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익 파는 사람

찬 바람이 매섭게 쏟아지던 날이었다.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 둔 거리, 목 좋은 자리에 앉은 프랜차이즈 빵집은 대목 장사에 한창 열을 올리고 있었다. 비싸지도 싸지도 않은, 그래서 더 달콤한 케익을 길가에 늘어 두고 길가는 사람들을 붙갑고 있었다. 초코 케익과 치즈 케익, 달아 보였지만 추운 날씨 탓에 사람들은 쉽게 잡히지 않았다.
늘어 놓은 케익의 뒤로 난로가 두 개, 그 사이에 사람이 하나. 점퍼로 된 빵집 유니폼 위에 앞치마를 걸치고 머리에는 캐릭터 털모자를 쓴 사람은 추운 바람 사이로 손을 불어가며 애처로이 외쳤다. 치즈 케익 사천원, 초코 케익 오천원, 맛 보시고 가세요. 아무리 외쳐도 시식용 케익은 줄어들 키미를 보이지 않았다. 하나 사시면 브로마이드, 두 개 사시면 커피 한 잔을 드립니다. 따뜻할 커피에도 사람들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의 뒤로는 굵은 기둥, 양 옆으로는 통유리창. 따뜻한 유리 너머의 공간에는 그를 고용한 사람 또한 일하고 있을 것이다. 그는 연신 고개를 돌리고 허리를 굽혀 유리 너머를 살폈다. 잠시 쉬고 싶었을까, 몇 번을 그렇게 살피면서도 그는 일을 멈추지 못했다. 초코가 달콤한 시간, 치즈가 부드러운 시간, 케익에는 그럴싸한 이름이 붙었지만 그저 추위가 매서울 뿐인 시간은 쉽사리 흘러주지조차 않았다.
시끄러운 한 무리가 시식용 케익을 집어 들었다. 목소리가 큰 남자가 일행을 불러 세워 굳이 한 입씩을 먹였다. 그는 아마 무심결에 말했을 것이다, 너무도 반가운 나머지 그랬을 것이다, 많이 드세요, 하고 그는 말했다. 떨리는 그의 목소리에 시끄러운 무리는 더 크게 웃어 젖혔다. 웃음에 긴장이 풀린 다리로 그는 주저 앉아 버렸다.
앉아서 그는 외치기 시작했다. 초코가 달콤한 시간, 치즈가 부드러운 시간, 초코 케익 오천원, 치즈 케익 사천원, 맛 보시고 가세요, 하나 사면 브로마이드, 두 개 사면 커피 한 잔을 드립니다. 차위는 매섭고 사람들은 바쁜 시간은 그래도 쉽사리 흘러 주지 않았다. 두 개의 난로 사이에 쪼그려 앉은 그의 머리 위로 시간이 더디게 흘러갔다.

내가 오마이뉴스를 보지 않는 이유

내 즐겨찾기 목록에는 오마이뉴스가 끼어있는데, 정작 오마이뉴스를 보는 일은 없다. 기껏해야, 그 어디에도 보도되지 않는 사건을 오마이뉴스만이 보도했을 때, 제목 정도만을 봐두는 정도다. 오마이뉴스를 보지 않는 데에는 두 가지 정도의 이유가 있는데, 하나는 전혀 검열되지 않는 광고들이고-온갖 기업들의 광고가 실리는데, 불쾌감을 주는 상품에 대한 광고도 종종 오른다-, 또 하나는 기사의 질이다.
조금 전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가 누른 링크가 마침 오마이뉴스 기사였는데, 화면 한켠에서 이런 기사 제목을 발견했다.

돈·여자·집도 없이 서른, 두렵구나

기사 내용은 역시나 읽지 않았다. 아마도, ’88만원 세대’ 못지않게 절망 속에서 허덕이는 삼십대의 일상을 다룬 글일 것이고, 통상적인 선에서 볼 때 나쁘지 않은 글을 것이다. 오마이뉴스는 그런 정도의 매체다. 거기까지다. 내가 아는 상당수의 여성주의자들은 오마이뉴스를 보지 않는데, 비슷한 이유에서다.

돈과 집, 그리고 ‘여자’를 어떻게 한 번에 묶을 수 있을까. 애인이나 부인, 혹은 가족이 아니라 어떻게 ‘여자’라는 이름으로 하나의 항목을 만들 수 있었을까.

혹시나 싶어 댓글들을 봤는데, 독자들의 비판이라곤 기껏해야, 돈여자집 다 갖춘 서른도 있는데 굳이 이런 사람 찾아다 기사를 싣는 이유가 뭐냐, 는 정도더라.

악플 작렬

이럴 수가. ‘루저 발언’ 논란에 대한 칼럼(새 창)에, 그 어떤 사안에 대해서보다 적극적이고 많은 악플들이 달렸다.
물론 ‘쉰 즈음에’라는 한 사람의 노력이긴 하지만…

프로메테우스 홈페이지에 바로 댓글을 달기엔 좀 그래서 여기에.

* 사람들은 정말로 ‘루저 발언’이 일반 남성의 인권을 갉아 먹는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이것에 대한 이해가 되기 전에는 더 이상의 글을 쓸 수 없겠다. 물론 넓은 의미에서의 인권이 개개인의 자존감을 포함하는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라면 인권 문제가 된다. 하지만 그것까지를 포함하려면, 모든 종류의 평가 발언이 인권의 문제가 된다.

* “넌 나이도
어린 녀석이 뭘 안다고 나서냐?”고 누가 물으면 화내지 않는다. 다만 그 사람을 피하겠지. 그 사람과의 대화가 불가피한 상황이라면 조목조목 따질 수는 있겠다. “나이밖에 아무 것도 없는 사람이 뭘 안다고 나서냐?”로 시작해야겠지.

* “패자는 말이 없다”는 것은 패자에게는 발언권이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장애인들은 말이 없다. 수없이 외치고 울부짖어도, 그들에게 발언권은 없기 때문에 그 이야기는 어디에도 가 닿지 못한다. 내가 그들에 관한 기사를 쓰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도. 패자에게는 발언권이 없으므로. 하지만 누구에게나 발언권은 있어야 하므로.

* ‘루저’들에게 발언권은 차고 넘친다.

* 남성의 경우, 모욕적인 발언을 공중파에서도 왕왕 해왔다. 글에도 실었듯, “못 생긴 여자는 자기 관리 못하는 것 같다”는 식의 발언은 수도 없이 반복되고 있고, 다른 예를 찾으라고 해도 하루에 수십 개씩은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장담한다.

* 인권 문제가 아니라고도 하지 않았다.

* 저신장 장애인에 대해서는 이 글을 쓰면서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반성해야겠다. (이 문장을 마지막에 넣는 것은, 자기 방어부터 하고 마지막에 인사치레로 반성을 하기 위해서는 아니다.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이기 때문이다.) ‘왜소증 협회에서도 성명을 냈다’는 글을 어디선가 보고 옮겨 오려고 찾아 봤는데, 꽤 오랜 시간이 들었다. 몇 군데인가 보도되긴 했지만, 거기까지다. 발언권이 없다는 것은 이런 종류의 것이다. 성명 보기(새 창)

쉰 즈음에… 2009.11.16 10:14
마지막으로…
소위 사회주의를 신봉하는 기자 같은데 여성을 비하하면 남성편, 남성
을 비하하면
여성편, 이런식으로 하실라나?
이리저리 왔다갔다 평등을 구현하시려는게 사회주의신가?
아주 오래전에 보았던 똘이장군이란 만화영화가
생각나는군…
지금에 와선 참 얼토당토않았던 영화였지않나 싶었는데 그것도
아닌가보네…
쉰 즈음에… 2009.11.16 10:07
아니 그리고 무슨 기자가 능력이 그리 대단하길래 정치 경제 문화까지
다 섭렵을 해서 글을
쓰시낭…
혹시 다른 기자 글에 반대성 글만 편집해서 쓰는건 아니신지???
쉰 즈음에… 2009.11.16 10:00
그런데 점점 열받는게 생각하는 신문에 왜 이리 생각없는 기자가
칼럼까지 쓰시나?

칼럼 쓸
정도의 연륜과 경륜이 된다면 내 찾아가서 엎드리고
사죄하리오…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생각과 다른 생각을 하는건 이해가

가겠는데 생각하는 기자는 아닌듯 하군요…

쉰 즈음에… 2009.11.16 09:51
그냥 지나치기 미안해서 한가지만 물어봐두 될까요?

내가 기자님께 공개적인 자리에서 “넌 나이도
어린 녀석이 뭘 안다고
나서냐?”라고 하면 기자님께서는 화를 내실까요? 참으실까요?

자신이 살아온 길을 되짚어 보시고 좋은
답변해주시길 바랍니다…

쉰 즈음에… 2009.11.16 09:45
울 딸아이가 놀랍게도 초등학교 6학년에 벌써 165를 훌쩍 넘어버렸다..
부모가 요즘 사회면을
장식하는 루저인데도 이 녀석이 벌써 제 부모
고등학생때 키를 훌쩍 넘어서버린것이다..
그럼 한 10년정도 지나서 울 딸아이가
180정도는 될것 같은데 그때
가서는 200 밑으로는 유저가 될려나?
하긴 여기서 더 안자랄수도 있으니 거두절미하고 기자님께서
쓰신
여러 기사들을 보니 좋은 내용들이 많고 특히 인권에 관련된 글들이
가슴에 새록새록 새겨질 정도로 옳은 소리들만 쓰셨던데 180이
안된
루저들의 인권은 남자라는 이유로 무시당해도 좋은지??
게다가 진정한 패배자는 말이 없어야 한다는 주의인가본데 그럼

장애인들께서는 패배자라서 일반인들보다 말씀들이 적으신가요???
소위 기자라면 공인인데 글 한줄 한줄 쓰실때도 조금은 조심조심
쓰시
실 바랍니다..
내가 조용히 있는데 니들이 뭣이 억울하다고 떠드냐라고 염장질이나
하지 마시길…

과연 그럴까요? 2009.11.16 07:06
밑에분 말씀
‘제딴에는 영어로 세련되어보이고 싶어서 선택한 표현인 듯한데..’
맞는 말이다.
loser를 좀더 정확히 번역하자면 승부에서 진 패배자라는 의미보다는 인생에서 낙오된 ‘실패자’를 말한다. 하지만 말이좋아서 실패자이지 실상
미국에서는 웬만해서 사람한테 쓰는 말이 아니다..굉장히 심각한 모욕이기 때문이다. 뒷골목 쓰레기통에서 먹을거나 찾고다니면서 의미없이 사는
인간들을 말한다고나 할까.. 우리나라 속된말로 표현하면 ‘인간 쓰레기’와 가장 가까운 표현이다
문제는 공중파였다는 것도 문제이지만, 세계
각국의 여인들을 모아놓고 우리나라 문화는 이정도 수준이다..라는 천박함을 잘났다는 듯이 보여줬다는 것이다. 중점을 여기에 두어야 한다. 그
외국인들이 얼마나 놀라고 충격을 받았을까..특히 미국이나 영어권 사람들이 인간쓰레기라는 그 루저 발언을 들었을 때 얼마나 황당했을까..방송상
웃고는 있지만 대한민국에 대하여 굉장한 이질감을 느꼈을 것이다. 180이하 남자는 인생 실패자라니..쯧쯧
뭐 그정도 심각한 의미인지 모르고
내뱉은 말이겠지만 결론적으로는 국가적 망신이요, 남녀간의 불화만 조장시킨 꼴이 되었다.
그리고 기자님 방송심의규정 21조 3항이 ‘방송은
정신적·신체적 차이를 조롱의 대상으로 삼아선 아니되고, 부정적·열등한 대상으로 다뤄선 안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루저녀 논리대로 하면 외모가
중요한 이시대에 피부색도 경쟁력이라고 생각하므로 흑인은 루저다라고 하는 것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습니다. 오버하는게 아니라 인간 신체차이를
이분법으로 나누어 모욕을 주는 행위는 인종차별과 다르지 않습니다. 키? 무슨 노력하면 되는 것 마냥 되는 거 같이 보이는데. 피부색깔처럼
선천적으로 유전자에 의해 대부분 좌우됩니다. 다르지 않아요. 그리고 여자를 외모로 판단해놓고 이제와서 찌질이 처럼 난리들을 치는가가 주된
내용인것 같은데, 언제 방송에서 시청자들을 대상으로 남성이 여성외모를 가지고 이렇게 모욕을 준적이 있었는지요? c컵 이하는 여자도 아니다..뭐
못생긴 여자는 패배자다..뭐 이렇게까지는 아니더라도요. 그냥 여자는 예쁜게 좋다..몸매가 좋은 여자가 좋다..이정도 말고는 저는 공중파방송에서
여자의 열등한 외모가지고 비하하는 발언은 본적이 없는데요
술집에서 동성 친구들끼리 수다 떠는 것과 수백만 국민앞에서 내뱉는 말이 같아선
안됩니다.
그리고 기자님, 밑에분 말씀처럼 성인군자인척 하시는건지 진짜 별상관없는지는 잘 모르겠지만,(아마도 별 상관없으신거겠죠) 모든
사람들이 다 기자님같이 관대하다고 생각하시면 안됩니다. 면전에서 욕을 해도 보살처럼 웃을 수 있는 사람이 있는 반면, 보통사람들은 모욕을 주면
화를 내는 것이 당연합니다. 또한 162cm면 장애인은 아니시네요. 기자님 다른글을 보니 장애인관련해서 기사를 많이 쓰셨던데, 기자님보다 훨씬
작은 왜소증 환자 장애인들도 기자님같이 생각할까요? 가뜩이나 장애에 대한 피해의식이 있는 상황에서 실패자라는 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어떨까요?
기자님처럼 쿨하게 넘어가면 좋겠지만, 그게 그렇게 안되죠. 루저녀도 이런부분까지 염두하고 내뱉은 말은 아니겠지만 결과가 그렇죠. 기자님은
다른사람의 입장을 생각해보고 공감하는 것을 배우셔야 할 것 같습니다. 만약 그들의 입장도 헤아렸다면 이글처럼 쓰지 않으셨겠죠. 키작은 남성들과
장애우들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하지만, 너무 심각한 마녀사냥과 인권침해는 자제해야된다..이렇게 다른 기사들처럼 쓰는게 맞는겁니다.
다른신문, 생각하는 신문 – 뭐 다르게 생각하는건가? 다르게 생각하는 신문이라 이렇게 쓴건가요? 사냥, 효과만점이니, 급했다느니 뭐니 마치
키작은 남자들을 아예 키도작은데 엄청 찌질하고 속좁은 찐따처럼 묘사했군요
결국은 고질적인 사회구조적 문제를 살피고 어째서 이렇게
짧은시간안에 전 국민적으로 큰 사건이 되었는지, 인과관계는 무엇인지, 앞으로 이러한 일이 재발되지 않기 위해선 어떤 의식개혁 또는 무엇이
필요한지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합니다. 이러한 다양한 시각에서 바라보지 않고 오직 남녀간의 감정대립이나 주도권싸움으로 일축해 버리는 기자님의
안목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귀족 루저 2009.11.16 02:33
아저씨.
그런 얘기를 저희들끼리 술 자리에서나 했음 됐죠.
왠 남자 하나가 방송 나가서
얼굴이 송혜교 보다 못하면 오크니까 상황 종료 따위 말을 했으면 송혜교보다 못한 얼굴을 한 여자들은 가만히 있었을 것 같습디까. 어디서 되도
않는 물타기 발언 좀 하지 마슈.
루저 2009.11.15 23:59
최초의 평가라고요? 천만에요. 이미 아이돌 시대에 들어섰을 때부터 양성을 외모로 평가하는 경우는 셀 수
없이 많았고 많은 사람이 힘들어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충격적인 일은 되도록 일어나지 않았죠. 아무도 시청자를 상대로 막말은 한 적은
없었으니까요. 이것은 최소한의 예의였고 경계였습니다. 이번이 처음인 것은 한나라의 수준을 평가하는 기준에까지 들어가는 공중파에서 이런 수준 낮은
막말이 방영되었단는 것이죠. 그리고 님이 말씀하신 것은 여자를 외모로 판단한건 어제고 이제와서 난리냐라는 건데 님이 어떻게 그것을 장담하십니까?
그 방송을 보는 모든 사람이 그래왔다고 말입니다. 님은 상처입지 않았다고 마치 성인군자처럼 잘난 척하시는데 솔직히 역겹고 위선적입니다. 루저가
무슨 의미인 줄이나 제대로 알아보세요. 제딴에는 영어로 세련되어보이고 싶어서 선택한 표현인 듯한데 패배자라는 뜻입니다. 외모에 상관없이
성공이라는 자신의 신념을 가진 모든 남성의 가능성을 모욕한 언행이라는 것입니다. 다신 한번 말씀드리지만 위선은 그만두세요. 저는 루저라 이정도
글만으로도 심한 정신적 스트레쓰를 받으니까요.
공감 2009.11.15 22:08
남자들이 여자를 외모로 평가를 하고
외모로 차별을 엄청나게 합니다.
그래서 20대 초반에 엄청
상처를 많이 받았지요.
거기에 비하면 여자들은 비교적 외모를 안 따지는 편입니다.
근데 정말 너무 못생긴 남자들이 자기 못생긴 건
생각 안 하고
여자 외모 따지는 거 보면 정말 짜증 나요.
한윤지 2009.11.15 19:39
흥미로운 시각이네요.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하구요^^

카페에서

   카페에 들어 온 것은 주스가 1500원이라는 팻말 때문이었다. 책을 읽을 만한 곳을 찾아 거리를 헤매던 중이었다. 집에서 가져 온 노트북과 서점에서 산 사전, 그리고 읽어야 할 책이 들어 있는 가방이 무거웠다.
   주스는 2000원이었지만 그냥 앉았다 가기로 했다. 집 근처에서 유일하게 2층이 있어 편히 앉아 있을 수 있는 카페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나보다 먼저 온 사람이 너댓명 있었지만 다들 오래지 않아 나갔다.
   텅 빈 2층에서 가만히 책장을 넘겼다. 손가락이 움직였지만 눈은 움직이지 않았다. 마음도 움직이지 않았다. 책이 읽히지 않았다. 책을 읽는 대신 나는 노트북을 꺼내어 음악을 재생했다. 헤드폰이 쿵쿵, 울리기 시작했다.
   멍하니 앉아 음악을 듣고, 편지를 썼다. 포털 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가십 기사도 몇 개인가 읽었다. 날씨는 맑았다. 통유리 너머로 가로수가 바람에 흔들렸다. 나가는 길에 낙엽 하나를 주워야지, 생각했다. 어떤 색일지 모를 낙엽은 편지 봉투에 들어가 국경을 넘을 것이었다.
   주스 잔이 비어 갈 때쯤 한 사람이 홍차를 들고 계단을 올라 왔다. 창가에 앉은 그는 테이블 위에 노트와 인형을 꺼내 올려 뒀다. 왼손잡이였다. 왼손이 끊임 없이 움직이며 노트 위에 무언가를 남겼다. 글인지 그림인지, 어떤 내용인지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창과는 반대쪽, 가장 구석에 앉아 있었다.
   잠시 후 나와 같은 주스를 받아 들고 올라 온 또 한사람은 아무 것도 꺼내지 않았다. 텅 빈 테이블 위에 주스 한 잔 만을 올려 둔 그는 아무 말도,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다. 조용히 혼자 앉아 주스를 마시던 그는 한 통의 전화를 받고 밖으로 나갔다.
   책은 읽히지 않고, 편지는 이미 다 써버렸고, 며칠 전 피가 났던 왼쪽 귀는 헤드폰의 소리를 견디지 못하고 아려 왔다. 하지만 카페는 한가로웠다. 한 사람은 말없이 앉았다 떠났고 한 사람은 여전히 왼손을 끊임없이 움직였다. 그 한가로움이 너무 좋아 나는 자리를 뜨지 못했다.

10 분 간의 노동자대회

   메이데이 이후로 처음으로 노동자 집회에 갔다. 다양한 이들이 모이는 집회를, 이름 따라 노동자 집회라고 규정해 버리기엔 망설임이 따르지만, 대개 그런 곳은 실제로 노동자 집회가 된다. 떨리는 마음으로, 여의도 공원 앞에 줄지어 서 있는 대절 버스들의 사이를 지나 광장으로 들어 갔다.
   광장을 가득 메운 수만의 사람들을 보자 숨이 막히고 다리가 풀려 왔다. 예전에는 그것이 집회가 싫어서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어디서든 그랬다. 공연을 보기 위해 장사진에 끼어 있을 때도 그랬고 쇼핑을 하기 위해 인파를 뚫어야 할 때도 그랬다.
   광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은 질서 없이 움직였다. 행사 천막을 가로지르기 위해 피켓을 아무렇게나 발로 밀었고 사람들 한가운데에서 서슴 없이 담배를 피웠다. 서로의 몸이 부딪히는 데에 아무런 거부감도 없는 사람들이 내 곁을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그곳에서 질서는 중요한 것이다. 무리마다 한 사람씩이 확성기를 어깨에 매고서 하나하나 지시한다. 자, 다들 일어서 주세요, 앞으로 두 발만 이동하겠습니다, 줄은 두 줄로 맞춰 주십시오, 무엇을 위한 질서인지는 불분명하다.
   황망히 다니다가 우연히 멈춰 선 곳은 스크린 앞이었다. 아직 본 행사를 시작하기 전, 각계 인사들의 영상 메시지를 재생하고 있었다. 화면에 나온 사람들은 하나 같이 투쟁, 을 외치며 말을 마쳤다. 그렇지 않은 몇 안 되는 이들 중에 사회당 대표가 끼어 있었다.
   정당 정치에 크게 관심도 없으면서 사회당에 당적을 두고 있는 것은 어쩌면, 내가 겪어 온 당 대표들이 아무도 쇳소리를 내지 않았기 때문일는지도 모른다. 물론 그들의 말이 나를 답답하게 하는 때야 있지만, 그들의 말이 나를 떨리게 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행사가 시작된다. 사회자는 망설임없이 말한다, 민중의례를 진행하겠습니다, 모두 자리에서 일어서 주십시오. 수만의 사람들이 일제히 일어선다. 그들의 앞에는, 무대에서 가장 가까운 그곳에는, 전장연의 장애인 활동가들이 있다. 대다수가 휠체어에 앉아 있다, 민중의례를 시작해도 그들은 앉아 있는다.
   말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없게 만드는 똑같은 쇳소리들, 스스럼 없이 피어 오르는 담배 연기, 여기저기서 부딪히는 어깨들, 모두 일어서라는 말, 줄을 맞추라는 말, 그것들의 사이에서 나는 길을 잃었다. 한쪽에서 나부낀 동인련의 무지개 깃발이 아니었더라면, 멀지 않은 곳에 있었던 성폭력 대책위의 천막이 아니었더라면, 나는 광장에 발을 들이지조차 못했을 것이다.
   전태일 평전은 읽어보지 않았다. 그에 대해 내가 아는 것이라고는 길에서 주워들은 것이 전부다. 절절한 그의 유서와 비에 젖은 그의 동상이, 오늘의 노동자 대회와 겹쳐져 머릿속을 떠 돈다. 그가 살아 있었다면, 그리고 이들과 같은 모습이었다면 나는 그를 사랑하지 못했을는지도 모른다.
   결국 도착한지 10 분만에, 나는 그곳을 떠나야 했다. 나는 그곳에 있는 수많은 이들을 지지하지만, 그곳에는 내 자리가 없었다.