이유는 알아내지 못했다. 또 비슷한 수준의 것을 새로 사려고 했는데 다른 것을 찾아 상자를 뒤지다 납땜 인두를 찾았다. 이것은 아마도 1999년의 물건. 라디오 조립 대회에 나가느라 어느 문구점에서 3,000원을 주고 샀다. 친구들이 쓰던 일자형의 것은 5,000원이었나. 이건 손잡이가 총 모양이다. 모양이 아니라 가격을 보고 골랐다.

당시 대회에서는 장려상인가를 받았다. 소리는 잘 났으니, 아마도 납땜의 질이나 제출 순서 같은 것이 등수를 갈랐을 것이다. 대회에서는 설명서를 볼 수 없다고 해서 부품의 위치를 전부 외웠다. 설명서를 보고 해도 되는 대회였다. 외우는 것은 어렵지 않았으나 저항의 띠 색깔을 구분하는 것이 어려웠다. 갈흑적금, 같은 식이었고 내 눈은 갈색과 흑색과 적색을 잘 구분하지 못한다. 다행히 다 알아본 모양이지만. 몇 년 뒤에 한 번 더 대회를 나갔다. 이번에는 설명서를 외우지 않았다. 소리가 나지도 않았다. 어디서 틀렸는지는 모른다.

망가진 마우스에서 센서를 떼는 데엔 땜납 제거기를 썼다. 피스톤을 누른 후 버튼을 누르면 스프링의 힘으로 피스톤이 뽑히면서 진공 상태를 만들어 납을 흡입하는 구조다. 납을 녹인 후 흡입기 입구를 갖다 대고 버튼을 누른다. 6,000원짜리 인두와 함께 3,000원쯤 주고 샀다. 첫 번째 대회에 나갈 때 다른 이가 갖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가 아니었다면 존재를 알지 못했을 것이다. 당시엔 얼마였을까, 갖고 싶었지만 사거나 사달라고 하지는 않았다. 대회에서 부품을 하나라도 잘못 땜했다면 그걸로 끝이었다. 아니, 끝이라는 건 좀 과장이다. 기판이 복잡하지는 않으므로 꼼수를 써서 옆으로 흘리거나 쳐서 떨어뜨리거나 해볼 수는 있다. 끝이 될 가능성이 낮지는 않지만.

하는 김에 휠 버튼이 되다 말다 하는 유선 마우스도 열었다. 무선 마우스에서 뗀 스위치를 붙여 볼 수 있을까 했는데 사이즈가 영 안 맞아서 포기했다.

2022.03.10-11.(목-금)

곧 자정이다. 한 시간 조금 못 되게 걷고 들어온 참이다. 샤워를 하고 나와서는 돌연 집을 나섰다. 두 시간 정도 걸을까 했는데 생각 없이 아무데로 꺾었더니 금세 집을 향하는 길에 서 있게 되었다. 낮에는 의림지에 다녀왔다. 한 시간 반 좀 넘게 걸었고 흑백 필름을 넣어둔 카메라로 사진을 일곱 장 찍었다.

필름을 다 쓰고 나면 카메라를 팔 것이다. 원래 쓰던 것이 고장 나서 같은 모델을 중고로 샀는데 같은 고장이 났다, 고 생각했으나 배터리 문제였다. 비싼 것을 쓰니 제대로 작동했다. 원래 쓰던 것은 배터리를 갈아도 이따금 문제가 생기지만 심각하지는 않다. 이것을 팔면 필름을 몇 롤 살 수 있을 것이다.

내일 아침에는 에어프라이어를 팔기로 되어 있다. 원래는 오늘 오후 약속이었는데 상대의 사정으로 밀렸다. 2019년 초에 샀을까, 몇 번 쓰지 않았다. 코팅은 상했지만. 부엌이 좁아서 한 구짜리 전기레인지를 쓰다 국을 끓이는 동안 생선이라도 구우려고 에어프라이어를 샀는데 그렇게 잘 챙겨 먹지 않았다. 여기에 와서는 한 번도 쓰지 않았다. 조금은 더 부지런히 해 먹고 있으므로 전기레인지를 두 구짜리로 바꿀까 했다가 엉성하게 공사해 둔 배선이 못 미더워 휴대용 가스레인지를 샀다. 역시 자주 쓰지는 않는다.

낮의 산책은 예정에 없던 일이었다. 두 시인 줄 알았던 스터디 시작 시각이 실은 다섯 시였음을 두 시를 3분 앞두고 깨달았다. 한동안 밍기적거리다 역시 돌연 나섰다. 다녀와서는 곧 스터디 시작. 두 시간 정도 했으려나. 두 주 전이었던 저번 스터디에서 남긴 분량을 마쳤다. 이렇게 밀린 데에는 당시에 발제문을 제대로 못 쓴 내 탓도 있는데, 책을 덜 읽어서 이해가 안 되는 줄 알았으나 그런 건 아니었다. 결국 엉성한 발제문을 읽었다.

간밤에 발제문 마지막 몇 문장을 다 쓰지 않고 누웠다. 얼른 자고 일찍 일어나 마무리할 생각이었으나 일곱 시쯤에야 겨우 잠들었다. 점심께에 일어나 밥을 안치고 씻고 국을 데우고 배를 채우고 급히 썼다. 그리고는 깨달은 것이었다, 세 시간이 남았음을. 그러고보니 낮잠을 잘 수도 있었을 텐데 무거운 몸으로 산책을 갔네.

스터디를 마치고는 오디오를 만들었다. 이렇게 말하면 거창하지만 카오디오의 선 몇 개를 끊어 전원과 스피커를 연결한 것이 전부다. 진짜 ‘만들기’에 해당하는 부분은 시작하지 않았다. 케이스를 만들 것이다. 카오디오는 어제 근처 동네에 가서 만 원을 주고 사왔다. 지난주였나, 2만 원에 올라왔던 것이 그저께쯤 만 원으로 떨어졌다. 어제는 도서관엘 갔고 마침 판매 위치가 그 근처 ― 편도 도보 20분 ― 라 사기로 했다.

생산 시기는 2008년. 14년이라는 시간적 거리와 자동차라는 공간의 특수성이 반영된, 현란한 디자인. VU 미터 네 개가 달려 있다. 좋아하는 물건이다. 신기하게도 조작부를 통째로 뗄 수 있는데 설명서에 따르면 도난 방지를 위한 기능이다. 시기를 생각하면 한국 시장을 고려한 건 아닐 테지. 일본제이고 웹에서 한국어, 영어, 아랍어 설명서를 찾았다.

지금은 t.A.T.u.를 듣고 있다. 카오디오에는 “2010.4.25. ost… 인기가요 103″이라고 적혀 있는 CD-R이 들어 있었다. 사람 이름이지 싶은 세 글자가 더 적혀 있는데 가수 이름인지 CD 주인 이름인지 모르겠다. 그걸 빼고 책장에서 2003년쯤 구웠을 법한 CD를 가져다 넣었다. t.A.T.u. 1집이 언제 나왔더라, 당시에 산 CD 역시 아직 가지고 있다. 동봉돼 있던 포스터는 없다.

어제 저녁에는 현관문 손잡이도 샀다. 훔쳐 갈 거라곤 책밖에 없는 집이고 이 아파트가 도둑에게 큰 매력이 있을 것 같진 않지만 서울에 가면 며칠씩 집을 비우기도 하니까. 전자 번호키가 설치돼 있고 일반 손잡이의 열쇠는 받지 않았다. 집 근처에 열쇠 두 개를 포함한 중고 물품이 올라왔길래 다녀왔다. 도보 5분 거리. 열쇠는 세 개가 있었다.

밤에는 USB 미니 스탠드를 누군가에게 주었다. 서울 살 때 주워다 이제껏 쓴 물건이다. 외장 어댑터를 쓰도록 만든 물건이지만 어댑터는 없었다. 5V 전원이라 분해해 USB 케이블을 납땜했다. 서울에선 딱히 쓸 일이 없었고, 여기선 머리맡에 두고 이따금 썼다. 얼마 전에 이동식 등을 하나 샀으므로 ― 역시 주운 물건들로 조립한 스탠드에 테이프로 붙여 두었다, 임시변통 ― 처분했다.

그는 전날 새벽 두 시에 사과와 함께 문의를 해왔고 어제 저녁에 오기로 했다. 밤이 되어도 오지 않아 메시지를 보내니 2분 안에 온다고 했다. 길을 못 찾아 늦어졌다며, 7분쯤 후에 도착했다. 새로 사도 오천 원이면 될 텐데 새벽에 황급히 메시지를 보내네, 여유가 없으신가 하고 거래내역을 보니 골프채가 있었다. 그냥 알뜰한 사람인가 했는데 2분 거리를 차를 몰고 왔다. 사람이란 어렵지.

그제 낮엔 몇 년 전에 사서는 쓰지 않고 방치해 유통기한이 2년이나 지나버린 폴리우레탄폼 스프레이를 올렸고 어제 아침에 누군가 가져갔다. 아침에 오겠다길래 일어날 자신이 없어 아파트 현관에 두고 잤으므로 사람은 보지 못했다. 그가 메시지를 보내자 앱에서 ‘다섯 번 이상 나눔을 받은 사람입니다’였나 하는 경고가 떴다. 에어프라이어를 사기로 한 사람의 거래내역에는 볶아먹을 메뚜기를 산다는 게시물이 있었다.

어제는 종종 대선을 생각했다. 그제 밤, 윤석열이 당선될 조짐이 조금씩 보이자 사람들은 서로에게 죽지 말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선거 직전에 본 글 하나를 떠올렸다. (이 글을 인용하며 그 말을 한 사람도 있었고.) 선거 때마다 반복되는 깊은 좌절들을 생각했다. 일부는 누가 당선되느냐에 따라 곧장 달라질 어떤 삶들로 인한, 또 일부는 선거가 어떻게 되든 달라지지 않거나 나빠지기만 할 원칙들 혹은 방향들로 인한 좌절들을.

기본소득당에 대해서는 실제로 잘 모르긴 하지만, 투표소 앞에서 당황한 탓에 잠시 잊었는데, 기본소득당을 뽑지 않는 것은 정해져 있는 일이었다는 걸 뒤늦게 떠올렸다. 잘 모르는 가운데 아는 하나는 기본소득당이 지난 총선 때 민주당의 위성정당을 경유해 의석을 확보했다는 사실이다. 역시나 잘은 모르지만 용혜인 의원은 중요한 일들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후자의 좌절을 한층 더 깊게 만든다는 것은 분명히 알고 있다. 내가 정의당을 마뜩잖아 하는 이유들과 비슷한 방식으로, 그러나 아마도 더 강하게.

선거에 간절할 적이 있었던가, 도 생각했다. 한 번 있었다. 나는 참여할 일이 없었던, 17대 대선 한나라당 경선의 일이다. 이명박과 박근혜가 맞붙었다. 박근혜가 되기를 바랐다. 둘 다 사람들을 괴롭힐 것은 분명했다. 이명박은 4대강 사업을 공약으로 걸었다. 사람의 일이라면 사람이 책임지겠지만 강은? 박근혜가 차악이리라고 여겼다. 이명박이 이겼다.

대선에서도 이명박은 압도적으로 이겼다. 민주당 정동영 26.14%, 무소속 이회창 15.07%, 창조한국당 문국현 5.82%, 민주노동당 권영길 3.01%, 그리고 한나라당 이명박 48.67%. 당시 나는 한국사회당의 당원이었다. 개표 결과가 발표되고 당원 게시판에 글 하나가 올라왔다. 사죄의 글. 이명박을 막고 싶었던 이들 사이에서 정동영과 이명박이 박빙이리라는 예측이 돌았던 모양이다. 그 말에 그만 정동영에게 표를 주었음을 고백하는 글이었다. 누구의 글이었는지, 당시의 내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는 가물가물하다. 지금으로서는 그의 과한 열정이 안타까울 뿐이다. 이명박을 막고 싶었던 마음과 당에 진심이었던 마음, 어느쪽이든. 당시 한국사회당 금민의 득표율은 0.07%. 18,223표.

당적은 사회당이 진보신당에 흡수통합된 직후까지 유지했다. 정당정치에 관심이 없으므로 이만하면 되었다 싶기도 했고, 당시 진보신당에서 어떤 사건을 제대로 처리하고 있지 않은 데에 불만이 있기도 했다. 탈당원에는 후자의 이유만 적었을 것이다. 주위에는 대개 전자의 이유를 말했다. 사회당 내에서 흡수통합을 두고 논쟁이 벌어졌을 때에는 당원 게시판에 찬성 의견을 밝혔다. 당 대 당 통합이었다면 달랐을까, 흡수통합을 마다 않는 것은 일종의 희생이라고 여겼다. 가장 낮은 곳을 향하기로 한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는 식의 문장을 썼다.

흡수통합안이 가결된 날의 당대회에는 불참했다. 늦잠을 잤던 것 같은데. 집이 아니라 농성장에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후자라 해도, 농성장 사정이 급박해서 가지 못한 것은 아마 아니다. 이후의 일은 잘 모른다. 그다지 희생적이지는 않았던 것 같다. ‘활동가’로 분류될 법한 사람들을 기준으로 하면 좌파로서는 국내 최대 정파라고 했다. 그러나 지지세력은 많지 않았고 흡수통합이라는 형식상 진보신당을 장악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는데, 아마도 꽤 그랬던 모양이다. 종종 비난의 말을 들었다. 그들 중 일부가 ― 극소수인지 대다수인지 그 사이 어디인지는 모른다 ― 가 그곳을 나와 기본소득당을 만들었다, 고 했다. 옛 친구들에게 입당 요청을 받았으나 하지 않았다. 앞으론 당적을 두지 않기로 했다, 고 말했다. 사실이다.

이번 선거에서 정의당 심상정은 2.37%, 803,358표를 받았다. 진보당 김재연은 0.11% 37,366표, 기본소득당 오준호는 0.05% 18,105표. 노동당 이백윤은 0.02%. 9,176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